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다(2)
건삼군 2018-11-11 0
“손님, 오늘 날씨가 아주 좋지요?”
“네. 그러네요.”
“요즘은 차원종들도 잠잠~ 하고, 별다른 소식도 없으니까 세상이 참 평화롭게 느껴진다니까요~”
“네. 그렇네요.”
그래. 저 택시기사의 말대로 최근 세상은 매우 평화롭다.
한때 썩어 빠졌던 유니온의 윗***들도 UN상임국에 의한 철저한 내부감사로 그 치부가 모두 밝혀져 개혁하는데 성공했고 불안정한 차원압 때문에 요란스러원던 차원문도 이제는 잠잠해져 별 다른 소란 하나 없이 모든 게 평화로워졌다.
창문 사이로 비추는 햇빛도, 맑게 개인 푸른 하늘도, 시끌벅적하게 갈길을 가고있는 요란스러운 사람들도, 그 모든 게 평화로운데 어째서 내 마음은 이렇게 나 먹구름이 낀 채로 서글퍼해야 하는거일까.
“도착했습니다 손님.”
“아, 네.”
그 후로 카드로 요금을 내고는 택시에서 내려 병원의 정문으로 들어간 나는 그대로 접수처로 다가가 면회를 신청했다. 그러자 간호사는 잠시 컴퓨터 마우스를 여러 번 움직여 클릭하더니 이내 간단한 질문을 물었다.
“입원하신 환자분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아, 이슬비 라고 합니다.”
“보호자분 이름은요?”
“이세하 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질문에 대답하자 이내 간호사는 내게 서명서와 기타등등의 싸인을 요구했고 나는 간호사가 요구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써서 제출했다. 이런 걸 처음 써보는 것도 아니고 벌써 수십 번은 해봤기 때문에 이제는 눈 감고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그 탓인지, 간호사는 몇초도 되지않아서 내게 입원실 카드키를 건네주었고 나는 그것을 받으며 간단하게 인사를 한 뒤, 엘레베이터를 타고 그녀가 있는 병실까지 도착했다.
보통이면 예의상 노크를 하는게 상식이지만 어차피 그녀는 신경쓰지 않을것을 알고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카드키로 병실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 왔어. 몸은 좀 어때?”
가볍게 인사를 건내며 창가에 놓여진 침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예전보다 많이 야윈 그녀가 나를 향해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를 보내는게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자 무언가가 내 마음을 커터칼로 도려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그 느낌을 애써 감춘채 그녀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녀는 야윈손으로 나를 살짝 밀어내며 내게 딱밤을 날렸다.
“오자마자 뭐하는거야.”
“그냥, 안아보고 싶었어.”
“애도 아니고...”
여느떄와 같이 서로 말을 주고받자 기분탓인지 창백하게 보였던 그녀의 얼굴이 아까보다 조금 생기가 돌아온것 처럼 보였다. 갑자기 껴안았던 탓일까.
“몸은 조금 어떄?”
“의사선생님 말대로는 상태가 나빠지지는 않았지만 좋아지지도 않았데.”
“그래...”
이슬비, 현재 내 아내이자 동료이기도 한 그녀의 몸상태는 2달전, 결혼식이 끝난지 딱 하루가 지났던 그날 이후로 망가졌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앞뒀던 그날, 나와 그녀는 강남에 갑작스레 출현한 차원종들을 저지하기 위해 현장에 같이 출동했다. 항상 있었던 일이였기에 별로 예기치 않고 출동한 나와 그녀는 임무중에서 고립된 민간인들을 발견하고는 구출함과 동시에 시간을 벌기 위해 잠시 흩어져서 행동했다.
나는 차원종들의 관심을 끌기로 했고 그녀는 신속하게 민간인들을 현장에서 대피시키기로 했었다.
분명 아무일도 없을거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며 주변의 차원종들을 모두 처리하자 그녀와 합류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심각하게 상처를 입은 그녀를 부축하며 최대한 빨리 움직이고 있던 민간인들이였다.
피투성이가 된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달려간 그 다음에는 뭐가 어떻게 됬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새 병원에 와있었고 나 앞에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의사가 내게 낮은 목소리로 체내에 이차원 분진 감염 이 어쩌고 저쩌고 말하고 있었다.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거리며 내려 앉는듯 했지만 내 마음을 갈가리 찢어버린 말은 이차원 분진 감염이라는 문장이 아니였다.
-유감이지만 체내 깊숙히 감염되어서... 아마 길어야 3개월정도일 겁니다.
“이세하. 너 아내 병문안을 왔으면서 그렇게 멍하게 서서 뭐하고 있는거야?”
“어? 어, 미안. 잠시 생각을 좀 해가지고...”
벌써 2개월도 더된 그날을 회상한 탓인지 잠시 넋을 잃고 있었나 보다.
그래. 확실히 2개월도 더 된 일이지만 아직도 방금 엊그제 일어난 일인 것 처럼 생생하다. 아마 아직도 만약 그때 내가 민간인들을 구하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가 돼서 그런거겠지.
“미안.”
그러니 이렇게 라도 후회를 잊기 위해 그녀가 결코 받아주지 않을 사과를 하자.
“뭘 사과하고 그러니? 사과는 신혼여행을 못 가게 만든 내가 해야 하는데.”
항상 이런 식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사과를 하면 그녀는 저런 슬픈 얼굴을 감추기 위해 거짓 웃음을 지으며 내 잘못이 아니라고 다시금 내게 말해준다.
이렇게 내게 마음을 덜기 위한 속죄를 거부하며 웃고는 날 달래주는 너는 친절한 것일까, 아니면 짓궂은 걸까. 어느 쪽 이든 좋으니 제발 이렇게 내 마음에 햇살을 비췄다가 먹구름과 함께 비를 내리는 것을 그만둬 달라고 빌어본다.
"아! 신혼여행이라고 해서 말인데, 내일 잠깐 요 앞에 있는 공원을 여행 대신에 가면 안될까? 이렇게 침대에만 누워있으니까 너무 내 자신이 한심한 것 같아서 말이야.”
하지만 그녀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혹은 알면서도 일부러 저러는 건지 내게 밝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래. 그러자.”
그래. 조금이라도 행복한 추억들을 때가 오기 전에 남겨 놓자. 조금이라도 널 웃으며 떠나 보낼 수 있게, 남은 시간이 고작 한 달이라 할지라도 최대한 미소 지을 수 있게 노력해 보자. 이게 고작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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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