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다(28)
건삼군 2018-12-05 0
식은땀과 함께 깨질듯한 두통을 느끼며 눈을 뜨자 유리 울음이 가득한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슬비야! 드디어 눈을 떴구나! 정말! 사람 걱정하게 하구말이야...”
내가 눈을 떴단 사실을 깨달은 유리는 번개같이 나를 껴안으며 그렇게 울먹이며 말하였다. 그러자 나는 그런 유리의 등을 아이를 다루듯이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 걱정을 끼쳐서. 그런데... 내가 왜 병원에 있는거야?”
“그야 쓰러진 슬비 너를 내가 병원에 데리고 왔으니까 그렇지.”
“...딱히 병원에 올 정도는 아니였을텐데...”
유리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대화를 나눈 나는 이내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의 선반에 이것저것이 많이 놓여져 있단 것을 깨닫고는 선반에 놓여진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리가 내 의문을 알아챘는지 입을 열며 말하였다.
“아~ 그거, 다 테인이하고 아저씨가 병문안 선물로 가져왔던 거야.”
“병문안?”
“응. 유정이 언니도 아까 왔는걸? 아! 그러고 보니까 유정언니가 그랬어. 앞으로 1주일간은 강제휴가니까 집에서 푹~ 쉬라고.”
“아... 그래...”
순간 유리의 말을 들은 나는 유정언니의 배려에 작게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유정언니께 감사했다. 그렇게 속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한 나는 다시 유리에게 시선을 돌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병문안을 온 사람들은 우리 팀 뿐이야?”
“응? 아, 한 명 더 올 예정이야.”
“누구인데?”
“이세하씨... 라고 했었나? 아까 내가 네 핸드폰으로 문자했었거든~ 슬비 네가 쓰러졌다고 말이야.”
에...? 뭐라고? 내가 방금 잘못 들었나...? 이세하씨를 불렀다니, 거짓말... 이지?
순간 현실을 부정하며 자기 자신을 속이려고 한 나지만 현실을 받아들여버린 나는 이내 크게 소리치며 유리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뭐?! 이세하씨한테 전화했었다고? 아니, 왜?”
“그야 너랑 이세하씨를 이어줄려고 그런거지~ 저번에 소영언니한테 들었거든. 슬비 네가 이세하씨하고 싸운것 같다고 말이야. 그래서! 이 서유리님이 둘이 만날 기계를 제공했다, 이 말씀이지!”
“...기계가 아니라 계기겠지... 아니, 그런건 됐고. 대체 왜 그 남자를 부른건데!!”
“왜? 문제라도 있어?”
“당연히 있지! 나 얼마전에 그 사람한테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일방적으로 통보했었단 말이야!”
“엑..... 정말?”
“어! 그런데 병문안을 와달라니... 분명 내가 뻔뻔하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아... 그.... 미안. 하지만 혹시나 모르잖아~ 어쩌면 이 기회에 다시 사과할 수도 있고~.... 죄송합니다. 제발 그런 무서운 눈으로 바라** 말아주세요...”
“...정말이지... 이제 어쩔거니?”
“음... 아! 벌써 시간이! 그, 그럼 슬비야! 난 이만 갈게!”
“자, 잠깐만 유리야! 서유리!”
너무 유리를 몰아붙인 탓인지 유리는 결국 그렇게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서둘러 병실을 나갔고 나는 그렇게 유리가 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문자를 했다고 해서 올리가 없잖아...”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그렇게 혼자 중얼거린 나는 속으로 이세하씨가 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다가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 오지 않을거라고 확신한다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냥 이제부터 서로 거리를 두죠.
“...”
그떄 그런 말을 했었는데 어떻게 이세하씨가 병문안을 올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래. 분명 오지 않을거야.
그렇게 속으로 확신하며 창 밖을 바라보던 나는 잠시 창 밖에 보이는 공원의 풍경이 어쨰 익숙해 보인다는 사실을 꺠닫고는 공원을 좀 더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공원의 모습에 딱히 특별하거나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그저 언륜이 많아보이는 어르신 한분이 서 계신채로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
그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려던 그 순간, 불현듯 내가 알지 못하는 기억이 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오듯 떠올랐다.
-아! 신혼여행이라고 해서 말인데, 내일 잠깐 요앞에 있는 공원을 여행 대신에 가면 안될까? 이렇게 침대에만 누워있으니까 너무 내 자신이 한심한것 같아서 말이야.
“!!!”
뭐야... 이 기억은...
갑자기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두통을 느낀 나는 머리를 손으로 붙잡으며 좀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러자, 어떠한 기억들이 마치 눈앞에 영상을 재생하듯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침대에 링겔을 꽂은 채 창백한 안색으로 누워있는 내 모습.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슬픈듯이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
기억속의 나와 남자는 서로 애틋한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기억이 끊어짐과 동시에 다시 병실의 창가로 돌아온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지독하게 느껴지는 현기증과 두통을 느끼며 떨리는 팔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방금 것은, 분명 내 기억이다.
모든게 혼란스러웠다. 뭐가 대체 어떻게된 것인지 알 수 없을정도로 혼란스러웠지만 의외로 내가 이 병실에 입원했었다는 기억은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충격적이였던 것은 바로 기억속의 병실에 나와 같이 있던 남자의 모습이 이세하씨와 똑같았단 것이다.
그 때문에 이세하씨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져버렸다. 대체 그 남자는 누구인 것일까.
그렇게 이세하씨의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던 와중, 나는 이세하씨의 클로저 등록번호를 떠올리고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유니온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이세하씨의 클로저 등록번호를 입력하였다. 그러자 검색결과가 즉시 떠올랐고 나는 그 검색결과를 터치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였다.
그러자 꽤나 많은 정보들이 화면에 떠올랐지만, 유일하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단 하나의 문장 뿐이였다.
소속: 유니온 특수 차원종 대책반 ‘검은양'.
-응. 그냥 어째서 우리 대기실에는 의자가 5개 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
-헤어졌다... 라. 아마 그럴거에요.
-맞을텐데? 펭귄 좋아하잖아요?
검색결과에 그렇게 적혀있는 것을 본 나는 동시에 언젠가 유리가 건넸던 수수께끼와 이세하씨가 말하였던 나에대해 잘 안다는 말투를 떠올리며 핸드폰을 떨어뜨린 채 그대로 병실을 뛰쳐나와 무작정 달리기 시작하였다.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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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에게서 서로 거리를 두자는 말을 듣고 어느덧 일주일, 나는 그 날 이후로 그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없었기에, 무엇을 해야할 의지조차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에 기댄 채, 어서 내 시간이 멈추기를 내심 바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게 잘하는 짓이다. 의심만 잔뜩 사고는 아주 그냥 다 망쳐놨네.
나타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한심한 눈빛으로 뼈아픈 말들을 건냈지만, 나는 그런 나타의 말들에 대답할 기분이 들지 않았기에 침묵으로 답하였고, 그러자 나타도 착찹한 표정을 지으며 어느새 부터인가 무심한 태도로 나를 배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타의 무심한 배려를 받으며, 그저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창가너머로 바라보며 지낸지 1주일이 되던 어느날, 물기를 머금은 차가운 눈송이가 떨어지던 어느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던, 그런 어느날, 난 한가지 문자를 받았다.
보낸사람이 슬비로 되어있는 문자의 내용을 본 그 순간 내가 취한 행동은 **듯이 집을 나가 병원으로 향하는 것이였다.
슬비가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 라는 사실 하나가 너무나도 아프고도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번에는 아닐거라고 속으로 계속해서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되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라우마와도 같은 그 선명한 기억이 잊혀지는 일은 없었다.
숨이 가파올라 폐가 터져버릴 듯이 호흡을 계속할때 까지,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그렇게 얼마동안을 달렸을까, 나는 내가 눈치채기도 전에 이미 병원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접수처에 달려가 근무중이던 간호사에게 숨쉴 틈도 없이 물었다.
“이슬비라는 환자, 어디있죠?!”
다급하게 묻자 간호사는 잠시 이상한듯이 날 쳐다보았지만 이내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더니 슬비의 병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슬비의 병실번호를 듣자마자 나는 계단으로 뛰어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방금 간호사가 알려준 병실이 예전에 슬비가 마지막으로 입원했었던 병실과 똑같다는 사실을 꺠닫고는 입술을 깨물으며 계단을 **듯이 올라갔다.
내가 너무 물렀던 것일까. 처음부터 슬비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됬었을 것을 괜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생각하며 시간을 미루며 떠나가기를 주저한 탓에 이렇게 된것은 아닐까.
그저 바랬었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지 않아줘도 되니 그녀와 함께 있던 순간들을 조금만 더 만끽할 수 있도록 하늘에게 빌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결코 그녀에게 다가갈 용기를 낼 수가 없었다.
내가 다가갈수록, 그녀가 위태로워 진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기에.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