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다(23)
건삼군 2018-11-28 0
이상한 남자다.
분명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텐데, 첫만남도 그렇게 좋지 않았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가슴 한가운데에서 이상한 감정이 계속해서 머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걸까.
이세하, 라고 하는 저 남자는 항상 아이같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어느떄는 겨울과도 같은 아련한 표정을 짓고, 때떄로는 어딘가 굉장히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표정 하나하나는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있었지만 그 모든 표정속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항상, 어딘가 굉장히 깊은 슬픔이 그의 표정속에 서려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속에서 슬픔을 느낄때마다 왠지 이상하게 가슴이 미치도록 답답해진다. 꼭 무언가 떠오를 것 같은데 마치 알 수 없는 것이 그것을 억지로 방해하은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그와 함께 있으면 왠지모를 불안감들이 사라진다. 어쨰서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내 옆에 앉은 그의 옆모습을 보기위해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이번에도 똑같은 알수없는 감정들이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감정들을 애써 떨쳐내고는 이내 그의 옆모습을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차분히 가라앉은 흑발, 벌써 어두워졌는데도 불구하고 밝게 빛나는 금안, 그리고 의외로 잘생긴... 나 무슨 생각을 하는거래니...
그나저나 저 눈동자 색은 참 알파퀸 님과 비슷하다. 아무래도 머리색은 전혀 일치하지 않지만 그래도 자세히 보면 알파퀸님과 닮은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저번에 나타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했었을 때도 분명 알파퀸님과 같은 푸른 불꽃을 사용했다. 그때는 저 남자가 사용했던 힘이 미약하여 잘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알파퀸님의 힘과 너무나도 닮맜다.
뭐, 모두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야...
“저기요? 제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나요....?”
“네? 아니, 아니에요. 그냥 누구랑 닮맜다 싶어서...”
아무래도 너무 대놓고 티나게 쳐다보고 있었는지 이세하씨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세하씨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여기서 헤어질까요? 이미 해도 졌고...”
“아, 네. 그러죠... 꺄악!”
그의 말에 벌써 밤이 되었다는 사실에 살짝 놀란 나는 급히 앉고있던 벤치에서 일어나려 자세를 일으켜 세웠지만 바닥이 얼어서 미끄러웠던 탓에 난 그만 중심을 잃고 바둥거리며 그대로 땅에 넘어졌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넘어지기 전, 이세하씨가 내 손을 잡으며 날 그대로 끌어당겼기에 나는 다행히도 넘어지는 일 없이 중심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세하씨가 날 급히 끌어당겼던 탓에 마치 이세하씨가 날 끌어안고있는 듯한 포즈가 되었고 그 탓에 또 놀란 나는 재빨리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을 쳤다. 물론, 얼음 떄문에 미끄러운데 갑작스럽게 뒷걸음을 치면 중심을 잃는 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처럼 운좋게 이세하씨가 잡아줘서 쓰러지지 않았는데 괜히 부끄러워해서 뒷걸음질을 한 탓에 나는 결국 보기좋게 엉덩방아를 찍으며 넘어졌다.
“아야... 아파라...”
아무리 위상 능력자라 해도 느낄건 다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 중얼거린 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생각하며 부끄러운 내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이세하씨는 피식 웃으며 날 일으켜주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부끄러워 죽고싶다 해도 상대방이 저렇게 도와주기 위해 손을 내미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하는 수 없이 그가 내민 손을 붙잡으며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 보았다.
“괜찮아요? 그러니까 조심좀 하지. 칠칠치 못하게 정말...”
-괜찮아? 조심좀 해라. 칠딱서니 없어보인다.
“!!”
...방금, 뭐였지?
이상하다. 방금 분명 손을 내밀었던 이세하씨의 모습이 누군가와 겹쳐서 보였다. 누구였지?
“왜 그러세요?”
-왜 그러는거야?
착각이 아니다. 다시한번 이세하씨의 얼굴을 바라봐도 역시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서 보인다. 얼굴은 너무 흐릿한 탓에 보이지 않고 겹쳐서 들리는 목소리 또한 노이즈가 낀 듯 잘 들리지 않지만 분명, 다른사람의 모습이 이세하씨의 모습에 겹쳐보인다. 내 기억, 인가? 그런데 대체 누구지...? 어쨰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거지...? 분명 생각이 날 것 같은데... 어쨰서... 왜...
심장박동이 **듯이 빨라지고 숨이 전력질주를 하는 마냥 거칠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겹쳐보이는 남자의 얼굴도, 목소리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슬비씨! 이슬비씨! 이슬비, 정신차려! 왜 또....!”
눈앞이 흐릿해진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듯 정신이 몽롱해진다. 몸의 감각이 점점 멀어지며 날 다급히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 또한 점점 메아리치며 작아져간다.
그렇게, 나는 깊고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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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어둡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피곤하다. 빨리 침대에 누워 자고싶다.
하지만 주변에는 침대는 커녕 아무것도 없다.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아니, 애초에 이런 두루뭉술하고 이상한 감각을 피곤함이라고 하는게 맞기나 한걸까?
뭔가 소중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음속 텅 비어있는 한 구석이 이상하게도 쓰라려온다. 어쨰서일까.
춥고도 아프며 쓰라리고 허무한 이 감각을 대체 뭐라고 하더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결국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알아내는 것을 포기하려 한 그 순간, 어쨰서인지 모르게 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생판 남인 그의 얼굴일텐데, 어쨰서 이렇게 그리운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어째서 그의 얼굴을 보면 이렇게나 춥고, 아프고, 쓰라리고, 허무하고, 그리운 것일까. 왜 그런 것일까.
-앞으로는 마주칠 일 없을거야. 행복하게 살아.
-어쩌면 운명이라는 거지같은게 같잖지도 않은 장난을 치고있나보죠.
아... 그렇구나. 난...
슬픈거구나.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