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재회

루이벨라 2018-04-11 7

※ 지인분 썰 기반

 

 

 

 

 

'클로저' 라는 직업 상, 만남보다는 헤어짐이 더 익숙했다. 헤어짐의 형태는 세부적으로 나누자면 다양했지만 대체적으로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프로젝트 이동으로 인한 헤어짐, 혹은 순직으로 인한 헤어짐. 전자가 대부분의 경우이고, 후자는 전자에 비해 적으나 심심찮게 보이는 편.

 

클로저의 선택 사항에 퇴직이라는 선택지는 있으나 위상력이 있는 한은 유니온은 그 클로저를 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클로저라는 직업은 늘상 죽을 각오로 임무에 배치되었다. 평화로운 시대에서 전쟁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는 이런 사상에 대한 유니온에 반기를 드는 자들도 몇몇 있었지만, 이제는 다 그러려니한다.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어제까지 밥을 같이 먹은 동료가 오늘 전사했다, 라는 소식을 듣게 되는 상황도 빈번해졌다. 가장 가까이서 이 장면들을 목격하는 클로저들은 점점 이런 반복에, 무뎌지기 시작했다. 가끔은 감정이 통째로 없어지는 거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런 사태가 계속 흐르자 클로저들은 암묵적으로 '재회'(예를 들어 '내일 보자~' 혹은 '또 보자' 와 같은 인삿말이었다.)에 대한 일종의 약속을 하지 않게 되었다. 무조건 어기게 되는 약속을 만들어, 두 사람을 구속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속을 져버리는 사람이든, 자의든 타의든 남겨지게 되어버려서 두 사람의 몫을 억지로 살아야하는 사람이든지.

 

보이지 않는 족쇄를 항상 구속되게 만드는 건, 모두에게 참 잔인한 짓이다.

 

그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철없게 얽매이게 될 약속을 하지는 않았겠지...아니, 약속이라는 형태에 얽매이는 건 저 혼자인지도 모른다. 상대방은 전혀 모르는 저 혼자만의 약속이다.

 

무턱대고 기약을 하는 건 안 된다. 어떤 식의 책임을 질 각오가 없다면 더욱이나...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유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또 다짐도 하였다.

 

 

 

* * *

 

 

 

"오늘은 날이 좋네."

"...그러게..."

"..."

 

폐허가 된 어느 도시를 뒷배경으로 클로저 요원복을 입은 여성이 두 명 서 있었다. 먼저 운을 띄운 건 키가 더 작은 쪽. 그 말에 옆에 같이 있던 동료 클로저는 가볍게 응할 뿐,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끊어진 실을 다시 잇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고. 슬비는 괜히 헛기침을 한다.

 

"유리야."

"...?"

"너 딴 생각 하지?"

"표 나...?"

 

엄청 많이 나...표정이 감정과 곧장 직결되는 건 유리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좋게 말하면 꾸밈 없는거고 나쁘게 말하면 감정 탄로가 빨리 난다는 것.

 

지금 표정은 딱 ', 슬비는 너무 눈치 빨라...!' 였다. 몇 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이 정도도 눈치 못채랴. 그리고 최근 들어 '그 일' 이 일어난 뒤로는 더욱이나 감정 숨기는 게 영 매끄럽지도 않다.

 

친구이자 전우에게, 슬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도 많이 힘들지?"

"조금..."

"그건 조금 정도가 아니야."

"...사실은 약간 많이..."

 

유리는 또 거짓말을 한다. 최선을 다 하는 유리를 위해 슬비는 이쯤에서 모른 척을 하기로 했다. 슬비의 추궁 아닌 추궁이 끝나자 유리는 바로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쉰다. 괜히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걸 두 사람은 알기에 '그 이야기' 에 대해서는 이 정도 선이 딱 적당했다.

 

<검은양> 팀이 뿔뿔이 흩어진 것도 어언 3년이다. 유리와 슬비만 같은 곳에 발령을 받았고 나머지는 유럽, 미국, 중국 등으로 떠났다.

 

그래도 서로 안부는 자주 묻는 편. 특히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서로 또래인 유리, 슬비, 그리고 세하는 특히 연락이 잦은 편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유리와 세하 간의 연락이 젤 많았지만...생각 외로 두 사람의 관계는 깊은지 사소한 일상 등도 서로 말하는 편인가 보다. 이런 전시 상황에서 일상이라고 해봐야 보통 사람들이 아는 '일상' 과 괴리가 있었지만, 유리를 통해 슬비는 그런대로 세하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슬비가 따로 세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아도 세하가 어제 먹은 저녁 메뉴까지 알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그런 생활이 1년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랬던 세하가 어느 순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당황하지는 않았다. 유니온의 기술이 아직 좋은건 아닌지라 오지 같은데라도 가면 연락이 두절되는 건 흔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연락이 오리라. 유리와 슬비는 그냥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오라는 연락은 그 후로도 한달 동안 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두 사람은 세하에게 무슨 일이 있는 생겼는지 감이 왔다. 서둘러 세하가 지내던 관할의 유니온 지부에게 메일을 보내니 금방 답이 왔다. 유리와 슬비는 그토록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답변은 처음이라고 회상하곤 했다.

 

-이세하 요원은 27일 전, XXX일 임무 수행 도중 전사하였습니다.

 

딱 한 문장의 사실만 있을 뿐, 형식적인 추모 인사도 없었다. 정말 X같은 유니온이었다.

 

그 날 유리는 울었다. 계속 울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이 아닌 전혀 다른 형태로.

 

 

 

* * *

 

 

 

세하는 죽었다. 벌써 2년이나 지난 일이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유리를 완벽하게 치유해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슬비는 더 안타까울 뿐이었다.

 

세하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리고 의심점은 많았다.

 

간단한 형식조차 결렬된 공문. 죽는 자가 더 많다는 전쟁통이지만 이리 무성의해도 되는 것일까. 유독 유니온의 총본부 일파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검은양> . 특히 그 중에서 반감이 제일 심한 축은 제이와 세하였다.

 

그렇기에, 만약 '제거' 의 필요성을 느꼈다면? 아마 기둥, 주축부터 자르겠지. 이런 전개 과정은 대부분 추측이었지만 얼추 들어맞을 것이다. 그 예로 세하라는 큰 인력을 잃었는데도 유니온 상부는 동요의 기색이 없다.

 

그쯤부터 유리는 세하와 통화할 때마다 자주 남겼던 그 말이 신경이 쓰였다.

 

-곧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 때쯤엔 평화로워지겠지?

-그렇다면...잠깐의 기분 전환도 괜찮겠지.

-, 신서울에서!

 

제멋대로 내뱉은 그 말들이 왜 이제서야 생각이 날까.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둥, 그때가 온다면 평화롭겠다는 둥...지금 생각해보면 딱 잠꼬대 같은 이야기이다. 다시 만날 일따위 없고,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질 뿐이다.

 

특히 요즘에 들어서는 생전 처음 보는 고위급 차원종의 등장으로 더더욱 골치가 아팠다.

 

자세하게 관측된 적은 없다. 그 차원종에 대한 자료들은 전부 추정치일 뿐, 그런대도 새로이 등장한 차원종은 가볍게 S급을 넘나들었다. 유니온은 당연히 비상 사태였다.

 

전대미문의 새로운 타입의 차원종 출현으로 유리가 바라던 세상은 점점 180도로 뒤바뀌어지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적()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면, 유니온이 내린 지침은 이거였다.

 

싸우되, 승산이 없으면 무조건 도망쳐라!

 

자신들에게 필요한 병력은 아끼고, 반대 세력에게는 무조건 돌진 명령만 내린다. 손에 피를 안 묻히는, 참으로 고고한 처리 방법이다.

 

꽤나 많은 사상자를 내는 데에 반면, 그 잘나신 차원종의 모습을 본 자는 없었다. 보았다하더라도 이미 죽음을 당했기 때문일까나. 매우 타당한 이유로 보인다.

 

그 신성(新星)이 요즘 슬비와 유리가 있는 지역 근처로 반경을 옮긴 거 같아, 마냥 이리 평화롭게 경치 구경이나 할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답답해서, 그리고 가장 친했던 동료의 죽음은 그들을 죽음을 의연하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다만 유리의 경우는 그 정도가 지나쳐서 걱정이었다. 슬비는 슬슬 석양이 지는 걸 보며 기지개를 켰다.

 

"이제 슬슬 들어갈까?"

", 난 여기서 조금만 더..."

"그래? 그래도 너무 늦게까진 있지 마."

 

유리도 참 강한 클로저지만 혼자서 차원종과 대치하는 건 벅찬 일이다.

 

걱정 말라며 슬비를 먼저 보낸 유리의 눈은 노을을 쫓았다.

 

유리는 이 발령 받은 지역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신서울은 아닌데, 이곳의 노을은 신서울의 그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낭만에도 젖을 수도 있고, 그리고...'

 

, 이유는 그것뿐. 둘이서 꽤 노을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 유리가 검도부 연습 핑계로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적이 많았고, 세하는 그걸 참을성 있게 기다려도 주었고. 가끔씩 둘이서만 있는 날은 남몰래 검도 연습을 하기도 했다.

 

', 흐리다...'

 

바로 눈앞에 노을이 눈물로 인해 시야에서 흐린건지, 그때의 기억이 흐려지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게 지금 유리의 감상평의 다였다.

 

노을도 다 지고 슬슬 슬비도 걱정할 거 같아 유니온 본부로 돌아가려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기척? 참 이상하다...'

 

애초에 슬비와 유리가 바람을 쐬러 온 것은 민간인 출입 금지 지역이다. 이런 곳에 바람을 쐰다는 핑계로 배짱있게 올 사람은 거의 없었다.

 

클로저 아니면...수상한 자! 유리는 소지하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된 도()를 살짝 쥐었다.

 

인기척의 주인공은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다가, 바로 눈앞에 유리가 있는 걸 보자마자 망설임없이 검을 겨누었다.

 

'엄청난 위압감이야...!!'

 

검을 아슬하게 피한 유리의 첫 감상평이었다. 위압감은 물론 살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꿈틀거리는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는 양의 위상력을 느낀 유리는 결론을 내렸다.

 

'차원종?!'

 

혹시 그 차원종일까?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거 같다. 적어도 S급 이상이라니 유리 혼자 붙들고 있는 건 힘들어보였다. 그렇다고 본부로 도망을 간다?! 떼어놓지 않는 한은 본부에 2차적 피해가 갈 것이다.

 

그래서 유리는 대충 싸우는 척하며 틈을 봐서 전속력으로 도망가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상대는 인간형 차원종. 검은색 비늘로 만든거 같은 갑주와 그에 상응하는 디자인의 검을 사용한다. 불행하게도 서클릿을 끼고 있어서 차원종의 모습을 자세하게 볼 순 없었다.

 

누군가가 시작! 이라는 구호를 외치지 않았는데도 둘의 싸움은 벌써 시작되었다. 좀 먼 거리에서 견제를 할라하면 곧장 거리를 좁히는 상대에, 유리는 좀 애를 먹었다. 이리 저리 검을 맞닥뜨리며 피하기를 몇 번. 유리의 회심의 일격이 상대에게, 정확히는 상대의 서클릿에게 관통했다.

 

서클릿은 그 힘을 견디기 힘든 듯, 이내 균열을 만들며 천천히 흩어졌다. 상대방은 서클릿이 부숴진 것에 당황했는지 잠시 주춤거렸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틈을 보던 유리는...

 

...도망칠 수 없었다...

 

서클릿 안에서 보이는 선명한 색의 자안(紫眼)을 보자 유리는 질겁했다. 채도가 다르지만, 그리고 그안에 담고 있는 감정 또한 다르지만 매우 익숙한 눈동자였다.

 

더없이 사랑하고, 자신의 경솔한 말을 후회하게 만들었던 이였다.

 

그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른다. 유리는 감탄사마냥 그 사람의 이름을 내뱉었다.

 

"세하...?"

 

재회는 이상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 * *

 

 

 

뱀입니다. 쓰러져 있는 소년의 눈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무늬가 참으로 화려합니다. 머리가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모양입니다. 뱀은 긴 혀를 낼름 내밀 뿐입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장애물에 그닥 큰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가던 길을 마저 가는 것도 아닙니다.

 

뱀이 물었습니다. 여기 참 맛있는 사과가 보이지 않나요? 한 번 먹어보시겠어요? 고개를 돌리니 참 탐스러운 사과가 '우연찮게도' 놓여있습니다. 손과 불과 한뼘도 되지 않는 거리입니다. 뱀이 다시 말했습니다.

 

대신 이 사과에는 독()이 있습니다. ()조차 없는 치명적인 독이지요.

 

그런 사과를 왜 먹어야 하죠. 의식은 점점 희미해질 뿐입니다. 고민할 가치도 없습니다. 지금 죽으나, 독을 머금고 죽으나 죽는다는 결말은 같습니다. 소년은 뱀을 무시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뱀은 또 하나의 깜짝 사실을 말합니다.

 

저 독은 죽는 독이 아닙니다. 죽이는 독이지요. 당신은 계속 누군가를 죽이는 대신, 그만큼 계속 살 수 있습니다.

 

그 말을 왜 믿어야 해. 그리고 시시한 연극은 그만하시지...

 

소년의 대꾸에 뱀은 웃습니다.

 

선택하는 건 네 자유야. 여기서 명예롭게 죽을텐가, 아니면 추악하게 계속 살아갈텐가. 미련 따위 없으면 고귀한 전자의 선택을 하겠지만...어차피 전자를 하면 가짜뿐인 명예를 얻을테고, 후자면...

 

...그만.

 

소년은 더 이상 뱀의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에게는 티끌만큼의 미련, 아니 커다란 미련이 셀 수도 없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살아서도 절대 받기 싫었던 위선적인 이름만 명예를 죽은 후에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후자면 소년은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뱀은 부추기고, 한껏 조롱합니다.

 

선택은 너의 몫.

 

다시금 보이는 사과가 참 맛있어보입니다. 소년은 손을 뻗습니다. 뱀은 크게 웃습니다. 그리고 씨방까지 남김없이 먹는 소년에게 경고를 합니다.

 

독에 중독되지 않도록. 그건 약도 없다고.

 

뱀은 먼지처럼 사라졌습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입니다.

 

 

 

* * *

 

 

 

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지, 소년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소년은 미련들을 하나둘씩 처리했다. 비밀리에, 그리고 완벽하게.

 

덕분에 소년의 정체는 금방 발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제멋대로 살던 소년의 앞에,

 

"세하...?"

 

한 젊은 클로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런 만남은 우연히 자리잡게 된 터의 노을이 그곳의 노을과 퍽이나 많이 닮아 꽤 오래 있기로 마음 먹은 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제일 컸던 미련의 장본인을 다시 만나게 된 세하는 이리 중얼거렸다.

 

이런 재회는 바라지 않았는데...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게 삶()이지 않나? 뱀은 아마 그렇게 비웃었을 것이다.

 

독사과를 먹은 후부터 아마...이리 꼬이지 않았나 싶다.







2024-10-24 23:19:1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