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23)

벨리에나 2018-03-16 1

 서지수와 흑지수는 함께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믿기지 않을만큼 놀라운 협동을 보여주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뒤쪽은 다친 사냥터지기 팀이 도망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 크림슨퀸이 날뛰지 못하도록 서지수가 정면에서 막으며, 흑지수는 서지수가 흘려보낸 공격을 처리하며 서지수를 지원하고 있다. 흑지수는 두 사람의 대결을 근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크림슨퀸은 뒤쪽의 뱀과의 협동을 하고 있었다. 크림슨퀸 자신은 서지수를 직접 상대하기 때문에 주로 한방한방이 묵직한 공격을 했고, 붉은뱀은 입에서는 독을, 온몸으로는 비늘을 뿜어내며 서지수의 시야와 행동을 방해했다.


 서지수는 그녀의 아들이 가진 고정피해는 서지수 또한 가지고 있었다. 고정피해는 겉으로 보이는 힘이나 상태만 따지면 위력적이지 않게 보이지만 갑옷이나 외피가 두꺼운 존재일수록 위력을 발휘한다. 송곳처럼 갑옷을 뚫는데 집중, 어떤 기술보다 먼저 내부에 침투, 그리고 뚫린 갑옷을 중점적으로 불태워 그 피해를 증가시킨다. 대부분의 요원은 이 갑옷과 외피를 뚫지 않고 자체를 상대하므로 위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서지수가 가진 고정피해는 아들 이세하의 것과 그 힘은 유사했지만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달랐다. 이세하는 온전히 갑옷만 무시할 수 있어서 갑옷 없이 내부부터 강력한 존재에겐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서지수의 기술은 갑옷을 뚫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부까지 비틀어 상대방의 모든 피해 감소를 무시한다.


 크림슨퀸은 서지수가 초반에 이 주변을 보호하기 위해 우주 장막을 펼친 것 빼곤 큰 기술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술을 쳐내면서 간간히 반격도 했지만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크림슨퀸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기며 그녀가 진심을 발휘할 수 있게 뱀과의 연합 공격을 준비했다.


 "서, 서지수!"


 흑지수는 크림슨퀸이 뱀 위에 올라타 그 힘을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서지수는 크림슨퀸과의 전투 동안 건블레이드를 양손으로 쥐고 사용한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건블레이드를 양손으로 쥐었다. 서지수는 흑지수에게 빠르게 말했다.


 "사냥터지기 애들 곁으로 가서 보호해줘. 저건 쳐낼만한 게 아냐."

 "정말 가능한 거야?"

 "음, 국장님께는 미안하지만...... 성을 좀 날려먹어야겠어."


 흑지수는 미소를 짓는 서지수가 신기했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을만큼 여유롭다는 것이다. 흑지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흑지수가 사냥터지기 팀 쪽으로 내려가자 서지수는 크림슨퀸을 보았다. 충전을 마친 크림슨퀸이 붉은 위상력을 더욱 활발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양손에 한 자루씩 쥐고 있는 핏빛 창도 위상력에 의해 비틀려있었다.


 "크오오오오!"


 크림슨퀸은 이미 대화로 해결할 상대가 아니었다. 서지수는 공중에서 자세를 잡으며 크림슨퀸의 공격을 대비했다. 순간, 크림슨퀸은 사라졌고, 서지수는 건블레이드를 당겼다. 어느새 서지수 뒤쪽에서 나타난 크림슨퀸은 두 개의 창을 합쳐

서지수를 내리치려고 했다.


 퍼펑!


 크림슨퀸은 몸을 가누질 못했다. 분명 서지수의 몸과 건블레이드는 앞을 향하고 있었다. 크림슨퀸은 자신을 공격할만한 수단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앞을 보고 있던 서지수는 눈까지 감고 있었다.


 "에이, 날 너무 무시했다. 등에 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상대가 나 정도 되면 주변을 봐야하는 거 아냐?"


 서지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크림슨퀸은 '주변'을 보았다.


 서지수가 전투 초반에 펼쳤던 우주 장막들은 각종 색을 지닌 은하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서지수의 눈동자와 같은 노란색으로 변해있었다. 서지수의 눈은 모두 서지수의 몸을 향하고 있었다. 서지수로 향하는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크림슨퀸은 위험을 감지했다. 저 우주 장막은 위험하다. 하지만 저걸 부수기엔 눈 앞의 서지수가 걱정됐다. 그동안 서지수는 자신의 기술 준비를 마쳤다.


 장막이 움직였다. 서지수가 눈이라고 칭한 노란빛 은하가 점점 회오리치듯 돌았다. 은하에서 뻗어나온 한 줄기의 빛이 다른 은하로, 또 다른 은하로 퍼지면서 서로를 연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마침내 모든 은하가 연결되어 마치 거미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은하에서 나오는 빛이 서지수의 건블레이드로 집중되었다.


 서지수가 눈을 떴다.


 하늘 위로 건블레이드를 들자 은하들이 요동쳤다. 크림슨퀸은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이미 은하들이 뿜어내는 빛에 온 몸이 묶여있었다. 자신의 몸을 모두 감쌀 동안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붉은뱀은 이미 먹힌 상태였다. 크림슨퀸은 절망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으로 서지수를 보았다.


 결전기: 코즈믹 웹

 


 불타는 기지를 바라보던 슈타인은 이미 건물 안에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맥스. 하지만 그는 크림슨퀸의 침입은 막지 않았다. 그가 아낀다는 사냥터지기 팀이 당해도 나서지 않았다. 슈타인은 어느새 옆에 서있던 맥스에게 말했다.


 "뭐하는 거지, 맥스?"

 "...... 글쎄. 나도 모르겠다."

 "맥스...... !"


 슈타인이 화를 내며 맥스를 보았다. 맥스는 자신의 마스크를 오른손으로 쥐며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의 몸은 요동쳤다. 웃는 것이 아닌,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맥스는 터져나오는 화산처럼 말을 내뿜었다.


 "내가, 내가 어째서 살아있는 거지? 지고의 원반의 힘을 원해 모든 동료들을 살해했는데? 원반을 개방해 차원 균열을 열어버렸는데? 내가, 모든 클로저의 원흉인 내가...... 왜...... ."


 슈타인은 맥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슈타인이 알 수 있던 사실, 지금의 맥스는 위험한 상태다. 슈타인은 그가 폭주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맥스, 우선 안정을...... ."


 콱!


 맥스는 슈타인의 어깨를 붙잡고, 짓누르며 말했다.


 "너와 총장이 날 살렸다. 왜! 날 왜 살린 것이냐, 슈타인! 죽어 마땅한 나를 왜!"

 "네놈이 저지른 죗값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다!"


 쾅!


 위상력 파장이 충돌했다. 맥스가 자신의 영역을 펼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슈타인의 위상력이 나타날 수 있었다. 맥스는 튕겨져 나갔고, 슈타인은 그에게 다가왔다.


 "네놈의 저주 받은 몸뚱이는 결코 죽지 않아! 수 천 명을 죽일 정도의 피를 뽑아도, 모든 클로저의 위상력을 합한 것보다 위상력을 많이 뽑아내도, 네놈은 죽지 않는다고!"


 슈타인은 과거의 기억을 잃은 맥스를 위해 그를 위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남극 연구소 '유니온'에서 일하며 자신을 키워준 브루스가 원반의 힘에 사로잡혀 동료들을 죽였다는 것. 그때 원반에게 선택되어 브루스를 죽였고, 브루스가 개방한 원반은 자신이 닫은 것. 전부 슈타인이 꾸며낸 기억이다.


 과거, 맥스를 찾은 총장은 맥스를 죽이려고 했다. 슈타인은 동료이자 맥스가 죽어가는 걸 볼 수 없었지만 맥스를 구한 것은 자기 혼자가 아니었기에 총장에게 맥스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맥스는 자신이 죽겠다고 했다. 그때 당시의 슈타인은 맥스가 과거에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 없었다. 슈타인은 맥스가 책임지겠다는 걸 들어주기 위해 총장을 도왔다.


 그러나 맥스는 죽지 않았다. 죽을 수 없었다. 원반에게 완전한 선택을 받은 몸. 이 얘기가 나오면서 총장은 슈타인에게 맥스의 과거를 알려주었다.


 맥스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죽어선 안 됐다. 어떤 공을 세웠더라도, 그는 인류를 위협한 죄를 지었다.


 "난 총장에게 너의 기억을 조작해서라도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총장도 처음에는 받아들였지만 점점 너를 죽이겠다는 심리가 강해졌다. 네가 살아있다면, 총장이 저지른 죄도 ***지는 것이지. 루나를 죽이려고 했던 너의 팔을 기억 하나? 그건 루나의 몸에 깃든 너의 힘 때문이다. 총장이 너의 팔까지 조작할 줄 몰랐다. 지금은 철저한 조사로 총장이 널 죽이려는 걸 막고 있다."

 "...... 넌, 넌 나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건가?"

 "네가 클로저로 만든 모든 사람들을 대변해, 그렇다."


맥스는 무릎을 꿇은 채 양손을 바라보았다.


 "...... 시간을,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줬으면 한다. 정신을 차리는대로 내가...... ."


 슈타인은 맥스를 내려다보면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맥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위상력자가 되어 가족에게 버려진 슈타인은 넌 증오하지만, 너의 동료, 너와 생사를 함께 겪은 동료 슈타인은 널 도울 것이다. 내가 네 동료였다는 것, 그리고 네가 과거에 저지른 죄, 모두 사실이다. 걱정 마라. 널 도우면서 확실한 책임을 물을 테니."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슈타인은 고개를 돌려 먼 곳에서 걸어오는 이를 가리켰다.


 "우선 네가 아끼는 제자를 설득해라. 그것도 네 책임이다."


 맥스는 슈타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고성으로 사냥터지기 팀과 흑지수, 빅터를 들여보내고 유유히 홀로 걸어오는 서지수. 그는 처음부터 거대한 산에 막힌 기분이었다.



 검은양 팀은 벌쳐스에서 사장이 만든 알고리즘으로 화이트팽의 블랙 박스를 해석하고 있었다. 김유정은 아이들이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도 정보를 보여주면서 유니온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확실하게 밝히려고 했다. 김가면은 반 쯤 해석된 블랙 박스를 홀로그램에 띄웠다.


 "우선, 화이트팽은 울프팩 팀의 함선이었습니다. 데이비드는 이 블랙 박스를 얻으려고 했죠. 그는 유니온의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확실한 물증이 필요했습니다. 아마도 그게 이 블랙 박스였나봅니다."


 블랙 박스는 처음부터 화이트팽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화이트팽의 블랙 박스이기 전, 유니온 모든 기관의 정보를 담고 있는 메인카메라였다. 이를 화이트팽의 블랙 박스에 포함시킨 이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블랙 박스에 있는 정보는 확실했다. 영웅 서지수의 클론 제작에 관한 모든 것을 승인한 것부터 차원종과의 협력으로 그들의 무기를 얻어 인조인간을 만들어 개조한 것, 울프팩 팀 모두를 강제 실험 및 생명을 이용한 것. 모든 자료가 빼곡하게 남아있었고, 조작의 흔적도 없다. 이세하, 미스틸테인, 제이는 각자에게 해당하는 내용에 침울해졌다.


 잠시 후.


 "세하야."


 김유정은 이세하를 따로 불렀다. 김가면이 해석하는 과정에 오류가 발생해 잠시 점검하던 때였다. 이세하는 대답했다.


 "왜 그러세요?"

 "트레이너 씨에게 연락이 왔어. 현재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더스트와 아자젤이 싸우고 있다고. 넌 정말 더스트가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믿는 게 어렵지만,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잖아요. 더스트가 원반을 얻게 되면 균열을 닫을 수 있는지, 인류와의 적대 관계를 끊을 것인지. 하지만 확실한 건 있어요."


 이세하는 눈을 부릅 떴다.


 "유니온은 믿지 않아요."

 

 김유정은 한숨을 쉬었다. 현재 그녀가 아는 클로저 중에서 유니온에 대해서 좋은 반응을 보이는 이는 없다. 그녀 자신도 유니온이 이렇게까지 더러울 줄은 몰랐다. 그녀는 고민 끝에 조건을 걸면서 얘기했다.


 "좋아. 구로역에 가면 난민들을 구출하면서 더스트를 만나보자. 하지만 트레이너 씨도 함께 갈거야. 너도 거기서 크게 반응하지 말고. 알겠지?"

 "...... 죄송해요. 위험할 수도 있는데...... ."

 "걱정 마. 나도 유니온에서 내려온 명령보다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걸 선택할 거야. 다만 그게 차원종의 입에서 나온 말이니 불안하긴 하네."



 두 사람이 얘기하는 동안 김가면은 오류를 해결해 검은양 팀을 다시 부르려고 했다. 그와 동시에 블랙 박스 해석이 끝나면서 김가면을 놀라게 했다.


 "뭐, 뭐? 갑자기 완료 됐어......?"


 갑작스럽게 완료된 블랙 박스에서 어떤 영상이 떴다. 김가면은 조심스럽게 해당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김가면은 고개를 들었다.


 "...... 뭐야, 이게...... ."


 영상에는 유니온의 창립 목적이 적혀있었다.


 겉으로 알려진 유니온의 창립 목적은 이러하다.



 인류의 주적인 차원종 격퇴 및 힘을 가진 클로저는 인류를 구한다.



 영상에서 밝혀진 유니온의 창립 목적은 이러하다.



 인류를 구원한다.

 인류를 구원함에 있어 인류의 희생은 마땅하다.

 인류를 구원함에 있어 차원종은 인류를 위한 노예, 곧 먹잇감이 된다.

 인류를 구원함에 있어 힘을 가진 클로저는 제 몸을 불살라야 마땅하다.

 

 

 모든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므로

 살아남은 인류만을 구원한다.


 우리는 살아남아

 승리할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꾸벅)

2024-10-24 23:19:0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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