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벚꽃나무 아래서
꽃보다소시 2018-04-26 12
*다가올 슬비 생일 축하 글
화창하고 맑은 어느 봄날의 오후.
그와 같이 왔던 공원의 한 가운데 있는 커다란 벚꽃나무 한 그루 밑에 서있다. 살랑살랑 불어보는 봄바람에 핑크빛을 띄고 있는 예쁜 벚꽃들이 한 잎씩 떨어져 내려온다.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좋아했던 그와 함께 하루하루 숫자를 세어나가기 시작한 건 작년의 오늘이었다. 연애라는 감정 하나하나 서툴렀던 세하나 나는 1년 전 오늘 둘만 만났고 그 때 세하는 나에게 생일선물을 주며 설렘가득한 고백멘트를 날렸었다.
그래, 벚꽃이 가득했던 오늘 같은 그 날에.
'좋아해, 슬비야.'
.
.
.
[1년 전 4월 30일]
"어디 가는 거야..?"
"그냥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
오늘 회의가 끝마치고 팀원 모두들 내 생일을 축하해준다고 선물, 케이크, ... 등 정말 많은 것을 준비해줬다.
부모님을 잃고 처음 챙겨받은 생일상과 선물이었다. 언제나 집에서 나홀로 생일을 보냈고 고작 집에서 TV 드라마를 보는게 전부였다. 그랬던 나에게 처음으로 생일을 같이 보내는 동료들이 생겼고 수많은 감동과 선물들을 내 품에 안겨주었다.
아, 세하는 빼놓고 말이다. 뭐, 게임밖에 모르는애한테 축하받는 것 만도 고마웠지만..
오후 5시쯤 집에 돌아가기 전 세하가 나에게 잠시 따라와보라고 했다.
그 때 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세하의 뒤를 따라갔다.
.
.
.
도착하니 거의 노을이 지고 있었다. 4월 말이니 해도 많이 길어졌다. 이렇게 봄 노을을 보는 것도 거의 1년만이다. 그것도 이렇게 이쁘고 커다란 벚꽃나무 아래에서.
그렇게 생각할 때쯤 세하가 입을 열었다.
"여기 이쁘지?"
"응."
"어렸을 때 혼자서 자주 오던 공원이야."
"혼자서..?"
"응. 같이 올 사람이 없었으니까."
"..."
왠지 쓸쓸해지는 기분이었다. 혼자라.. 매일같이 집에 혼자 있는 나는 외톨이 처럼 지냈을 옛날의 세하를 생각하니 검은양 팀에 들어오기 전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며 지냈지만 강한 클로저가 되기 위해서 친구를 사귀지 않았던 내 옛날 모습을.
"나도.."
"어..?"
"나도 부모님 돌아가시고 부터는 쭉 혼자였어."
"..."
"지금은 너와 다른 동료들이 있지만."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세하를 바라보았다. 벚꽃나무를 바라보고 있던 세하는 나의 시선을 느끼자 바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살짝 눈웃음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기 슬비야. 손 좀 줘봐."
"어.."
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때 세하는 내 손가락에 핑크빛을 띄고 있는 벚꽃 모양의 반지를 끼워주었다.
"세하야?"
"어.. 그게.. 생일 축..하해."
"아깐 준비 못했다며..?"
"우리 둘만 있을 때 주고 싶었어."
"..."
두 볼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그리고.."
"..."
".. 널 좋아해. 슬비야."
"어? 어어... 저.."
갑자기 게임밖에 모르던 세하가 좋아한다는 말을 꺼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하고서 부끄럽다고 고개를 숙이고선 벚꽃과 같은 핑크빛으로 물드는 그의 얼굴. 아마 나도 지금 그렇겠지.
"나도 거의 언제나 혼자였어. 슬비 너처럼. 그러니까.. 이제 내가 같이 있어도.. 될까? 네 곁에."
"..."
이 감정은 뭘까? 두근두근 뛰고 있는 내 심장 소리. 갑작스런 세하의 고백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나.
그 때 느꼈다. 나도 역시 내 앞에 있는 이세하를 좋아하고 있는 걸까. 그에게 말할 대답이 생각났다. 그렇게 계속 뜸들이다 겨우겨우 살짝 고개를 들고 세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 세하야."
말하고 다시 고개를 숙여 세하가 끼워준 반지를 바라봤다. 살랑살랑 떨어지는 벚꽃이 내 손가락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이 달달한 분위기. 이 후에도 몇분 동안이나 계속 이어졌다.
노을이 지고 있는 이 벚꽃나무 아래에서 너는 수줍게 고개 숙이고 있는 내 옆에 앉아 사랑스럽게 웃어주고 있었다.
.
.
.
1년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와 같이 왔었던 어떤 공원의 벚꽃나무 아래에서 떨어지는 벚꽃잎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그렇게 행복했었던 기억.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간.
그 날 뒤로 1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내 생일이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내 약지에는 그가 선물해주었던 벚꽃 반지가 끼워져 있다.
그 날을 떠올리며 반지를 바라보고 있었을 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슬비야."
언제나 변함없는 한 남자의 목소리.
"왔어?"
나는 뒤를 돌아 웃으며 그를 반겨주었다.
"여긴 변함없구나. 1년이 지나도."
"그러게."
"이 벚꽃들 널 닮아서 더 예뻐보여."
"어..? 뭐야.."
이렇게 다시 그와 벚꽃나무 아래서 나란히 서있다.
도중 세하가 날 바라보더니 다가와서 나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 슬비야."
나는 오늘도 그와 함께 보내는 나의 생일, 1년 중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