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

흑신후나 2018-07-29 2

*

 꿈을 꾸곤 한다. 내가 아직 어리석던 시절의 나, 나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그렇게 뼈에 사무치도록 타인에게 미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의 소중함을 몰랐다. 오히려 그런 사랑이 나에게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님....세...."

 

그랬다. 나는 나의 소중한 인연들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내 곁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어렵사리 붙잡았지만 흩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세ㅎ...님...세...."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내 모든 것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차가운 현실이었다.

 

"세하..님...세하"

 

그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다. 마치...

 

모래처럼.

 

"세하님!"

"으..응?"

 

허둥대면서 정신을 차린다. 의자에서 발이 헛디디며 꼬꾸라지는 꼴이 말이 아니다. 바닥을 머리부터 박고, 뒤로 쓰러지듯이 엎어졌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괜찮으세요?"

 

아픔에 머리를 몇 번 쓰다듬는 것도 잠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시선을 흘긴다. 그러자 내 옆에는 한 여자가 내 앞 가까이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고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내 비서다. 그것도 전담.

 

"깜짝이야... 조금 살살 깨우지.."

"몇번이고 깨웠거든요? 그런데 세하님께서 일어나시지 않기에 어쩔수 없었어요."

 

여성은 토라진 얼굴을 하면서 등을 돌렸다. 과연, 자신이 더 놀랬다 그건가? 하여튼간에..

 

"알았어. 미안해. 어제 늦게까지 깨어있다보니 오늘 잠이 쏟아져서 어쩔 수 없었어."

"밤새 또 술 마신거예요?"

"몇 잔 안 했어."

 

그거나 그거나 술은 마셨잖아요! 버럭 화를 내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었다고.

 

"자자..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아직 이야기 안 끝났거든요!"

"그런데 왜 깨운거야?"

"아참!"

 

그 말을 들으니 이제야 깨달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화제는 돌렸으니, 이제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만사 ok인 것이다.

 

"누군가가 찾아왔어요."

"없다그래."

 

아아.. 없다그래. 보나마나 또 팬이나 스토커나 기자 중 하나이겠지, 그런거에 하루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

 

"너무 포기가 빠른 거 아닌가요?"

"어차피 또 이상한 사람 아닌가?"

"독일에서 꼭 세하님을 봐**다고 하더라고요!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컸어요!"

 

자리를 돌아서 의자에 누울려다 자세가 멈춘다. 독일에서 온 소년. 아직까지도 어리게 보였던, 마냥 어린애인 그.

 

"그...이름도 멋져 보였어요! 그....이름이..미..미..."

"미스틸테인"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이름이었다.

 

*

 우리가 처음으로 검은양 프로젝트에 참가할 때에는 학생이었다. 아직, 청춘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꽃망울이 가득 있었던 나어었다. 테인이는 그 중에서도 가장 어린 초등학생이었다. 눈을 빛내며 이것저것 물어보던 테인이를 그날의 나는 마치 동생을 보듯이 뿌듯하게 보고 있지 않았을까? 어린 나이에 차원종과 싸우는 그를 보면서 나는 동정심과 대견함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그가 만들어진 클로저라는 것을 듣고 오열하듯이 눈물 흘릴 때 나는 그 모습을 보면을 무엇을 느꼈을까?

이제 우리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J아저씨는 나이가 되어 은퇴를 하시고 유정 누나와 여러가지 일을 하고 계셨다. 테인이는 그 즈음 독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클로저 일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나름 열심히 한 끝에 클로저 내에서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우러러보는 사람들도 생겼고, 나를 '알파퀸'을 뛰어넘은 진정한 '알파킹'이라고도 불렸다. 내 전담 비서도 생겼고, 돈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과분하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나는 그 때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아무것도.

 

 심호흡을 하고서 방을 들어갔다. 유니온 특수 회의실이었다. 문을 여니 화려한 바닥과 푹신한 촉감이 느껴지는 의자가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존재감을 발산하는 반짝이는 은색의 머리를 나는 먼저 보았다.

 

"세하형."

 

나를 부르며 일어선다. 멀게 큰 키와 오똑한 콧날은 그가 이제는 나이 적은 어린애를 벗어났음을 반증하는 것 같았기에 내심 기뻣지만 그의 눈을 보니 다시금 안타까웠다.

 

"테인아."

 

그의 눈은 이미 총명함을 잃어버렸다. 그 때의 그 생기넘치던 눈은 어디로 가고 그 눈은 탁해 보였다. 순수했던 도화지에 물감이 뿌려지는, 마치 사회에 물든 어른 같았다.

 

테인이는 사회의 쓴 맛을 ** 않기를 바랬었는데...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랴. 세상의 물 맛을 보다보면 탁해지는 법이니,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반갑다."

"뭘요."

 

웃으면서 대답했다.

 

"장소를 옮길까? 배고프지?"

"네! 급하게 오느라고 저녁도 먹질 못했어요!"

"그래? 그럼 내가 사줄게. 가자."

"정말요? 와! 형 최고!"

 

이럴 때는 정말 아이같았다. 정말 이전과 다를 바 하나 없었다. 자연스레 웃음이 나왔다. 옛 생각에 다시금 추억속에 잠긴다.

 

*

 가까운 고기집에서 나와 테인이는 마주보며 고기를 구웠다.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고기를 테인이는 먹음직스럽게 쳐다보았고, 다 익자 맛있게 먹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맛있어?"

"네! 맛있어요."

"그래, 많이 먹어."

 

그렇게 둘만의 저녁이 무르익었다.

 

"저.....세하형."

 

얼마나 지났을까? 테인이는 나에게 말을 꺼냈다. 머뭇거리는 눈빛이 역력했다.

 

"왜."

"여기 예전에 다 같이 왔던 곳이죠?"

 

고기를 휘적이던 손이 멈추었다.

 

"..."

"여기서.. J아저씨하고, 형하고, 저하고 다 같이 먹었잖아요. 그리고...."

 

그만.

 

"고기 다 타겠다 어서 먹어."

"유리 누나하고, 슬비 누나도."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돌리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머뭇거리며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그만해. 제발.

 

"그래.. 그랬지."

 

간단히 넘길래야 넘길 수 없었다. 쓰리고 아픈 기운이 목구멍에서부터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야기는 다 들었어요."

 

가슴이 내려앉는다.

 

"그건. 형 잘못이 아니었어요."

"그만.."

"형이 그래서 그런게 아니었다구요.

"그만해."

"형은 잘못한거.."

"그만!!! 제발 그만해!"

 

쾅 울리는 소리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사람이 적은 곳이었지만, 사람이 없는 곳은 아니었다.

 

"형..."

"**! 저기요!"

 

그 날의 기억이 악몽으로 되살아난다. 술이 필요했다.

 

결국 오늘도 술을 진탕 마시고 말았다.

 

*

 문득 정신을 들어보니 예전의 모습으로 예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날의 기억, 아무래도 계속해서 꾸는 악몽인듯 했다.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당연한걸 물어보는 멍청이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가지마."

 

"미안해."

 

"제발 가지마."

 

"이제 다른 방법은 없어."

 

"안돼!"

 

처절하게 찢어지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고 나는 적들의 중심지, 차원종의 중심지로 향했다. 점점 줄어드는 차원종들의 입지, 그 상황에서 밝혀지는 부정부패의 흔적에 유니온의 치부는 세간에 들어나 버렸고, 전 세계적으로 개혁의 목소리가 일어났다. 하지만 그걸 묵과할 수 없었던 상위층은 차원종들과 연합하여 총 공격을 하게 되었다. 몇번이고 막아내던 우리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차원종의 기세는 엄청났다.

 

"방법이 있어요."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차원종이 지금 집결한 곳은 좁은 구역으로 움직임이 느리고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위상력을 한번에 응축시켜 폭발시킨다면? 차원종을 일망타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하지만 문제는 응축시키는 능력은 클로저들 중 '방출'을 가진 나 뿐이었고, 결국 나 하나의 희생을 요구했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후회없었다. 나 하나로 인해 모두 행복할 수 잆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말리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세하야"

"이세하."

 

유리와 슬비였다. 그녀들은 끈질기게 나를 말렸다. 다른 방법이 있을거라고, 아니면 같이 가서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미안해"

 

사과하고 나왔다. 그녀들이 울부짓는 소리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차원종들의 소굴로 향했다. 위상력을 모아 응축했고, 최고의 공격인 '초신성'으로 바꿨다. 설치가 끝나고 이제 뿌리기만 하면 됐었다.

 

"나 말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

 

눈을 감고 있는 나에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 마치....

 

"이슬비!"

 

슬비였다. 그 뒤를 따라 유리도 따라왔다. 나는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빨리 돌아가!"

"..."

"이슬비! 서유리!"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어 세하야."
"미안해."

 

나는 나에 대한 그녀들의 사랑을 잘못생각했다. 오만하게도 그녀들의 사랑을 무시했고, 나 말고 새로운 사랑을 찾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것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그녀들을 잘 알지 못했다.

 

""사랑해.""

 

그 말을 끝으로 섬광에 빠져들었다.  

*

 

 비릿한 술맛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 보니 내 집이었다. 테인이가 나를 업고 온 듯 했다.

 

"많이 힘들었어요 형."

"그래. 미안했다."

 

잠시 침묵하는 미스틸테인 그러고는 나를 본다.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 미안하다니까."

"아니요. 그게 아니라."

 

그 일이 많이 힘들었냐구요. 그 말이 뇌리에 박힌다. 이윽고 차오르는 눈물이 얼굴을 적신다. 원래는 눈물을 잘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술에 취한 듯 했다.

 

"응"

 

테인이는 갑작스럽게 말했다.

 

"형 기타 배웠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뭘요, 집 안에 기타가 진열되어있는게, 딱 보기에도 치게 생겼구만."

 

잠시 치긴 쳤었지. 그녀들이 기타를 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예전에 잠시 배웠어."

"그럼."

 

테인이는 나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밖에서 낡은 통기타 하나를 가져오더니 나에게 주었다.

 

"이건 왜?"

"슬플 때는 우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화를 내도 되요.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지는 마요. 차라리 노래를 불러보는 건 어때요?"

"노래?"

'네!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노래로 불러보세요."

 

갑작스럽게 노래라니

 

** 것 같네. 하지만 뭐 어때.

 

기타를 가볍게 두드린다. 꽤나 고전적인 선율이 울린다. 한 줄 한 줄 두드리며 음색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노래를 불렀다.

 

https://youtu.be/ziFNB0uhOM8

 

이른 봄날에 꿈처럼 다가온 그대 영원할 줄알았네

그 여름 바닷가 행복했던 모래성 파도에 실려가 버렸네

 떠나가도 좋소 나를 잊어도 좋소 내 마음 언제나 하나 뿐

 더욱 더 더 사랑못한 지난 날들 후회하오

사랑은 한 순간의 꿈 백일몽 깨어날 수 없는 꿈 백일몽

아직 그댈 사랑하오 영원히 사랑하오

 

'세하야.'

아른 거리는 모습에 눈을 감는다. 따뜻한 음색에 보드러운 촉감이 부딪힌다. 그래 이건.

그녀들의 촉감이었다. 살며시 눈을 뜨며 보니 그 위에는 그녀들이 있었다. 은은한 흑색의 머리칼과 호수빛 눈망울, 벚꽃색 머리칼과 은은한 푸른 눈, 그녀들이었다.

 

'나는 너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

'너무 보고 싶지만.'
'만남은 다음으로 미루자.'

'행복해게 살다가 나중에..'

'천천히 와 세하야.'

 

너무나도 따뜻한 한 마디들이 들려오면서 마음이 무너진다. 그녀들은 웃으며 울었다.

 

'사랑해'

 

그래 나도 너희들을 정말로 사랑해

 

흐르는 눈물은 더욱 속도를 더해 내렸다. 흐느낌으로 변하면서도 노래는 변하지 않았다.

 

이른 봄날에 꿈처럼 다가온 그대 영원할 줄알았네

 그 여름 바닷가 행복했던 모래성 파도에 실려가 버렸네

 떠나가도 좋소 나를 잊어도 좋소

 내 마음 언제나 하나 뿐 더욱 더 더 사랑못한 지난 날들 후회하오

사랑은 한 순간의 꿈 백일몽 깨어날 수 없는 꿈 백일몽

아직 그댈 사랑하오 영원히 사랑하오

 

연주는 계속되었다.

*

 

 

빨리 끝맺음이 되어서 이야기가 이상해졌군요. 이런.... 면목이 없습니다. 백일몽은 한 때 꾸다 흩어지는 꿈입니다. 꿈은 달콤하지만 소멸은 모래처럼  빠르게 흩어집니다.

세하의 처지가 그런 처지군요.

많이 이상한 글이지만 잘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타지적 감사히 받겠습니다.

2024-10-24 23:19:5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