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 3-완
한스덱 2018-10-17 0
메아리는 잦아들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괴로움에 침수되어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식은땀을 흘려대는 나를 지수는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네 번째로 찾아온 침묵을 처음으로 부쉈다.
“죄송합니다. 이미 다 지난 일인데, 바보같이…”
지수는 바보같은 이유로 괴로워한 걸 바보같이 사과한 나를 바보같이 용서하지 않았다.
그 대신, 뒤쳐져있던 나를 향해 돌아봐주었다.
“이젠 괜찮아. 넌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을거야.”
지수는 침수된 마음속에 구호 물품을 보내줬다. 홀딱 젖은 채 벌벌 떨고 있던 마음에 담요가 덮어졌다.
구호 물품 사이에는 난로도 끼여있었다.
“넌 어쨌든 그 놈 때문에 배신자가 되었어. 즉, 넌 이제 군단의 일원이 아니야. 그러니까 넌 그 악마같은 놈을 다시는 안 봐도 돼. 그리고…”
지수는 담요와 난로 밑에 숨겨져있던 선물을 꺼내들었다.
“그 끔찍한 군단에서도 깨끗하게 떠날 수 있어. 네가 원하던대로 말이야.”
하지만, 이미 지수에게 놀랄대로 놀란 나는 그 말을 들었는데도 생각보다는 무덤덤했다. 생각보다는.
“당신… 제가 원하던대로 라는 말은 또 무슨 소리입니까? 당신의 가설대로라면, 저는 그 조직을 원치 않게 배신한 거지 않습니까…?”
지수는 어느정도 안정된 나를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기 시작했다.
“너와 관련된 정보가 거의 안남은 데다가 불확실하기도 했다는 말 기억나?”
지수는 우리가 시시하게 다퉜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잊어먹겠는가? 나는 그때 우리가 했던 대화를 단 한 마디도 틀리지 않게 옮겨 적을 수 있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꼴에 영웅이라고 불리는 클로저야. 내가 옛날부터 군단과 싸우면서 얻게 된 정보들을 상부의 데이터베이스에다가 이것저것 집어넣다보니까, 상부에선 아예 나에게 1급 비밀까지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줘버렸어. 뭐, 단계 상으론 1 급이 최고지만, 그 윗 단계의 비밀들도 물론 더 있겠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든 난 그렇게 얻은 권한으로 여러가지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그 자료를 보게 된거야.”
지금까지 내부차원의 기밀 사항을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며 이야기를 하던 지수는 마침내 그 중의 한 가지를 나한테 누설해버렸다.
“그 자료에는, 차원 전쟁 때 군단에게 붙잡혀서 외부차원으로 끌려가 실종된 사람들 중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내부차원에서 다시 발견되었다는 기가막히는 사건에 관한 기록이 적혀있었어.”
지수조차 기가막혀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 나는 여전히 무덤덤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납치되었다가, 같은 장소에서 다시 발견된 그 사람들은 모두 실종되었을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어.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는 기억을 잃었다는 것 말고도 두 가지 공통점이 더 있었지. 첫 번째는, 그 사람들의 몸에서 똑같은 성분이 모두 검출되었어. 외부차원의 식물들에 포함된, 생물의 재생력을 향상시켜주는 성분과 정확하게 일치했지. 그리고 두 번째는…”
지수는 잠시 말을 끊었고, 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진술을 한 가지 했어. 그건 바로, 흰 생머리를 가졌고 머리의 양 옆에 뿔이 달린 여자가 어렴풋하게 기억난다는 거야.”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흰 생머리를 가졌고, 잘려나가기 전엔 뿔이 두 개였던 나는 역시나 잠자코 지수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 상부는 이 기상천외한 사건에 대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고, 결국 그 사람들은 함구령을 받고 집으로 모두 무사히 돌아갔어. 상부는 그 사람들의 진술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한 그 여성에게 ‘릴리스’라는 인식명을 붙여뒀지.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론 두 번 다시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렇게 그 기록은 모두의 기억에서 잊혔어. 나 역시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냥 이런 사건이 있었나보다 하고 넘어갔지. 너와 만나기 전 까지는 말이야.”
내 입은 마침내 다시 열렸다.
“그럼 당신이 제 정체를 거의 확신했던 이유는 제 능력 때문이 아니었군요…”
“그래. 아깐 거짓말해서 미안. 하지만, 내가 이 정보를 토대로 확신한 것은 네 정체 뿐만이 아니야.”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나는 더 이상 지수의 말에 당황하지 않았다. 지수는 내가 바라보는 것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나를 위해 지금까지 그 너머의 모습을 이야기해주고 있었으니까.
“내가 세운 가설이 성립되려면, 그 놈이 너를 배신자로 모함할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널 모함해봤자 군단은 콧방귀만 뀌겠지. 그러면 그 놈은 너를 제거할 명분을 얻을 수도 없을뿐더러, 너를 터무니없이 모함해버린 자신의 입지가 오히려 위험해졌겠지.”
나는 지수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지만, 이번에도 딴지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네 반응을 보아하니 내 가설은 딱 들어맞았나 보네. 그 말은 곧, 너는 군단을 배신했다는 꼬투리를 잡힐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뜻이겠지. 이걸 내가 앞서 말했던 정보와 종합해보면… 나는 너에게 이 말을 반드시 전해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지수는 저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앞에까지 성큼성큼 걸어간 지수는 그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우뚝 섰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허리를 깊이 숙였다.
“그 사람들을 지켜줘서, 돌봐줘서, 그리고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다섯 번째 침묵이 질리지도 않고 찾아왔다. 점수는 내 마스크가 1 점, 내가 2 점이고, 금방 득점한 지수가 나와 같이 2 점이 되었다. 하지만 지수는 침묵을 부순 횟수에서 나보다 2 점이나 더 앞서 있었다.
나는 헛웃음을 터트려서 그 점수를 1 점차로 줄였다.
“하하! 참 대단하십니다! 이 마스크랑 그 정보만으로 그렇게까지 알아내셨단 말입니까?”
내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말하시면 어떡합니까?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이란 인간은 정말… 제가 감히 상상도 못할만큼 놀랍고…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내 말은 점점 더 느려졌다.
“자꾸 그러시면... 전 어쩌라는 겁니까…? 지금에야 와서… 그런 말을 들을거라곤… 상상도 못했단 말입니다… 근데 당신은… 당신은…!”
내가 억지로 해맑게 꺼낸 말은 결국 어두컴컴해졌다. 나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내가 약초밭에서 겨우 잠궈놨던 눈물샘이 그와 동시에 터져버렸다.
“뜬금없이 찾아와서는… 그렇게 주시기만 하시면… 곤란하단 말입니다… 너무 무거워서… 감당이 안되지 않습니까…!”
내가 준 음식들은 지수의 뱃속으로 무사히 들어갔다. 하지만, 지수가 주는 선물들은 내 마음속에서 결국 넘쳐버리고 말았다. 지수는 다시 내 옆에 앉아서 내 어깨를 감싸주었고,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내 마스크에 얽힌 이야기이다. 시간상으론 7 일째 하루가 시작된지 약 4 시간 정도 흘렀다.
그 하루가 끝나려면 아직도 약 20 시간이나 남았다.
하지만,
만남은 계속 흘러만 갔고, 작별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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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3 부의 이야기까지 어떻게든 마무리 지었네요.
하지만... 4 부의 이야기는 한 문장은 커녕 한 단어도 적지 못했습니다...
제 상상 속에서나 있는 4 부에서 릴리스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갈 생각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이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해보자면,
릴리스는 하이브리드 캐릭터의 옥 모듈 중 하나인 배반의 옥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입니다.
정확한 이름도 없이 배반이라는 단어만 달랑 붙어있다보니 여러가지 상상을 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이런 터무니없는 설정을 감히 정해줄 수 있었습니다.
릴리스는 어쩌다가 군단장이 되었고,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할까요?
그건 앞으로의 이야기에서 공개될 예정입니다. 서지수의 운명은 다들 이미 짐작하셨을 겁니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수정의 시간 말이죠.
수정도, 전개도 모두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마무리 짓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