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Paradox(5)
건삼군 2018-12-20 0
기분이 더럽다. 마음은 왠지 모르게 갑갑하고 화가나는데 그 화를 분출할 상대가 없어서 더욱 화가 난다. 그래서 그런걸까, 저녁식사를 한지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뭘 먹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고 배가 아파온다.
일단 내가 당분간 쓰기로 한 안방에 놓여진 침대에서 누워있기 떄문에 아까보다는 배가 덜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거슬리는건 매한가지다.
가뜩이나 기분이 더러운데 배까지 아프니까 정말로 짜증이 난다. 그나마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면 나아질 것 같긴 한데 가지고 있는 옷이라고는 이 교복 한벌밖에 없기 떄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그나저나 앞으로 갈아입을 옷은 어떻게 하지... 어? 왠 붉은게...
그렇게 옷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며 복통을 애써 무시하고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침대 시트에 붉은게 묻어있는 것을 보고는 잠시 사고가 정지한 채로 무음의 비명을 질렀다.
거짓말, 왜 하필 오늘... 왠지 이상하게 기분이 더럽고 배가 아프다 했는데... 어떻하지...? 물로 닦으면 지워지나...? 아니, 그보다도 빨리 화장실에 가야...
“저기, 과일 깎아놨는데 먹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던 그 순간, 하늘이 도운 것일까.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고 사태 보자 엄마는 곧바로 문을 닫고 방안으로 들어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나한테 여분으로 남는게 있으니까 그거 써.”
“...고맙습니다...”
“들어온게 세하가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아빠가 들어왔었다면 난 분명 100% 멘탈이 깨졌을 테니까...
“나 불렀엌?!
갑자기 방문을 열고 불렀냐고 말하며 들어오는 아빠. 하지만 그보다도 빠르게, 엄마가 염동력으로 다시 문을 닫은 탓에 아빠는 고통스런 신음소리를 내며 강제로 바깥으로 퇴출당했다.
“뭐하는 짓이야?!”
“들어오지마. 들어오면 좋은 꼴 못볼거야.”
“뭐?”
아픈 기색을 띄며 황당해 하는 아빠였지만 의외로 순순히 엄마에 말에 따르며 얌전하게 방밖에서 대기하고있는 아빠. 역시나, 미래에서나 과거에서나 아빠는 여전히 엄마에게 휘둘리는 성격인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한바탕 아찔했던 소동이 지나가고 일이 수습되자 엄마는 외투를 챙겨입으며 현관에 놓여져 있던 신발을 신고는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그리고 이세하, 여기에 세리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적어놨으니까 나중에 사러 가.”
“이게 뭔데... 야, 이걸 남자인 나보고 사라고?”
엄마가 건넨 리스트를 받아서 확인한 아빠는 의문을 표하다가 이내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 남자가 사기에는 껄끄러운 용품들을 본거겠지.
“정 힘들겠으면 세리랑 같이 가던가.”
“아니, 그냥 재 혼자서 사라고 하는게 더 좋지 않냐...”
“돈은 네가 가지고 있잖아. 그리고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고 네가 집에 있어봤자 게임밖에 더하겠어?”
“알았어, 알았으니까 잔소리좀 그만하고 그냥 빨리 가라...”
결국 잔소리에 못이겨 알겠다고 대답한 아빠. 그러자 엄마도 그제서야 잔소리를 멈춘 채 현관을 나갔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이렇게 티격태격 거리는 사이였단 사실에 조금의 신기함을 느낀 나는 다시금 내가 부모님에 알고있는 것은 쥐꼬리 만큼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엄마가 현관을 나가자 다시 한번 집은 침묵으로 물든 채 나와 아빠사이에서 생겨난 정적이 분위기를 고착시켰다. 그러나 아빠가 머뭇 거리며 내게 말을 건 것 덕분에 다행히도 침묵만큼은 다시 사라졌다.
“...그러면, 벌써 좀 있으면 10시인데. 넌 먼저 자. 난 보스 잡아야 하니까.”
“보스? 어느 게임인데?”
“다크 스피릿 3.”
“아... 그거. 엄청 고전 게임인데.”
이따금 유명 고전게임들을 검색해 보면 반드시 한번쯤은 보이는 게임이다. 아마 별명이 유다희양 공략 미연시 게임이였지... 워낙 고전 게임이라 기종이 단절돼서 한번도 해본적은 없지만.
“...이거 나온지 2년정도 밖에 안됐는데... 하긴, 넌 미래에서 왔으니까 너한테는 고전 게임이겠지.”
“그거 재밌어?”
“음... 하드코어 한 맛이 짜릿(?) 하지. 한번 해볼래? 마침 이번에 새로 콘솔을 사서 예전에 쓰던거로 같이 돌리면 멀티를 할 수 있거든.”
“정말? 그럼 해볼래. 고전게임들 중에서는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게임이기도 하고.”
“그래? 멘탈 꺠지는 거는 책임 못진다.”
멘탈이 깨진다니, 그런거, 유머일게 뻔하잖아. 아무리 어려워 봤자 고전게임은 고전게임일 뿐, 최신게임으로 단단히 단련된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유다희양? 그런 것 쯤이야 가볍게 무시하면 되지.
그렇게 속으로 자신이 가득찬 생각을 읆주린 나는 아빠를 따라 아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꽤나 잘 정돈 되어있었고 데스크 옆에 놓여진 선반에는 각종 고전게임들이 가득했다. 뭐, 아빠에게는 대부분 최신게임들 이겠지만.
“일단 컨트롤러를 들고 침대에 앉아.”
일단 침대에 앉으라는 아빠의 말에 침대에 앉은 나는 데스크에 놓여져있던 구형, 아니 이곳 기준으로는 신형 콘솔과 꽤나 큰 사이즈의 모니터 화면에 불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렸다. 그리고 이내 아빠가 게임 CD를 삽입사는 것과 동시에 로딩화면이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틀 화면이 켜졌다.
“그럼 시작한다. 후회하지 마.”
“후회는 개뿔.”
이 까짓거, 최단속으로 깰거야.
...라고 다짐한 나지만, 나는 그때 아직 모르고있었다.
내가 건들지 말아햐 할 것을 건들였단 사실을.
“뭐야?! 왜 안죽는건데?! 벌써 몇백번은 떄렸다고!”
“그야 보스니까. 아마 한참은 더 떄려야 할걸? 아, 패턴 바뀐다. 조심해.”
“에에?! 나 방금 분명히 구르는 거 눌렀는데?! 왜 안굴러지는 거야?!”
“스테미너 게이지를 봐. 다 닳았잖아. 그러게 내가 방패를 들라고 했잖아.”
“당연하게 방패같은거 없어도 칼가지고 다 튕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 아!?!?! 안 돼!!! 지금 여기서 스턴이 걸리면...!!!”
[YOU DIED]
“아아아아아아!!!!?!?! 이런 XXXXXX(자체검열)!!!!”
“야! 조용히해! 심야에 소리지르면 바깥에 다 들린다고!”
자신당당하게 장담했던 조금 전의 내가 너무 저주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벌써 몇번이나 저 YOU DIED, 일명 유다희양을 면접한 것일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게임은 원래 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죽기를 반복하고 나서, 나는 점점 게임에 익숙해지며 보스를 하나 하나 쓰러뜨릴 수가 있었다. 물론, 내 멘탈은 이미 원자단위로 분해되서 이따금 죽을 떄 마다 차마 평소에는 말할 수 없는 단어들을 서슴치 않게 내뱉기는 했지만 그래도 초반에 비해서는 양반인 수준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나는 게임에 푹 빠져들어 엔딩을 볼떄까지 ** 않기로 하였고 그런 나를 본 아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옆에서 공략법이나 팁, 혹은 숨겨진 아이템들이 있는 장소들을 가르쳐 주며 밤이 새도록 나를 도와 기여코 엔딩을 보는 그 순간까지 옆에서 같이 게임했다.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