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전개상 게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읽으실 때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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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결전의 날의 아침, 그녀는 그 시설 내부에서 통신기를 찾아 맥없이 해매고 있었다.

 차원 간 통신이 가능한 통신기가 어딘가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비밀 시설의 내부는, 내부차원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마왕성과 맞먹는 인테리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녀가 걷고 있는 복도는 위상력으로 푸른 횃불을 피워내야 겨우 분간을 할 수 있을만큼 어두웠다. 그 복도엔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가진 가구들이나, 창과 방패로 무장했지만 생명이 입지는 않은 갑옷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내부차원의 중세 시대 속 부유한 귀족의 성을 연상시키는 소품들이 가득한 그 복도는, 여섯 개의 문이 나있는 벽과, 아무런 무늬도 없이 한 가지 색만 가득한 양탄자가 깔린 바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제는, 그 복도에 있는 모든 가구들과 장식품, 그리고 복도의 벽과 바닥 모두가 양탄자와 마찬가지로 검은색으로만 색칠되어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에 피워낸 횃불의 푸른빛조차 반사하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한 그 복도를 혼자서 탐험하고 있었다.

 그 복도를 포함한 구조물 1 층의 모든 것이 검은색이었다. 예를 들어, 그녀가 1 층의 어느 문을 열어서 보게된, ‘성’의 주인이 상석에 앉아서 하인의 시중을 받으며 외로운 식사를 하다가 저 멀리 반대편 상석에 앉은 또 다른 주인과 시선을 마주치며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멀리서 감상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설명할 수 밖에 없을정도로 길쭉한 방 안은, 공간의 길쭉함에 어울릴 정도로 기다란 테이블과, 그 테이블의 상석에만 세워진 의자 2개는 물론이며, 그 기다란 테이블을 전부 덮고 있는 식탁보와, 그 식탁보 위에 널부러진2 쌍의 숟가락과 포크 그리고 나이프에, 심지어 테이블 중간에 쓰러져있던 검은색 촛대의 심지에 붙인 불마저도 검은 빛일 정도로 새까맸다. 그 구조물 1층의 다른 방들도 마찬가지로 그 시설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이자 주인인 자의 사악함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새까맸다.

 이만큼 새까맣게 칠하는게 가능한 건지 의심이 들만큼 새까맣던 그 구조물은, 내부차원의 전설에 나오는 악마가 살았다고 믿을 수 밖에 없을만큼 마왕성에 가까웠다. 다만, 이 시설과 내부차원의 이야기 속 마왕성과의 첫 번째 차이점은, 보통 내부차원에서 ‘성’이라고 부르는 구조물은 하늘 위로 솟아났지만, 이 구조물은 땅 밑으로 박혀있었다. 그래서 이 지하 구조물에 가득찬 검은색을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줄 창문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지금 그녀가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색으로만 가득찬 비밀 시설에서 맥없이 걷고 있는 이유는, 그 검은색을 그나마 다른 색으로 바꿔줄 만큼 층층히 쌓인 먼지 때문이다. 이름 없는 군단에서 가장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한 참모장이 직접 설계한 이 비밀 시설은 오래전에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잊혔다. 무의미한 사치로 가득찬 흑요석을 길바닥에 던져버리고 누군가가 소중히 간직하던 흑요석을 빼앗을 궁리를 할 게 뻔한 그 자의 허영심을 상징하듯이, 이 고풍스럽게 꾸며진 구조물이 쓰레기통에 통채로 쳐박혀있는 꼴과 마찬가지였다.

 군단의 참모장이 남들 몰래 세운 시설에서 펼쳐졌어야 할 화려한 액션씬들 때문에 컨디션을 최대한 유지하고 긴장감까지 챙긴 채, 입구에서 마른 침을 청심환 삼아서 꿀꺽 삼킨 다음에 첫 번째 장면을 연기하려다, 적들을 연기할 배우들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스턴트맨이 되어버린 그녀는 차라리 이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이 시설의 존재를 알고있는 군단의 일원이 참모장의 추종자들 말곤 거의 없다는 극비정보도 얻어낸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군단에게 발각당할 걱정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긴장이 풀려서 맥도 같이 풀려버리는 것을 막지 못한 그녀는 이 버려진 쓰레기통 속에 버려져 있을 통신기를 찾아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하1층을 모조리 수색했지만 통신기로 추측되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지하 1층의 방들은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꾸며진 거실, 침실, 욕실, 식당, 서재, 무도회장에 불과했다. 그녀는 그저 지하 1층에 있는 모든 방과 복도의 벽에, 나팔처럼 생긴 장식물이 여러개 달려있다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그녀는 차원 전쟁때 선봉대장으로 나섰고, 그 덕분에 전략이나 전술에도 능통한 편이었지만, 전면전이 아닌 첩보 작전을 진행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그녀가 게릴라 작전에서 신속하고 은밀하게 이동하면서 정보를 얻은 건 맞지만, 그녀는 신속함이나 은밀함에는 자신이 있었어도 적들에게서 정보를 얻기 위해 교묘한 기술이 담긴 심문을 처음으로 시도해 볼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이쯤에서 그녀는 자신한테 머리를 30번은 넘게 쥐어박힌 그 충성스럽진 않았던 추종자의 입에서 술술 나온 정보의 진정성을 조금 의심해봤지만, 이내 그 조그마한 의심을 거두었다. 참모장이 그녀를 이 멀고도 먼 외부차원으로 날려버린 진짜 이유를 통신기의 위치와 같이 일러바친 그 추종자가 굳이 그 위치만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 추종자는 그녀에게 그만큼이나 진정성 높은 정보들을 강제로 제공해 줄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그 추종자는 그 어떤 정보도 더 이상 알려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막 이 구조물의 지하 1층의 수색을 끝냈을 뿐이다. 지면에서 내려들어온 계단에서 오른쪽으로만 길게 나 있는 지하 1층의 복도 끝 오른쪽에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떡하니 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하 2층으로 진입하는 걸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감각이 저 밑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는 걸 싫어했다. 그리고 망설일 시간도 없었다. 그녀는 지금쯤 참모장의 계략에 놀아나고 있을 인간들에게 자신이 알아낸 그 끔찍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려줘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계단을 살금살금 내려간 뒤, 지하 2층의 모습을 빈틈없이 가리던 철문을 발로 밀어서 활짝 열고선, 언제라도 건 블레이드를 휘두를 수 있는 자세를 취한 채 문 안으로 재빠르게 진입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감각이 경고하던 그 무언가의 정체와, 이 시설과 마왕성과의 두 번째 차이점을 깨달았다.

 애초에 이 장소는 주인이 직접 거주하기 위해 성처럼 꾸며낸 집이 아니었다.

 지하 2 층은, 윗 층과 마찬가지로 내려온 입구에서 오른쪽으로만 길게 뻗어있는 통로가 있었다. 다만, 지하 2 층의 복도의 한 벽에는 철창으로 막혀있는, 지하 1층의 방과는 비교를 할 필요가 없을만큼 좁은 독방 7개가 빼곡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건 반대쪽 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이 장소가 내부차원의 평범한 감옥과 같았다면 그녀에게 더 다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소는 평범한 감옥이 절대로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