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녀를 보고 나서 자신의 이상형을 깨달았다.

설현은바이올렛 2018-08-2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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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는 특이했다. 아니, 특별했다.
서유리는 웃었다. 억지로 짓는 웃음이 아니다, 쾌활했다. 스스럼없이 농담을 하고 별거 아닌 말에도 미소 지으며 받아주었다.
재앙이 가득한 세계에서 이런 여자는 아니, 이런 사람을 처음 보았다. 세하는 마치 자신까지 '밝음'이 전파되는 것 같았다.

"선배~" 서유리
"동갑이니까 이름 불러." 이세하
"선배도 나쁘지 않은 걸. 뭔가 기대기 쉽고~" 서유리

유리는 정말 기대왔다. 세하는 움찔했다.
그녀의 머릿결에서 향긋한 샴푸향이 느껴졌다. 안고 싶다. 그녀를 당장 안고 싶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 있어?" 세하
"엥, 갑자기?" 서유리

유리는 더듬이처럼 솟은 삐친 머리칼이 쫑긋하고 반응했다.

"있어, 없어?" 세하
"있으면 좋겠어요." 서유리

그 말을 듣고 세하는 기뻤으나,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걸..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사랑받고 싶어." 유리

이 말을 듣고 슬퍼지고 말았다. 클로저는 항상 죽음을 곁에 둔 직업이다. 먼약 그녀보다도 내가 더 일찍 죽으면? 아마 큰 상처로 남겠지.
반대의 경우가 더 나쁘다. 서유리를 사랑하게 되고 또 그녀를 잃어버리는 건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세하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건 사치다.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니까.



2
슬비는 샤워 중이다. 샤워기에서 흘러내린 물소리가 작게 메아리친다.
마른 체형이었다. 태연 느낌이다. 날씬해서 돋보이는 선의 아름다움은 있지만 빈약했다.
키도 그렇지만 가슴이 작은 것은 특히 컴플렉스였다. 그러나 노력으로 커지는 게 아니니까 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새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나신이다.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슬비에게는 가족이 없다. 부모가 차원종에게 죽어 고아가 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위탁소를 통해 길러졌다. 그러다 위상력이 발견되어 자연스럽게 클로저가 됐다.
'슬비에게 돌아갈 집 같은 것은 없었다.'

TV를 킨다. 가끔 뉴스를 보고 주로 김치 드라마를 본다.
뻔한 스토리다. 평범한 여주인공에 구애하는 잘생긴 남자들. 유치한 여성향 판타지.
그러나 그런 뻔한 이야기가 좋았다. 대리만족이다. 가족도 마땅한 친구도 없는 외로운 삶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유일한 취미였다.
띵동- 띵동-

"엇.. 누구지?" 슬비는 쇼파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어 보니 이세하가 서있었다.

"세하?" 슬비
"운동 갔다 오는데.. 이거 아이스크림." 세하

아이스크림이 봉지째 가득이었다.

"이거.. 받아도 돼?" 슬비
"일일이 사서 먹기 귀찮잖아. 더우니까 필요할 거 같아서." 세하
"너무 뜬금없어.." 슬비는 푸훗하고 웃었다.

세하는 빠이빠이 손을 흔들며 뛰어갔다.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떠났다.

"아이스크림.. 좋아해." 슬비

하나를 까서 입에 물고 나머지는 냉동고에 넣었다.
키위 맛의 달달함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엔돌핀이 샘솟는다.
세하는 슬비를 많이 신경써주고 있었다. 슬비도 그것을 알고 있다. 고마웠다.



3
세하와 유리는 대련장에 서있다. 클로저의 훈련을 위해 특수제작된 공간이다.

"갑자기 대련이야?" 세하
"잘 부탁해, 선배~" 유리

세하의 무기도 검, 유리의 무기도 검이다.
다만 서유리는 클로저가 되기 전부터 검도를 배운 특기생이었다.
휘익-!
유리가 검을 휘둘렀다. 머리를 노리는 자세. 굉장히 빠르다.
그러나 경쾌하게 쳐내는 세하. 만만치 않았다. 전투 경험이 많은 실전파였다.

둘의 대련은 세하의 신승으로 끝났다. 세하는 온몸에서 땀이 났다

"우와, 선배 강하네?" 유리
"너야말로.. 새로 지급받은 무기가 손에 익지도 않았을 텐데." 세하
"내 이상형이 강한 남자거든. 쪼금 설렌다~" 유리

세하의 이상형은 서유리였다. 그녀를 보고 나서 자신의 이상형을 깨달았다.
긴생머리에 예쁜 눈, 오똑한 코, 앵두같은 입술, 하얀 피부, 큰 키에 날씬한 체형 그리고 풍만한 글래머. 다리가 길고 예쁘고 잘 웃고 말을 많이 하고 순수하고 귀여우면서 청순하고 밝은 여자.
고백할까, 고백해볼까, 그녀를 데리고 도망칠까. 차원종이니 인류니 다 무시하고 도망치자고 하면 그녀가 응해줄까?

"저기.." 세하
"응?" 유리

삐용-삐용-
사이렌이 울렸다. 세하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차원종이 나타난 것이다. 바로 출동해야 했다.
2024-10-24 23:20:1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