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천사를 주웠습니다(+QnA 계속 받습니다)

루이벨라 2018-12-19 5

※ 유리가 천사(지고유리), 세하는 평범한 인간

※ 짧음주의

 

 

 

 

 

 비가 오는 어느 겨울날의 일이었다가볍게 지나가는 소나기라는 일기 예보와 달리 거세게 돌풍까지 몰아치는 바람에 계속 수리를 미루고 있던 삐걱거리는 지붕이 걱정이 되어세하는 날씨가 이럼에도 지붕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세하에게 물방울을 튀겨내니 세하는 순식간에 물에 빠진 신세가 되어버렸다찝찝한 기분에 세하는 과거에 게을렀던 자신에게 작게 욕지거리를 했다그래도 이미 나온 이상확인을 안 하고 그냥 들어가기는 그러했기에 세하는 인적이 드문 주택의 뒤쪽으로 향했다.

 

 삐그덕삐그덕-

 

 ‘역시빨리 고쳐야겠네.’

 

 낡아빠진 파이프가 이상한 불협화음을 내며 자신의 현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지금이라도 폭삭 안 무너지고 버티고 있다는 게 대단하다 할 정도였다지금 당장에라도 수리를 해야 할 거 같았지만비바람은 아까보다 더 거세어졌다이제는 한치 앞도 빗방울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기에이런 상황에서 수리는커녕 자기 몸 하나 간수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그나마 짧게 내린다는 소나기라는 예보를 믿기로 했다비만 그치면 더는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바로 수리공을 부르기로 마음먹었다세하는 대략적인 점검을 끝냈으니 슬슬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 때였다.

 

 우당탕탕--!!!

 

 “...!”

 ‘뭐지?’

 

 엄청 요란하게철통이 무너지는 소리에 세하는 가던 길을 멈추었다그러고 보니 저 뒤쪽으로 커다란 양철통이 하나 있었다그게 비바람에 넘어져버리고 만 것일까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방금 전 불었던 바람은 그렇게 거세지 않았는데세하는 귀찮아졌다고 생각했다이런 의구심을 한 번 품으면 웬만해서는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잘 풀리지 않는다세하는 한숨을 쉬며 좀 더 뒤 쪽으로 향했다.

 

 예상대로 양철통은 무너져 있었다양철통이 넘어져 있었다면 그걸로 끝이었지만하늘은 거기서 끝내게 해주지 않았다.

 

 ‘...?’

 

 옆에는 처음 보는 소녀가 몸을 웅크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얇은 하얀색 옷을 입은 소녀는 세하가 인기척을 내며 다가왔는데도 꿈쩍도 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아마도 의식을 잃은 듯 했다한눈에 봐도 심각한 – 얇은 옷의 상태와 의식이 없는 상태의 소녀의 상태에 세하는 들고 있던 우산을 집어던지고소녀를 연신 흔들었다.

 

 “이봐요일어나 봐요!”

 “...”

 

 역시 의식이 없다게다가 차가운 빗물 때문인지 피부 또한 차디차다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었다마침 소녀가 떨어져 있던 곳이 자신의 집 바로 옆이기에 망정이었지그리고 자신이 지붕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서 나왔을 때였기를 망정이었지...하마터면 소녀는 그대로 방치되어질 뻔했다세하는 그래도 하늘이 소녀를 도왔다는 생각을 하며 소녀를 안아들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소녀를 보자마자, ‘떨어졌다’ 라고 생각을 했을까길을 지나가다가 쓰러진 걸 수도 있는데어째서 떨어졌다’ 라는 선택지 단 하나만 생각을 했을까.

 

 이상했다그리고 소녀를 보니 이유 모를 기시감도 들었다소녀를 어디선가 본 거 같았다.

 

 

 

* * *

 

 

 

 소녀가 의식을 차린 건 그날 밤이었다소나기는 진즉에 가버렸고세하가 따끈한 수프로 몸을 녹이고 있었을 때소녀는 따스한 공기에 기운을 차리며 눈을 떴다폭신한 이불이 자신의 몸을 덮고 있다는 걸 인지하자소녀는 자신이 지금 어디 영문 모를 곳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여기는?!”

 “일어났어요?”

 “인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인간이라는 말부터 꺼내다니...세하는 생명의 은인에게 그러는 것이 참 서운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아직 정신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친절하게 말했다.

 

 “혹시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시는 거 같아서 말씀드릴게요여기는 저희 집이에요아까 비바람이 몰아쳤을 때당신이 저희 집에 옆에서 떨어졌어요.”

 “떨어져?”

 “떨어졌어요.”

 

 왜 여기에서까지 떨어졌다라는 그 동사가 자꾸 입안에 맴도는 걸까그런데 소녀는 세하의 떨어졌다’ 라는 말에 왠지 모르게 수긍이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구나...그 때그 공격을 받고 이탈해버린 게 분명해...”

 “뭐라고 그렇게 중얼거리시는지...?”

 “실례를 범했어구해준 은인한테 다짜고짜 이런 무례를 범하다니천사로서 자격 상실이야.”

 “천사...”

 

 천사하마터면 자연스럽게 흘러들을 뻔했다세하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당신혹시 떨어지면서 머리라도 크게 다쳤어요?”

 “무슨 소리난 멀쩡해그리고 천사랑 인간의 몸은 애초에 다르다고.”

 ‘정말 독특한 컨셉이네...’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그런데 천사라...이상하게 소녀가 하는 말에서는 굵직한 신뢰가 느껴진다저 하늘하늘한 옷차림 때문에 저러는 걸지도세하는 마침 2인분으로 끓인 수프를 한 접시 내놓으며 권유했다.

 

 “배고프죠여기 수프라도 드셔보실래요?”

 “난 배 안 고픈데...”

 “그래도 몸은 아닐 수도 있잖아요아직도 피부는 차가우니 몸을 따뜻하게 할 겸 해서 먹어봐요.”

 ‘천사는 원래 안 먹어도 사는데...’

 

 이 말을 할까하다가 소녀아니 유리는 관두었다등을 돌려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기는 소년에게서는 따스한 빛의 아우라가 비추어졌다밝고맑은 그 아우라를 유리는 인간에게서 처음 보았다.

 

 ‘착한 인간이네.’

 

 착하고따스하고고결하기까지 한...유리는 자신의 손에 쥐어진 접시를 통해 수프의 온기를 느꼈다이 수프도 저 아이처럼 참 따뜻하다유리는 숟가락을 들었다허기를 안 느낀다고 해도 맛을 안 느끼는 건 아니었기에.

 

 그렇게 한 입 먹어본 수프는...너무 맛있었다너무 맛있어서 저도 모르게 감탄까지 했다.

 

 “맛있어...”

 “그죠제가 요리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더 먹고 싶으면 말만 해요.”

 

 세하가 반반하게 웃었다유리는 그 꾸밈없는 미소에 고개를 푹 숙이며 수프에 집중을 했다화끈분명 천사에게는 온기는커녕 열기 따위 없을 텐데...이상하게 얼굴이 붉어졌다그런 유리의 변화를 세하는 잘도 캐치했다다가오며 고개를 따라 숙이며 유리에게 물었다.

 

 “어디 아파요?”

 “...”

 “혹시 감기라도 든 거 아니에요그렇게 춥게 입고 다니니 감기에 걸린 게 분명해요.”

 “...”

 

 아니천사는 온도 감지를 잘 못해인간과 다르다고하지만 세하가 유리에게 내밀어준 옷을 보자 유리는유리가 괜찮다고 해도 인간’ 인 세하는 안 괜찮다는 걸 깨달았다.

 

 “옷이 좀 클지도 모르지만 갈아입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

 

 후드 티와 청바지지금 세하가 입고 있는 옷과 비슷한 디자인인 걸로 보아 세하의 옷인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유리는 한숨을 쉬었다.

 

 “옷은 꼭...돌려줄게.”

 “그러세요.”

 

 그제야 세하의 얼굴이 더 화사해진다유리는 무언가 불만인 듯작게 요구했다.

 

 “유리.”

 “?”

 “그게 내 이름이야이름은 알려줘야 할 거 같아서.”

 

 내가 왜 이러는 걸까천사로서의 이름을 함부로 알려주는 건 아닌데특히 인간에게는 더욱하지만 저 빛나는 아우라를 가진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그러자 세하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 이세하에요.”

 “이세하?”

 “그냥 세하라고 불러도 돼요.”

 

 세하그 두음절의 단어에는 이상할 정도로 따듯함이 잔뜩 서려 있었다.

 

 

 

* * *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왔다유리는 전혀 하늘에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렇게 올바른 인간을 관찰하고 보고하는 것이 천사의 의무라고 세뇌는 하고 있었지만유리는 알았다자기가 지금 세하에게 가진 마음이 무엇인지세하를 보자마자정확히는 세하의 아우라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천사들의 교리 중에서 가장 엄격한 것이 하나 있었다.

 

 ‘천사는 인간을 사랑하면 안 된다.’

 

 인간을 사랑한 천사가 유리가 최초가 아니었다그 이전 시대에도 몇 몇 보고되었고그들의 끝은 항상 좋지 않았다유한하고 누구보다도 탐욕스러운 인간을 가까이 하기에는 천사들의 심성은 거의 대조의 위치에 있었다아무리 착한 인간이었다고 해도끝에 가서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항상 스며들어 천사를 오염시켰다.

 

 정원을 손질하는 자신을 물끄러미 보는 유리에게 세하가 물어보았다.

 

 “뭘 그리 빤히 봐?”

 “그냥...”

 

 몇 달 동안 같이 살면서 유리를 향한 세하의 말투는 변해갔다유리는 지금의 친근한 말투를 더 좋아했다그 전까지는 벽을 두고 있는 거 같았는데 지금은 그 벽을 허물어버린 느낌이랄까그리고 그럴수록 유리는 원래의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장미가 아름답지그치?”

 “...”

 “벌써 5월 달로 접어들고 있어이때쯤이면 장미가 한창 흐드러질 때지.”

 

 그리고 유리는 자연스럽게 세하에게 대해 하나씩 알게 되었다부모님은 일찍 여의어 혼자 자수성가했다는 것이런 외진 산속 저택에서 사는 건 부모가 그에게 남겨준 유산이었기 때문저택 앞에 잔뜩 흐드러진 장미 정원 또한 부모의 유산세하의 시간 대부분은 늘 세하 혼자였다.

 

 그러니 더욱 버리고 갈 순 없잖아유리는 입술을 깨물었다세하에 대해 알면 알수록세하에 대한 마음을 접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과거에 있었던 일을 현재에 와서 무를 수는 없다시간은 그렇게 지금도 흘러가서 끊임없이 과거가 되어 진다.

 

 “...”

 “...??”

 

 한창 장미를 손질하던 세하가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아무래도 장미 가시에 찔린 모양이었다유리는 걱정이 되어 황급히 세하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괜찮아이런 건 금방 멎어.”

 “...”

 

 빨간 피세하가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자신은 가시에 찔려도심지어 배에 검이 관통당해도 저런 피를 내뿜지 않는다천사는 껍데기뿐인결국 살아있지 않은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유리는 오랜 고민의 종착점을 찾았다방금 전 세하의 피를 보고 얻은 중요한 것이었다.

 

 유리가 말했다.

 

 “돌아갈까 해.”

 “하늘로?”

 

 세하가 옅게 웃었다하도 유리가 천사라고 자신을 주장하다보니 이제는 세하 또한 반농담식으로 유리를 천사라고 불렀다유리가 고개를 찬찬히 끄덕였다.

 

 “.”

 “다시 볼 수는 없겠지?”

 “그래야만 하지.”

 

 불안해서 회오리가 치는 유리의 마음과 달리 세하는 담담해보였다유리는 세하를 힐끗 보았다세하의 아우라는 여전히변함없이 고결하고 깨끗하다.

 

 무언가 서운한 감이 몰려왔다.

 

 “안 서운해?”

 “나야 서운하지.”

 “그럼 왜 그렇게 담담해?”

 “내 주제에 재회를 기약할 수는 없지.”

 

 주제라니세하답지 않다세하 입에서 저런 비관적인 말이 나올 리가 없는데...그 때세하의 아우라는 슬픈 물빛을 띄기 시작했다.

 

 저 잔잔한 호수 물에 손가락을 하나만 퉁겨도 일판만 판로 물결이 퍼질 것만 같았다세하가 설명했다.

 

 “난 지금 삶을 매우 만족해너무 만족해서 이제 더는 바랄 것도 없고...”

 “그게 무슨 소리야?”

 “있어나만 아는 그런 이야기.”

 

 세하는 더 이상 알려주지 않았다그리고 유리도 더 캐묻지 않기로 했다확실하게 끊기 위해서는 여기서부터 더 깊게 관여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도 작별의 인사 정도는...괜찮겠지?

 

 “즐거웠어.”

 “나도.”

 “넌 내가 만난 인간...아니 사람 중에서...”

 

 아마 제일 사랑했어유리는 그 말에 살풋 웃어주었다세하도 덩달아 웃었다눈앞에 있는 유리가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세하가 눈을 떴을 때에 유리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 * *

 

 

 

 유리가 가 버린 그날 밤세하는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보고 있었다오늘은 달은 없고별만 총총하다.

 

 “있잖아우리 부모님은 왜 돌아가신 줄 알아?”

 

 들을 이는 없지만 세하가 먼저 물꼬를 틀었다그 후로 세하가 고백하는 사실들은 매우 놀라웠다.

 

 “교통사고로.”

 “그 때 나도 같이 있었는데나만 살았지.”

 “왜 나만 살았을까생각을 하며자책을 하며 살아왔는데...”

 “그 날난 보았어.”

 

 아이보리색의 눈부신 금발을 가지고 사랑스러운 웃음을 짓던 어느 천사와그 천사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세하가 피식 웃었다어느 누구에게도 – 아니지금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고 있지 않았다 – 말하지 않은 마음속 깊이 숨겨둔 비밀이 술술 잘만 나온다.

 

 계속 이어진다.

 

 “난 살았어병원에서 기적이라고 했지.”

 “기적(奇籍)이라...”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인건데.”

 “그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그저 창문을 통해 상쾌한 바람 하나가 세하의 머릿결을 쓰다듬고 갔을 뿐.






[작가의 말]


http://leesehaxseoyuri.tistory.com/118


작품 QnA는 계속 받습니다. 들어온 질문은 나중에 한꺼번에 추려서 대답하겠습니다.

2024-10-24 23:21:3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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