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캡슐
루이벨라 2018-11-13 2
※ 부활 캡슐에 대해서 지인분과 토론하다가 써내린 글
01.
“일단 보급품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야 할 거 같군.”
“네, 선배! 잘 부탁드립니다!”
정좌 자세로 귀를 기울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파이에게, 볼프강은 한 손에 충분히 잡힐만한 플라스틱 계열의 통을 보여주었다. 불투명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보라색의 액체가 들어있는 걸 파이는 분명히 보았다.
“선배, 그 보라색 액체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일단 위상력을 사용하는 일이 상황에 따라 체력 소마가 극심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겠지? 작전 중에 클로저의 체력이 바닥났다고 가정을 해보자. 이럴 땐 보통 어떻게 하겠지?”
“후퇴를 하겠죠? 그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하겠죠.”
“사실은 그러는 게 제일 정석이긴 한데, 유니온이라는 집단은 그렇게 마음씨 좋은 곳이 아니라서 말이야. 이건 단숨에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약이야.”
“유니온의 기술은 정말 신묘하군요.”
놀라워하는 파이를 보며 볼프강은 혀를 찼다. 사실 체력을 금방 회복시켜준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제일 해가 되지 않는 방법은 시간을 들이면서 천천히 회복하는 것. 하지만 유니온은 그 시간조차 아까워한다.
“그리 좋아할 일은 아니야. 이 약이 계속 네 발목을 붙잡게 될 거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난 항상 말썽쟁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유니온의 기술이 좋긴 하지만 웬만해서는 다쳐서 돌아오지 말라고. 그게 너희들 몸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라고.”
볼프강 또한 처음 이런 회복 약품들을 봤을 때 신기해했었다. 그와 더불어 자신은 웬만해서는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감도 느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커다란 공포가 죽음의 공포이기에, 어린 나이였지만 그 때의 볼프강은 그걸 두려워했었다.
그렇다,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 이게 곧 저주가 될 줄은 몰랐다.
유니온은 사람을 너무 굴려먹는다. 한 명의 위상능력자가 한 명 이상분의 일을 할 때까지. 심지어 죽어가는 상태의 사람도 쉽게 굴린다. 유니온이 이 기적적인 일을 행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 약품들의 기여도가 매우 컸다. 회복,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유니온은 살아있는 이들의 회복에도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곧바로 또 다른 약품을 개발했다.
그것이 지금 볼프강이 들고 있는 작은 빨간색의 알약, 일명 ‘부활 캡슐’ 이다. 알약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싹 굳어버린 볼프강을 보며 파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알약은?”
“이건...정말 모든 기술의 집합점이라고 해도 된다. 그만큼 놀라운 거야.”
“얼마만큼 놀랍기에 그렇습니까?”
“이걸 먹으면...죽은 자도 다시 살아 돌아온다.”
그 순간 볼프강은 파이의 얼굴이 급속도로 썩어가는 걸 보았다. 파이가 20년 동안 고향 마을에서 쌓아왔던 상식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죽은 자도...살아난다고요?”
“그래, 넌 아직 잘 체감이 안 가겠지만, 이게 얼마나 저주 같은 건지 알게 될 거다. 뭐, 정확히 말하면 죽기 직전의 상태에서 쓰는 응급 약품인 거야. 강시마냥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게 아니야.”
“말을 좀 똑바로 해주십시오. 정말 놀랐다고요.”
“하지만 죽었든, 죽기 직전이든 아픈 건 똑같잖아?”
볼프강의 말에서 숨겨진 의미가 있다는 걸 파이는 곧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책을 너무 많이 읽었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습관이 나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볼프강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볼프강은 힌트를 더 주었다.
클로저에게 그런 비상사태가 되는 곳은 대체로 어디일까? 당연히 임무 수행 도중, 대부분 차원종을 상대하는 상황이 아닙니까? 그래, 맞추었다. 그런데 왜 차원종에게 빈사 직전의 상태가 되었을 때의 네 몸꼴은 어떨 거 같냐?!
자, 이제 힌트는 거의 다 나왔다. 그럼에도 파이는 좀 더 생각하는 것인지 눈동자를 데굴데굴 열심히 굴렸다. 그런 후배의 모습이 기특한 한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왜 저런 아이가 하필이면 유니온에 흘러들어오게 된 걸까?
볼프강이 부활 캡슐을 그리 좋지 못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내성은 없다고 자기들 입으로 그러지만, 난 영 미덥지 못해서.”
“선배는 본래부터 유니온이라는 단체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사실이야. 세상의 밑바닥, 혹은 그 이하도 보고 와서 그래.”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 그래, 그것도 좋겠지.
“나는 실제로 이 캡슐을 쓴 적은 없어. 하지만 사용했던 사람은 가까이에서 보았지.”
“그랬습니까?”
“임무 완수 도중 차원종의 급습으로 배를 관통당한 모양이더라고. 꽤 유능한 클로저였는지라, 유니온에서는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나봐. 그래서 곧장 캡슐을 투하했지.”
그리고 결과는? 당연히 살아났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그 캡슐이 하자가 있던 제품이었는지, 보통이라면 그럴 일이 절대 없다고 하던데, 그 클로저는...
“그야말로 사람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더군. 치명상을 입은 짐승의 포효 같았다고 할까?”
“선배...”
“나는 게다가 그 사람의 표정도 보았다. 잊을 수가 없었다. 의료진들이 마취제를 투하하고 나서야 겨우 조용해지더군. 뭐, 몸부림을 정말로 쳐서 의료진들 몇몇이 다치기도 했지만.”
“그걸 그렇게 지나가듯이, 가볍게 농담 식으로 말해도 되는 겁니까?!”
이게 그 밑바닥의 일부분이라서 그래. 볼프강은 진지하게 말했다.
“본래라면 사망 직전의 기억과 고통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려서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하더군. 그런데 네 눈엔 내가 그걸 믿을 수 있을 거 같아? 그 광경을 보고도 믿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그건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그치? 그런데 말이야, 그 광경을 매일같이 봐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더라고.”
유니온은 알면 알수록 참 대단하다. 자신의 기대를 버리지 않고, 밑바닥의 밑바닥, 그리고 그 밑바닥을 또 보여주니까.
02.
서지수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침에 위험한 E구역에 파견을 나간 막내가 걱정이 되던 탓이었다. 게다가 같이 파견을 갔던 클로저 중 한 명에게 막내가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는 정보를 전해들은 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막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숫가의 나무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는 막내를 발견했다. 멀리 가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서지수는 막내의 뒤로 몰래 다가갔다. 깜짝 놀래킬 심상이었다. 하지만 서지수는 그 장난 건은 금방 철회했다. 막내의 어깨가 사시나무 떨 듯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지수는 조용히 상대방을 불렀다.
-막내야.
-아, 누님...
-한참 찾았어. 왜 답지 않게 처량하게 울고 있는 거야?
-누, 누가 울고 있었다는 거예요?!
거짓말을 하려면 벌개진 눈가 수습부터 한 다음에 하도록. 서지수의 지적에 막내는 손등으로 눈가를 세게 비볐다. 서지수는 막내의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밤이 되면 적의 공습이 적어지는 시간이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적어도 막내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 정도는 되었다.
서지수가 물었다.
-크게 다쳤었다며. 괜찮아?
-상처는 멎었어요. 의무관이 벌어지지 않게 안정을 취하라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이 전쟁터 속에서 있을 리가 만무했다. 서지수는 막내를 내려다보았다. 어깨만 떨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손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래서 서지수는 직감했다. 이건 단순히 큰 부상으로 입은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는 걸. 도대체 막내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걸까.
그 대답은 막내에게 곧바로 들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서 서지수를 그 누구보다도 신뢰하는 막내 덕이었다.
-누님.
-응?
-누님은 지금 제가 하는 말을 믿어 주실 거죠?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기에 막내가 이렇게 주저를 하는 걸까?
-누님...나 사실은 죽었었어요.
-막내야, 그게 무슨...
-정확히 말하면 죽을 뻔 했던 걸, 요즘 유니온이 개발 중이라는 시약으로 되살린 거래요.
서지수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쪽의 인원이 부족해진다고 유니온이 급하게 만들고 있다는 약품. 그런데 여기서 잠깐. 막내의 입에서는 ‘개발 중’ 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면 아직 임상 실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서지수는 이 일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믿고 싶지 않았기에 더듬더듬 물었다.
-막내야, 너 설마...
-아팠어요...숨도 쉬기 버거웠고...그 때의 고통이 잊히지 않아요. 진짜 난 죽은 걸까요? 죽었는데 왜 지금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거죠!? 게다가 난 그걸 또 겪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막내야, 진정해.
-진정?! 진정 못 해. 이건 겪어** 않았으면 모른다고!
막내는 그러나, 터트렸던 분노를 철회했다. 이제는 그럴 기력까지 없는지 모른다. 아니면, 모든 감정의 극(極)은 결국 울음으로 끝나기 때문일까? 서지수는 자신의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막내를 꼭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이제 하다하다 우리들을 어디로까지 써먹어야 속이 시원한지, 원. 내일 아침에라도 당장 그 시약의 실험을 중지하라고 따지러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03.
파이는 격하게 화를 냈다.
“그건 도저히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지 않습니까!”
“넌 진짜 감정적이구나.”
볼프강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점이 퍽도 이해는 되었지만.
“이 캡슐의 프로토타입은 차원 전쟁 때 개발되었다고 하더군. 효과는 앞서 말했던 거와 같지만, 약이 완벽했는지 미완성이었는지 그야말로 ‘죽은 사람’을 다시 되살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줬다더군.”
“...”
“그리고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임상 실험하기 전에 곧장 전장에 투입되었다고 하더라. 예를 들어...최전방에 있었던 ‘울프팩’ 팀에게 라든지...즉, 임상 실험을 자신들을 위해 싸워주는 사람들에게 한 거지.”
“정말...너무합니다.”
볼프강도 공감했다. 그래서인지 차원 전쟁이 끝나고, 전쟁에 참전했던 클로저들 중 현역은 거의 없었다. 다들 일찌감치 은퇴를 했다. 현재까지 현역인 차원 전쟁 세대들은 직접 전장에 뛰어들지 않은 기술진과, 그들을 총괄하던 유력자들뿐이었다.
“그래서 난 웬만해서 다치고 오라고 하지 않는 거야.”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사실 이 회복 캡슐도 쓰라고 하고 싶지 않아.”
인간이 회복할 수 있는 체력은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 유니온은 그걸 깨달았고 그래서 다른 시점으로 생각했고 결론을 내렸다. 한계가 있다면, 그걸 부숴버리면 된다고. 쉽게 설명하자면 현재의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미래의 체력 일정량을 계속 떼어오는 것이었다. 이 약품들이 주된 보급품인 클로저들은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일반인들에 비해 급격히 떨어졌다. 애초에 위상력 또한 체력을 심하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대고 또 상황을 악화만 시키는 걸 유니온은 끊임없이 제공했다.
이쯤 되면 궁금해졌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서 사람들을 이용하려고 하는 거죠?”
“글세, 내 추측이지만 초창기의 유니온은 전 세계의 유력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단체라고 하더군.”
맨 위에서 관전하며, 실을 늘어뜨린 마리오네뜨를 조종하는 것 같이 사람을 부려먹기 좋아했던 늙은이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일은 없다. 그냥 그거뿐이겠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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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밑바닥에도 바닥이란 게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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