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래, 그리고 너 (6) -바뀌다
건삼군 2018-11-06 0
공원은 1월달 답게 약간 쌀쌀한 기온과 하얗게 눈으로 뒤 덮여 있었다. 하늘은 구름이 끼어서 매우 칙칙한 회색을 띄고 있었지만 그 모습마저도 어딘가 매우 아름다운 느낌이였기에 나는 살며시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거... 데이트 아닌가?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걸으며 마음 한구석으로는 데이트가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따져보던 나는 잠시 솟아 오르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온 신경을 다해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 당황하지 마 이슬비. 상대는 그 둔감한 이세하라고. 그냥 재가 남자다 보니까 데이트라고 느껴지는거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야.
그렇게 스스로 자신에게 암시를 걸며 나는 최대한 시선을 이세하에게서 떨어뜨렸다.
“야, 이슬비.”
“어? 뭐? 왜?”
하지만 결국 어느것도 별 효용이 없었나 보다. 이세하가 내 이름을 저렇게 부른것 만으로도 순간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듯 대답이 자동적으로 나온걸 보면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스스로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모든 수단을 생각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나는 심호흡을 하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마쉈다. 그러나 이어지던 이세하의 무거운 말 한마디에 의해 숨을 날카롭게 다시 내뱉으며 이세하를 바라보았다.
“도망쳐.”
“...뭐?”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 생각하며 입을 열기 바로 직전, 붉은 불꽃덩어리가 나와 이세하를 향해 들이닥쳤다.
순간적으로 몸이 반응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은 나는 적색의 불꽃덩어리가 일으킬 충격을 반사적으로 기다렸지만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불꽃이 노리던 존재는 내가 아닌 이세하였기 때문이다.
“큭!”
다행이도 불꽃이 닿기전에 거의 가까스로 이세하의 건 블레이드를 들고있던 손이 반사적인지, 아니면 의도한것인지 모를 속도로 적색 불꽃을 베어내었다.
이세하가 무사하단것을 안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이내 불꽃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그가 있었다. 백발에 칠흑의 갑주를 입고있는 한때 ‘이세하’ 였던 남자가.
“또 너냐!! 너 정체가 뭐야? 대체 계속해서 날 공격하는 이유가 뭐야?!”
또 다시 한번 갑자기 예고없이 이유도 모른체 정체불명의 인간에게 습격을 받은 탓인지 이세하는 신경질을 내며 또 하나의 자신에게 그렇게 소리쳤다.
“정체, 라. 일단 차원종이라고 해두도록 하지. 그리고 이유는 동족혐오라고 설명하면 충분 하겠지.”
그러자 백발의 그는 그렇게 낮고도 차분한 목소리로 차갑게 대답했다.
“뭐? 그게 뭔소리야? 이해가 갈수 있게 말해!”
“...이해를 못했나 보군. 좀더 쉽게 말하자면-
네가 알 필요는 없다는 거다. 곧 죽을거니까.”
낮고 차분하게 울려퍼지던 그의 목소리가 일순간에 살의를 품은 날카로운 원망이 되어 들려왔다.
그리고 백발의 그는 그렇게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이세하에게 돌진하며 살의가 가득 담긴 공격을 내리쳤다.
물론 이세하도 그런 살의가 가득 담긴 공격이 자신에게 닿을떄 까지 넋놓고 바라보진 않았기에 한박자 늦게 건 블레이드를 양손으로 떠받치며 방어를 준비했다.
백발의 그가 지닌 칠흑색의 검이 적색불꽃을 머금은채 이세하의 건 블레이드에 충돌한 그 순간, 어마어마한 돌풍이 주변을 휩쓸며 공기를 밀어내었다.
하지만 격돌한 둘은 그런 돌풍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듯이 곧바로 서로 검을 휘두르며 적색과 푸른색이 가득한 공방을 펼쳤다.
“싸우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납득이 간다고!!”
푸르게 물들인 건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이세하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백발의 그는 이세하가 날린 일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하며 조용히 대답했다.
“정말로, 내가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않나?”
“...대충 짐작은 가. 하지만 그래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그리고 이세하가 자신의 일격을 피한 그에게 쉴 틈도 주지 않겠다듯이 계속해서 검격을 휘둘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이세하의 모든 움직임을 궤뚤어 보고있는듯 아주 여유롭게 이세하의 공격들을 피하며 숨 하나 가쁘지 않은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말했을텐데. 동족혐오라고.”
백발의 그가 그렇게 짧막히 대답하며 자신을 밀어붙히던 이세하의 건 블레이드를 자신의 검으로 튕겨내며 크게 뒤로 밀어내었다.
그탓에 이세하는 갑작스럽게 중심을 잃었고 싸움의 주도권을 백발의 그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세하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그저 백발의 또 다른 미래에서 온 그가 일부러 허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든 이 싸움을 말려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이세하는 분명 다치는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싸움을 제지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 한발짝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면에서 쏫아오른 붉은 불기둥들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마치 나를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듯 내 주변을 둘러싸었다.
갑자기 쏫아오른 붉은 불기둥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 나는 백발의 이세하를 째려보며 원망했지만 동시에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 백발의 이세하는 나를 해치려고 할 마음이 없다는 것을.
저 남자가 오로지 원하는것은 이세하의 죽음이다.
이유는 대충 알것같다. 지난 꿈에서 보았던 광경들, 그리고 처음으로 보았던 꿈의 광경을 토대로 추측해 본다면 미래에서 온 이세하는 분명 무언가 후회를 하고있고 그것을 자신을 죽임으로써 후회를 풀기 위해 과거의 자신을 저렇게 죽이려고 하는것이다.
그러나 그 추측도 그저 겉으로 본 단편적인것 뿐, 그 이유를 자세하게는 모른다.
“...일단 이 불기둥속에서 빠져나가야 되는데...”
일단 이 불기둥에서 나간 후에 저 둘을 말려보자.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떻게든 서로를 납득시킬 방안을 찾아보자. 다행이도 미래에서 온 저 이세하는 나를 해치고 싶어하지 않는것 같으니 내가 끼어든다면 어떻게든 설득할수 있을것이다.
머리속에서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덕분에 용기가 생긴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쉬고는 온몸에 위상력을 두텁게 둘러 나를 가로막고있는 불기둥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었다.
“뜨거워...!”
위상력을 두텁게 두른 덕분에 다행이도 내 몸은 용암에 닿은것처럼 녹아내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와 밀어내는듯한 저항력 까지는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마치 폭발하는 화산속에서 데미지는 입지 않고 열기만 그대로 쬐이는듯한 느낌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몸에 둘러논 위상력이 흐트려진다면 분명 나는 이대로 통구이가 되고 말것이다. 그런거, 조금 무서운데... 그나저나, 벌써 꽤나 걸어온것 같은데 왜 아직도 불기둥속인 거야...? 대체 얼마나 두꺼운거야 이 불기둥들은...!
예상 외로 넓었던 불기둥의 범위에 초조해진 나는 몸을 위상력으로 감싸는게 힘들어지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불안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었다.
그렇게 나는 빨리 이 불기둥속에서 벗어날수 있기를 바라며 힘이 부쳐가는 걸음을 억지로 움직이였다.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자 기분탓인지 열기가 조금씩 옅어지는게 느껴졌다. 아마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하지만, 항상 좋은 소식이 있을때에는 나쁜소식도 있는 법이다.
온몸을 평소 이상으로 두텁게 덮어놓은 위상력이 벌써 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계이상의 위상력 사용은 사용자를 빠르게 탈진으로 이끌어 위험에 빠뜨린다.
그런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억지로 떨쳐내며 나는 오로지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는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하며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끝없게 느껴졌던 열기가 내게 멀어지며 작별을 고했다.
“해냈-다....”
힘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짧게 안도감으로 가득한 외침을 내뱉은 나는 정말 위상력을 마지막 한방울을 남기고 모두 소진했다는것을 자각하며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가는것을 느꼈다.
그렇게 의식이 멀어지며 온몸에 감각을 잃고 어둠속에 빠짐과 동시에 익숙하던 목소리가 들려왔던 것은, 분명 착각이 아니였을 것이다.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