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수많은 기억들이 지나가고 마침내, 하나의 기억이 내 눈앞에 비춰졌다.

약품냄새가 나는 병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 다소 소란스러운 주변, 일정한 타이밍으로 느리게 울리는 기계음, 그 모든 것들을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보고있는 한 노인, 그리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간호사에게 병실에서 쫒겨나는 한 남자.

쫒겨나기 전, 남자가 떨어뜨린 바람에 산산히 흩어진 도시락통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그곳에는 먹기 좋게 작은 크기로 공들여져 만들어진 반찬과 음식들이 뭉개진 채 널브려져 있었다. 

-그것이 자네의 소원이라면...

그리고 노인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울려퍼짐과 동시에 얼마가지 않아 지속적으로 한번씩 울리던 기계음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풍경이 바뀌며 나는 다시 공원 한가운데에 주저앉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연인이 나였구나.

그래. 난 결국 행복함을 이루지 못했었구나.

난 결국 소중한 사람을 홀로 내버려 두었구나.

결국 난...

“...죽었었구나...”

눈물이 눈가에서 흘러나와 뺨을 타고 떨어져 무릎을 적시기 시작하였다. 나 혼자만 잊고있었다는 사실에 떠오른 죄책감이 내 마음을 아프게 조여왔고, 나는 그저 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워서, 슬퍼서, 미안해서.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내고도, 나 혼자서 편하게, 짊어져야할 슬픔조차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미안해서, 나는 울고 또 울었다. 그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엉망진창인 호흡을 가다듬는 것 조차 잊은 채, 얼어붙은 분수대 위로, 그리고 내 머리 위로 쓸쓸히 떨어지는  눈송이를 맞으며 울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슬비야.”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돌아 바라보자 그곳에는 지금까지 내가 기억속에서 보아왔던 그가 서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지체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하를 향해 달려가 온 힘을 다해 그를 껴안았다.

그의 어꺠에 얼굴을 묻고는 흐느끼며 매달리는 나를 세하는 토닥여주며 달래주었고 나는 그런 그에게 더욱 매달리며 슬픈지 기쁜것인지 알 수 없는 이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오열을 토해내며 그저 울었다.

아파오는 가슴을 뒤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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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사라진 슬비를 찾기 위해 병원에서 뛰쳐나온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병원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던 공원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고백했던 장소이자 그녀가 마지막으로 가보길 원했던 장소.

어쨰서 슬비가 이 곳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른다. 분명 지금의 슬비는 이 장소를 기억하지도 못할텐데, 대체 무엇때문에 이 장소를 제일 먼저 찾아왔는지는 나도 모른다.

한가지 확실했던 것은 그떄의 나는 제대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필사적이였단 것이다.

공원에 슬비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공원에 다다른 나는 **듯이 달리며 슬비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슬비를 찾아 헤메던 중, 어느덧 내가 슬비에게 고백했던 장소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슬비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고있었다.

그런 슬비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직감했다.

슬비가 기억해 버렸단 것을.

슬비가 나를 기억해 버렸다는 것을 느끼고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녀가 날 기억하지 않았기를 바랬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뒤돌아보며 바닥에서 일어나 내게 달려들어 나를 껴안았고 나는 그렇게 나를 껴안으며 울고있는 그녀를 슬픈표정으로 쓰다듬으며 달래었다.

“미안해.. 미안해...! 내가... 내가... 널 두고... 떠나가버렸어..!”

“...괜찮아. 지금은 이렇게 같이 있잖아.”

나에게 매달리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 변명하는 나였지만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다.

그녀는 아직 모르고있던 모양이지만, 슬비의 모습은 이미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한 뒤였다.

-만약 그녀가 자네를 기억해낸다면 일이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른다네. 그녀가 빛처럼 사라지게 될지, 혹은 죽음이 그녀의 앞에 **올지, 아니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흘러갈지. 하지만, 어떻게 되든 그녀가 사라진다는 것은 똑같다네.​

영감님이 했었던 말과 함께 그녀가 또 다시 날 떠나간다는 사실에 괴로움을 느끼며 최대한 괜찮은 척을 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있지... 세하야... 너무 울어서 그런가... 뭔가 점점... 가벼워져...”

“...눈을 감고 한숨 자면은 괜찮아질거야.”

“...정...말..?”

“...그래. 분명... 괜찮아 질거야.”

작아지는 슬비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자 슬비는 이내 내 품에 안겨 눈을 감고는 숨을 곤히 쉬기 시작하며 점점 사라져갔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젊은이.”

그렇게 사라져가는 그녀를 안고는 슬비가 꺠지 안도록 이를 악 물고 오열을 참고있던 내게 노인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답은 찾았는가?”

“...네.”

“그럼 묻도록 하지. 자네의 대답은... 자네의 소원은 무엇인가?”

-인생이란 가느다란 실로 이루어진 엉키고 섥힌 실뭉치며 그 엉킨 실들 사이에 이루어진 매듭을 운명이라 하지. 그렇다면 그 매듭을 푼다는거야 말로, 자네가 찾아야 할 대답이 아니겠나?

언젠가 영감님이 내게 했었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어 답하기 시작했다.

“제 대답은...”

이 모든것이 운명이라면.

슬비가 또 다시 내게서 떠나가는 것도, 나는 그저 그것을 지켜보기만 해야하는 것 또한 운명이라면.

-...조심하는게 좋을것일세 젊은이. 기적에는 대가가 따르는 셈이니.

내가 해야 할 선택은 단 한가지다.

“슬비가 사라지지 않는 것.”

“대가는?”

“제 존재.”

내가 대신 사라지는 거로써 슬비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같이 있을 수 없더라도, 행복한 일이 없더라도, 내 대답이 틀리더라도, 나는 내 선택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분명 내 선택은 슬비를 슬프게 할 것이다. 나는 결국, 내가 느꼈던 똑같은 일들을 슬비가 겪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게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이니까.

너의 마지막 소망조차도 들어주지 못했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

“...그게 자네의 대답이군. 그 소원, 들어주도록 하지.”

점점 흐릿해지며 사라지던 슬비의 몸이 다시 선명하게 돌아옴과 동시에 내 몸이 슬비를 대신해 그 모습을 잃어가며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온 몸의 감각이 조금씩 두루뭉실해지며 몸이 붕 뜨는 것 마냥 가벼워지는게 느껴졌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사라지는 것이 무서워서가 아닌 슬비를 이렇게 두고 떠나가는 것이 무서워서다.

남겨진 쪽 보다는 떠나가는 쪽이 편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오해였다.

떠나가는 쪽도, 남겨진 쪽 만큼이나 괴롭고 슬픈 것이다.

그래. 소중한 사람을 두고 떠나간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기분이였구나.

온 몸의 감각이 점점 사라져가며 더 이상 손의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을 떄,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나를 에워싸며 나를 집어삼켰다.

죽음이, 나를 맞이하였다.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