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 Dead - Reversal
루이벨라 2018-11-16 4
※ 지인분 썰 기반
※ 전편 「Re : Dead」 에서 이어짐
※ Reversal : 반전(反轉)
『(중략)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냐는 말이야아아아아!!!!
발악하는 그 비명이 너무 처량했다. 목소리에는 물기도 한껏 젖어있었다. 감정이 묵직해질수록 소녀(로 추측되는 이)의 몸을 덮고 있던 무거운 갑주는 사라져 갔다. 그렇게 소년(마찬가지로 추측되는 이)이 정말로 사랑했던 시절의 소녀로 돌아간 소녀는 제 품에 누워있는 소년을 힘없이 흔들었다.
-일어나 봐...
-...
-내가 잘못했으니까...그러니까...
-...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기적이다. 여왕이 소년에게 한 말은 사실이었다. 소녀는 그대로 또 오열했다.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도 캄캄하여서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 * *
더스트는 부러 위의 이야기가 적혀있는 낡디 낡은 대본 책을 거칠게 덮었다. 너무 이야기가 시시하게 끝난 탓이었다.
여기까지가, ‘변수’ 가 없었을 때의 이야기. 이대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변화를 주면 이야기의 끝은 아주 많이 바뀌어 진다. 정확한 각도를 재보자면 180도 정도로?
그 약간의 변수는 바로, 저 두 사람을 이곳으로 내몰고 간 소녀의 단순한 변심 때문이었다. 소녀, 더스트는 지금 눈앞에서 펼쳐진 이 연극(더스트는 연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의 결말이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재밌는 걸 보고 싶었던 더스트가 결심을 가지는 데는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맞아, 이대로 끝내면 재미없지.”
어느 소녀의 단정(斷定)이 그런 커다란 반항을 가지고 올 줄은 몰랐다. 소녀는 흡사 엉터리 연극의 대본을, 빨간색 펜을 이용하여 고치고 있는 유명 극작가의 마인드로, 이 두 사람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뒤집으려고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냥, 소녀가 관람을 했을 때에 재밌으면 되는 것 기준으로!
여기서 좀 더 재밌게 되려면, 역시 이런 식의 전개가 좋지 않을까?!
이대로 두면 똑같아질 거야. 그러니까, 여기는 이렇게 고치고...! 또 여기는 이렇게...!!
소녀는 고장 난 장난감을 고치듯, 소녀의 앞에 있는 무언가를 이리저리 매만지고 있었다. 이마를 한 번 터치, 그 다음 뚫린 심장 부근을 터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술을 만지는 것으로, 소녀의 보정은 끝이 났다. 소녀는 그리고 재빨리 공중으로 흩어지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자신이 매만진 조정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일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아주 좋은 자리에 착석해 소녀는, 다음에 이어질 극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뭐,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 더스트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이음새로 더스트는 이제 막 고친 인형을 움직일만한 주문을 읊조렸다.
“좀 더, 좀 더! 날뛰어보라고! 재밌을 테니까...!”
“...”
그녀만의 인형이 드디어 눈을 떴다. 한쪽에만 빛이 들어오는 눈동자는 선명한 자주색 빛이었다.
* * *
“속이...울렁거려요. 그냥 그거뿐이에요.”
의식을 차린 유리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옆에 있던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은 일시적인 현상이니 안정을 취하면 금방 상태가 호전이 될 거라 말하고 바쁘게 병실 밖으로 나갔다. 의사가 나가는 것을 보자마자, 또 다른 무리가 유리가 있는 병실에 들이닥쳤다. 의식불명의 유리를 맨 처음 발견하여 이 병원으로 데리고 온 알파퀸 서지수와 ‘한 때’ 같은 팀원이었던 제이였다.
“...”
“...”
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서지수와 제이는 세하의 휴대폰이 마지막으로 작동했던 곳을 위치 추적을 통해 대강 잡았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그 주변 일대를 수색했는데...정작 발견이 된 건 세하가 아니라 유리였다. 일단 유리를 제이에게 맡기고 서지수가 좀 더 그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세하만은 도통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서지수는 일단 아들을 찾는 것을 멈추고, 세하와 관련된 무언가를 봤을 가능성이 높은 유리가 의식을 차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이어져서 현재. 병실에 달린 벽시계의 초침은 이들을 기다리지 않고 제 갈 길을 바쁘게 갈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병실을 가득 메우게 되기 직전, 서지수는 그 얼음장을 깨트리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
그러게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다음으로는 제이가 물었다.
“그보다 유리, 너...지금 그 모습은?”
“...”
그거도 글쎄올시다. 유리는 자신의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딱딱한 용의 비늘이 아닌, 부드럽고 온기가 있는 인간의 손이다. 이번에는 자신의 얼굴도 매만졌다. 따스한 온기가 피부에 스며든다.
“아.”
유리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은, 되돌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몸 구석구석에 차가운 피가 득실거리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몸은 그 때보다 한층 더 무거워졌으나, 그 덕분에 살아있다는 기분은 열실이 느낄 수 있었다.
유리가 물었다.
“저...다시 인간이 된 거예요?”
“그래...혹시 몰라서 정밀진단을 했는데, 제2위상력 밖에 없다고 결과가 나왔어.”
“그거 믿을 수 있는 거예요?”
유리는 도무지 믿기질 않아서 재차 물었다. 그러자 제이는 자신들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검사를 몇 번이나 했고, 결과보고서도 수십 차례나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렇게 꼼꼼하게 확인한 결과, 유리는 다시 인간이 되었다, 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인간이 되었다고, 유리가 금방 자유로워진 건 아니었다. 지금도 유리의 하반신 부분은 끈과 같이 침대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만에 하나의 일 때문이라고 상부에서는 그랬지만, 서지수와 제이는 그 모습이 껄끄러웠다. 그나마 이 둘이 바득바득 우겨서 상반신만은 그런대로 자유로웠던 것이었다.
서지수가 한숨을 쉬었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그게 최선이었어.”
“괜찮아요. 전 반역자였고, 배신자였으니까요.”
유리는 오히려 담담했다. 몸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기억에 혼란이 왔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리는 침착했다. 유리의 이런 태도에 서지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무겁게 꺼내는 질문 하나.
“미안하지만 아줌마가 다시 한 번 물어볼게.”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유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부분만 기억이 누락되었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그걸 지금 자신을 간절히 보는 서지수의 앞에다 대고 쉽게 꺼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 때의 자신은 너무 무례했고, 잔인하고 정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때의 일을 자신의 입으로 직접 꺼내야 하는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자신이 했던 일들, 그게 세하에게 무슨 일로 이어지는지 뻔히 보았고 알았다. 게다가 최후까지 보았다. 유리의 마지막 기억 속의 세하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마리오네뜨 같았다.
거기서부터 유리의 기억은 좀 더 이어졌다. 세하를 붙잡고 후회의 말만 내뱉는 자신. 제발 일어나달라고 부탁을 하는 자신. 점점 차가워지는...
“아...”
어렵사리, 하지만 생각보다 차분하게 회상을 하던 유리가 상황에 맞지 않는 음절을 내뱉었다. 서지수는 유리에게 다가갔다. 진심으로 걱정이 된 탓이리라.
“왜 그러니, 유리야?”
“이상해요.”
이상했다. 분명 그 뒷부분에 대한 기억은 거의 끊어졌던 거 같은데, 좀 더 이어져 있다. 게다가 그 이어진 부분에서 나타난 손님의 정체를 알자마자 유리는 경악했다.
“더스트...”
“뭐?”
“더스트가...보여요.”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완전히 뻗어버린 자신의 장난감에게 향한다. 인형을 매만지면서 음흉한 미소까지 같이 짓는데...
아뿔싸. 기억은 여기서 정말로 끊어졌다. 하지만 그 뒤로 벌어질 일이 어떤 일일지는 유리와 서지수, 제이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위험해요, 이거.”
“야단났네.”
서지수도 동의했다. 유리의 손이 부르르 떨린다.
“더스트는 그냥 처음부터 자신의 유희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진정해, 유리야. 일단 우리만이라도 조사를 하고 있을게. 넌 안정을 취하는 게 우선...”
가만히 누워서 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자신의 지분(持分)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유니온 상부가 이들의 말을 순순히 믿어주어서 유리를 자유롭게 해줄 리는 만무했다. 결국 유리는 미안하다는 말만 고장 난 레코드판 같이 되풀이할 뿐이었다. 내일도 또 올 거라며 두 사람은 나갈 채비를 하는데 유리가 급하게 불러 세웠다.
제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인데, 유리...”
“큰일 났어요.”
유리는 제이의 말을 급하게 잘라먹었다. 유리는 이 무시할 수 없는 위압감에 몸을 벌벌 떨었다. 그나마 자유로운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 안았다. 너무도 두려워서 손톱이 살에 파고드는 것을 유리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왜 유리가 이렇게까지 반응을 하는지는 서지수와 제이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유리가 알려주었다.
“궁전 문이 열리려고 하고 있어요.”
궁전의 주인은 유리였었다. 그런 유리가 인간으로 돌아왔는데도 불구하고 궁전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건...
궁전이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최악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 * *
지키고 싶은 게 있어?
『 』.
아니면 부수고 싶은 거나?
「 」.
‘실패작...’
더스트는 혀를 끌, 찼다.
왜 그 부분만 말을 잇지 못하는지. 자신이 실패작을 만들었을 리는 없을...리라고 믿고 싶었지만 더스트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보장을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새로운 인형이 들어왔으니 재밌는 일은 일어날 것이다. 그냥 그거 하나만으로 지금은 저 인형을 유지시키는 게 탁월하겠지. 외형도 저 정도면 준수한 편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럼에도 앞에 있었던 일과 비슷하게 이어질까? 아니면 조금은 다른 변수가 끼어들어서,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까? 더스트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아, 빨리 서유리가 나타나야하는데 별로 필요 없는 엑스트라 두 명이 온다. 그나마 그 두 명이 첫 무대에서 춤을 출 위인으로 재밌는 걸 보여줄 이들이기에 괜찮았지, 안 그랬으면 더스트는 너무 지루해 죽을 뻔 했다.
“흐응...새로운 왕이 즉위한 것도 모르고, 무턱대고 이곳으로 오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알면서도 오는 걸까? 후자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 선대의 왕이 지금은 저들의 편에 있기 때문이었다. 더스트는 왕좌에 가만히 앉아 있는 세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 올곧고 깊은 빛을 내는 눈동자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앞머리로 그 부분을 덮은 것이 스타일이 꽤 괜찮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 영롱한 짙은 자주색의 보석을 보면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절망을 할까? 그게 아니라면 자신에게 화를 낼까? 어떤 반응이든 더스트는 즐겁게 즐길 자신이 있었다.
“손님이 온 거 같아.”
“...”
“근데...네가 원하는 상대는 아닐 수도 있겠네?”
“...”
“그래도 나갈 거야?”
권유하듯 선심을 쓰듯 말을 하지만 나가라고 무한의 압박을 주는 중이었다. 세하는 별말 하지 않았지만 검을 챙기는 것을 보면 친히 마중 나갈 생각이 모양이었다.
더스트는 선언했다.
자, 신사 숙녀 여러분! 즐거운 1막의 장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합니다!
[작가의 말]
http://leesehaxseoyuri.tistory.com/116
전편이랑 이어집니다.
지인분이 전편을 읽으면서 '세하가 눈을 떠서 암광화 될 줄 알았는데 그냥 끝내셨네요.' 라고 해서 살짝 이어서 써보았습니다.
아마 뒷부분이 이어질 듯한 열린 결말(전 열린 결말을 좋아합니다)이네요.
요즘 마감이 한결 수월해져서 짧은 글 쓸 수 있는 텀이 생겼습니다. 간간이 올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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