<Parallel World> - 13화

초코파이가나파이애플파이 2018-12-20 0

인간의 위상력과 차원종의 위상력이 융합하여 새롭게 강력한 힘을 얻게 된 이세하는 한손으로 화염탄을 만들고 그 이세하를 향해 발사하였다. 

(콰아앙-!)

"!..."

그런데 화염탄은 날아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이세하가 발사했다고 생각한 순간에 이미 자신의 뒤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폭발하였다. 그것은 이세하가 '계속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으면 나는 언제든지 너를 공격할 수 있으니 어서 덤벼라'는 일종의 도발이었다. 

그런 뜻까지 상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그 행위의 대략적인 의도를 알아차린 그 이세하는 이를 빠드득 갈고 땅이 갈라질 정도로 강하게 박차올라 난폭한 기세로 이세하에게 덤벼들었다.

그 이세하는 차례대로 주먹과 발차기를 날렸다. 일격 하나하나가 왠만한 상대라도 맞는다면 한방에 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력, 그리고 눈으로 쫓는 것이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허나 이세하는 마치 그 모든 공격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 이세하가 공격을 하기 직전에 이미 공격의 경로에서 벗어나 회피하고 있었다.

모든 공격이 이세하의 털끝 하나 스치지조차 못 하자 그 이세하는 더더욱 광분하며 공격을 퍼부었다.

"우오아아아ㅇ-"

(텁-)

"!"

이세하는 모든 공격들을 가볍게 피해내다가 그 이세하가 뻗은 팔을 한손으로 붙잡아냈다.

(퍼어억-!!)

"크어악-!"

그러고는 몸을 한 바퀴 돌려 그 이세하의 배에 발차기를 꽂아버리고는 잡고 있던 팔을 놓아버리며 그대로 날려버렸다. 

"으으으...!"

그 이세하는 어렵사리 몸의 균형을 다시 잡고 양손에서 하나씩 에너지탄을 만들어 날렸다. 

이세하는 이번엔 피하지 않고 그 이세하가 날린 에너지탄 두 개를 날아오는 야구공 잡듯이 받아내고는 도로 그 이세하에게 집어던졌다. 자신이 날린 에너지탄에 되돌려 맞은 그 이세하가 몸을 휘청거리던 틈에 이세하가 다가와서 안면에 주먹을 때려박았다.

안면에 주먹을 맞은 그 이세하는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세하는 발로 다리를 걸어 그 이세하의 몸을 낮게 띄우고는 손으로 땅을 짚고 아래에서부터 위로 그 이세하의 등을 차올렸다. 

(휘리릭-)

이세하는 그 상태에서 공중제비를 몇 바퀴 돌며 하늘로 날아올라 무릎으로 다시 한 번 이세하의 등을 차올렸다. 그 다음 몸을 앞으로 한 바퀴 회전시키며 이번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 이세하의 가슴쪽을 발꿈치로 찍어내리며 지상으로 떨어트렸다.

"...!"

지상으로 떨어져 운석마냥 땅에 내리꽂힌 그 이세하가 위를 올려다보자 이세하가 어느새 엄청난 속도로 내려오며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 이세하는 다급히 몸을 일으키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직후에 이세하의 주먹이 방금 전까지 그 이세하가 있던 자리를 초토화시키며 엄청난 양의 먼지구름을 발생시켰다.

"하아아아아-!!!"

그 이세하는 낮게 뛰어올라 위상력을 가득 실은 큰 에너지탄을 만들어 먼지구름이 일고 있는 그 자리를 향해 내던졌다.

먼지구름 속에서 이세하는 손을 펼쳐 손바닥에서 위상집속검을 일직선으로 뻗어 날아오는 에너지탄에 찔러넣었고, 위상집속검의 위상력을 내부에서부터 방출하여 에너지탄을 사방으로 분산시켜버렸다. 

그 여파로 인해 사방의 시야를 가렸던 엄청난 양의 먼지구름은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크으으으!"

에너지탄이 맥없이 막혀버리자 그 이세하는 위상력을 더더욱 끌어올리며 이세하에게 돌진하였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육탄전이 시작되었는데, 그 이세하의 모든 공격은 이세하에게 맞지 않았고 반대로 이세하가 내지르는 주먹이나 발차기는 정확하게 적중하고 있었다.

(퍼억-!)

"크어ㅇ..."

육탄전이 이어지면서 이세하의 주먹이 그 이세하의 배에 강하게 꽂혔고,

(파아악-!)

이어서 턱에 어퍼컷을 때려박아 몸을 띄워 올렸다. 그런 다음 양손을 펼쳐 그 이세하의 몸에 밀착시킨 뒤 화염을 이용한 폭발을 일으켜 멀리 날려버렸다. 그 이세하는 가까이 있는 바위산을 여러 개 뚫고 날려지다가 마지막 거대한 산의 중턱에 박제되듯이 대(大)자로 박혔다. 

이로써 상황은 완전히 180도로 변하였다. 여태껏 속수무책으로 당해낼 수 없었던 그 이세하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롭고 차원이 다른 힘으로 이세하가 완전히 농락하는 수준으로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하가 어떻게 갑자기 저렇게나 강해진 거지?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물론 이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던 자들은 이세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사냥터지기 팀을 제외한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은 이세하에게 일어난 것인지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인간의 위상력인 제 1 위상력과 차원종의 위상력인 제 2 위상력의 융합하여 완전히 새롭게 탄생한 힘... 즉, 이세하가 행사하고 있는 힘은 제 3 위상력이었다. 

그것도 한참 예전에 검은양 팀이 아스타로트의 침공 당시 애쉬와 더스트에게서 힘을 나눠받아(늑대개 팀의 경우 맘바에게서 힘을 나눠받아) 일시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던 제 3 위상력과는 엄연히 다른, 오직 이세하 자신만의 힘으로 개화한 순수 오리지널의 제 3 위상력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게서 억지로 힘을 받아 강해지는 정도와는 당연히 비교조차 되지 않았고 몸이 버티지 못하고 붕괴할 수도 있다는 리스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제 1 위상력이나 제 2 위상력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힘이었다.

허나, 제 3 위상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그 이세하의 힘을 무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읏...?"

그 이세하는 주변을 향해 기합소리를 크게 지르며 위상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방금 전보다 위상력이 더욱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이세하의 능력,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지속적으로 힘이 상승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것도 상대방이 강하면 강할수록 힘의 상승폭은 그만큼 더 많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 이세하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 이세하는 힘을 더 증폭시키기에 최상의 상대,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극상의 경험치였다. 

힘이 더욱 상승하여 강해진 그 이세하는 이세하에게 다시 한 번 덤벼들었다. 

'확실히 더 강해졌군...!'

역시 그 능력으로 인해 한층 더 강해진 탓인지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이세하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 이세하는 확실하게 이세하의 움직임을 따라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세하의 힘에는 완전히 미치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다곤 하나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비록 여전히 이세하의 힘에 미치지 못 하고 있다고는 해도 싸움이 오래 지속될수록 그 이세하의 힘은 계속해서 상승하게 될 것이고 힘의 상승에는 한계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다시 한 번 이세하의 힘을 뛰어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이세하는 승부를 오래 끌 생각이 없었다. 그 이세하가 다시 자신의 힘을 뛰어넘게 되기 전에 전력을 다한 공격으로 재기불능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하앗!"

(텁-!)

'아니!?'

이세하가 주먹을 내지르자 움직임을 조금씩 따라잡고 있었던 그 이세하는 드디어 이세하의 공격을 눈으로 쫓아 막아내기까지 하였다. 

"큿...!"
'이 녀석... 그 사이에 또 강해진 건가!'

"크극... 그으윽...!"

"?!"

그 이세하는 손바닥으로 이세하의 주먹을 붙잡은 상태로 그 손바닥에서 위상력을 방출시켰다.

"으윽!"

방출된 위상력에 이세하는 크게 밀려났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다소 약간의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잠시 주춤한 사이에 그 이세하는 하늘 높이 뛰어올라 무수히 많은 에너지탄을 흩뿌렸다. 

이세하는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에너지탄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헤쳐나왔다. 에너지탄들의 비를 빠져나오자 그 이세하는 기다렸다는듯이 몸에서 강력한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파아앙-!)

"!!!"

허나 동시에 이세하도 똑같이 충격파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그 이세하의 충격파를 상쇄시켜 버렸다. 당황한 그 이세하는 손발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이세하를 공격했다. 

하지만 당황한 탓에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공격이 지금의 이세하에게 제대로 맞을 리가 없었기에 이세하는 모든 공격들은 전부 피해내고 그 이세하의 팔을 낚아채서 있는 힘껏 내던졌다.

그리고 자신의 전력을 담은 초신성을 만들어내어 그 이세하를 향해 날렸다.

"우오오오오오-!"

그 이세하는 빠르게 몸의 균형을 되찾고 이세하가 날린 초신성에 맞서 자신도 초신성을 만들어 날렸다. 그 크기는 어제 이세하와 처음 싸우면서 만들어냈던 초신성의 수십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두 개의 초신성이 격돌하였다. 격돌의 여파로 인해 나무가 뿌리채 뽑히듯 대지는 지면이 통째로 뒤엎어지고 있었고 주변에서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은 그 여파를 버텨내지 못하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멀리 날려지고 있었다.

"크으으... 으으으으...!"

"흐으읍!"

두 개의 초신성의 격돌은 조금씩 그 이세하의 초신성이 밀려나고 있었다. 그 이세하는 사력을 다해 버텨내고 있었으나 이세하의 초신성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버텨라! 버티는 거다!"

이런 상황을 흔들리는 생체전함 안에서 보고 있던 파우스트가 그 이세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런 파우스트의 말 때문일까, 이세하의 초신성의 기세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뭣...!"
'또 그 사이에 힘이 상승했어?!'

"크아... 아아아!!!"

"이 자식!"

이세하는 더욱 더 힘을 끌어올려 초신성의 위력을 상승시켰다. 허나 그 이세하도 덩달아 힘이 상승하여 이세하의 초신성을 밀어냈다, 멈췄다를 반복하고 그 이세하의 초신성은 밀려났다, 멈췄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계속 힘이 상승해서 다시 내 힘을 초월할 거야... 그 전에 서둘러서 끝을 맺어야...!'

이세하가 조금씩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을 때였다.

"... 커억!?"

"응?"

그 이세하가 갑자기 피를 토하고는 몸을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그 이세하의 초신성은 기세가 한풀 크게 꺾이고 말았다. 그리고 이세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하아아아아앗!!!"

"크으아아아아아악-!!!"

이세하는 단번에 힘을 한계 이상으로 발휘하여 순식간에 자신의 초신성을 밀어붙였고, 그 이세하는 자신의 초신성과 함께 밀려나 초신성의 폭발에 의한 눈부신 빛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후우..."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이세하는 천천히 힘을 가라앉혔다. 이리하여 두 명의 이세하간의 싸움에 결착이 난 것이었다.

"세하야!"

잠시 후, 초신성의 여파로 날려졌던 동료들이 이세하의 곁으로 돌아왔다.

"세하야, 몸 상태는 괜찮아?"

"어, 아직 여유는 있어."

"그건 그렇고 정말 대단했어요. 설마 그렇게나 강해지시다니..."

"하하, 어쩌다보니... 음?"

동료들과 하루만의 재회, 정확히는 몽환 세계에서 지낸 약 9년만의 재회에 이세하는 반갑고 그리운 느낌을 받으며 기쁜 표정을 보였다. 그러던 그때, 그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떤 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 기척의 정체는 다름 아닌 초신성의 폭발과 함께 모습을 감춘 그 이세하였다.

"저, 저 녀석 아직 살아 있었어!?"

"하아... 하아...!"

"걱정하지마, 저 녀석은 이미 한계니까."

이세하가 말한 대로 그 이세하의 상태는 결코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각성 상태는 진작에 풀려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온지 오래였고, 몸 또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고도 그 이세하는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우며 싸우려 하고 있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말이다.

그러던 때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생체전함에 있었던 파우스트가 직접 그 이세하의 곁으로 내려와 명령하며 소리쳤다. 그것도 지금의 이세하에게는 불가능이나 다름없는 명령을.

"뭐하고 있느냐! 어서 일어나 싸워라! 너의 힘은 고작 이 정도가 아닐 것이다!"

"그만 둬! 그 녀석은 이미..."

"네... 아버지...!"

"뭐?!"

그런데도 그 이세하는 파우스트의 말에 따라 만신창이인 몸을 혹사시키며 억지로 힘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에 파우스트는 기뻐하듯 말하였다.

"그래, 바로 그거다! 계속해서 싸우는 거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그 이세하의 몸은 이미 한계였다. 설령 영구적으로 무한히 힘이 상승한다 하더라도 육체 또한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상승하는 힘을 받쳐줄 육체의 한계에는 상한선이 명확히 그어져 있었고 그걸 초과했을 경우 몸은 버티지 못하고 자멸을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이세하의 육체는 이세하를 상대하며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힘을 따라잡지 못하고 한계를 초과하여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고, 이를 확인시켜주는 것이 바로 방금 전 초신성끼리의 격돌 도중에 그 이세하가 갑자기 피를 토하며 몸을 비틀거렸던 것이었다. 

어쨌든 만약 그런 상태에서 무리하며 힘을 억지로 끌어올린다면 그 이세하의 육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파우스트는 그러한 사실조차 모른 채 이세하에게 계속해서 싸우라고 하였다.

"하하하! 자,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어서 저놈들을 없애ㄹ..."

"안 됩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파우스트와 그 이세하의 앞을 가로막아섰다. 뜻밖에도 그 사람은 파우스트 친위대의 대장인 레아였다.

"레아, 뭐하는 거냐! 어서 비켜라!"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이상 계속했다간 왕자님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저는... 저는 그걸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레아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파우스트에게 더 이상 그 이세하에게 계속 싸우라는 명령을 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였다. 

"레아... 너는 인간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다는 거냐!"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왕자님을 희생시키면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레아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인류에게 있어서는 무자비하게 인류를 학살하는 차원종에 불과했을지 모르나 레아는 누구보다 그 이세하를 소중히 생각하며 따르는 자였기에 설령 자신들의 왕인 파우스트라 해도 그 이세하를 혹사시키는 것을 두고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파우스트는 이러한 레아의 간청에 뜻을 꺾기는커녕 오히려 반발하며 소리쳤다.

"그 입 다물어라! 이 이상 방해하겠다면 너부터 없애버리겠ㄷ..."

그 순간, 옆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아의 말대로야. 이제 그만해."

익숙한 한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누구인지 확인하였다. 눈처럼 새하얀 백발의 금색 눈동자를 가진 여성... 바로 서지수였다.

"서지수,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틀림없이 외부차원의 성에 놔두고 왔을 터인 서지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파우스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서지수가 말하길 파우스트가 출발하기 직전에 몰래 생체전함 하나에 잠입하여 파우스트를 막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한다. 도중에 두 명의 이세하간의 무지막지한 싸움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생기지 않기는 했지만.

아무튼 서지수는 파우스트의 곁으로 다가와 점잖은 분위기로 파우스트에게 말하였다.

"그쪽 세하는 이미 싸울 수 없는 상태야.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텐데. 아니면, 복수라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것조차도 못 알아보는거야?"

"웃기는 소리! 이세하는 무한히 강해진다! 그러니 한계따위는 없어! 아직 싸울 수 있단 말이다!"

"... 그럼 그쪽 세하는 본인이 원해서 싸우려는 거야? 아니면 그저 당신의 명령에 억지로 싸우려는 거야?"

"바보같은 질문이군, 그거야 당연히 자신도 원해서 싸우는 게 아니겠나!? 이세하는 나와 함께 복수심을 키워왔으니까!"

"그렇다면 어디 한 번 확인해보자. 레아, 혹시..."

서지수는 레아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물어봤다.

"네... 예전에 비슷한 능력을 가진 녀석을 흡수해서 어느 정도 가능하기는 합니다만..."

"좋아, 그럼 부탁할게."

서지수는 레아에게 어떤 능력을 그 이세하를 대상으로 발휘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레아는 서지수가 왜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인지 의아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일단 서지수의 부탁에 따라 그 이세하를 대상으로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물론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싫어...>  <그만하고 싶어...>

"이... 이건...!?"

환청처럼 누군가의 목소리가 주변으로 확산되고 있었던 것이다. 서지수가 레아에게 부탁한 것은 타인의 마음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할 수 있다면 그 이세하를 대상으로 능력을 발휘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즉, 지금 들리고 있는 목소리는 바로 그 이세하의 마음의 목소리였다. 그 이세하의 마음의 목소리는 하나같이 어둡고 우울하며 괴로운 목소리들이었다.

<아파...>  <힘들어...>  <도와줘...> 

"아아..."

그리고 마지막 마음의 목소리,

<싸우고 싶지 않아...>

"!"

'싸우고 싶지 않다'는 이 한 마디에 파우스트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천천히 그 이세하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주의깊게 ** 않았던 그 이세하의 얼굴에는 슬픔과 괴로움만이 가득 차있었다.

"이걸로 알겠어? 그쪽 세하는 처음부터 싸움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렇다면 어째서..."

"아직도 모르겠어? 당신이 분명히 말했지... 어릴 적부터 복수라는 시답잖은 것 때문에 싸우기만을 강요해왔다고. 철조차 안 든 어린 아이였던 그쪽 세하는 그저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인 당신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 아무리 어떠한 고된 일이라도 억지로 버텨가며 따랐을 거야. 한창 부모의 애정을 쏟아부어줘도 모자랄 판에 그런 식으로 키웠으니 감정이 메마르고 오직 아버지인 당신의 말에 따르기만 할 뿐인... 그저 싸움만을 반복하는 살인 기계로 만들어 버린 거라고!"

서지수는 파우스트와 만나 대화를 나눈 이후에 지금까지 마음 속에 담아뒀던 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계속 조용히 당신의 말에 따라서 싸웠냐고? 당연히 그럴 수 없었겠지! 방금 말한대로 당신이 그런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끔 키웠으니까! 괴롭지만 당신이 계속 그런 식으로 놔뒀으니까 마음 속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을 거야... 이제 좀 알겠어?! 알겠냐고!?"

"......"

파우스트는 감정이 복잡한 표정만을 지은 채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나는 그저..."

파우스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서지수는 이러한 파우스트를 지나쳐 그 이세하에게 조심히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많이 힘들었지? 억지로 강요받아 원치 않는데도 계속해서 싸우고, 싸우면서 몸은 무척 아픈데 멈출 수 없었고, 누군가 도와줬으면 싶었지만 그럴 사람이 없었을 거고... 무척이나 괴로웠을거야. 하지만 이제 괜찮아. 더 이상 억지로 강요받으면서 싸우지 않아도 돼. 싸우기 싫으면 싸우지 않아도 되고, 몸이 아프면 푹 쉬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달라 하고... 이제부터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더 이상 너를 옭아맬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아... 으..."

그때였다.

(뚝... 뚝...)

그 이세하는 어느새 힘을 완전히 가라앉히고 서지수의 품에 꼭 안겼다. 그리고 지금껏 죽여왔던 감정들을 되살리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모의 애정을 받지 못 하고 감정을 죽인 채 오직 생사가 걸린 피튀기는 싸움에 몸을 던지며 마음속으로 고통을 간직해왔던 그 이세하는 비록 다른 세계의 인간이었지만 하나뿐인 자신의 어머니에게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들이 풀릴 때까지 울던 그 이세하는 서지수의 품 속에서 마치 한 명의 어린 아이처럼 편히 잠들었다.

"... 이걸로 다 끝났어.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싸우지 않아도 돼. 인류도, 차원종들도, 그리고 이 세하도..."

"끝났... 다고요...?"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그 이슬비가 앞으로 나와 서지수에게 되물었다. 서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 이슬비는 갑자기 손에 들고 있는 나이프를 띄우고는 칼끝을 그 이세하에게로 겨누었다.

그 이슬비의 돌발적인 행동에 깜짝 놀란 모두가 소리쳤다.

"자, 잠깐! 뭐하는 거야!? 다 끝났다고 했잖아!"

확실히 이걸로 싸움은 끝났다. 하지만 그 이슬비는 이러한 결과에 납득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잠자코 있으란 말이야?! 지금까지의 일들을 '아, 그랬었구나'하고 끝내라는 거냐고! 그런 건 인정 못 해! 이런 식으로 끝내면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은 뭐가 되냔 말이야!"

그 이슬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은 아니었다. 분명 그 이세하는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었지만 파우스트의 명령에 따라서 많은 인간들을 학살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속사정을 알았다고는 해도 저항군으로써 계속 싸워오며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해온 그 이슬비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끝을 맺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부모님도... 동료들도... 전부 죽임 당했어...! 그러니까 나는 이 녀석의 숨통이라도 끊지 않는 한 납득할 수 없어!"

"기다려, 슬비야...! 너의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서지수가 그 이슬비의 앞을 막아서며 설득하려 하였으나,

"시끄러워!!!"

그 이슬비는 이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상태였고, 띄워놓은 나이프에 위상력을 싣고 정확히 그 이세하의 머리를 향해 발사하였다. 

"아, 안 ㄷ..."

모두가 달려들어 막아보려 하였으나 그 이슬비가 날린 나이프는 이미 그 이세하의 눈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지금의 그 이세하라면 저항조차 못 하고 머리가 꿰뚫리는 것은 굳이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슬비가 날린 나이프가 그 이세하의 머리를 꿰뚫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커억...!"

주저앉아 있었던 파우스트가 그 이세하의 앞으로 나와 대신 나이프에 맞은 것이었다. 나이프는 정확하게 파우스트의 심장을 꿰뚫었고, 파우스트는 조금씩 비틀거리다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파... 파우스트?! 어째서... 당신이라면 막아낼 수 있었을텐데 왜..."

서지수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파우스트는 그 이슬비가 날린 나이프를 막아낼 수 있었다. 즉, 파우스트는 일부러 나이프에 맞아 심장이 꿰뚫린 것이다.

"죽음으로 갚아야 하는 건 바로 나니까... 너무 늦긴 했지만 이제서야 깨달았어... 인간에게 복수한다는 것따위... 처음부터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걸... 서지수, 당신이 말했지... 본인은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바보처럼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많은 생명을 해쳤어...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지... 그러니 이건 그 대가야..."

"이 바보야! 죽는다고 해결이 될 리가 없잖아! 잘못을 깨달았으면 살아서 만회하란 말이야!"

"... 인간 소녀여... 모든 원흉은 나다... 그러니 부탁하마... 이 목숨을 내놓을테니 내 아들과 동족들을 죽이려 하지 말아다오..."

"... 웃기지 마...! 그런 말로 끝낼 거였으면 처음부터 싸우지도 않았어!"

파우스트의 진심 어린 부탁에도 그 이슬비는 듣지 않고 다시 한 번 나이프를 띄워 그 이세하에게 날리려 하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이프는 날아가지 않고 공중에 둥둥 떠있을 뿐이었다. 

"... 그런데 왜...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 소중한 사람들의 원수를 갚고 싶은데... 너희들에게 복수하고 싶은데... 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거냐고...! 왜..."

"슬비야,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복수 같은 걸 해봤자 아무것도 없는 허무함만 남게 될 거라는 걸..."

"......"

그 이슬비는 결국 그 이세하를 해치지 못하고 조용히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더 이상 돌발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 레아... 그리고 다른 자들에게도... 미안하다... 어리석게도 나 혼자만의 복수심에 동참시켜 이 지경까지 끌고 왔으니... 이 어리석은 내가 너희들에게 마지막 명령... 아니, 부탁을 해도 되겠느냐...?"

"왕이시여..."

"인간들을 멸망시킨다느니 그런 건 모두 잊고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거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하나뿐인 아들을 곁에서 도와줬으면 하는구나..."

"굳이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서지수 님과 만나고 헤어진 뒤부터 서지수 님의 가족이신 당신과 그 아드님인 왕자님을 평생 따르기로 자신에게 맹세했었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길..."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구나...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사과하러 가야겠지..."
'곧 만나러 가겠어... 서지수...'

"... 파우스트...?"

서지수는 파우스트를 몇 번이고 불렀으나 반응이 전혀 없었다. 파우스트의 눈은 이미 편안히 감겨 있었고,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파우스트는 숨을 거둔 것이었다. 서지수는 파우스트의 손을 어루만지며 마음속으로 파우스트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비록 좋다고 말할 수 없는 형태로 다시 재회하게 됐었지만... 그래도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기뻤어... 안녕...'

그렇게 싸움은 파우스트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매듭짓게 되었다. 

분명 그 이슬비 말고도 이런 결말에 납득하지 못 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런 생각을 가진 자들은 납득하지 못 한다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결말의 형태야 어쨌건 더 이상 많은 희생을 강요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그저 이러한 형태의 결말을 납득하지 못 한다는 이유 하나로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싸움의 끝이라는 사실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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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는 마지막화(에필로그)입니다
2024-10-24 23:21:3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