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파이] 클로저에게 사랑은 어려워 #02(+QnA 받아요)
루이벨라 2018-12-15 11
※ 볼프파이 기반
※ 『오타쿠에게 사랑은 어려워』 패러디
※ 중편 예정
※ 개인적인 캐릭터 해석 多
#02. 모르는 척 하지 마!
파이는 재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까지 잠갔다. 심장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전력 질주라도 한 듯, 아니 실제로 전력질주를 하기는 했다. 볼프강의 얼굴 앞에서 ‘선배 얼굴 꼴 보기 싫습니다!’ 라고 말한 직후, 창피해서 그냥 내달리기는 했다.
‘이제...선배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넓은 성이니 만큼 작정하고 마음을 먹으면 볼프강의 얼굴을 안 볼 수 있긴 했지만...자신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마치 경찰관을 피해야만 하는 도둑 같이 굴어야 하는지 몰랐다.
아, 그래, 솔직해지자, 파이 윈체스터. 사실 볼프강에게 모든 과실이 있는 건 아니었다. 파이 자신에게도 볼프강만큼의 과실이 있었다. 그걸 볼프강 또한 알고 있기는 하지만, 파이를 생각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해주는 거 같은데...
‘그래도, 그래도!’
솔직히 볼프강에게 화가 나는 건 거짓이 아닌 사실. 그도 그럴 것이 파이는 이렇게 속앓이를 하는 중인데, 볼프강은 너무 태연하다. 태연하게 괜찮으냐고 묻고, 열이라도 재려주려는 것이었는지 손도 평소와 같이 스스럼없이...
그렇다. 볼프강은 평소와 똑- 같았다. 변한 게 있다면, 파이의 심정만 변했을 뿐. 다른 건 변하지 않았다.
‘이런 감정...처음이란 말이야...’
파이의 볼이 화끈거렸다.
파이가 어렸을 때, 주변에도 또래의 남자 아이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파이는 일족의 후계를 책임질 중요한 인물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또래 아이들과의 놀이보다는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게 더 익숙했다. 그렇다 보니 파이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읽었던 고전 서적에 기대는 경향이 강했다.
‘만약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만에, 만에 하나라도...! 그 술자리에 나온 볼프강의 그 말...
-너 나랑 연애해볼래?
가 파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장난식의 내기가 아닌 진심이었다면. 볼프강은 정말 파이에게 마음이 있었는데, 그걸 술의 힘(이건 분명 잘못되었다)을 빌어서 말을 했던 거라면...
자기는 그 마음에 물을 양동이 째로 들이붓고, 시원한 싸대기까지 날린 것이다. 한마디로, 정말 예의 없이 굴었다.
이런 저런 가능성을 생각해보니 파이는 정말로 볼프강을 피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솔직하게 물어볼까? 선배는 저 정말로 좋아합니까? 라고. 그러다가 아니, 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부끄러운 일이었고, 그렇다는 대답이 나온다면...자기는 그냥 대역 죄인이다. 무릎 꿇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볼프강의 진심과 다르게 파이에게는 생각 외의 변수가 작용했다. 이렇게 평범하게 지내어도 되는 걸까? 그 남들이 다 하는 연애라는 것을 하면서. 이런 자신에 비해 동생은, 슈에는 지금도, 지금도!!
노크 소리가 들려 파이는 순간 움찔했다. 볼프강인 줄 알았던 것이다. 다행히도 들린 목소리는 어린 소녀의 목소리였다. 파이는 문을 열었다. 눈앞에 핑크색의 머리를 가진 소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파이 선생님.”
“아, 루나 양...”
“파이 선생님, 기운이 없어 보이세요. 정말 어디 아프신 거 아니에요?”
“아니면 말 못할 고민이라던가?!”
소마가 루나의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소마는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다. 뭐 때문에 신이 났는지 모르지만 소마는 연신 입이 간지럽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루나가 옆에서 자꾸 옆구리를 찌르기에 간신히 입막음이 되는 거 같았지만.
소마의 말에 파이는 뜨끔했다. 애써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먼 산을 바라보는 교생 선생님을 두 제자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그런 거 없습니다. 아침 식사 때의 일은...눈 감아 주십시오.”
“호오...볼프 쌤 엄청 화났던 거 같던데?!”
“그, 그렇겠죠? 다짜고짜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루나가 다시 한 번 소마를 꾹 찔렀다. 왜 그런 말을 했냐는 뜻이었다. 실제로 볼프강은 볼프강 나름대로 지금 눈앞에 있는 파이처럼 퓨즈가 끊겨져서 이상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상태였다. 조금 나열해보자면...
-그 날 술을 먹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고백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릴까...
등등...옆에서 보는 재리와 앨리스마저 어디서부터 말을 잡아줘야 할지 가늠이 안 갈 정도였다!
하지만 볼프 쌤이 그러고 있다는 건 파이 쌤한테는 안 알려줄 거지롱~ 소마는 볼프강과 관련된 일에서는 의외로 짓궂었다.
지금의 파이는 볼프강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드는 상태였다. 역시, 무슨 다른 것이 있는 거겠지? 볼프강처럼 파이 역시 볼프강을 좋아하고 있었다던가! 아, 그러면 더 꿀잼 각인가? 사냥터지기 팀의 홈즈와 왓슨은 그리 추리하면서 서로의 입을 맞추었다.
루나가 말했다.
“아니에요. 어제 볼프강 선생님이 이야기 들었어요. 자기가 잘못한 일이었다고.”
“선배가, 그런 말을 했단 말입니까?!”
“네, 네에! 정말이에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볼프강이 ‘어제 고백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로 시작하는 자기 탓을 줄줄이 랩으로 말하고 있기는 했다. 소마는 여기서 떡밥을 하나 더 뿌렸다.
“그래서 볼프 쌤이~ 파이 쌤한테 사과하러 가야겠다고 해서, 저희를 보낸 거에요. 파이 쌤이 아직도 화가 많이 났는지에 대해서요~”
“아, 아뇨. 화나지 않았어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말에 루나와 소마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좋았으, 미끼를 물어버렸으--! 루나가 애원과 비슷한 눈빛으로 파이에게 물었다.
“그래요? 그럼 지금 당장 볼프강 선생님과 만나도 되겠네요?!”
“네? 아, 아니 저 그건...”
아직 얼굴을 볼 각오는 하지 않았는데. 이때를 놓칠세라 소마가 파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당장 볼프 쌤한테 사과 받으러 가요!”
“소, 소마 양! 자, 잠깐!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루나가 기운차게 파이의 등을 밀어버렸다. 제자들의 합동 작전(?)에 파이는 속절없이 끌려갔다.
* * *
“저, 앨리스...”
“‘내가 어제 술을 마시지만 않았어도’ 로 시작하는 말이면 다시 듣는 건 사양입니다.”
무슨 카세트라디오가 무한 반복되는 줄 알았다고요. 앨리스의 핀잔에 볼프강은 그게 아니라고 말했다. 갑자기 음습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거 같아.”
“무슨 말씀이신지, 원.”
“말썽쟁이들에게! 왜!! 그런 중대한 임무를 맡게 했을까!”
그걸 이제야 알아차리시면 어떡해요. 앨리스는 핀잔을 주었다. 사실 루나와 소마가 파이를 찾아간 건, 볼프강이 부탁을 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보자면...
볼프강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켜서 패닉이 되었을 때, 비극의 로맨스를 보는 눈빛의 루나와 볼프강 한정 짓궂은 소마가 합세하여 제안을 했다.
-파이 선생님이 피하신다면 데리고 오면 되잖아요!
-맞아 맞아! 이참에 정식으로 고백해버려요, 쌤!
-그, 그럴까?
해서 사과 겸 고백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볼프강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점 초조해졌다. 왜 그런 제자들의 제안을 쉽게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역시, 어제의 술이 문제였나?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도 숙취로 이어지고 있다거나...
“쌤~! 쌤~!”
말썽쟁이 2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듣자마자, 볼프강은 튀었다. 앨리스는 저런 요원님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부터 나왔다.
잠시 후, 파이와 함께 나타난 소마(with 루나)가 앨리스에게 물었다.
“저, 앨리스...볼프 쌤 못 봤어요?”
“볼프강 슈나이더 요원님이라면 저~쪽으로 튀셨습니다.”
“튀었다고요!?”
루나는 아직 너무 이른가보다, 라고 해서 이쯤에서 그만두고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생각했지만, 우리의 사냥터지기 팀의 홈즈, 소마는 달랐다!
튄 범인은 무조건 잡아야 한다! 라며 파이의 손을 잡고 또 냅다 뛰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남겨진 루나가 앨리스에게 물었다.
“정말...괜찮은 거겠죠?”
“볼프강 요원님이 벌이신 일이니 그분이 알아서 하겠죠.”
그분 신세타령 더는 듣기 싫어요...볼프강의 신세 한탄 랩을 43번이나 들은 자의 푸념이었다. 저 멀리서 ‘볼프 쌤 발견!’ 이라는 목소리가 들린 거 같았다.
* * *
그렇게 장장 두 시간동안, 쥐(볼프강)와 고양이 두 마리(소마와 파이)의 숨바꼭질은 계속 되었다. 막판에 가서는 소마의 말투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거기! 범인 씨! 이제 그만 잡히시죠!”
“미치겠네, 내가 무슨 도둑질이라도 했어?!”
“했죠, 했죠! 파이 쌤의 마음을 도둑질해 갔잖아요!”
그 말에 볼프강은 잠시 멈칫거렸다. 설마, 파이가 소마에게만은 진심을 말했던 걸까?!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소마 경찰관님이 파놓은 함정에 불과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소마는 볼프강의 옷깃을 꽉 잡았다. 망했다, 라는 표정의 두 어른과 달리 소마는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검거, 완료!”
“아까도 말했지만 난 범인이 아니라고!”
“범인 맞죠! 그럼 더 자세한 이야기는 두 분이서 하시고, 눈치 빠른 제자는 이만 사라집니다~”
소마는 금방 사라졌다. 사람의 영역을 한창 웃도는 능력에 볼프강과 파이는 벙찌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소마의 달리기 능력이 궁금해졌다.
어쨌든 제자의 눈부신 활약(?) 덕에 몇 시간 만에 다시 만난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빠른 만남만 이루어졌을 뿐, 둘의 마음이 정리되는 시간은 쥐뿔도 없었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이 말만 뇌리 속에 박혀 있었으니 말을 다 했다. 그래도 파이를 좀 더 좋아하는 볼프강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있잖아, 파트너...그 말 사실이야?”
“네?”
“아니, 말썽쟁이 2호가 했던 그 말...”
“네??”
잡아떼고 있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볼프강이 윽박지르듯 소리쳤다.
“그...! 내, 내가! 네 마음을 훔쳐갔다느니, 도둑질했다느니...! 하던 말...”
“아, 그 말이요?”
볼프강이 이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챈 파이는 아주 신속하게 답변했다.
“아뇨, 거짓말입니다. 제가 왜 선배에게 마음이 있겠습니까.”
“...”
“물론, 아침나절에 했던 무례함은 제 잘못이긴 하지만, 그건 틀렸습니다. 전 선배에게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다. 쌍방향의 감정은 아니었다. 파이는 볼프강에게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냥 파이가 볼프강을 피했던 건 다른 이유였을 뿐이다!
볼프강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진 걸 알아차린 파이가 볼프강에게 물었다.
“선배? 식은땀이 납니다. 어디 아프신가요?”
“...”
그걸 알아차릴 시간에 내 마음이나 알아채달라고! 볼프강은 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니, 이번에도 질렀던 거 같다. 파이가 동그랗게 커진 눈을 깜빡이며 이렇게 말했으니까.
“선배의 마음...이라뇨?”
“모르는 척 하지 마!”
처음 한 번이 어려웠을 뿐, 그 다음은 무척이나 쉬웠다. 볼프강은 그제야 계속 말하고 싶었던 것과 묻고 싶었던 것을 실토할 수 있었다.
“너, 사실 어제 우리가 했던 말 다 기억하잖아! 내가 고백을 한 것도! 그리고 네가 그 고백을 단순히 내기, 장난으로 알았던 것도! 하지만 그런 말을 하기엔 이 선배가 그럴 위인이 아니라는 거 알고서 그 후로 고민했던 거! 얼굴 보기 껄끄러웠던 거! 사실 그랬던 거 아니야?!”
“...”
어떡하죠, 정말로 정답입니다. 볼프강이 이정도로 알았다니...게다가 이렇게 화를 내다니...파이는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파이가 더듬더듬 물었다.
“그럼 선배는...정말 절 좋아하신다는 건가요?”
“그래!”
와, 이렇게 속 시원해지는 거였구나! 왜 이발사가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외칠 수밖에 없던 심정을 볼프강은 이해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자신의 진심을 드러냈다. 고로 파트너 너도 더 이상 숨길 거 없다. 전부 다 실토해버려! 난 다 이해할 수 있다고!
그런데 파이가 진지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어쩌죠. 저 정말 선배를 마음에 둔 적이 없습니다.”
“...”
한 고비 너머 또 한 고비...볼프강은 앞날이 전보다 더 캄캄해지는 걸 느꼈다.
[작가의 말]
http://closerswriters.tistory.com/77
1. 볼프파이 맞아요.
2. 2019년에 회지로 나옵니다.
3. 제 안의 소마 이미지는 저렇습니다.
4. 연말 기념으로 작품(장편, 중편, 단편)과 관련되어 궁금했던 걸 QnA로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