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사랑 3-2.5 외전 2화

firsteve 2018-06-10 6


몇 시간 후,


슬슬 파티 시작 시간도 되어가는데 아무도 오질 않는다.


차가 막히나?


“생각보다 늦네. 다들 까먹은 건가?”


세하가 시계를 보며 중얼거린다.


어라? 근데 머리 모양이 좀 이상한데?


“세하야. 머리가 좀 헝클어진 것 같은데?정리 해줄까?”


“아니야. 조금 있다가 서프라이즈 할 거라서 정리 안 해도 돼.”


서프라이즈를 말하면 그게 서프라이즈인가?


옆에서 들려온 슬비의 태클에, 세하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쿡….한 번씩 보여주는 저 당황한 표정은 볼 때 마다 귀엽다니까.


“으으…어…어쨌든 나중에 보면 좀 놀랄 거야. 너희 아무도 못 본 거니까.”


응? 우리 중 아무도 못 본 거라면….슬비도 못 봤다는 건가?!


“…내가 못 본 것도 있었어?”


“너도 못 본 거야. 솔직히…서프라이즈라고 하기에도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세하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볼을 긁었다.


근데, 궁금하긴 하네. 여자친구였던 슬비도 못 본 거라니?


세하의 머리랑 관련되어 있나?


내 생각이 계속 세하의 서프라이즈에 집중되어 갈 무렵, 내 귓가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온다.


“드디어 왔네….누가 왔으려나….”


세하가 문을 열기 위해 일어나려고 하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날 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금수저! 빨리 문 열어! 배고파!”


….사부다.


“역시 예상대로 배고픈 사람이 먼저 왔네. 뭐…예상은 했지만.”


세하가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잠깐 의식이 멀어졌어. 콩깍지가 또 눈에 끼어서 정신을 흩트려놓는다.


다시 한 번 마음 속으로 다짐하자. 덮치지마, 서유리.


저 요망한 웃음에 빠져서 덮치면 안돼.


덮치는 건 정식으로 사귀고 나서 덮치는 거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을 거듭하며, 그를 따라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자,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사부의 얼굴이 나타난다.


“사부 왔어?”


“그래. 오셨다. 그나저나 넌 그 꼴이 뭐냐?”


“사부야말로 무슨 바람이 불어서 산타복을 입고 있는 거야?”


“시…시끄러! 나라고 좋아서 입었는 줄 알아?좀도둑 여자가 TPO를 맞추라면서 내 돈을 써서 어쩔 수 없이 입은 거라고!”


“TPO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사부도 꽤나 잘 어울리는데?”


“시…시끄러! 빨리 비켜! 나 배고파!”


“어머?그렇게 들어가면 안된다고요, 나타 씨?이왕 산타옷을 입은 김에, 하기로 한 건 하고 가자고요.”


뒤에서 하피 언니가 여자가 봐도 매력적인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런데….어째서 언니도 산타복인가요?!


“언니?! 언니는 왜 산타복장을 입은 거에요?!”


“어머?슬픈 소리를 하지 말아주세요, 유리 양?저는 TPO에 맞춰서, 이 복장을 입은 거랍니다?”


TPO를 몰라서 반박을 할 수가 없네….에잇…검색, 검색….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안 오셨나요?”


“아, 다른 사람들은 지금 주차하고 오고 있어요. 저랑 나타 씨는 아파트가 보이자마자 내렸고요. 아마, 조금 있으면 올텐데…”


말 끝나기 무섭게,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린다.


늑대개 팀이다.


“아! 유리 님, 세하 님!메리 크리스마스에요!”


평소보다 들뜬 레비아가 우리에게 다가오며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낸다.


근데…우와….오…옷이….터질 것 같은데?!


“저기…비아야? 혹시…옷 작은 거 아니야?”


“우으…역시….살이 쪘나보군요….옷이 조금 낀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아니, 다른 곳은 안 끼는데…..왜 중간만 끼어 보이는 걸까….


“저건 흉기.”


“응. 저건 제거해야해. 인류의 평등을 위해서.저대로 두면 더 위협적으로 변할 거야.


어느새 다가오신, 우리의 쪼꼬미 2인조가 분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레비아를 바라본다.


….힘내, 두 사람.


“이세하. 동체가 급격한 온도변화로 인해서 차가워지고 있다. 추가적인 말과 행동은 내부에서 해주길 바란다.”


“아, 그렇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하죠.”


세하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오자, 그제야 늑대개 팀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레비아와 하피언니는 매혹적이다 못해서 폭력적인 섹시한 산타의 모습이고, 사부는 뭔가 반항기 있는 산타의 모습이다.


그리고, 티나 언니는…


“이세하. 하피가 입으라고 해서 입었지만, 어떠한가. 어울리는가?”


멍해보이는 눈과 다르게 굉장히 귀여운 산타의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트레이너 씨랑 바이올렛 언니가 안 보이는데….아직도 안 올라오셨나…?


“늦어서 미안하군. 선물을 꺼내는데 시간이 걸렸다.”


어느새 올라온 트레이너 씨가 거대한 주머니를 든 채 집 안으로 들어온다.


트레이너 씨의 복장 역시 사부와 동일한 산타복장인데…뭐랄까…선물 배달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맨손으로 부수면서 달


릴 것 같은 육체파 산타의 모습이다.


산타 답지 않다.


“아, 유리 양. 늦어서 미안해요. 대장님이 엘리베이터가 늦는다고 하시면서 걸어가려고 하셔서 말린다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


어요.”


….트레이너 씨 다운 발언이다.


아니, 그게 실행되니까 더 무서운 건가….


“어서오세요. 아저씨. 차 많이 막히던가요?”


“생각보다는 안 걸렸다. 물론 중간에 빙판으로 인해 사고가 있었지만, 차를 들어서 교통이 편하게 만든 후, 넘어왔다.”


…상식을 무시하고 오셨네.


“어찌됐든 차는 막힌다는 소리네요. 다른 분들은 어디쯤 오셨으려나…”


세하가 핸드폰을 두드리며 다른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하자, 사부가 옆에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먼저 먹으면 안되냐?배고프다고.”


“파티잖아. 조금만 참아. 정 배고프면 양념치킨이라도 먹을래?”


“양념치킨!”


드물게 레비아가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아…죄…죄송해요….요즘따라….치킨을 먹고 싶어서….”


“별로 상관은 없는데….알았어. 너무 많이 먹지는 마. 파티 때 먹을 것도 많이 만들어뒀으니까.”


세하가 식탁에 놓여져있는 치킨 접시를 가져와 간이 식탁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앞에 내밀자, 사부와 레비아가 얌전하게 접시를


보고 있다.


….강아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착각일까?


“먹는다?”


“먹고 나서 조금만 참고 있어. 다른 사람들 곧 온다고 했으니까.”


세하의 말에 신나게 먹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하피 언니가 웃으면서 중얼거린다.


역시 나타 씨는 먹는 걸로 통제가 잘 되는 군요? 다음에 써먹어봐야겠어요.


…어째 사부에 대한 평가는 어디를 가도 공통인 것 같다.


그 때…


다시 한 번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세하가 움직이려 했지만, 이번엔 내가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내가 가도 되는데….”


“바쁘잖아~나한테 맡겨두셔~”


요리하는 세하의 모습은 좋은 그림이야. 그걸 깨트리는 건 나 말고 녹아내린 얼굴로 빤히 보고 있는 쪼꼬미 2인조한테도 실례


야.


현관문을 열자, 아주 익숙한 파스 냄새가 들어왔다.


“오, 유리 동생. 먼저 와 있었네?”


“어서 오세요, 아저씨. 아저씨도 산타 복장이시네요?”


“뭐….날이 날인 만큼 신경을 좀 써봤지. 그러는 유리 동생은 너무 잘 어울리는데?”


“어린애한테 추파 던지지 마세요, 제이 씨.”


유정이 언니가 침착한 척 목소리를 꾸며서 말을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이 신경 쓰이는지 옷자락을 자꾸 꾹꾹 누른다.


…언니 이해해요.


뒤에서 테인이가 밝게 인사한 건 언제나처럼 밝았으니까, 넘어간다.


“우와….꽤나 인원이 늘어버렸네….”


거실로 들어오자, 세하가 접시를 내 옆 식탁에 놓으며 중얼거린다.


“왁**껄한 것도 좋지 않아? 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서 상관없는데.”


“그건 좀…부럽네.”


세하가 살짝 쓴웃음 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런 분위기 싫은 거야?”


“아니야. 그런 건 아닌데….난 늘 혼자였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세하는 고등학교에서 우리를 만나기 전에는 친구가 없었다고 했지….


“미안. 괜히 신경 쓰게 만들었네. 유리 너는 저쪽에 끼어서 놀아도 돼. 난 신경 쓰지 말고.”


세하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주방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런 표정….내버려둘까 보다!


“같이 있자, 세하야.”


돌아가는 그의 팔을 잡고 말한다.


같이 있어달라고.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야. 저런 분위기도 좋지만, 난 너랑 더 있고 싶어.”


어리광을 피운다.


조금이라도 그와 있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닿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손을 뻗어 그에게 말한다.


“좋아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는 허락해줘. 널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는 그에게는 이런 자리가 좋으면서도 무섭겠지.


그는 두 번이나 온기가 사라진 세상을 경험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의 손을 잡고 싶다.


그와 같이 있고 싶다.


이건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니까.


온기라면 얼마든지 그에게 줄 수 있으니까.


정말이지, 못 당하겠네…항복이야, 항복.


세하가 몸을 돌려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한숨이 포기한 얼굴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행복의 한숨이라는 점이 내 마음을 더욱 흔든다.


그래. 그 표정이야. 내가 좋아하는 세하의 표정.


투명하고 어딘가 모르게 슬픈 아름다운 그 표정.


조금 더 감상을 하고 싶었지만,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초인종은 눈치 없이 손님이 왔음을 알린다.


“이번엔 누가 왔으려나…”


세하가 현관으로 가려다가 내 손을 한 번 보고는 내 손을 잡고 현관으로 걸어간다.


흐에에에?!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자, 세하가 피식 웃음을 짓는다.


“뭐야, 서유리. 평소엔 네가 먼저 잡잖아. 그렇게 동요하지 마.”


동요할 만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잡은 적은 없다고!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문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의 소리에 우선 문을 열어본다.


“안녕, 세하야, 유리야. 선배님의 초대로 왔는데…들어가도 되지?”


오랜만에 보는 세린이 언니와 보나다.


“어서 와요, 누나. 보나도 안녕?”


“뭐야, 애기취급 해?그리고 무슨 일로 가발을 뒤집어 쓰고 있는 거야?”


가발?! 역시 머리를 숨긴 거였어?!


“으음….역시 티가 났나….”


“많이는 안 나는데 무슨 일인가 해서 물어본 거야?혹시 염색 풀려서 그런 거야?”


“아니, 내가 풀었는데.”


….잠깐만! 세하가 염색을 풀었다고?!


그건…정말 서프라이즈다.


지금까지 세하가 염색을 푼 날은 한 번도 없었는데?!


게다가 프로필까지 몽땅 검은 색 머리카락이라서 아무도 못 봤다는 세하의 진짜 머리색이잖아?!


서프라이즈에 걸맞네!


“흐응?그거 참 재밌는 소리네. 너 그 때 헤어진 이후에 나한테 그러지 않았어? 절대 머리는 풀지 않을 거라고. 보여줄 필요가


없어졌다고.”


보나의 말에 세하가 볼을 긁적인다.


“끄응….그 말은 잊어….그 때는 약간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는데다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뭐…내가 상관할 건 아니지만. 들어간다?”


보나의 말에 세린이 언니는 실례할게 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두 사람의 복장은….산타다.


“…오늘 우리 집은 산타들의 모임인가….어째서 나 빼고는 전부 산타복장이냐…이대로 가면 우리 엄마까지 입고 올 기세인


데…아니다….반드시인가….연례행사니까.”


세하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다.


하아….정말이지….이러면 특별해지지가 않잖아….적어도 우리 3명만 특별하면 상관없는데 다들 똑같으면 눈에도 안 띈다


고….


기운이 빠진다…


“뭐야, 서유리. 어째 기운없어보이는데?”


“정미정미~위로해줘….우리만 산타가 아니라서 특별하지 않아졌어……”


내 말에 정미도 한숨과 함께 동의한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슬비도 같은 마음이겠지....응?! 거실에 슬비가 없다?!


“세하야. 케이크 먹자. 이리 와.”


정미정미와 작전실패와 특별함에 대한 위로를 하는 동안, 어느새 슬비가 세하의 팔짱을 낀 채 주방으로 가고 있다.


아차! 늦었다!


“아~”


굉장히 애교스러운 표정으로 세하에게 케이크를 넘기는 슬비의 모습에 세하도 남자인지 얼굴을 붉히며 받아먹는다.


으아아아!!부러워!!


“정미정미! 돌격하자!”


그래. 우리끼리 싸우는 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경쟁자 하나라도 제거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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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


파티를 시작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서 도착한 사냥터지기팀을 끝으로 드디어 파티 멤버들이 다 모였다.


물론 못 온 사람들도 있지만, 그 쪽에는 따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줄 거니까 상관없겠지.


자, 그럼 나도 준비를 해야겠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파티 멤버들을 뒤로 한 채, 조용히 내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는다.


그리고는 거울 앞에 선다.


내 모습이 비친다.


검은 색 눈에 검은 머리카락.


렌즈와 가발.


평소의 내 모습이다.


하지만 내 모습이자 내 모습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조용히 가발을 벗고 렌즈를 뺀다.


달빛이 내 방으로 들어와 내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내가 봐도 어색하다.


언제부터였을까?지금 내 모습이 어색해지기 시작한 건….


너는 괴물이잖아.


머리색도 틀리고 눈 색깔도 틀려. 괴물이잖아.


저리 가, 괴물아!


우리 애한테 다가오지마!


너 같은 괴물과 우리 아이가 같이 있다니…불결해!


이 모습일 때의 내 기억이 떠오른다.


잊고 싶은데.


날 괴물 취급하는 건 잊고 싶은데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 깊게 박힌 기억은 뽑힐 기미가 없다.


그렇기에 나는 도망쳤다.


검은 색의 머리로. 검은 색의 눈으로. 게임으로.


그렇게 도망쳐왔는데…..날 쫓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너무나 예쁜 분홍머리의 조금은 딱딱한 첫사랑이.


입만 험하지 속은 여린 바보 같은 동갑내기 미인이.


시한폭탄 같지만 언제나 나를 바라보는 먼지투성이의 소녀가.


그리고…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는 바보 같은 미인이.


도망 가길 바랬다.


나 같은 것에게 얽매이지 말아줬으면 했다.


그녀들은 누가 봐도 매력적인 사람들이니까.


스스로 빛나는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그녀들은….나에게 와줬다.


날 좋아한다고 해줬다.


누구보다 아픔을 아는 그녀들인데.


누구보다도 그 슬픔을 잘 아는 그녀들인데.


그녀들은…날 좋아한다고 내게 말했다.


그리고 기어코 날 달 아래가 아닌 햇빛 밑에서 그녀들과 있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들에게 하는 보답이다.


밤에 숨을 수 있는 검은 색이 아닌, 이세하 라는 아이를 보고 와 준 그녀들의 대한 보답은…


진짜 내 모습으로 그녀들과 마주하는 걸로 하자.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연다.


어두운 방 안으로 환한 거실의 빛이 흘러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문 밖으로 몸을 움직이자, 파티 멤버들의 놀란 표정이 눈에 담긴다.


“….다들 놀란 표정이시네요. 이상한가요?”


내 말에 제이 아저씨가 피식 웃더니 엄지손가락을 든다.


아니. 아주 멋져. 동생. 잘 어울린다고.


“엄마랑 비슷해서 그러시는 거죠? 네,네. 엄마랑 닮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어렸을 때 내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 하듯이 투덜거리니,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동생이 누님을 닮은 건 인정하지만, 난 다른 의미로 한 거라고. 정말 동생에게 잘 어울려. 분위기도 더 성숙해보이고.”


“그래. 알파퀸 님의 머리색이나 눈이 똑같은 것은 유전이라고 해도, 어울리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야. 정말 잘 어울려. 아. 혹시


쓰다듬어도 돼?”


오늘따라 텐션이 과하게 오른 세린이 누나가 내게 물어온다.


별로 닳는 것도 아니고 쓰다듬어도 돼요, 누나.


요즘따라 키가 조금 커버려서 내 머리에 팔이 안 닿게 된 누나를 위해 무릎을 굽히자, 누나가 손을 쭉 뻗어서 내 머리를 쓰다듬


는다.


“에헤헤…부드럽다. 양 같아.”


한참을 쓰다듬던 누나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는 3명의 시선을 느꼈는지 황급히 손을 뗀다.


물론….내 전투파트너는 날 보고 있다.


“야, 이세하. 파티 언제 시작해?배 **간다고.”


“으으…세하님….죄송하지만 배고파요….”


하여간 이 남매들은 내가 요리가 나오는 자판기인가…뭐…부정은 못 하겠다.


“그럼 슬슬 본격적인 파티를 해볼까요? 뭐…유정이 누나가 파티 개최사라도 하실래요?”


“아니. 그런 건 네가 해야지. 오늘의 파티의 호스트는 너야.”


유정이 누나가 내게 개최사를 양보한다.


아니지….이건 떠넘긴건가.


“뭐….누나가 그렇게 말할 거란 건 예상했으니까 짧게 할게요.”


“잠깐만요, 도령. 파티를 술 없이 하겠단 건가요? 그런 건 파티가 아니라고요?”


….아차. 이 누나….주당이잖아!큰일났다!


하피 누나가 싱긋 웃음을 짓더니 티나에게 무언가를 꺼내달라고 한다.


그것은….


“짜잔~샴페인과 와인이랍니다. 이런 게 있어야 파티죠.”


적어도 어느 고급 바에 있을 만한 것들이 계속 나온다.


“하아…역시 완전차단은 힘들었나…뭐…적당히 드세요. 취해도 여기선 못 재워드려요. 아셨죠?”


내 말에 와아 하며 좋아하시는 연장자 팀….그렇게 마시고 싶으셨습니까?


“아저씨. 유정이 누나 잘 챙겨 가세요.”


“걱정 말라고. 동생. 난 기회를 놓치지 않아.”


그 뜻이 아니었습니다만, 뭐, 어느 쪽이든 상관 없으려나. 이쪽은 사고 치고 결혼해도 멀쩡히 잘 살 커플이니까.


“자, 자. 도령도 한 잔 들어요. 이럴 때는 분위기를 맞추는 거라고요.”


하피 누나가 싱글싱글 웃으며 내게 샴페인 잔을 내민다.


뭐….특별한 날이니까 조금은 일탈해도 괜찮겠지.


“자, 그럼. 분위기 있는 술도 있겠다. 멤버들도 모였겠다. 파티 전에 짧게 한 마디 할게요.”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지만,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모두 와 줘서 고마워요. 뭐…이렇게 저렇게 얽히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잘 해봅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내 짧고 볼품없는 개최사가 끝나자, 각자 무리를 지어서 파티를 즐기기 시작한다.


물론, 시작과 동시에, 집에 미리 배치해둔 무선 스피커들로 크리스마스 음악들을 틀어놓았기에, 뭔가 진짜 파티처럼 되어가기


시작했다.


“세하. 메리 크리스마스.”


“아, 볼프 형. 메리 크리스마스에요.”


멀찍이 떨어져서 파티의 분위기를 보고 있던 내게 볼프 형이 다가온다.


“요리의 구성을 잘 짠 것 같은데, 혹시, 세하, 네가 한 건가?”


“3분의 1정도만요. 나머지는 주문했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분량을 혼자서는 못 만들죠.”


3분의 1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볼프 형이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며 내게 말했다.


“근데, 왜 여기로 오셨어요. 엘리스 누나랑 같이 계시지.”


“잠깐 온 거야. 세하, 너한테 따로 할 말이 있어서.”


볼프 형이 미소를 띈 채 나를 본다.


“세하. 너는 참 바르게 자랐어. 그렇게 많은 제약과 그런 일들을 겪고도 이렇게 자랐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


“그렇게 거창한 말 들을 만큼 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 넌 들을 자격이 있어. 영웅으로서. 또, 한 명의 클로저로서. 너는 존경 받을 자격이 있어.”


그러니까 조금은 자신감을 가져도 돼. 넌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멋진 사람이니까.


볼프 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러니까 어깨를 펴고 있으라고. 널 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내, 볼프 형이 파티장에 있는 엘리스 누나 곁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이네. 이런 따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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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


이세하.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걸며 다가가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세하다.


“뭘 그렇게 기분 좋다는 듯이 웃고 있어?”


“그냥….좀 위로 받아버렸거든…그 덕분에 조금 기분 좋아졌어….이런 따스함도 나쁘진 않네.”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아련한 미소를 짓는 그의 표정에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잡고 벽에 기댔다.


“…이것도….기분 좋아?”


“많이 행복해. 누군가의 온기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는데….”


더 많이 느껴도 돼. 온기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까.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내 진심을 전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 둔감한 남자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 명백하지만.


“오늘따라 많이 적극적이네…술 마셨어?”


“넌 내가 꼭 술을 마셔야 적극적으로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야?부정은 할 수 없지만….이번엔 나도 용기 내서 맨 정신으로 하고


있는 거야.”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만지작거린다.


또 다시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오늘만큼은 용기를 내자.


오늘만큼은 내 마음을 숨기지 말고 이야기 해보자.


“….고마워. 세하야.”


“응? 뭐가?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오늘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고….너….머리랑 눈….남에게 안 보여주려고 기를 쓰고 살았잖아.”


내 말에 그가 약간 머뭇거리더니 내게 말했다.


나…이상하지 않아?


그의 시선에 내 모습이 담긴다.


그 시선은 너무나 다정하고 왠지 모르게 여린 그의 마음을 내비치는 것 같아서 애써 어른스러운 척 말하는 내 마음이 어리광


부리고 싶어하는 본성을 드러내려고 한다.


분명 그는 어리광을 피워도 받아줄 것이다.


그는 너무나도 상냥해서 내 어리광 정도는 받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오늘만큼은…조금 더 어른스러운 척 해보려고 한다.


그게…내가 그를 좋아하는 방법이니까.


“내 마음은 좋아하는 남자의 눈 색깔이나 머리 색깔이 바뀐 걸로는 꺾이지 않는데? 오히려 그 모습을 내게 보여줘서 고마워. 이


제야 내가 네 마음에서는 숨겨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가 됐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까.”


진심을 담아서 오늘 그가 보여준 용기에 대한 솔직한 내 마음을 표현한다.


“….괴물 같아 보이지 않아?나….머리도 흰색에 가까운 보라색에 눈도 금색이야….모두에게….괴물이라고 불렸다고….”


그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언제나 내 앞에서 등을 보여주며, 게임을 한다고 자주 혼나면서도 그럼에도, 내가 납치 당했을 때 날 구하러 온 왕자님 같은 그


가.



클론의 제작을 알고 분노하면서도, 언제나 가장 앞에서 검을 들고 있었던, 헤어짐의 아픔에 한 번은 꺾였지만 다시 일어난 그


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작은 아이의 모습에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으며 그에게 말한다.


“멋있어. 그리고…내 눈에 질투 날 정도로 예뻐. 다른 사람이 보는 게 싫을 정도로.”


조금 말이 심하게 나갔지만….그래도…진심이다.


난 그의 모습이 좋으니까.


게임한다고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건 싫지만, 게임에 열중해서 진지한 표정이 되는 건 좋으니까.


재미없는 이야기에 재미없다고 티를 내는 건 싫지만, 좋아하는 이야기를 할 때 풀어지는 그의 표정이 좋으니까.


그리고….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 걸. 머리나 눈 정도로 꺾일 마음이라면 이런 수라장 같은 곳에 오지도 않았


을 거니까.


그럼에도 그의 옆에 온 건, 그의 손을 잡은 건, 애써서 어른스러운 말을 짜내서 그에게 안기는 이유는….


“좋아해, 이세하. 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 그건 변치 않을 거야.”


우정미는…..이세하라는 바보를 좋아하고 있으니까.


내가 했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느끼한 말에 그가 잠깐 멍하게 있더니 한숨을 쉰다.


“정말 대단하다, 우정미. 스트라이크라고, 그건.”


내 몸이 그에게 당겨져, 안겨진다.


“정말….너 같이 좋은 애가 날 왜 좋아하는 지 모르겠어.”


“모르겠어, 나도. 왜 좋아하는 지는….하지만…난….너에게 이렇게 안기고 네 심장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듯이 행복


해. 그게 전부야.”


정말이지….부족하기 짝이 없는 어휘력 때문에 제대로 표현도 안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동원해도 지금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는 힘에 부친다.


그저….가장 가까운 표현을 계속해서 그에게 말한다.


“사랑해, 이세하. 그리고…메리 크리스마스야.”


아아, 진짜 적당히 해달라고….이러면 심장이 아프단 말이야.


그의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보기에는 조금은 여성스러운 손인데도 쓰다듬는 느낌은 아빠가 쓰다듬는 것 같은 따뜻하고 듬직한 느낌이다.


“후훗….사랑받는 느낌 좋네…이대로 침대로 가면 된다?”


“여…여자애가 겁도 없이….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몰래 보던 연애책자에 나온 멘트를 그에게 던지자, 예상대로 귀여운 반응이 돌아온다.


“쿡…귀여워, 세하야. 두근두근했어?”


“으으…장난 그만쳐…가뜩이나 너희 3인방 덕분에 이성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진짜 위험할 수도 있어.”


의외로 진지한 반응이 돌아왔다….게다가….조금은 아슬아슬한 말도 나온다.


이…이런 분위기라면…역시 맞받아쳐야겠지….


“그럴 때는….상냥하게 부탁할게. 세하야.”


내 말에 세하가 휘청하더니 서둘러 화장실로 향한다.


아마 부끄러움 때문이겠지….


그리고 나는….베란다로 돌진해서 들뜨기 시작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내가 술김에 세하를 잡아먹으려고 할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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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


파티가 무르익고 어느새 세하가 집에 깔아놓은 오락물품에도 슬슬 모이기 시작한다.


다행히도 요리는 계속해서 나가고 있어서 이대로 순조롭게 간다면 음식물쓰레기는 안 나올 것 같다.


문제는…하피 씨나 유정이 언니가 먹인 술 기운 때문에 살짝 와버렸다는 거지…


분위기는 좋으니까 잠깐 조용히 밖에서 바람이나 쐬고 오자.


취하면 세하한테 어리광 피우게 될 테니까.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다.


그의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으니까.


이기적이고 어리광 피우고 싶은 애 같은 내 모습보단 그를 감싸주는 포근한 연상 느낌이 조금이라도 내 곁에 그를 머물게 해줄


테니까.


조심스럽게 그가 있는 쪽을 보자, 나타와 함께 몸을 이용한 게임을 하고 있는지 열심히 이리저리 몸을 휘젓고 있다.


즐거워 보이네, 둘 다.


그런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집 밖으로 조심스럽게 나오자, 차가운 도시 바람이 불어온다.


술기운을 날리기에는 조금 추운 관계로 가져왔던 윗옷을 걸치고 복도의 난간에 기댄다.


예쁘다….눈.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새어나왔다.


분명 나에게도 그와 사귀기 전부터 감수성이라는 건 있었다.


그렇기에 사랑이야기 같은 것도 보고 그 장면에 몰입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나에게서 가장 먼 것이 사랑이었다.


저런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되는 거지.


저런 사랑을 어떻게 해?


그게 사랑에 대한 내 정의였다.


애교도 아무것도 없는, 그냥 누군가의 온기를 바랬던, 너무나도 이기적인 관계를 맺고 헤어졌다.


그런 내가 이제는 눈을 보고 예쁘다고 말한다.


저 눈을 세하와 함께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와 처음 사귀던 때의 나였다면, 내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이것도 세하 덕분이려나


그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작은 몸집의 여자애가 집 쪽으로 다가온다.


이슬비…?


목소리는 너무나도 잘 아는 목소리였다.


“더스트….너도 왔구나….못 오는 줄 알았어.”


“응. 그러게….나도 오면 안된다는 건 잘 알고 있는데….그게 내 마음대로 안되더라고….”


보고 싶은 게 너무 컸어.


더스트의 눈가가 반짝였다.


“아는데….내가 세하를 보러 올 자격 같은 건 없는 건 아는데….그런데….보고 싶은 걸 어떡해? 만나고 싶은 걸 어떡해?”


그 모습은….마치 나를 연상시켰다.


자격없다고 말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던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서 저 모습이 나의 마지막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녀와 내가 다른 점은….나는 그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달리 그녀는….영원히 기회를 잃었으니까.


“그래서….보러 온 거야?”


“응….어떻게든 보러 왔어….하지만….들어갈 수가 없어…세하가….싫어할 테니까.”


그래서 선물만 두고 가려고 왔어…..


더스트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쥐고 있는 선물은 아마도 그녀가 그를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일 것이다.


“이슬비. 부탁 하나만 할게. 이거….세하한테 전해줘. 난 못 들어가니까….네가 대신 전해줘.”


그런 선물을….그녀는 나에게 맡기려고 한다.


그건….너무나도 슬프다.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전달하는 건 슬픈 일이다.


그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차원종과 인간의 종족 차이를 넘어서, 이세하라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들끼리의 의리다.


“잠깐만 있어줘, 더스트. 금방 올게.”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가자, 살짝 피곤하다는 표정의 세하와 눈이 마주친다.


“세하야. 잠깐만 시간 내줄래?중요한 일인데.”


내 말에 군말없이 따라 나온 세하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더스트의 모습에 서둘러 문을 닫는다.


“더스트….”


“아하하…..세하네….이슬비 너도 참 쓸데없는 짓을 한다니까….난 선물만 주고 가면 됬는데….”


더스트가 애써 평소의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떨리는 손이나 반짝거리는 눈가가 그녀의 감정을 표현한다.


“왜….온 거야? 왜 이쪽으로 온 거야? 네가 처한 상황을 알잖아.”


“알아….잘 알아. 그리고….너한테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을 했다는 것도….”


더스트가 옷의 가슴부분을 꼭 쥐며 말한다.


“그래도….주고 싶었어…..널 좋아하게 된 이후로 정말로 주고 싶었던 거니까….”


더스트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그 모습은 적이기 이전에 한 남자를 사랑하는 소녀의 모습이었고,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가슴 아픈 모습이었다.


“마지막…선물이야….이제….네 곁에 안 올 거야. 아니, 못 와. 우린 이제 완전하게 적이 되어버렸어.”


잔혹한 진실이 그녀의 입을 통해 나왔다.


개선의 여지나, 해피엔딩의 여지는 없었다.


그건….당사자인 두 사람이 더 잘 알 터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망설였다.


여기서 마지막을 고하고 사라지면 두 번 다시 그의 곁에, 그를 좋아하는 소녀로서 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렇기에, 그는 망설였다.


여기서 그녀의 마지막 선언을 들으면, 그는 또 다시 그를 사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가 상처 입는다는 걸 알기에 그는 망설였다.


이성은 그녀를 용서 할 수 없었다.


감성도 그녀를 용서 할 수 없었다.


하지만….그녀가 보여준 추억이.


그녀가 보여준 개선의 의지가.


그녀가 보여준 자신에 대한 사랑이 그를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현실은 잔혹했다.


더 이상 이어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두 사람은 인정해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마지막을 고한다.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 안녕을 말한다.


“그러니까….마지막 소원이야….절대로 네 곁으로 가지 않을 거지만 혹시나….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나를 죽여야하는 상황이


라면…..”


세하, 네가 날 죽여줘. 그게 내 소원이야.


더스트의 눈에서 결국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잘 살아….그리고…..행복해줘. 멀리서나마…..널 축복해줄게.”


더스트가 세하에게 선물을 밀어붙이고는 도망치듯이 뛰어간다.


그 순간….


세하가 그녀의 팔을 붙잡아 그녀를 품에 안았다.


“………..난………….널 용서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오래 살아서…………내가 잘 사는 걸 보고 네가 한 걸 후회해.


그리고 나서…………….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그 땐…….나 같은 건 잊고 행복해줘.”


하하….너무하다….진짜 그건 최악의 벌이네.


더스트가 그의 품에 안긴 채 말한다.


그러더니 그의 코트를 꼭 잡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딱….5분만….이렇게 있어줘….


그 후…..그녀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들리는 것은….사랑에 빠진, 그리고….사랑에 실패한 어느 소녀의 목소리뿐이었다.


이윽고 더스트가 그에게서 몸을 떼서 조용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자, 세하가 벽에 몸을 기댔다.


“….괜찮아?”


“아니…..안 괜찮아….기분이…..이상해….”


세하가 멍하게 정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만나면 어떻게 해줘야지, 어떤 식으로 후회하게 만들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 녀석이 오면 해 줄 모든 악담과 저주를 머


리 속으로 생각했는데….뭐야…이게…”


“세하야….”


“대체….뭐냐고….왜 이렇게….슬프냐고….왜…..왜 엄마를 날려서….왜….스스로 상처받고….그런 주제에….왜 그런 얼굴을


하냐고….”


세하의 눈가에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도 그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그건…내가 더 잘 아니까.


전 여자친구이자 현재 여자친구 후보인 내가 더 잘 아니까.


그렇기에 나는….


“슬…비야?”


그의 머리를 껴안아 내 품에 가두며 그의 등을 토닥인다.


“괜찮아…울어도 괜찮아. 슬퍼해도 괜찮아. 그러니까….나한테 기대. 내가 다 받아줄게.”


“그런 건….꼴 사납잖아.”


“꼴사나운 모습 보여도 괜찮아. 어린애 같이 굴어도 좋아. 그러니까…조금이라도 내 품에서 울어.”


내 말이 들린 걸까….그가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중얼거린다.


잠깐만….기댈게….


우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하지만….중간중간 한번씩 들려오는 울음에 먹힌 숨소리에 내 마음도 젖어들어간다.


착하다, 우리 세하…..착하다, 착해….


아이 취급 받기 싫어하는 그가 우는 행동만 아니었다만 기겁을 했겠지만….이건 내 진심이다.


상냥한 그에 대한 내 위로다.


달콤한 말 조차 못하는 무뚝뚝한 내가 할 수 있는 그에 대한 애정 담긴 위로다.


그렇기에 나는 내 볼에 흐르는 그의 감정을 지우지 않은 채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걸로 그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그리고….이기적이지만….이대로 내게 와주길….


내리는 눈에 나는….조용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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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새벽 2시.


모두가 잠들어서 한창 꿈을 헤매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나는 지금 잠들어 있을 그를 생각한다.


파티의 마지막, 모두를 보내고 우리만 남았을 때, 세하는 뒷정리를 끝낸 우리에게 묵고 가기를 권했다.


평소라면 장난기 있는 미소와 함께 나올 말이었지만, 파티 마지막이 가까울 무렵, 그가 슬비와 나간 이후부터는 묘하게 기분이


다운되어있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필요도 없었다.


오늘 이곳에 같이 있을 수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일 테니까.


그렇기에 더 슬펐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미래일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나도 그를 슬프게 만들 것 같아서.


위로의 말 조차 꺼내지 못한 채, 도망치듯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으면 이제는 잠들 때도 됬는데, 올곧은 내 마음은 도통 잘 생각이 없다.


역시 가볍게 베란다에서 바람이나 쐴까….


뒤척인다고 흐트러진 내 옷을 바로 한 채, 문 밖을 나서니, 쇼파에 누군가가 누워있었다.


세하다.


“세하야?너 왜 여기서 자고 있어….들어가서 자.”


세하를 깨워서 방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에게 말을 걸어**만 의외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몸에서는 은은한 술 냄새가 난다.


정말 의외네. 세하가 술을 마시고 자는 건 처음 보는데. 아니지….애초에 그런 걸 보면 안되는 건가….우리 아직 고등학생이니


까.


근데….왜 술을 마신 걸까….또 뭔가 괴로운 일이 있어서 인 걸까….


그 때…


“으음….”


“세하야. 조금 정신이 들어? 방에 가서 자. 여기서 자면 추워.”


살짝 숨이 흘러나오길래 말을 걸어보았지만 어쩐지 잠꼬대인듯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가지마…..제발 부탁이니까….내가 잘못했으니까….다들….제발….날 두고 가지마….”


두고 가지 말아 달라니…. 도대체….무슨 꿈을 꾸길래 이러는 걸까?


“미안해….내가 잘못했어….더 이상 혼자이기 싫어…..더 이상….내 옆에서 떠나지 마….”


세하의 잠꼬대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온다.


그는….우리가 자신을 떠날까 무서웠던 거였다.


더스트가 더 이상 자신과 만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됬으니까.


그걸 스스로 인정해버렸으니까.


혹시나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떠날까봐….


다시 혼자 남겨질까 그게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런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내 품에 안는다.


“괜찮아, 세하야. 우리는….널 떠나지 않을거야. 네가 가라고 해도 우린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불안해 하지 말고, 우리


옆에 있어줘. 많을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


그저….우리 옆에만 있어주길….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곳에 가지만 않아주길.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 그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한 번씩 날 보며 웃어주는 그의 미소만으로도.


늘 고맙게 생각한다는 그 말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니까.


그러기에 그의 옆에 비집고 들어가 그를 껴안으며 혹시나 있을 산타에게 빌어본다.


내 바램이 이루어지길.


그리고…..내가 사랑하는 이 남자가 행복해지길.


산타를 향해 마음 속으로 빌며 그에게 속삭인다.


좋은 꿈 꿔, 세하야. 그리고….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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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firsteve입니다.


으아….일주일간의 동유럽 여행을 끝마치고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에피소드는 조금 상황을 진전시켜보았습니다.


더스트의 안타까운 히로인 탈락….(플레이 해보고 급하게 갈아엎었습니다. 애쉬가 그렇게 순정남일 줄이야….)


이제 아마도 스토리는 2편 정도 남을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 4는 봄의 축제 편으로 미뤄뒀던 봄꽃놀이입니다.


그리고 대망의 에피소드 5는 또다시 봄 편으로 마지막 에피소드 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단 초콜릿 사랑은 세하유리 루트이지만!


오랫동안 공들였던 이유일까요. 정미 엔딩편과 슬비 엔딩편까지 만들고 싶은 욕망에 불타오릅니다!


그래서 아마도 유리 엔딩까지 쓰고 나면 정미루트 엔딩과 슬비루트 엔딩까지 만들게 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걸 쓰면 허무감이 엄청나겠죠.


그래도 해보겠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어느 것 먼저 쓸까요?


(이래놓고 또 딴 게 먼저 튀어나올 것 같지만….)


1.이세계이야기 6화를 쓴다.(세하와 슬비의 꽁냥꽁냥이 있습니다)


2.black knights 2부 4화를 쓴다.(쓰디 쓴 재회의 맛)(+사냥터지기팀 예고)


3.별빛 파티 에필로그 파이널을 쓴다.(드디어 컨셉 다 잡았어요 ㅎㅎ)


4. 의식의 흐름에 맡긴다.


여러분은 어떤 게 좋으신가요?


지금까지 firsteve였습니다.


p.s 참고로 이후 유리와 세하는 정미와 슬비에게 유죄 판결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ㅋㅋㅋㅋ

2024-10-24 23:19:4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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