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퇴창을 들이다

루이벨라 2018-08-03 3

※ 지인분 클로저스 복귀 기념 축하글

전에 썼던 글의 설정을 살짝 가져옴






 퇴창(退窓, Bay Window)을 하나 들였다.


 썰렁하고 사방으로 각이 진 집안 내부를 쓱- 둘러보고 내린 결정이다. 1년에 길어야 한 달, 짧으면 1주일 있는 별장 같은 곳이긴 했지만, 기분 전환을 하러 오는 곳이 이렇게 썰렁해서야 되겠나, 싶어서 충동적으로 해버린 나 혼자만의 단독이었다.


 너비는 두 사람이 들어가기 충분하게, 양 옆으로는 조그만 책장을 둬서 책이나 기타 물품 등등을 올려두자. 오랫동안 앉아있기 좋게 푹신한 쿠션 하나를 두는 것도 좋겠지?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있을 수 있는 남향 쪽으로 창을 들이는 걸 잊지 않았다. 나 혼자 벌인 일이므로 당연히 서유리에게는 아직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지.


 반응은 어떨까?! 알아차릴까? 아니면 별로 지낸 기간이 길지 않으니 구조를 확실히 기억하지 못해 그냥 원래부터 있었던 구조라고 생각할까? 만약에 알아차린 후에, 이 창을 들인 게 내 아이디어였다고 하면 칭찬을 해줄까? 그리고 그 후에는 기뻐할까, 아니면 즐거워할까?


 그런 자잘한 생각을 하는데 먼저 안으로 들어간 서유리의 '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목소리인 것으로 보아 마지막으로 왔을 때와 다른 점을 발견한 모양이다. 일부러 모른 척 하며 천천히 짐을 내리는데, 뒤에서 다다다다--- 급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세하, 세하!"

 "응?"


 능청스럽다고 생각되는 나의 연기력이었다. 날이 더운데도 한달음에 달려왔는지 서유리는 숨이 찬 기색이다. 잠시 후, 호흡이 고르게 되자, 난 내가 예상했던 질문을 받았다.


 "저거 창...원래부터 있었던 거야?"

 "아니. 내가 들인건데?"


 잘했지? 칭찬 좀 해줄래?


 내 눈빛에서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유리는 호탕하게 웃는다. 그리고 내 소원대로 '그래그래, 잘 했어요~' 라는 이쁨이 듬뿍 담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목소리의 톤과 표정을 보니 새로 난 창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안 그랬으면 이렇게 단숨에 나한테 달려올 일이...우아아앗!!!


 "완전! 마음에! 들어!"

 "까, 깜짝이야..."


 이건 상상치도 못했는데. 갑자기 안겨버렸다. 얼마나 세게 안아주었는지 잠시 균형을 못 잡고 휘청거렸다.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 나한테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 싶었는지, 부분부분 악센트가 강조되어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나도 모르게 푸흐흡, 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갔다.


 유리는 아직도 장황하게 칭찬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완전 센스도 좋잖아! 거기가 제일 경치 좋은데 아니야?"

 "일부러 그런 거지. 넌 내 센스를 뭘로 보고..."

 "잠시 잊고 있었네. 세하가 나보다 그런 거 예민한 거."

 "감각이 좋은 거라고 해줄래?"


 아직 짐 정리가 덜 끝나기도 했고. 나도 빨리 첫 시승을 해보고 싶었지만 애써 꾹- 눌러담는다. 창을 여니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는 유리의 목소리가 바람결에 들린 거 같았다.




* * *





 그 퇴창에서는 기가 막히게 밤하늘이 잘 보였다. 저번 겨울에 손에는 핫초코를 들고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 별 관찰을 했던 경험 때문에, 더더욱 창의 자리를 고르는데 신중했던 거 같다.


 창의 진가가 밤이 되어서야 톡톡히 보이자 그제야 뿌듯함이 물밀려온다. 옆에선 전에 열심히 책을 보며 공부한 자랑을 하고 싶었는지 막 별자리를 읊어대는 이가 있다. 이건 무슨 자리다, 저건 무슨 자리다! 잔잔한 음악을 하나 깐 것처럼 나른한 기분이다.


 한참이 지나고나서야, 그때서야 창에 펼쳐진 퍼즐을 다 맞추었는지 제대로 돌아앉아 주스를 홀짝인다. 주스만 말없이 마시던 유리는 대뜸 이런 말을 했다.


 "이런 깜짝 선물 있었으면 미리 말을 하지. 나 계속 놀릴 일 있어?"

 "너 놀라는 표정 은근 좋거든."

 "좋다니?! 세하 취미 나 골려먹는 거였어?"


 이게 골려먹는건가. 그냥 사소한 것에서라도 기뻐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싶은거니까. 다시는 자기에게 이런 선물이 있을 시 미리 귀띔이라도 해달라는 약속, 지키진 못 할 거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깜짝 선물의 의미는 없어지잖아.


 '휴가를 왔다' 라는 단어 그대로 우리는 그 창에 앉아서 이야기 꾸러미를 계속 풀었다. 기뻤던 일, 슬펐던 일, 힘들었던 일, 기대되는 일...이 창에 앉아서 주고받자니 우리와는 동떨어져있는 일인것도 같아서 묘한 느낌도 들었다.


 이야기의 끝 쯤에 유리가 말했다.


 "아아, 신서울로 돌아가기 싫다."

 "나도."

 "우리 이참에 여기서 그냥 살까?"

 "그것도 좋고."


 여기서 살면 좋을 거 같다. 왜 내가 충동적으로 퇴창을 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조금 납득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충동에 잘 이끌렸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컵은 어느 새 비어가고 있었다. 유리가 계속 봤던 풍경이 어떤지 궁금해 나도 바깥쪽으로 시선을 잠시 돌렸다.


 신서울과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 보는 밤하늘은 참 깨끗하다. 그 안에 점점이 박힌 작은 보석도 참 진풍경이다.


 며칠 묵긴 하겠지만, 그 때동안 이 모든 걸 담아내기에는 참으로 짧은 시간인 거 같다.

2024-10-24 23:20:0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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