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나비야 나비야

루이벨라 2018-03-12 10

※ 지인분 썰 기반(썰 내용은 밑에서 확인해주세요.)

※ 삽화는 이즈라크(@Izrak_Rakraize)님 커미션입니다!

 

 

 

 

 

 

 어떤 꿈을 꾸었다. 나비가 날라다니는 꿈이었다. 슬쩍 나비들이 무리 지어 날라다니는 곳에 한번 손을 내밀어보았다. 나비들은 갑작스러운 침입자의 손길에 우스스 흩어졌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멍하니 쳐다보았다. 인분이라도 묻혀있는건지 나비의 날개는 반투명한 색으로 빛을 뽐내고 있었다.

 나비들아, 너희는 어디로 날아가니?

 그런 몽환적인 내용의 꿈을 꾸었다.



* * *



 위상력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는 이유는 위상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몸속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있다는 대략의 감으로 알았고, 일반인들은 자신들의 상상력 범위 내에서는 감히 할 수 없는 기행들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수치를 나타내기 시작한 건 신기하게도 위상력이 나타난지 초창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별로 정확한 건 아니었다. 위상력 범위를 대강 잡아내고 그에 따라 A, B, C급 등으로 나누는 정도였다. 정확한 숫자를 통해 측정이 가능해진 건 비교적 최근이라고.

 위상력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염력, 괴력? 그 특정적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 위상력을 세세하게 나누면 종류가 많음에도 힘 스스로, 그리고 순전한 위상력 자체가 사람들의 앞에서 시각화할 수 있게 되는 건 수많은 연습을 한 일부 위상능력자들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구현화의 대부분의 목적은 공격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무조건 파워풀한 구현체만을 본 건 아니었다. 최소한의 위상력으로 세심하게 모양만 잡으면 공격력은 없는 구현체가 만들어지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예술적인 기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소수에서도 소수라고 한다. 운이 좋게도 난 그걸 실제로 보았고, 그걸 내게 보여준 사람은 다름아닌 엄마였다.

 내가 많이 어렸을 때였다. 엄마의 구체적인 표정, 목소리 등은 흐릿하다. 그래도 대강적으로 기억나는 것이라도 말해보자면 그 때 엄마가 만들어준 건 작은 새. 두손을 모아 잠시 뜸을 드리던 엄마의 손바닥 위에서 나온 새는 하늘과 똑 닮은 푸른색이었다. 작은 새는 울지 않았다. 그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위로 올라가 결국엔 사라져버렸다. 새는 다시 안 오냐는 나의 질문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운 사람에게 가는 거야.
 -그리운 사람?
 -응. 제 갈길을 가는거지.

 그리운 이, 제 갈길, 하늘, 위...뭐 그런 거였다. 햇살 때문에 올려다 본 엄마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매일매일 보내요?
 -가끔씩? 하늘이 아주 맑은 날 날려보내곤 해.

 산뜻한 바람 한 줄기가 우리 두 모자(母子)사이를 지나갔다.

 -하늘도 바다처럼 흘러다닐거 아니야. 누군가가 주워준다면...
 -...?
 -그냥...불규칙적 습관 같은 거지.

 엄마는 그렇게 푸념했다. 지금도 날려보내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리병에 넣어 바다로 흘러보내는 것, 새의 다리에 편지를 묶어 날리는 것...그런 류의 행동이었던 거 같았다. 수신자는 분명하나 발신자는 알 수 없는 그런 류의 편지.



* * *



 잠깐의 낮잠을 잔 어느 날, 신기한 걸 보았다. 언젠가 꿈 속에서 본 적이 있는 나비의 형상이 내 앞에 있었던 것이다. 손을 뻗어 잡아보려니 곧장 연기처럼 사그라졌다.

 잘못본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일정 간격으로 나비가 보였다. 참 신기하게도 내가 잠을 잔 이후에만 살짝씩 보이고 금방 사라지는 거였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간단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를 떠올리면 되었다.

 새와 나비. 공통점을 찾자면 둘 다 날개를 가지고 있어 날라다닐 수 있다는 그거였다.

 흐지부지한 형태의 나비가 나로 인해 생긴 걸 알아채자 난 그걸 더 다듬기 시작했다.

 '초신성' 을 만들 때의 감정은 무언가의 증폭. 그러나 지금 이 작업만은 다르다. 섬세하고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최소한의 힘으로 선명한 물체를 만들려니 참 어려웠다. 도공(陶工)이 흙물로 도자기를 만들 때의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싶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런 작업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클로저는 차원종으로부터 시민들을 지키는 게 의무, 그런 거에 할애할 시간 없지 않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난 다르게 생각한다. 꿈에서 본 그 황홀한 장면 속 나비. 그런 나비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미완성 형태의 무언가. 그걸 다듬고 있자니 마음 한 구석이 참 평온해졌다. 어린 시절 늦은 겨울에 엄마와 같이 핫초코를 마셨던 그런 류의 기분이었다.

 연습을 할 때는 언제나 하늘은 황혼으로 저물어 있다. 푸른색이 아닌 주황색의 바다다.

 -하늘도 바다처럼 흘러다닐거 아니야...

 무언가를 흘러보낸다. 그걸 받는 사람이 있든 없든 수신인은 명백하다. 한쪽만 일방적인, 답장은 없을 쪽지임에도 계속 보냈다. 본인 말로는 가끔이라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꽤나 자주 보냈을 것이다.

 흘러보낸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완전한 형체의 나비를 내 손 위에서 만들어낸 날까지도 난 그걸 알 수 없었다.



* * *



 "요즘도 보내시나요?"
 "응...?"
 "새."

 새, 라는 말에 엄마는 금방 내 말뜻을 이해하셨다. 그건 왜 갑자기 물어봐, 아들? 설마...라는 의심에 직접 보여주었다. 반투명한 나비가 공중에 떠 있는 걸 보자 엄마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요새 무언가에 열중한다 했더니, 이거였구나."
 "그냥 충동적으로 시작한 거에요."

 거짓말이다. 충동적으로 시작했다는 거 치고 나는 이 일에 열과 성을 다 했다. 엄마는 나비를 슥- 보더니 이런 말을 하셨다.

 "세하와 닮은 색의 나비네. 예쁘다."
 "..."

 이번건 엄마 쪽의 거짓말. 나비는 나와 닮은 점이 없는 청명한 하늘색의 나비였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엄마는 어깨를 으쓱거리셨다.

 "새와 나비라...날려보낼 수 있는 아이들이지."
 "..."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거라도 있어?"
 "..."

 확답을 못하겠다.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게 있던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엄마는 웃으면서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하셨다.

 "급하게 생각할 거 없어. 그냥 세하 마음 가는대로 하면 돼."
 '마음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일단 써 봐. 못할 건 없잖아...애꿎은 볼펜심만 종이 조각 위에 툭- 툭- 누르고만 있었다. 빈 종이 위에는 아무것도 담겨져 있지 않다. 그 안에 마음 가는대로, 내 마음을 적어보라는 건데...

 '전해질 린...없어. 그래도...'

 어차피 나 혼자서 계속 묻어갈 감정이었으니까. 묻기만 해서 바깥으로 고개를 들어**도 못한 깊은 감정이다.

 툭툭거리기만 하던 볼펜심이 어느 덧 멈춰져있었다.

 아아, 흘러보낸다는 거...그런거였구나. 너무 담아내고만 있으면 언젠가 그 감정에 의해 메말라갈 수 있다. 슬쩍- 가볍게, 하지만 진심인 그 마음을 흘러보내는 것이다. 그래야 비워진 감정에 새로운 감정이 차오른다.

 그래서 엄마는 새를 날려보낸 거였구나...

 간단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을 종이에 꾹꾹 눌러썼다. 쪽지로 접어 나비에 실어 날려보냈다. 나비는 저녁놀이 지는 하늘로 금방 사라졌다.

 하늘도 바다처럼 흘러 갈거야...누군가가 주워본다면 어리둥절할지도 모른다. 그 어리둥절한 표정의 누간가를 생각하니 웃음이 풉, 나와버렸다.

 수신인도 없는 편지일테니 참 당황할 것이다.



 * * *



 그로부터 며칠 후. 모처럼 오후 일찍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의 자유시간을 즐길 생각에 잔뜩 기대들을 하며 길을 걸어가는데 뒤쪽에서 서유리의 앗, 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뭐, 뭐야?"
 "왠 나비지?!"

 






 나비라는 말에 갑자기 온몸이 섬칫- 거렸다. 나비라니, 설마...하지만 서유리의 머리 위에는 너무도 눈에 익은 나비가 앉아 있었다. 나비는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잔뜩 굳어버린 나와는 달리 팀원들은 참 예쁜 나비라며 연신 감탄을 한다. 테인이가 말했다.




 "꼭 세하 형 같은 나비네요!"


 "그러게. 참 세하랑 닮은 색을 가졌다."




 서유리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 구경에 신나하며 이리저리 나비를 보는데 서유리가 나비에게 묶여있던 종이조가리를 발견한다.




 "어, 이게 뭐지...?"


 "..."




 너무 여러번 접어서 꼬깃해진 그 종이를 유리는 기어코 열어버렸다. 꾸겨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리는 쪽지에 적힌 말을 또박하게 읽었다.




 "'좋아해'...?"


 "..."




 다들 무슨 남의 연애 편지를 훔쳐본 사람처럼 반응이 최고조에 다다라 내가 귀까지 빨개진 걸 알아본 사람은 없었다. 곁눈질을 하니 나비는 아직도 유리의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아, 수신인은 없으나 발신인은 정확한 편지였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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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18:5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