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전개상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읽으실 때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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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훗날 그녀에게서 이 사건을 포함한 여러 모험담을 직접 들은 작가는, 그 이야기들의 일부를 간추려내어 하나의 소설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 소설은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임이 당연하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읽어 주신 여러분께 작가는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지만, 여러분은 분명 항의를 할 것이다. 대체 이 빌어먹을 작자가 누구길래 자기가 만든 세상 속 등장인물인 그녀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또 그 이야기들로 멋대로 소설을 쓰는 것인지를 알 수 없을테니까.

 그런 여러분께, 그리고 이미 이것을 눈치챘을 여러분께도 마찬가지로 작가는 한 가지를 더 고백하겠다.

 그녀의 모험담 중 일부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길고 긴 통화를 무사히 끝낸 뒤, 자신의 무기를 왼손에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 방에 있었던 잡동사니들 중에서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물건 하나를 챙겼다. 그 물건은 차원 간 통신이 가능한 주제에 한 손으로 들 수 있을만큼 조그마한 곰 인형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 무기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영광을 받은 물건은 바로, 참모장의 방 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린 파편 더미 속에 뒤섞여있던 석판이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순식간에 끝내버린 전투 중에, 자신의 분노를 최대한 조절하면서 퍼부었기 때문에 그 석판은 약간의 상처만 입은 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차원종들은 보고서 등을 작성할 때 인간과는 다르게 종이를 사용하지 않고, 석판에 문자를 새기던가, 혹은 곰 인형 모양의 usb안의 파일에 담긴 문서로 만들던가 등등의 수단을 활용했다. 적어도 곰 인형 모양은 아니었던 그 석판은, 참모장의 비밀 시설이라는 제법 중요해보이는 구조물 안에서 그녀가 유일하게 발견해낸 글씨가 새겨진 물건이였다.

 그녀는 지금 외부차원의 정보들을 훔쳐가는 스파이였고, 자신이 읽을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던 그 석판 안에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그 석판은 그 새까만 시설 안에 있던 그 어떤 것들과 비교해봐도 확연하게 검은색이 아닌 유삼한 것이었다. 참모장이 남몰래 만들고 남몰래 투기한 쓰레기통 속에다가 이 석판을 최근에 숨겨놓았다는 게 확실했다. 참고로, 두 번째로 검은색이 아닌 것은 참모장의 방 바닥의 중앙에 o 모양으로 조그맣게 그려진 하얀색 선이다.

 그녀는 무기보단 가벼웠던 그 석판까지 오른손에 챙긴 다음에 그 방을 나가려다가 자신을 여러모로 괴롭힌 곰 인형을 깜박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석판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이 수 차례 넘은 실험으로 도난 방지 장치가 안 달린 것을 증명해낸, 차원 간 통신이 가능한 주제에 너무나도 조그맣고 검은색도 아니었던 곰 인형을 윗 옷 주머니에 넣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체온을 지켜준 이불 겸 망토마저 깜박했다는 걸 곰 인형 덕분에 기억해낸 그녀는 그 가죽을 자신의 오른쪽 어깨에 들쳐맸다. 지금 그걸 입기에는 너무 더웠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갔을 때보다 몸도 마음도 더 무거워진 그제서야 겨우 그 방을 빠져나온 그녀가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어둠 그 자체였다.

 그 어두컴컴한 계단의 끝에는 그녀가 지하 2층으로 내려올 때 처음 본 것과 똑같이 생긴 철문이 있었다. 그녀는 그 문 뒤에 숨겨졌을지도 모르는 정보들 역시 조사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그 생각을 당장 실천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지금 너무 지쳤고, 더 이상의 전투는 그녀에게도 무리였다. 그래서 그녀는 그 철문을 일단 무시하고선, 그나마 덜 불쾌한 지하1층으로 올라간 뒤, 그 복도의 벽에 몸을 기댄 채 곤히 잠들었다. 그 불쾌함의 덩어리같은 비밀 시설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유는, 이미 어두컴컴해진 바깥은 남극보다 더 추웠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기지개를 쭉 켜서 찌뿌둥한 마음을 몸과 함께 풀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소지품들을 전투에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을 방법으로 모두 챙겼다. 그 방법은, 곰 인형은 윗 옷 주머니에 넣고, 무기는 왼손잡이인 그녀의 왼손에 들고, 석판은 이불 겸 망토인 차원종의 가죽을 이용해 자신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을 만큼 꽉 묶은 것이다,

 중요한 정보가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석판 하나 때문에 전투력이 더 떨어져버린 차림새가 되어버린 그녀는 마침내 지하 3층 입구 앞에 섰다. 그녀는 차원 전쟁 때 쓰이던 레이더보다도 더 정확하고 날카로운 감각에 의존해 그 철문 뒤에 자신을 노리는 차원종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하 3층의 모습을 빈틈없이 가리던 철문을 발로 밀어서 활짝 연 다음, 언제라도 건 블레이드를 휘두를 수 있는 자세를 취한 채, 지하 2 층을 뛰어넘는 불길함을 내뿜는 무언가가 있는 그 문 뒤로 역시나 망설임 없이 재빠르게 진입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불길함의 정체를 눈 깜짝할 사이에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녀가 망설임없이 재빠르게 ‘진입’한 그 방에는 차원문이 활짝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긴장을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함정에 똑같이 당해버린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녀는 어제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지하 1층과 지하 2층의 구조가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는 지하 3층 역시 자신이 지금까지 봤던 구조와 동일하다는, 그러니까 지하 3층 역시 각각의 방들이 서로를 마주보는 긴 복도가 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해버렸다.

 2. 그 구조물은 이미 오래전에 버려졌다. 그리고 그녀가 지하 2층까지 몸소 확인해본 결과, 그 구조물에는 독방 안에 갇힌 자들을 고문했을 장치들 말고는 그 어떤 장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위협할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활짝 열어버린 철문 뒤에 있던 장치가 고문이나 함정과는 상관이 전혀 없어보이는, 그러니까 차원문을 열 때 쓰이는 비석이 있다는 생각을 미쳐 못했을 뿐이다.

 3. 비석은 당연히 무생물이다. 그리고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투시능력만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 지하 3층의 장치가 살아있는 차원종이라는 착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아무리 날카로운 감각을 가졌어도 내부를 빈틈없이 가리던 철문을 열기 전 까지는 그 비석의 정체를 알 방법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깨닫지 못했던 그 비밀 시설의 비밀스러운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1. 지하 3층은 1층이나 2층과는 다르게 비좁은 방 하나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비좁은 방의 대부분의 공간은 차원종들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데 사용하는 차원 이동석이 차지하고 있었다.

 2. 내부차원의 인간들 입장에선 형벌장이라고 불러야 할 그 장소는 사실 참모장의 악마같은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놀이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놀이터 지하 3층은 참모장이 자기한테 더 이상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죄수들을 내쫓기 위해 만든 장소였다.

 3. 지하 3층의 차원 이동석은 그 사용 방법이 너무 간단했다. 그저 그 비석이 숨어있던 방 문을 활짝 열기만 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 시설을 처음 방문해서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을 그 사실들과, 그로인한 착각 때문에 또다시 방심한 채로 지하 3층의 문을 활짝 열어버린 그녀는 스위치와 마찬가지인 철문이 열려서 작동해버린 차원 이동석 때문에 그 놀이터의 주인에게는 쓰레기에 불과한 자들이 버려지는 장소로 향하는 차원문 속으로 망설임없이 재빠르게, 하지만 신중하지 않게 들어가버렸다.   

 사실 그녀는 군단의 주요 이동 수단인 차원 이동석의 존재를 차원 전쟁 시절에 얻은 정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외부차원에 갇혀버린 그녀는 외부차원에서 내부차원으로 통하는 차원문을 열어줄 차원 이동석들의 정확한 위치와 그것을 작동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숨바꼭질’ 작전을 방금 전 까지 별 문제없이 진행해냈다.

 하지만, 그녀는 탈출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정보들 대신 간접적인 도움이 될 통신기의 위치와 작동 방법을 먼저 알아버렸고, 또다시 저질러버린 치명적인 실수 때문에 완벽하게 진행되던 그 작전의 무사성공에 실패해버렸다. 내부차원은 절대로 아닌 장소에 제 발로 와버린 그녀는 어느 한 차원종에게 자신의 정체를 발각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