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다(17)
건삼군 2018-11-21 0
“.....”
“.....”
침묵이 부엌을 휘감으며 분위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침묵의 원인은 나와 슬비. 어째서 그녀와 내가 이렇게 나타의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있냐고 물어본다면 그 이유는 꽤나 복잡하다. 왜냐하면 이 모든것은 나타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나타가 슬비를 저녁식사에 거의 반 강제로 오게 만든 것 이다. 아무래도 나타가 슬비를 저녁식사에 부른 이유는 날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겠지. 두고보자... 다음에 꼭 복수해 주마.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이렇게 대화가 오가지 않는 침묵속에서 같이 밥을 먹게된 우리는 아까부터 이러한 불편한 분위기에 짓눌리고 있다.
물론,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말을 해**다. 하지만, 슬비는 여전히 날 수상한 사람 취급하는 모양이고 나타 또한 ‘너도 한번 당해봐라’ 는 듯이 입을 열지 않고있다. 고로, 먼저 입을 열어야 하는것은 나, 라는 것이다.
“어... 음식은 괜찮아... 요?”
일단 이 상황을 어떻게든 풀기위해 그렇게 입을 연 나는 먼저 간단하게 내가만든 음식이 어떤지 슬비에게 물어보았다. 그나저나 존댓말하는거, 영 익숙하지가 않구만...
“맛있네.”
하지만 슬비의 대답은 짧고도 짧았다. 게다가 존댓말로 물어본 나의 기대와는 달리 반말이다.
너무나도 짧막한 대답에 쇼크를 먹은 나는 다시 입을 닫고는 처절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낙담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슬비의 눈에는 내가 꽤나 안쓰럽게 보였는지 슬비는 이내 날 잠시 바라보기 시작하더니 입을 열었다.
“요리솜씨가 꽤나 좋으시네요. 직업이 요리사에요?”
“아니... 요, 그냥 평소에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어느새...”
으아.... 존댓말 해야하는거 불편해... 그것도 아내에게 존댓말을 해**다니, 대체 어떻게 일이 이렇게 된거지.... 걍 내가 누군지 확 싸지르고 존댓말 하는거를 그만 둘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속으로 내심 깊은 고민을 하던 나는 이내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인 나타가 나를 한심한 듯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보고는 순간 열이뻗쳐 그대로 나타가 먹고있던 스테이크를 푸른화염으로 까맣게 태워버렸다.
“으악! 뭐야?! 야 이세하! 이거 니가 한거지!”
“나 아닌데.” (국어책 읽기)
“뻥치지마! 푸른불꽃이 내 스테이크에서 피어난거 다 봤걸랑?!”
“뭘 스테이크 하나 가지고 그래.”
하핫! 쌤통이다. 그러게 왜 이런 상황을 만들어?
호쾌하게 속으로 웃으며 나타를 비웃은 나는 다시 내 앞에 놓여진 스테이크를 먹기위해 포크와 나이프를 갔다 대었지만 그보다 한박자 빠르게, 옅은 보라색의 위상력으로 달궈진 나타의 나이프가 내 스테이크를 접시 채로 식탁에 꽂아버렸다. 그 탓에 스테이크는 치지직 소리를 내며 한순간에 불타기 시작했고 이내 접시에 금을 내며 화려하게 내 스테이크를 재로 만들어 버렸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국어책 읽기)
어디의 유망한 중년 대장장이인 마냥 내뱉은 나타의 한마디가 부엌에 울려퍼지며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로부터 약 1.5초 후, 내 손에 쥐어진 나이프가 현란하게 푸른빛을 내며 나타의 마지막 살코기 한점에 박혔고 동시에 나타의 나이프가 그림자같이 일렁거리며 내 접시옆에 놓여져있던 마요네즈통을 베는 동시에 쓰러뜨리며 내 접시를 마요네즈 범벅으로 만들었다.
““어이쿠야, 손이 미그러졌네?”” (국어책 읽기)
서로가 전혀 웃음이 느껴지지 않는 미소로 바라보며 주변에 살기를 방출한다. 물론 그런 광경을 슬비는 매우 유치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매도하고있다. 그렇게 나와 나타를 유치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슬비를 보자 나와 나타는 말없이 서로 나이프를 내려놓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시금 침묵이 주변을 감싸며 분위기가 식는 듯 했지만 갑자기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의 목소리가 침묵을 꺠뜨리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나타~ 나왔어! 어? 친구분이랑 슬비도 같이있네?”
갑작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의 정체는 바로 소영누나. 나타가 말하기를 가끔 집을 정리해 청소해 주러 찾아온다고 듣기는 하였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줄은 몰랐다. 그나저나 진짜 자연스럽게 들어오시네...
“어라? 나타, 집이 왠일로 이렇게 꺠끗한거야?”
“엉? 아, 그거? 이녀석이 더럽다고 죄다 치워놨거든.”
맞는 말이다. 도저히 더러워서 보고있을 수가 없었기에 그냥 내가 싹 다 치워논 것은 사실이다. 뭐, 그래봤자 엄마가 어질러 논 것을 정리하는 거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였지만.
하지만 소영누나는 나타가 나한테 강제로 시켰다고 오해를 하였는지 말을 이어나갔다.
“뭐? 나타 너 귀찮다고 친구분한테 청소하게 한거야?”
“내가 시킨거 아니거든? 저 녀석이 멋대로 청소한 거라고.”
서로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나타와 소영누나를 바라보니 어딘가 그리웠던 감정이 마음속 한 구석에서 피어났다. 아마 저 둘을 보자니 옛날일들이 떠올라서 그런 것이겠지.
이후에 갑자기 나타난 소영누나 덕분에 갑갑했던 분위기는 한번에 날라갔고 무거운 분위기가 날라간 탓인지 서로가 왁**껄 대화를 나누며 정겨운 분위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풍경속에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그야 그럴수 밖에. 나를 기억하고 있는건 나타뿐이고 슬비를 포함한 다른사람들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타인일 뿐이니까 내가 낄 자리가 없는건 당연하다. 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내게 있어서는 그저 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저들이 행복한 것 만으로도 만족하니까.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다시 볼 수 없었던 그녀를 이렇게 곁에서 느끼는 것 만으로도 내게 있어서는 과분하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가 빠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 것일까. 어째서 나는 이렇게 모두에게서 잊혀진채 바라만 보고있는 것 인가. 대체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 순간은, 도저히 그런 생각들을 떨쳐내지 못한 채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식사가 끝날 때 까지 차마 끼어들지 못하며 자리를 지켰다.
어느샌가 식사가 끝나자 내가 손을 대기도 전에 소영누나와 슬비가 뒷정리를 하기 시작하였고 그 탓에 무언으로 부엌에서 본의아니게 쫏겨나게 된 나는 조용히 거실의 소파에 앉은 채 멍하니 캄캄한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할거 없으신가 봐요?”
그렇게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고있던 와중, 슬비가 내 옆에 앉으며 말을 걸어왔다. 갑작스랍게 다가와서 조금 당황하긴 하였지만 이내 침착한 나는 어느새 익슥해진 존댓말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네. 아무래도 두분께서 다 정리하신 모양이라서요. 할게 없어졌네요.”
“미안하게 됬네요.”
“아니에요. 어차피 기본적으로 게을러서 아무것도 않하는걸 좋아하거든요.”
“그것 참 내가 알고있는 분이 하신 말이랑 비슷한 말이네요.”
알고있는 분? 내가 한 소리를 할만한 어른은 단 한명밖에 없을텐데... 아마 엄마를 말하는 거겠지.
그 생각을 한 그 순간,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를 잊어버리신 엄마는, 혼자서 생활하고 계실 엄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걸까. 밥은 제대로 챙겨 드시고 계신걸까, 설거지나 빨래는 하고 계신걸까...
“그나저나 이세하씨 라고 하셨죠?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아직 못했네요.”
잠시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하고있던 와중 슬비가 내 이름을 부르며 자기소개를 하려는 듯 말을 걸어왔다. 자기소개 같은건 굳이 않해도 다 알고있는데 말이지.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