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nights 2부 3화 다시금 맞물려가는 운명의 바퀴
firsteve 2018-05-22 2
그녀에게 겨울은 너무 아픈 계절이었다.
처음으로 누군가의 연인이 된 계절이었고, 처음으로 여자가 된 계절이었고, 누군가를 슬프게 만든 계절이었다.
오늘로 7년째인가….
그녀의 입에서 입김과 함께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거리에는 겨울의 차가움을 핑계삼아 달라붙어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순간,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에게도 연인이 있었다.
사랑할 줄 몰라서 툴툴거리고, 행복이 무서워서 화부터 내던 그녀에게도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자신은 그 연인에게 상처를 줬다.
손을 더럽히게 만들었다.
그리고….그가 떠나게 만들었다.
모두 자신의 잘못 같았다.
그를 잡아주지 못한 죄책감이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다.
동시에, 그의 웃음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을 보는 듯한 눈빛과, 여자가 되던 날, 아파하는 자신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순수한 마음이 담긴
눈빛과, 세상에서 가장 멋진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부르던 연인의 웃음이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다.
가슴이 조여들듯이 아파왔다.
깨어난 지 6년이 지났는데도, 일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팠다.
보고싶어.
그녀의 혼잣말이 입김이 되어 흘러나왔다.
주저앉아서 펑펑 울고 싶었다.
하지만…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런 처량한 모습은 싫어.
그녀가 스스로를 다잡으며 눈물을 꾹 참은 채 어디론가로 향했다.
그곳은…플레인게이트 연구소였다.
“정미양? 퇴근한 거 아니었나요?”
“뭘 좀 두고 가서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서랍장에 고이 모셔둔 그가 준 편지를 읽다가 놔두고 가버렸으니까.
오늘도 읽어야지. 나에게 남겨진 유일한 그의 흔적이니까.
조용히 자신의 연구실로 향하던 그녀가 앞의 연구실에서 걸어나오는 한 남자를 보고는 주먹을 꽉 쥔다.
“미스틸테인….네가 왜 여기 와 있어?”
“보나 만나러왔어요.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만나러 오는 것도 안되나요?”
뻔뻔하네…배신자 주제에.
날 선 정미의 말에 테인이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그녀에게 되묻는다.
“그러는 누나는 깨끗한가요?”
“뭐?”
“누나는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웃기지 마세요….누나도 결국엔 그 녀석을 버렸어요. 타의가 많이 섞이긴 했지만, 그건
누나가 정한 거라고요. 그러니까 누나…”
혼자 깨끗한 척, 고결한 척 하지 말라고요. 누나도 우리랑 똑같은 배신자니까.
테인이 그녀를 지나쳐 사라지자, 정미는 벽에 기대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동시에,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마음을 채웠다.
그래…난 세하를 버렸어…내가 정해서…내가 버렸다고….그랬는데…그랬는데….
꾹꾹 눌러두고 있던 감정의 둑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그런데도…보고 싶어…세하를 보고 싶어….
마음 한 구석에서 진심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정미 언니?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살짝 볼을 붉게 물들인 보나가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보나야….”
“왜…왜 그래요, 언니? 혹시…테인이가 또 뭐라고 했어요?!”
보나의 말에 정미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보나가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일어나요, 언니. 제 방 가서 이야기 해요.”
보나를 따라 그녀의 방으로 들어가자 살짝 어지러운 분위기의 방이 펼쳐졌다.
“으으…죄송해요….방금 전까지 테인이랑 있다가 보니까…그게…”
보나가 허겁지겁 물건들을 치워 자리를 마련하자, 정미가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린다.
“…부럽다…나도…세하가 있었는데…”
“언…니?”
쓸쓸한 미소와 함께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한 줄기의 눈물에, 보나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준다.
“….테인이가…세하오빠 이야기 했어요?”
“아니…나 보고…깨끗한 척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나도 배신자라고….”
정미의 말에 보나가 눈을 질끈 감는다.
배신자.
자신들을 구해준 세하를 배신하고 자신들만 살기 위해 그를 팔아버린 배신자들.
그게 자신들이었으니까.
그것이 타의에 의한 것이든 자의에 의한 것이든 그들은 세하를 배신했다.
그리고 각자의 원하는 것을 얻었다.
보나는 테인이의 관리를, 제이는 남은 아이들의 안전과 유정의 치료를….각자의 소망을 이뤘다.
하지만…정미는 달랐다.
끝까지 저항하려고 했던 몇 명의 사람들 중 하나였고, 유니온을 떠나버린 사람들을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했으니까.
그런 그녀도…결국 굴복했다.
저항은 무의미했다. 왜냐하면….조건으로 내걸린 것이….그녀의 어머니였으니까.
그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저항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녀였던 만큼, 그를 배신했다라는 죄책감은 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보나가 결국 결심했다는 듯 그녀를 보며 묻는다.
“…언니.만약에요….만약에 말인데요….세하가 돌아오면…돌아갈 거에요?”
보나의 질문에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정미의 모습에, 보나가 조용히 말한다.
“….방금 전에…테인이가 그랬어요.물론, 언니나 유리언니한테는 슬비 언니한테는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지만…그래도….언니
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보나가 정미의 손을 꼭 잡았다.
말을 고르는 듯 몇 번이고 입을 달싹거리던 그녀는 정했는지 입을 열었다.
“저번에, 테인이가 누군가와 싸우고 온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 때 싸운 사람이…세하 오빠였다고 했었어요.”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정미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테인이가 싸웠다는 건….그가 돌아왔다는 소리일 테니까.
“잘못 본 건 아니지?! 진짜로…세하였대?”
“…네. 확실하게 세하 오빠였다고 해요.”
정미의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살아있었어.
세하가 살아있었어.
그리고…돌아와줬어.
“고마워…고마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그녀는 그 말을 되풀이했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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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기분이 좋았구나?”
“헤헤~네~오늘…..진~짜 기분 좋아요. 세하가 살아있다는 그걸 확인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문이 닫힌 바 안에서 정미가 웬일로 취한 상태로 제이를 향해 수다를 떨고 있다.
“그렇게 좋아?”
“네~. 살아있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그렇게 안 좋은 일만 겪었는데도 돌아와준 것도 고맙고요. 이제 조금은 편하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가 술을 마시며 말하자, 제이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미.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뭔데요?”
“….만약에 세하가 널 만나고 싶어하면 어떻게 할 거지? 만나 볼 건가?”
제이의 말에 정미의 움직임이 멈췄다.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야. 만약에 세하가 널 보고 싶어하면…만날 생각 있냐는 거야.”
제이의 물음에 정미가 들고 있던 글라스를 내려놓았다.
“…한 번쯤은 만나고 싶어요. 만나서…사과하고 싶어요.”
“사과라….어머니 때문에 그러는 건가?”
“네….아무리 제가 아니라고 해도 엄마 때문에 세하를 팔았으니까요.”
정미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배신자 라는 단어를 입에 내기 싫었다.
자신이 더럽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럼…세하를 만난 뒤에는…어떻게 할 생각이지?”
“….헤어질 거에요.”
“….뭐?”
정미의 폭탄발언에 제이가 닦고 있던 글라스마저 놓쳤다.
“헤어…진다고? 정미. 무슨 말이야, 그게?!동생이 정미를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잖아?!”
그래서 안된다고요! 저 같은 애한테는 안 어울린다고요….
정미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전…더럽다고요….애인을 팔아버린 더러운 여자라고요…그런 주제에….엄마를 위한 거라면서 자기합리화 하면서 살고 있었
어요.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그렇게 생각했다고요….이런 더러운 여자한테….세하가….어울릴 리가 없다고요….”
세하가 알게 되면….날 싫어하게 될 거에요….
정미가 울음을 터트리면서 바에 고개를 묻자, 제이가 한참을 말 없이 있다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미…그렇게 따지면 나도 자격은 없다고. 나도 유정씨와 아이들을 위해서 동생을 버린 셈이니까…”
“아저씨…”
“하지만, 정미야. 세하가 네 선택을 듣고도, 널 좋아할 지 싫어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부딪혀보라고, 정미.”
제이의 말에 정미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린다.
“모르겠어요….부딪혔다고, 날 경멸하면….그 때는….진짜….”
“그 때는 내가 동생을 한 대 세게 쥐어박아줄게. 7년동안 기다려준 연인을 그런 식으로 대접하는 건 어른스럽지 않으니까.”
제이의 말에 정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예전 같네요. 아저씨는.”
“그런가? 조금은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전 7년의 아저씨도 지금의 아저씨도 멋있어요.
정미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집에 가려고?”
“네. 내일은 휴일이니까 조금 푹 쉬다가 자려고요.”
그래? 그럼 이걸 가져가라고.
제이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정미에게 던졌다.
“이건…뭐에요?”
“소원을 들어주는 돌. 오늘 밤, 달도 환하게 빛나니까 세하한테 이야기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혹시 알아? 그 돌이 세하한테 네
말을 전해줄지?”
“….미신 아니에요?”
“미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마음 속에 담긴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제이의 미소에 정미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핸드백에 작은 보석 같은 결정을 집어넣고는 그에게 인사를 한다.
“술…잘 마셨어요. 또 놀러 와도 되죠?”
“정미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올 때 전화해주면 맛있는 안주도 마련해둘게.”
“안주는 사양할게요. 요즘엔…취하는 게 좋아져서…”
제이를 뒤로 한 채 앞을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정미는 집으로 향했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그녀의 아파트에 택시가 도착하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들어가기가 싫지…
차가운 느낌의 아파트 입구에 정미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빨리 몸을 눕힌 채 편하게 있고 싶다는 마음이 그녀를 지배해갔다.
차가운 엘리베이터를 타고 차갑기 짝이 없는 아파트 문을 연 정미가 불 꺼진 방 안을 향해 언제나 하던 말을 중얼거렸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가 병으로 쓰러진 뒤로부터 홀로 살게 된 정미였지만, 그럼에도 입에 붙은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문을 잠그며, 입고 왔던 옷을 세탁바구니에 넣은 정미는 곧바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들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맥주가 나오자, 정미는 조용히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많이 쓰네…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남겨진 기분을 지우기 위해, 그녀는 맥주를 마셨다.
그럼에도 가슴에 남은 감정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취기를 타고 더 격렬하게 올라왔다.
세하가 보고 싶어.
그녀의 속마음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보고 싶어, 세하야.
닿지 않는 그에게 그녀는 고백한다.
보고 싶어, 세하야.
보고 싶다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남자를 보고 싶다고.
이내, 그녀는 가방에 고이 모셔온 결정을 손에 쥐고는 침대에 앉았다.
오늘 밤, 달도 환하게 빛나니까 세하한테 이야기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혹시 알아? 그 돌이 세하한테 네 말을 전해줄지?
제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오늘만이야….오늘만….이러고 말자…더 이상…미련을 갖지 말자….정미야…”
스스로에게 약속을 한다.
오늘만 이러자고.
더러운 자신의 바램은 여기서 끝난다고.
스스로에게 고했다.
이내,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는 결정을 향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고 싶어. 세하야.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지만…살아 있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네가 살아있어서….너의 인생을 포기 하지 않아줘서….너무 고마워….그리고…미안해….난….너에게 나쁜 짓을 했어. 아마, 네가 알게 되면 넌 날 미워하겠지. 미워해도 좋아. 너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정미의 목소리가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했던 말들이 점차 감정이 섞이면서 울먹거리는 소리로 변해갔다.
“그래도….그래도….만약에 너한테 나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우리의 짧았던 연애의 마지막을 말할 수 있게….너에게….지금까지 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전할 수 있게….한 번만….내 앞에 나타나줘….”
결정을 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미 얼굴에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너에게 그럴 요구할 자격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부탁이야….”
떨리는 목소리와 눈물에 젖은 얼굴, 떨리는 손으로 손에 든 결정을 향해, 정미는 마음 속에 담아뒀던 한 마디를 말했다.
“보고 싶어, 세하야….사랑한다고….다시 한 번만 말하게 해줘…”
말이 끝나자,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이제 끝이야….
7년동안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모두 이야기 했다.
사랑했던 시절과 기다리면서 사랑한 시절, 배신했다는 말까지…전하지 못했던 말들을 모두 쏟아냈다.
그럼에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겨우 멈추어두었던 둑은 한계를 넘은 지 오래였다.
그 때….
“…..울지 마. 정미야.”
그녀의 귓가에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하야?
정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환청….인가….”
“환청 아닌데….지금 너에게 말 걸고 있는 난, 진짜야.”
다시 한 번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의 손에서 빛나고 있는 결정을 보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세하…야…?설마…이 결정에서….목소리가….?”
“응. 겨우 찾았네. 너를.”
어딘가 모르게 늠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개구쟁이 같은 목소리였다.
“그 결정. 잠시만 들고 있어. 눈 감고 다섯까지 세고 있어. 금방 갈게.”
세하의 말에 정미가 눈을 감고 결정을 꼭 껴안았다.
5….
4….
3…..
2…..
1…..
안녕, 정미야?오랜만…이지?
귓가에 직접 전해지는 목소리에 정미가 눈을 뜨자, 울기 직전의 세하가 그녀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세하…야….어떻게….?”
“네가 안고 있는 결정을 따라 왔어. 이제야….널 찾았어…늦어서…미안해, 정미야.”
세하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정미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것은…온기였다.
그녀가 꿈에서까지 찾아 헤매었던 그의 온기였다.
진짜….너야?진짜…이세하, 너 맞아?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정미가 그에게 되물었다.
“응. 네 남자친구 이세하 맞아. 늦어서 미안….”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바보…멍청이….너무…늦었어…”
그에게 안긴 정미가 울먹이며 말했다.
결정을 따라왔다는 건 자신의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일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와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남자친구라고 당당히 말해주었다.
이런 자신을 위해….그가….돌아와주었다.
“미안해…너무…늦어서…미안해…”
그녀를 껴안은 그의 팔에도 힘이 들어간다.
“나쁜 놈….한 번쯤…연락해줘도 됬잖아…사람을…7년씩이나…기다리게 만들고…”
“미안해…찾아오기 힘들었어….널 만날…자격 따윈 없다고…그렇게 생각했어…”
그녀와 똑같은 이유였다.
그리고, 그 다운 이유였다.
“자격이 없는 건…나야….난….널 배신했잖아…”
정미가 세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네가 원한 게 아니었잖아. 어머님 때문에 그런 거라면 괜찮아.”
세하가 상냥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머리에 턱을 올려놨다.
“….보고싶어, 정미야….정말로…”
세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한다.
보고 싶었다고.
그녀가 보고싶었다고.
그 말에 정미는 다시 울음이 터져나왔다.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기뻤다.
보고 싶다고 말하는 이 순간이, 자신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안고 있는 그의 팔이,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가….너무나도 기뻤다.
이제야 다시 만났어. 드디어….돌아왔어, 정미야….
벅차오르는 감정을 쏟아내는 그의 말에 정미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의 귀에 속삭인다.
어서 와, 이세하.(お帰り、セ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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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거야.”
달이 가득 쏟아지는 방 안에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붉게 물든 볼과 두 사람을 덮고 있는 이불 끝에 보이는 새하얀 어깨가 오랜만의 만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연인다웠다.
“....고생 많았어, 세하야.”
정미가 세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10년 동안 이 따뜻함이 그리웠어. 더 많이 쓰다듬어줘, 정미야.”
“느끼한 면은 안 변했네….그리웠어. 너의 그런 느끼함.”
정미가 다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세하가 그녀를 꼭 껴안으며 말한다.
“미안해…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이제부터 내 옆에 있어주면 돼….그것만으로……충분해.”
그녀의 말에 세하는 말 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하지마. 내가 널 먼저 떠나는 것보단 세상이 멸망하는 게 빠를 테니까.
툭 던져진 그의 말에 정미는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안겼다.
느끼하지만 더없이 자신감 넘치고 든든한 그의 말이었다.
정말로 돌아왔다.
7년 동안 울고 지냈던 시간을 메우겠다는 듯 그녀는 그를 더 세게 껴안았다.
한참을 그에게 안겨 따뜻함을 느끼던 그녀가, 문득 든 생각에 그를 올려다 봤다.
“세하야…앞으로….어떻게 할 거야?이제…유니온으로 돌아오는 거야?”
“….아니. 유니온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나한테 유니온은 복수의 대상이야.”
그의 눈에 비치는 이채에 정미가 순간적으로 움찔하자, 세하가 다정하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럼…유니온에 대한 복수가 끝나면…뭘 할 건데?”
“글쎄….그건 생각 안 해봤어….널 찾고 유니온에게 복수하고 난 후는 생각해본 적 없었거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가 한참동안 조용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나랑 여행 다닐래?
그녀의 말에 세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정미가 말을 이어갔다.
“7년동안 너랑 가고 싶었던 곳, 모아뒀거든. 그래서, 네 일이 끝나면 둘이서 여행 가고 싶어. 우리 둘이서 데이트 한 것도 얼마
안되잖아. 신혼여행도 겸해서 가자.”
정미의 말에 세하가 그녀를 껴안으며 묻는다.
“나 같은 녀석이랑 같이 살아도 되겠어?”
“뭐야…7년 동안 바람 안 피고 기다린 여자친구한테 그게 할 말이야?”
“그게 아니라…..나 같은….살인자랑 살아도 되겠냐고…”
세하의 말에 정미가 아무 말 없이 있자, 세하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유니온에 대한 복수를 끝내도 내가 살인했다는 건 변하지 않을 거야. 최악의 경우에는…평생 숨어 살아야 할 수도 있어.”
“…”
“너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진 않아….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떠나달라고?”
정미가 그에게서 몸을 떼며 말했다.
“내 남자는 이렇게 약한 소리 안 하는데.”
“정미야….”
“미래에 벌어질 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난 어제까지만 해도 널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어. 미래에도 영원히 혼자 살 각오
를 하고 살았다고.”
정미의 말에 세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정미가 그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가슴에 얹으며 말한다.
“그런데 지금, 네가 내 앞에 있어. 날 사랑해주고 있어. 나에게 닿아있어. 어제와는 다른 미래가 펼쳐졌어. 이렇게 미래는 변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약한 소리 하지마. 그런 미래가 불안하면, 네가 바꾸면 되잖아?그렇게 바꿔서 나랑 여행 다니면서 살자고.”
자신을 올곧게 바라보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정미의 모습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아아…그래…이게 우정미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다.
인류역사상 최악의 악당을 당당히 사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내 앞에 있다.
“두려우면 내 손을 잡아. 내가 힘들 때 네가 내 손을 잡아준 것처럼 이번엔 내가 네 손을 잡아줄게. 내조를 비롯해서 외**지 확실하게 해줄 테니까.”
그녀가 작은 손을 그에게 뻗었다.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힘든 시간이 될 거야.”
“괜찮아. 7년 동안 힘들었던 것 보단 낫겠지.”
“너에게 많은 욕과 독설들이 쏟아질 지도 몰라.”
“배로 갚아주면 돼. 네가 날 사랑해주는 동안, 난 절대 꺾이지 않아.”
그녀가 당당하면서도 아름답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면 충분해. 나한테는….정미가 있으니까.
마음 속 어둠은 걷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그녀의 따뜻한 미소가 자리잡았다.
그 고마움과 행복을 담아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첫사랑이자 연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할게. 정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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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뒤….
그의 옆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잠든 정미의 모습에 그는 작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침대를 빠져 나와, 옷을 입고는 잠들어 있는 그녀를 향해 중얼거렸다.
자고 있어, 정미야. 금방 다녀올게.
조용히 베란다로 나가 문을 닫은 그는 허공에 스크린을 띄우며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하연아. 분석은 어떻게 됬어?”
“네, 오라버니. 암호화가 너무 심하게 되어있어서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성공했어요. 지금 오시겠어요?”
“응. 곧바로 갈게. 오래 걸리진 않지?”
“네. 핵심 요점만 간추려놨어요.”
하연의 말에 세하는 곧바로 이동요새로 빠르게 공간이동을 실행했다.
집무실 안으로 그가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연이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 여기 자료에요.”
하연이 내민 서류를 받아 든 세하가 서류의 내용을 보더니 얼굴을 굳혔다.
“….이거 사실이야?”
“…네. 아라님한테 확인을 부탁드렸는데….사실인 것 같아요.”
하연의 말에, 세하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슬비가…칼바크의 병대에 들어갔다고?”
“….네. 자세한 건 기술되어 있지 않아서 내막은 모르겠지만…아무래도…유니온에게 무슨 짓을 당하신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빌어먹을 **들이 진짜….
세하가 이를 갈며 몸을 떨었다.
“유리님의 경우에는….지금 소재가 파악되었어요. 반란 진압팀 팀장을 맡으셨다고 하네요.”
“….그 인사발령에 유니온 상부의 개입여부는…?”
“….확실해요. 악의적인 발령이에요. 발령 전에 유니온 측에서 슬비님의 소재를 파악한 게 기술되어있었어요.”
“더러운 **들이….시궁창의 쥐**들이라고 생각했는데…그건 시궁창의 쥐**에 대한 모독이였어. 이것들은….구제불능이
다.”
분노에 찬 채 보고서를 넘기던 그가, 한 구절에서 손을 멈추었다.
그것은….
“….칼바크의 병대가 유니온 신서울지부 습격한다는 첩보를 입수….진압을 위해 서유리 특수요원과 미스틸테인 특수요원을 팀
장으로 하는 감찰부 제 5팀과 반란 진압 제 1팀을 그 시각 파견해 박살낸다….라고…?”
사실여부를 묻기도 전에 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저희 쪽 기사들을 보내서 지원할까요?”
“….아니. 그 날 가는 건 너와 나, 둘만 간다. 그 전에….유리는 만나봐야겠지만.”
무겁게 내뱉어진 그의 말에 하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유리님의 소재지를 파악해놓을게요. 내일이나 모레 쯤이면 알 수 있을 거에요.”
“부탁한다. 하연아.”
세하가 조용히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자, 하연이 그의 뒤에서 물었다.
“….만약의 경우이지만….만약…설득에 실패하시면….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그건….그 때 가서 생각해봐야지.”
그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자, 하연이 닫혀있는 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부디 이번엔 상처받지 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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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firsteve입니다.
한동안 인사를 못 드렸네요. 여기는 영국입니다 ㅋㅋㅋ
어학연수를 오게 되면서 조금 늦어졌네요.
…남아계신 분들은 계시죠?
일교차 큽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다음은 아마도 그렇게 못 쓰고 있던 초콜릿 3-2.5화일 것 같습니다.
(장담은 못하지만….)
어쨌든 돌아올때는 분량 많고 박진감 많고 재미 많은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두 몸 조심하세요.
p.s 늦은 이유 중에 심심해서 쓰는 진짜 판타지소설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