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 세하 앤 세하(Seha & SEHA)
SummerDia 2018-09-05 7
※ 지인분 썰 기반
※ 필자가 세하로 시즌3을 깬 적이 없어서, 에픽과 좀 다를 수 있음
※ 제목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에서 따왔습니다.
성의 정원 끝자락에서 느긋한 척, 휘파람을 불던 볼프강을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볼프강 씨...!"
"...또 이세하로군."
또 너냐. 이제는 지긋지긋하다는 볼프강의 시선의 끝에는 이세하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의 꼴은 참으로 우습다. 둘 다 유니온의 특수요원복을 번듯하게 입은 상태. 분명 유니폼은 자신과 같은 단체 내에서의 소속감을 높여준다고 했는데, 지금 이 두 사람에게는 그런 작은 잔치레 감정 따위 없다. 하고 싶지 않아도 적대를 해야 한다.
그게 사냥터지기 팀이 받은 명이었다. 이제는 매번 오는 이세하의 얼굴도 외울 지경인지라 볼프강이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이걸로 우리 몇 번째로 만나는 거지? 너도 내 얼굴 계속 보기 껄끄러울 텐데? 그러니 이제 그만 우리 좀 내버려 둬."
"볼프강 씨를 비롯한 사냥터지기 팀 모두들 원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걸 보고 어떻게 지나갈 수 있냔 말이예요!"
"참 낭만적인 소리를 하는군."
세상은 그렇게 속 편하지 않단다, 꼬맹아. 볼프강은 한숨을 쉬며 손으로 책을 넘기며 이세하에게 말했다.
"그럼 넌 싫다곤 하겠지만, 어쩔 수가 없군. 한바탕 또 싸워볼까?"
"왜, 왜 이러세요! 전 볼프강 씨랑 싸우고 싶지 않다고요."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내 의지보다는 높은 것이 있어서 말이야. 조금은...아플 거다...!"
"윽...!"
갑자기 거대한 낫이 나타나 이세하가 있는 바닥을 내리 찍었다. 이세하는 간단히 피했다. 그러자 낫을 든 차원종의 형상이 목표물을 놓친 것에 대해 아쉽다는 듯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볼프강은 저 정도는 피해야지, 라는 표정이다. 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이세하는 건블레이드를 고쳐잡았다.
저 책은 참 이상했다. 볼프강과 몇 번씩 대적하면서 알게 된 것으론, 무기는 물론 차원종 같이 생긴 것도 가끔씩 나타나서 공격을 한다. 처음에는 책이라는 무기 같지도 않은 무기를 가지고 와서 뭐인가 했는데 생전 처음 본 무기인만큼 그 안에 무엇이 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볼프강도 책에 있는 모든 걸 이세하에게 그닥 쏟아붓고 싶지 않아하는 것도 같았고.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건 볼프강은 참으로 까다로운 상대였다. 실력도 좋았고, 경험도 풍부했다. 고작 1년 정도 클로저를 한 소년이 이런 어른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볼프강 씨, 우리 대화로 해결하면 안 될까요? 이런 싸움 무의미하다고요."
"그딴 건 이미 개나 줘 버렸어! 전력을 다해라, 이세하. 안 그러면 넌 여기서 걸어나갈 수 없으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책 안에서 거대한 활이 나왔다. 그걸 잡은 볼프강의 폼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활의 크기와 비례한 화살 3 ~ 4개가 나와 그대로 이세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망령의 활.
화살 또한 아까의 낫처럼 피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화살 하나가 이세하를 향해 똑바로 날라왔다. 유도탄과 같이.
결국엔...
'아...?'
몸이 쓰러지는 걸 인지하자마자 생각한 것이 그 짧은 감탄사라니...배 부근에서 무언가가 관통된 거 같은데 아프지가 않았다. 뜨거웠다. 너무 뜨거워서 오히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세하? 이세하!"
볼프강이 순간 자신을 다급하게 부른 거 같았다. 볼프강 또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그나마 움직여지는 손으로 옆 부분을 만져보니 무슨 액체가 묻어나는 느낌이 났다. 이세하는 일부러 그 액체를 자신의 앞에 들어 ** 않기로 했다.
시야가 흐려지고, 옆쪽에서 자신의 안부를 물어보는 볼프강의 목소리가 희미해질 때쯤이었다. 세상에서 홀로 튀어나와 있는 세하에게, 누군가가 살며시 노크를 했다.
똑똑-
-오~
노크를 한 손님은 주인이 들어오라는 말 따위 하지 않았는데도 멋대로 집으로 돌아오는 무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집주인의 상태를 보자마자 내뱉는 건 감탄사. 그리고 쓰게 웃으며, 팔짱까지 끼며 하는 말.
-드디어 내 차례인가?
분명 웃고 있는 거 같았다...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자신의 차례가 온 것이 너무 반가운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심심했어.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나가서 놀아도 되는거지?
"..."
-뭐, 어차피 넌 반항조차 할 기력도 없는 거 같은데 말이야. 좀 자고 있으라고. 눈을 떠 보면 모든 게 다 끝나 있을거야.
눈앞이 점점 새빨개진다. 하늘도 덩달아 붉어진다. 머리에 흘러내린 피 때문일까. 아니...머리는 애초에 맞지도 않았잖아. 머리에 피가 흘러내릴 이유가 없다.
그렇다는 건...
...'그 녀석' 이 깨어나려나 봐. 이세하가 마지막에 중얼거린 말이다.
* * *
예의 없는 그 손님은 이세하가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린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한 후에야,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준비 운동부터 좀 하고...너무 오랜만이긴 하지만, 나가는 상황이 영 좋지는 않아서 실수라도 했다간 큰일날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손님은 오랜만에 찾아온 유희거리에 너무 신난 상태였다. 목소리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하핳! 고마워, 이세하~ 몸 좀 소중히 쓸게~"
* * *
볼프강은 그제야 책을 덮었다. 볼프강은 무의식적으로 소년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책이 제멋대로 화살 하나에 의지를 심어둘 줄은 몰랐다. 이 빌어먹을 책은 항상 인생에 방해였다. 사과의 뜻으로 곁에 다가가서 부활 캡슐이라도 입안에 넣어주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있었고 증원군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 하는 수 없이, 쓰러진 이세하를 뒤로 하고 복귀를 하려던 그 때였다.
또렷한 목소리가, 볼프강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아, 아픈 건 싫은데 말이야..."
"...?"
'뭐지...?'
뭐야, 방금 전의 그 목소리는? 검은책에서 들린 목소리인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허상 같은 목소리가 아닌, 실체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이런 상대편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계속 제 할말만 한다.
"밖으로 나온 건 기분 좋지만...솔직히 이런 꼴은 영 좋지 못하단 말이야..."
볼프강의 뒤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이 일어났다. 거의 빈사 상태로 쓰러져있던 소년이 손가락을 세밀하게 꼼지락거리며, 지옥에라도 갔다온 이처럼 태연스럽게 여행 감상문이나 읊어내는 것이다. 심지어 주먹을 쥐었다 피는 다른 쪽 팔을 지탱삼아 일어나려고도 했다.
볼프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정도 공격을 맞고 일어섰다고...?'
강인한 체력 아니면 정신력을 가졌군, 이라고 소년을 태연하게 칭찬할 타이밍은 아니다. 소년은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 건블레이드의 손잡이를 집더니, 태평하게
"아, 건블레이드 찾았다."
라고도 말했다. 저건, 치명상을 입고, 아무리 위상능력자라고 해도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볼프강은 경험이 풍부했기에 그 정도의 감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총장의 눈만 없었다면 이세하의 치료도 해주고 가려던 심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볼프강은 그 누구보다도 이세하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시작했다.
"넌...누구냐."
볼프강은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물건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는 걸 감지했다.
볼프강은 조금 전의 이세하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이세하를 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의 무기인 검은책이 갑자기 좋은 먹잇감이라도 나타났다는 듯, 유독 힘차게 페이지를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악한 차원종의 사념 혹은 거무튀튀한 인간의 악의에만 반응하는 이 책이 이렇게 흥분한 태도를 보이는 걸 보면, 지금 정신을 차린 '이세하' 와 그닥 좋은 분위기로 이어질 거 같지도 않았다.
'이세하' 는 방금 전 볼프강이 뚫은 자신의 배를 누르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건블레이드를 지지대 삼아 일어나는 그 모습을 보던 볼프강은 살짝이지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안 아플리가 없는데? 게다가 쓰러지면서 무통제와 같은 약품도 섭취한 걸 ** 못했다. 볼프강이 보기엔 지금 이세하가 일어나는 폼이, '아픈 척' 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아프긴 아픈데 어차피 제 원래의 감각이 아니니 움직일만은 하니 뭐 괜찮네, 라는 듯이.
감각과 의식이 따로 논다? 이런 거,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이세하는 엉거주춤 다시 일어서더니 볼프강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제 은인의 얼굴을 보기라도 하자, 라는 듯이. 외형의 차이는 없다. 몇 분 쓰러져있던 소년의 얼굴이 갑자기 변할리는 없다. 다만 공기, 표정 등이 바뀌었다. 소년을 감싼 공기는 더 흉흉하고, 독사처럼 독니가 날카롭게 서 있었다. 표정도 그에 맞게 삐딱하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세하의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변한 거 같았다. 이세하는 방금 전까지 내뿜은 포스와는 다르게 예의바르게, 볼프강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아, 네 자식이었냐? 이세하를 이렇게 만들어낸 게?"
"..."
"그래도 고맙다고는 해줘야겠네? 덕분에 오랜만에 바깥 공기도 좀 마시고."
"...네 놈, 차원종이냐. 아니면..."
검은책의 반응을 토대로 내놓은 볼프강의 억측에 상대방은 담담하게 반응했다.
"뭐...비슷한거라고 해두지."
이세하는 주머니 속에 쓰윽- 무언가를 꺼냈다. 체력회복캡슐 2알.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클로저에게 필수인 캡슐 형태의 의료품이다. 이세하는 그걸 물도 없이 꿀떡 삼켜버렸다. 적이 기력을 차리는 시간을 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볼프강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만히, 멀찍감치서 이세하를 보는 건 지금 눈앞에 일어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클로저 소년과 그 소년 안에 잠들어 있는 강력한 악의라니. 이게 무슨 현실판 지킬 앤 하이드, 냐고. 캡슐의 효과는 빨랐다. 이세하는 슥- 볼프강이 찌른 자신의 상처 자국을 확인하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휴...이제야 좀 피가 멎었군."
그리고 자신의 최악의 몸 상태의 장본인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기분 역겨워. 머리도 아파. 속도 울렁거려. 몸에 전체적으로 피가 부족하다고. 몸이 이렇게 빈사 상태에 가까우면 내가, 제대로 쓰지도 못 하잖아."
"너도 이 책처럼 이세하의 몸을 장악하려는 녀석이냐?"
"'너도' 라니. 어디서 날 그 따위 물건과 비교하려드는 거냐?"
책이 자신을 무시한 저 방자한 놈을 입 다물게 하자, 라고 말하는 듯 부르르- 떨렸다. 볼프강은 책이 펼쳐주는 페이지를 읽어내리며 선포했다.
"네가 차원종의 사념이든, 의지를 가진 악의든 넌 오늘 아주 잘 걸린 거야."
"뭐야? 날 거기 책에 가두기라도 하게? 웃기네. 갇혀있는 건 이세하의 몸뚱이만으로 충분하다고."
"이렇게 생각해보도록 하지? 그러니 새 집으로 이사를 가는 거지!"
볼프강이 먼저 선수를 쳤다. 방금 전의 이세하를 꿰뚫은 화살이 이번에는 제 의지를 가지고 날아들었다. 그걸 이세하는 들고 있는 검으로 여유롭게 쳐냈다.
'빈틈이 너무 많군...'
"빈틈이 너무 많네."
'아닛...!'
자신이 생각한 말을 그대로 내뱉는 상대방에게 볼프강은 당황했다.
일부러 보인 빈틈은 볼프강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다. 월척이로다! 이세하는 있는 힘껏 검으로 볼프강이 서 있는 바닥을 내리쳤다. 볼프강은 지면과의 충돌을 간신히 피했다.
충격파. 땅은 갈라지다 못해 불길까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세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휴~ 몸상태가 거지같아서 그런지 역시 힘조절이 안 되네."
"너 이 자식..."
"왜? 아까의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가신 거야? 그럼 이참에 확실히 말해두지. 난 지금 집도 제법 마음에 들어서 이사 가기 싫거든?"
"..."
그러니 억지로라도 끌어내봐. 네가 할 수 있다면. 이제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은양과 늑대개만으로도 까다롭다고 생각했지만, 이세하 안에 있던 의식이 또 하나의 변수였다. 실력도, 힘도 제법 있었다. 게다가 가장 성가신 점은 이세하보다 훨씬 여유롭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이 자신에게 보낸 공격이 닿기 직전에도, 태연하게 다음 작전 구상도 할 수 있었다. 책의 움직임이 아까보다 차분해졌다. 책도 인지한 것이다.
"이거...만만치 않은 적을 만난 거 같군."
"뭐야? 그럼 이때까지 네가 만난 적들은 하나 같이 약해빠졌다는 소리군. 아니면 너도 그만큼 약했다는 건가?"
뭐야, 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이세하가 성큼 다가왔다. 책을 제대로 읽기도 전에, 볼프강은 자기보다 작은 소년에게 붙잡혀 공중 위로 떠있었다.
영거리 포격. 이세하는 자신의 몸에 흠집을 낸 볼프강에게 매우 화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했다.
"이제 죽는 일만 남았지?"
"윽..."
"아까 날 관통시킨 거...이제 이걸로 갚는거다? 그럼 이제...으윽?"
볼프강을 높이 올려잡은 손아귀 힘이 느슨해졌다. 그와 동시에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 반동으로 볼프강과 이세하는 같이 넘어졌다. 볼프강은 목을 매만지며 혹시나 또 이세하의 작전인가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자신의 위로 쓰러져있는 소년에게서 아픔으로 인해 덜덜 떨리는 떨림이 느껴지고, 당황스럽고 고통을 짜낸 듯한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다.
"보, 볼프강 씨...?"
"너...이세하냐."
"-...이렇게 의식을 빨리 차릴 줄은 몰랐는데."
방금 전의 그 걱정어린 말투와 다르게 짜증내는 거친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세하' 는 주인이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다는 분함으로 인해 잇새 사이로 으르렁거리기까지 했다. 붉은색의 눈이 더 흉흉히 빛난 건 기분 탓이었을까.
아직도 목이 조이는 감각이 가시지 않아 볼프강이 콜록거리며 확인했다. 이세하는 휘청거리는 와중에 볼프강은 모르는 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말다툼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점점 달라지는 점이 있다면 불쑥- 뛰어든 방청객의 목소리가 점점 안 들리기 시작했다는 거. 어느 새 완벽하게 이세하의 목소리만 들리게 되자, 이세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볼프강과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만신창이가 된지라 더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했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만 있던 두 사람 중 먼저 기력을 차린 건 볼프강이었다.
볼프강은 지금 상황이면 총장 또한 재킹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이세하에게 진심을 말했다.
"이세하, 미안하다."
"..."
"이 빌어먹을 책이, 또 지멋대로 일을 저질렀다. 말로만 이렇게 표현하는 건 미덥지 않겠지. 걱정 마라. 난 빚은 꼭 갚는 성격이니까."
"...그렇다면, 그 빚, 저희와 손 잡으실 수 있는 걸로 하면 안 되나요?"
이세하는 한결 같았다. 올곧은 아이다. 볼프강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 자기네들이 짜는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아직 성공하리라곤 확신을 못하기 때문에 볼프강은 그런대로 긍정적인 답을 내주었다.
"아직 확답을 줄 순 없을 거 같다. 하지만 그러도록 하지."
"그럼 이제 볼프강 씨와 싸우진 않는다는 말이네요. 이런 거...다시 경험하긴 싫어요."
"나도다."
둘 다 기진맥진인 상태다. 한참을 뜸들이다가 볼프강이 물었다.
"이세하."
"네?"
"네 몸의 그 녀석...도대체 어떤 존재인건가."
"..."
사실대로 말할까? 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직 완전히 같은 팀이 된 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 녀석을 언급하기엔 시기적으로도 안 좋다.
이세하는 적당히 넘어갔다.
"정확하게 말해드릴 순 없지만...자기 멋대로 눌러붙은 객(客, 손님)이라고 생각하세요. 나가라고 해도 나가지 않아요."
"빌어먹게도 짜증나겠군."
"맞아요."
성격도 참 뻔뻔해요...이세하와 볼프강은 같은 밤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볼프강은 그럼에도 담담히 축하 메시지는 전해주었다.
"그래도, 기어이 돌아왔군."
"..."
그 말 뜻은 영영 못 돌아오는 줄 알았다는 것인가. 이세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것 이외의 것을 더이상 알려주고 싶지 않으니까.
게다가 본래 이세하의 몸이니 돌아오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제 의식과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이질적임을 겪는 건 이세하는 싫어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객의 신분이라 그런지 이세하가 정신을 멀쩡히 차리고 있으면 있는지조차 모르는 존재감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렇게 의식을 순식간에 잃는 경우는 별로 없어서 가늠이 안 갔지만, 이로 인해 자신의 안에 있는 불청객이 참 심각한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근데 그런거치고 말은 참 잘 듣는다지...이세하는 방금 전의 말다툼의 일부분을 회상했다.
-너 뭐야!? 당장 **. 내 몸에서 나가.
-나가라고? 뭐야, 재미는 이제부터인데. 그럼 조금만 더 가지고 놀다가 가면 안되나?
-놀아? 넌 사람 목숨이 무슨 장난감인줄 알아? 그리고, 여기서 더 난동을 부려서 내 행동에 제약을 받으면 결국 귀찮아지는 건 너일텐데?
-참 내...넌 참 사람 협박하는 재주가 좋단 말이야, 이세하?
분해하면서 언제나 자신에게 진다. 밖으로 노는 것을 좋아하면서, 지배권을 욕심내려한 적은 없다는 게 참 이상했다. 그래도 이세하가 막을 수 있는 한계선이 명확하다는 점에선 지금은 저 인격이 저렇게 순순히 선이 그어지는대로 따라주는 게 참 다행이랄까.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위험했다. 팀으로 복귀를 하면 방금 전에 볼프강과 대치한 돌발 상황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지 머리도 아파왔다. 좀 더 자신이 강해져야하나...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다.
* * *
-너 너무 착해빠진 거 아니야?
"..."
-널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 화도 안 나냐? 내가 대신 화를 내준건데, 왜 그렇게...
"시끄러워."
아까의 말다툼 연장선인가. 이세하는 골치가 아팠다. 이슬비와 김유정의 잔소리를 듣고, 나타의 책망어린 말도 같이 듣고 오는 길에 또 귀찮은 것이 들러붙은 셈이니까.
어차피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도 안 하는 이세하의 태도를 알아서인지 답지 않게 본심을 중얼거렸다.
-넌 너무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
-내가 대신 해주는건데, 말이야.
"넌 그게 도가 지나치잖아."
-아니, 난 딱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이때까지 겪어던 고통이 그보다 더할거라고, 생각 해본 적은 없어?
대화는 일단 여기서 종료하기로 했다. 지금은 그냥 잠이나 실컷 자고 싶었다.
[기반이 된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