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과 그림자

루이벨라 2018-10-18 10

※ <사냥꾼의 밤> 챕터2 주저리주저리






 “<사냥터지기> 1분대 소속 파이 윈체스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세하 요원님.”

 “절 아시나요?”

 

 작전 구역에서 자신은 처음 보는 사람이 먼저 아는 체를 하자, 세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자 먼저 말을 꺼낸 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주 자랑스럽게, 그리고 참 씩씩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공부했으니까요!”

 “공부요...?”

 

 자신이 공부를 해가면서 알아야할 대단한 위인이라고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세하는 또 놀랐다.

 

 “대영웅의 자제분이시면서, 그 그늘에 안주하지 않고 굉장한 위업을 이루고 계시는 분이시죠.”

 

 대영웅이라는 칭호가 누구를 칭하는 지는 바로 감이 왔다. 처음 보는 유니온 쪽 관계자가 항상 가지는 자신에 대한 색안경이었다. 익숙한 반응이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유연하게 넘어가는 행동이나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하는 방금 전 있었던 일 때문에 신경이 바짝 날카로웠기에, 그만 퉁명스럽게 말이 나가버렸다.

 

 “됐어요, 그런 이야기.”

 

 자기가 꺼낸 말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되었다는 건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회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

 

 그러나 여기서 반전은 따로 있었다. 세하의 말을 들은 파이는,

 

 “, 불쾌하셨습니까...? 죄송합니다.”

 

 즉각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며 세하에게 정중한 사과를 보냈다. 그 당시에는 처한 상황도 그렇고, 어영부영 넘어가기는 했지만 생각할수록 세하는 자신이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인 거라는 확신이 서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세하에게 하는 파이의 말은 꾸밈이 없었다. 그리고 팀원들이 작전을 하면서 본 파이의 모습은 곧은 사람이라는 평이 많아, 심증은 물증이 되어갔다. 그래서 세하는 언젠가 자신의 무례를 파이에게 사과하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파이는 자신의 검을 손질하고 있는 중이었다. 말을 꺼내기엔 지금이 참 좋은 시기였다.

 

 “파이 씨.”

 “, 이세하 요원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 때의 일을...사과하고 싶어서요.”

 “그 때의 일이라 함은....”

 

 눈치 빠른 파이는 세하가 바로 하려고 하는 말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 때의 일을 다시 회상하는 듯 파이의 눈은 잠시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원망 섞인 말이라도 나올까봐, 그 때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파이가 먼저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파이 또한 그걸 나쁘게 마음에 두고 있을까봐 세하는 불안했다.

 

 파이는 그런 세하의 걱정과는 달리 구김살 하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세하 요원님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말을 경솔하게 꺼낸 제 잘못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전 요원님에 대해 공부하면서, 요원님의 그런 점이 매우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너무 담아두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전 파이 씨가 말하는 대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또, 또 볼멘소리가 나가버렸다. 세하는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이 없었다. 확신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오히려 당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모습이 참 낯설지 않고, 오히려 눈에 익어서 파이는 살며시 손질하던 검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파이의 이런 행동에 세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파이 씨...?”

 “그림자라는 말...참 제가 좋아하는 말이지요. 이세하 요원님은 그림자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한 때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 생각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세하는 당황했다. 그러자 그 때 인사를 나누면서 파이가 했던 그늘에 안주하지 않고라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딱 직감이 왔다.

 

 “.”

 

 세하의 짧은 감상평에 파이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는 미숙한 자이기에, 아직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늘을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가시는 요원님의 모습이 참 눈부시게 보였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제 불찰이었다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힘들었겠네요, 그거.”

 

 세하는 말을 짧게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말이 짧다고 그 안에 들어있는 감정도 짧은 건 아니었다. 약간 아파하는 그 표정으로 내미는 위로의 말은 짧았지만 잔잔했다. 파이는 생각했다. 참 대단한 분이시다, 라고.

 

 세하의 담담한 위로에 파이는 약간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사실 괜찮아지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지만요.”

 “저도 그래요. 우리도 언젠가는 정말로 괜찮아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좀 더 정진을 해야겠군요.”

 

 대화는 얼추 끝나갔다. 세하는 잠시 멋쩍어하다가 오른손을 불쑥- 파이 앞으로 내밀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는 그 뒤로 이어진 세하의 말을 듣고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인사를 하지 않았던 거 같아서요. <검은양> 팀 소속의 이세하예요. 잘 부탁드려요, 파이 씨.”

 

 친애의 표시로 내민 손이라는 걸 안 이상, 거절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열을 다루어서일까? 맞잡은 세하의 손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뜨거운 편이었다. 파이 또한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사냥터지기> 1분대 소속 파이 윈체스터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세하 요원님.”






[작가의 말]

사람은 하나로만 정의할 수가 없어서 서로의 닮은 부분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2024-10-24 23:20:5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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