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다(29)
건삼군 2018-12-05 0
“**!!”
떠나갈 수도, 머무를 수도 없다. 그렇다면, 대체 난 무엇을 어떻게 해**단 말인가.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을 부를 수 있는 선택 따위 이 세상에 없다는 것 쯤은 이미 오래전에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그 헤피엔딩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도 결코 그것을 꿈구는 걸 그만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룰 수 없다는 걸 알더라도, 행복한 순간이 없더라도, 그것을 원하는 것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계단을 오르기를 반복하고 복도에 다다른 나는 그대로 사람들 사이를 뛰어가며 슬비의 병실 앞으로 달려나간 나는 병실 문 앞에서 멈춰섰다.
-환자분! 정신차리세요!
-제세동기 준비해!
-보호자분!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클리어!
예전의 아픈 기억들이 떠오르는 바람에 병실의 문 앞에서 멈춰서버린 나는 문을 열기를 주저하며 **듯이 뛰는 듯한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나는, 이 문을 여는게 두려운 것이다.
이 문 뒤에 예전 그떄의, 힘없이 침대위해 누운 채 슬픈미소로 날 맞아주는 슬비의 모습이 있을까봐, 혹은 죽음과 삶의 경계 사이에서 해메는 그녀가 있을까봐, 나는 이 문을 열기가 두렵다.
아니야, 아닐거야.
속으로 그런 생각들을 최대한 떨쳐내며 심호흡을 한 나는 이내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붙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슬비야...?”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연 나는 그녀의 모습을 찾아 병실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어떤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슬비의 것일까 추측하며 바닥에 떨어져있는 핸드폰을 집어들어 화면을 들여다본 나는 화면속에 적혀있는 나에관한 정보를 보고는 경악하며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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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병원 앞의 공원에서 힘없이 걷고 있었다.
-이슬비. 이제 게임기 돌려줘.
-이슬비, 잔소리좀 그만해.
-슬비야. 너 저거 먹어볼래?
-슬비야, 알았으니까....
-슬비야....
“그만해! 듣고싶지 않아! 제발 그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공원을 걸으며 보이는 나와 그의 모습들이 계속해서 내 앞에 나타나자 나는 필사적으로 귀를 막고 주저앉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계속해서 내게 들려왔다.
-괴롭니?
그렇게 귀를 막고, 눈을 감으며 모든 것을 보거나 듣지않으려던 내게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에 반응해 눈을 뜨고는 주저앉은 채로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내가 서있었다. 나와 똑같이 생긴, 하지만 나와 다른 분위기를 띄고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또 다른 나.
또 다른 나의 모습은 나보다 더 성숙해보였고 내가 아는 나 자신보다 더 슬퍼보였다.
-네가 보는 것들은 모두 너의 기억이자 나의 기억. 너는 나. 나는 너야.
...저런 순간들은 내 기억속에는 없어.
-기억하지 못하는 것 뿐.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뿐이야.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전에는 내게 세하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물었지. 그런데 왜 지금은, 그것을 거부하는 거야?
...무서우니까.
-어쨰서?
이세하 씨가 항상 그런 슬픈 표정들을 짓고있던 이유가 나 때문인걸 알게될까봐.
그렇다. 나는 무서운 것이다.
이세하 씨의 슬픔이 모두 내 기억속에 없는 나 때문일까봐. 그래서, 나는 기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나을떄도 있는 법이다.
-...떠올려 봐. 정말 모르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기억하는 것이 더 값질지.
또 다른 내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영문을 모른 채 앞을 바라보자 갑자기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던 공원의 분수대 앞에 어느 남녀가 멈춰선 채 서로를 부끄러운 듯이 바라보며 서있었다.
“...좋아해, 널.”
그렇게 서로 마주보고있던 중에 남자가 먼저 말을 꺼내며 어물쩡 거리는 말투로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였고 그 남자의 말에 여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음을 참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남자는 삐진듯한 말투로 여자에게 따지기 시작하였고 여자는 그런 그의 모습에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대답하였다.
“나도 널 좋아해.”
분수대 뒤의 야경으로 서있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 너머로 어렴풋이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함께, 잔잔하게 떨어지던 밤의 눈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애절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남녀의 모습이 이내 사라지며 풍경이 바뀌며 나와 그의 수많은 기억들이 흐르듯이 내 시야에 비춰지기 시작하였다.
그 기억들 속에는 행복한 순간들도 있었고, 슬펐던 순간들도 있었다. 아름다운 순간들도 있었으며, 또한 비참한 순간들도 있었다. 잊고싶던 순간들이 있었기도 하였고 동시에 잊고싶지 않은 순간들도 존재했다.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