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와 유리 이야기

흑신후나 2018-10-21 1

 

 첫 키스의 맛은 어떤 맛일까? 누구는 달달한 생크림이 생각나는 맛이라고 했고 누구는 시큼한 레몬의 맛이라고도 했다.

세하는 그러한 소리를 들을 때마다 키스라는 것은 그저 입맞춤이지 어떠한 맛도 나지 않는다고 단언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첫 키스에 상황에 부**지게 된다면 그 맛은 과연 어떤 맛일지 상상해 보곤 했다. 하지만 자신이 첫 키스의 맛을 알게 될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키스를 경험하기에는 나이도 정신도 미성숙하다는 것을 잘 알았던 까닭이었다.

입술이 부딪히는 느낌이 들고 따뜻함이 퍼졌다. 달콤함이라기보다는 부드럽고 고소했다.

 

  세하는 지금 첫 키스를 했다.

 

  오늘 아침은 별일이라도 있을 것처럼 나쁜 날이었다. 추위에 마지못해 떨면서 일어났고 밥도 없었다. 피곤함에 몸이 늘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깜빡하고 충전하는 것을 잊어 게임기도 먹통이었다.

 

  “이런 날은 밖을 안 나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을 청하려 누웠다. 세하는 오늘 비번이었다. 실컷 늘어지고 싶었다. 이제 세하는 어떠한 순간이 와도 절대로 침대 밖을 나가지 않으리. 갑작스럽게 전화벨이 울리지만 않았으면 그대로 세하는 잠에 빠졌을 것이다.

 

  “누구야...정말.” 짜증을 부리며 전화를 받았다.

 

  “야 이세하! 너 도대체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오는 거야?”

 

  휴대폰 액정 사이로 높은 목소리가 찢어지게 들려왔다. 세하는 직감적으로 이 목소리가 슬비 임을 알았고 그녀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서려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기 오늘은 비번 일 아니야?” 세하는 자신도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분노가 거세지며 슬비가 답했다.

 

  “나 목요일에 비번이잖아.”

 

  “...금요일이야.”

 

  “?”

 

  “너 비번은 금요일이라고! 이 멍청아! 빨리 오기나 해!” 휴대폰이 박살이 날 것 같이 진동한다.

 

  정말 오늘은 되는 날이 아니었다.

 

 

  “하여튼 정말. 비번일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서 뭘 하겠다는 거야?”

 

  “미안해. 미안하다니까 그러네.”

 

  유리는 아까부터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이 팔려있다. 나의 모습을 내가 본다면 아마 땀까지 흘리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세하는 결국 지각했다. 부랴부랴 사이킥무브를 이용해 달려왔지만, 결과는 아슬아슬하게 지각. 그 결과 정좌의 자세로 슬비에게 혼이 나는 세하 되시겠다.

 

  “또 보나 마나 늦게까지 게임을 하는 바람에 늦잠 잔거겠지.” 슬비는 자신의 머리를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 넌 내가 무슨 항상 게임만 하는 폐인인 줄 아냐?” 세하가 발끈해서 이야기했다.

 

  “그럼, 아니야? 어제는 뭐 하다가 잤는데?”

 

  “게임.”

 

세하의 반격은 거기서 끝났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던 슬비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유리는 그 장면들을 빼놓지 않고 전부 자신의 눈에 넣어두었다. 혼이 나는 세하와 혼을 내는 슬비. 누가 보더라도 다정한 연인들 같았다.

 

  “역시 대장하고 세하는 잘 어울린다니까.” 제이 아저씨가 흐뭇한 미소로 말했다.

 

  유리는 자신의 앞에 보이는 저 한 쌍의 남녀가 그것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선남선녀라는 표현은 저들을 보고 하는 말일 테지. 유리는 웃었다. 조금만 더 솔직해진다면.

 

  조금만 더 솔직해진다면.

 

  가슴이 따끔거렸다. 몸이 아프지도, 가슴에 무엇인가 이물질이 있지도 않았다. 그냥 아팠다. 유리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잘 알았다. 질투 때문이다.

 

 유리는 세하를 좋아했다. 그것도 너무나. 세하의 하얀색 요원복도 좋았고 검은색 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금색의 눈동자도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마냥 아이 같지만 깊은 속내는 따뜻했다. 하지만 슬비도 세하를 좋아했다. 확실하게. 그래서 나는 나의 마음을 조금 뒤로 뺐다. 그렇게 슬비와 세하를 뒤에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도 유리는 때때로 슬비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투영했다. 그렇게라도 유리는 세하의 곁에 있는 것이 좋았다.

 

  “아저씨도 이참에 유정 언니랑 진도 확실하게 빼는 게 어때요?”

 

  “쿨럭!”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면서도 괜히 유리는 제이 아저씨께 심통이 났다. 심술, 장난과 섞여 발화한 말에 유리는 조그맣게 부러움을 넣었다.

 

  유리도 제이 아저씨가 유정 언니에게 다가오는 것처럼 세하가 자신에게 다가와 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진실로 세하에게 그 마음을 직접 말하지는 못했다.

 

 

  세하는 임무에 잘 집중하지 못했다. 유리 때문이었다.

 

  최근 유리는 예의 선머슴 같았던 분위기가 없어졌다. 그리고 없어진 분위기를 성숙미로 채웠다. 예전에도 잘 보면 유리는 예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특유의 당돌함으로 그 아름다움을 무뎌지게 했는데, 지금은 다르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는 청아했고 푸른 눈동자는 호수처럼 아름다웠다. 얼굴도 몸도 아무것도 버릴 구석이 하나 없었다. 무엇보다도 세하는 유리의 성격이 좋았다. 마냥 남자애 같다고 생각했던 쾌활함은 사실 그녀만의 따뜻함이고, 배려이며 존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좋았다.

세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유리와의 관계가 서먹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세하는 미숙했고, 다가가는 것이 서툴렀다.

 

 

  오래간만에 회식이었다. 임무를 마친 후 모두가 모여 고깃집에 들렸다.

 

 “! 너희도 마셔라!”

 

 “저희 아직 성인 아닌데요?”

 

 “괜찮아, 어른이 주는 거면 마셔도 돼.”

 

  제이 아저씨는 웃으면서 술을 잔에 따라주셨다. 세하는 받아들여 잔을 입에 대었다. 거품이 맥주와 함께 목을 적셨다. 부드러운 맛과 함께 고소한 맛이 들리더니 씹은 맛이 입을 놀렸다.

 

  “자 너희들도 마셔. , 테인이는 아직.”

 

  나에게 잔을 넘기자마자 빠른 속도로 잔을 유리와 슬비에게 돌렸다. 테인이는 넘겼다. 마지못해 받는 유리와 슬비를 본다. 취기가 알딸딸하니 올라오는 것 같다. 말없이 고기를 뒤집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모두가 술에 취해 비틀거린다. 제이 아저씨는 유정 언니와 슬비, 테인이와 함께 가게를 나갔다. 제이 아저씨가 취했지만 슬비와 테인이가 취하지 않은 탓에 나름 잘 갔다. 늑대개 팀은 술이 강한 트레이너가 취하는 바람에 다급히 돌아갔다. 사냥터지기 팀은 꽤 시끌벅적하게 돌아갔다.

 

  “그럼. 가야겠다.” 유리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술을 홀짝거리는 세하를 보았다. 다들 두 잔씩 마셨고 자신도 두 잔은 마셨는데, 세하는 한 병은 홀짝거리며 못내 더 마시지 못했다. 세하는 술을 잘 못 마시는 것 같았다.

 

  “가자. 바래다줄게.”

 

  사실 이게 진짜 목적이 아니었을까. 유리는 생각해보았다.

 

  세하는 자신이 술을 잘 마시지 않은 것이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술을 마셔서 취했으면 이런 기회는 오지 않았겠지. 일부러 아껴 마신 것이 주요했다.

 

  세하는 유리를 업고 갔다. 유리는 괜찮다고 했지만 비틀거리는 모양새가 꽤 취해 보였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유리를 업었다. 세하는 등에 전해지는 유리의 무게감이 좋았다. 그렇게 세하는 손과 등으로 유리를 느끼며 걸었다. 어느 순간 유리의 집이었다.

 

  “유리야, 다 왔어.”

 

  “?”

 

  유리는 순간 잠이 든 것 같았다. 조금 떨리는 몸은 부스럭거리며 꼬물거린다. 유리는 세하의 등에서 내렸다. 순식간에 세하의 등에서 유리의 무게가 사라졌다. 세하는 아쉬웠다. 조금 더 유리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조금 더 유리와 함께하고 싶었다. 세하는 조금 더.

 

  유리를 좋아하고 싶었다.

 

  조금만 더 솔직해진다면.

 

  “이제 집 앞이니까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 너도 돌아가 봐.” 유리는 웃었다.

 

  “.”

 

  세하는 유리를 보았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긴장부터 된다. 그리고는 다시 유리를 바라보았다.

 

  “유리야.”

 

  “?”

 

  밤이었다. 쌀쌀한 찬바람이 불어오는 골목길이었다. 가로 등불이 켜져 있고 드문드문 전구가 나가 있다. 아무도 없는 달빛이 조용히 내려오는 것은 좋은 분위기와 장소가 아님을 알면서도

  “좋아해 유리야.”

 

  “넌 날 어떻게 생각해?”

 

 세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유리는 눈물을 흘렸다.

 

  유리는 세하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좋아하는 사람을 말해주었다. 그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도.

가슴이 따갑고 뛰지도 않았는데 심장이 벌렁거린다. 추운데도 불구하고 얼굴에 열이 꽃을 피운다. 세하는 유리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유리는 자신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한마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소의 유리라면 웃어넘겼을 것이다. 장난치지 말라고 등을 두드렸을 것이다. 슬비 이야기를 꺼내고 자신은 언제나처럼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슬비와 세하를 보았을 것이다.

유리는 그것이 슬펐다. 누구에게나 쾌활하지만, 자신에게만은 결코 쾌활하지 못하는 자신이 유리는 슬펐다. 기쁨과 쾌감 사이, 하지만 그것이 결코 좋은 감정이 아님을 유리는 알았다.

 

  “아하하! 농담도 심하다 세하야. 넌 슬비가 있잖아. 좋은 아내를 두고 바람이라니. 술이 많이 취했구나. 술이...많이..취했어...”

 

  유리의 마지막 말은 소리에 묻혔다. 고개를 떨궜다. 세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유리는 속으로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말에 최악의 대답이라니 세하는 자신을 싫어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는 슬비와 이어지겠지. 눈을 감았다.

 

  “유리야.” 세하는 이 말을 끝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유리도 말을 하지 못했다. 따뜻한 입술의 감촉이 서로의 얼굴에 전해진다.

입술이 부딪히는 느낌이 들고 따뜻함이 퍼졌다. 달콤함이라기보다는 부드럽고 고소했다.

 

  유리는 지금 첫 키스를 했다.

 

  세하는 지금 첫 키스를 했다. 잠깐의 침묵 후 세하는 입을 열었다.

 

  “유리야, 나는 널 좋아해.” 세하는 유리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마를 만도 한데 마르지 않았다. 계속 흘렀다.

 

  “어느 누구도 아니야. 바로 널 좋아해.” 세하는 유리의 붉은 뺨을 보았다. 달뜬 숨이 찬 공기 밖으로 나와 형체를 만든다.

 

  “너의 눈이 좋아. 너의 머리가 좋아. 너의 향기, 너의 입술 모든 것이 좋아. 무엇보다 너의 쾌활한 마음이 좋아. 너의 그런 마음이 나를 웃게 해. 너를 볼 때면 웃음이 나 두근거려. 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보면.”

 

  “너는 정말로 예뻐 유리야.” 유리와 세하는 눈을 맞추었다. 유리는 세하의 금색 눈이 세하는 유리의 청명한 눈이 서로 빠져들게 하였다.

 

  “사랑해.”

 

  세하는 남은 용기를 쥐어짰다.

 

  “. 나도 좋아해 세하야.”

 

  돌아오는 한 마디는 세하에게 충분한 보상이었다.

 

  다시 입을 맞춘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길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아 따뜻하다.

 

  밤이었다. 쌀쌀한 찬바람이 불어오는 골목길이었다. 가로 등불이 켜져 있고 드문드문 전구가 나가 있다. 아무도 없는 달빛이 조용히 내려오는 것은 좋은 분위기와 장소가 아님을 알면서도 둘은.

 

  계속 입을 맞추었다.

 

 

 

 

 

 

 

 

 

 

 

 

 

 

 

 

 

 

 

 

 

 

 

 

반갑습니다. 오랫동안 쓰지않다가 이제야 씁니다. 잘 쓰시는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도 되지만 올려봅니다.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2024-10-24 23:20:5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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