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20)

벨리에나 2018-03-04 0

 강원도에서 발생한 차원 균열을 닫는데 성공한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은 램스키퍼를 통해 오고 있다는 트레이너와 베로니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상이 거의 완치된 이세하는 다른 팀원들 몰래 김유정을 만났다. 김유정은 이세하를 다른 사람으로 오해했다.


 "아, 송은이 경정님. 잠시만요. 아직 처리할 건이 남아서...... ."

 "저예요, 세하."

 "응? 세하야? 몸은 괜찮고?"

 "네. 괜찮아진 것 같아요. 그보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이세하는 김유정이 앉아있던 책상 앞으로 다가가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고민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이세하에게 김유정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걱정 마. 개인적인 얘기라도 다 들어줄 수 있어. 아직 시간은 많아."

 "...... 저번에, 테인이와 함께 더스트를 만났어요. 이번 사태에 대해서 말해줬고요."


 이세하는 더스트가 알려준 내용을 김유정에게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김유정은 자신이 상부에서 받은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의 말에 의아한듯 처음엔 믿지 못했다. 최근 자신도 개입한 적이 있던 사냥터지기 팀에서 작전을 벌이던 도중 더스트가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불사의 힘을 되찾게 되면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게 되었다. 그런 더스트가 지금까지 적대해오던 클로저에게 도움까지 청하는 게 이상했다.


 "세하야. 그래, 두 차원종이 서로 싸우면서, 두 종류의 차원 균열이 열린 것. 이건 조사해보면 밝혀질 거야. 사실이 될 수 있지. 하지만 넌 더스트를 믿고 있니? 너무나 단순한 함정이야."

 "더스트가 저에게 다가온 이유가 있을 거예요. 예전과 같아요. 우리를 도와주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면서 달아다는 것. 무엇보다 우린 원반의 힘을 알지 못해요."


 대답은 뒤에서 들렸다.


 "원반을 알아서 좋을 것 없다."


 트레이너와 베로니카가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김유정은 더 이상 앉아있을 수 없다고 판단해 책상을 짚으며 일어났다.


 "마침 잘 오셨어요, 트레이너 씨. 세하가 더스트에게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해요."

 

 이세하는 트레이너와 베로니카에게도 더스트에게 들었던 말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세하의 말을 듣자마자 맥스가 말해준 것과 서지수의 부탁이 떠올랐다. 베로니카는 트레이너가 주먹을 쥐는 것을 보고 그의 앞을 막았다.


 "세하. 너, 교관님에게 무슨 말을 들었다고 했지? 넌 더스트의 말이 교관의 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 물론 위험한 조건인 건 알죠. 하지만 지금까지 더스트를 만난 걸 생각해보면...... ."

 "이세하."


 결국 트레이너가 나섰다.


 "서지수는 네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게 부탁했다. 그녀는 독일로 갔다. 교관이 네게 해줬던 말을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너희 어머니의 걱정을 무시하지 마라."

 "그럼 두 차원종의 싸움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은요?"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죄 없는 민간인이 죽어나가는 걸 볼 수 없겠지. 과거에 활동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나서더라도 현 상황은 쉽게 대처할 수 없다. 성급하게 행동하지 말도록. 어느 한쪽을 도와 싸움을 끝내는 것보다, 민간인을 구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 눈 앞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세하는 트레이너의 말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이세하가 나가자 김유정은 트레이너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어서와요, 트레이너 씨. 세하를 말려줘서 고마워요. 저번에 뉴욕에서 서지수 요원님에 관련한 연락을 받은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그렇소. 이번도 잘 부탁하리다."


 김유정은 베로니카에게도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베로니카 씨도, 무리하진 말아주세요. 잘 부탁해요."

 "응, 나야말로. 지부장님."


 

 이세하가 우울한 표정으로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한 이슬비는 그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어봤지만 반응이 시원찮았다. 김유정은 트레이너와 베로니카와의 대화 때문에 나오지 않는 상황. 그런 이슬비에게 미스틸테인이 다가왔다. 그 또한 이세하와 함께 더스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저기, 누나."

 "응? 아, 왜 그래?"

 "세하 형이 저러는 이유 말인데요...... ."

 "너, 너 알고 있어? 세하가 저러는 이유?"

 "네...... . 저번에 둘이 같이 더스트를 만났어요. 거기서 이상한 말을 꺼냈어요. 자기를 도우면 된다는, 이런 식으로."


 이슬비는 미스틸테인의 설명이 부족했지만 더스트가 무슨 말을 했을지 어느 정도 짐작했다. 현재 차원종의 침략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어가고 있다. 팀원들, 자신 또한 두 눈으로 목격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더스트의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들어선 안 될 악마의 말이었음에도 그 말이 이세하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이슬비는 미스틸테인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이세하에게 다가갔다.


 "이세하."

 "...... 왜."

 "왜 그러고 있어. 아까 나타가 같이 훈련하자고 하지 않았어?"

 "내 상태를 보고 재미 없다며 가던데."

 "잘 아네. 그럼 일어나서 나랑 훈련해."

 "됐어. 그럴 기분 아냐. 곧 있으면 작전도 내려올 텐데 무리해서 뭘...... ."

 

 쐐**!


 이세하의 머리 옆으로 단검 하나가 지나갔다. 이세하는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그는 제정신이냐며 흥분한 표정으로 이슬비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슬비는 피식 웃으며 뛰쳐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너답네."


 이세하는 멀리 달아나는 이슬비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의 어깨에 팔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서유리가 앞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뭐하는 거야, 빨리 가자! 지금 벌쳐스에서 무기 손질 해준다잖아! 봐봐, 지금 슬비가 뛰어가는 이유가 뭔데!"

 "...... 그런 이유 아니거든?"

 "어, 그, 그런가? 아무튼 빨리 가자!"

 "에휴. 네, 네."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은 김가면이 가져온 보급품을 받으면서 각자의 무기를 손질 받았다.


 기운을 차린 이세하를 보고 다시 시비를 걸어오는 나타, 그런 나타에게 웃으며 대답하는 이세하. 재미있어 보인다며 끼어드는 서유리와 하피. 서로 팀원들을 말릴 준비를 하고 있던 레비아와 이슬비. 미스틸테인은 손질된 창을 만지며 기뻐하고 있었으며, 바이올렛은 보급품의 상태를 다시 한 번 파악하고 있었다.


 "애들이 기운을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각 잡힌 모습으로 자신의 총을 관리하고 있던 티나. 제이가 티나 옆에 앉으며 털어놓듯 말했다. 티나는 총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결국 총을 허수공간에 넣고 대답했다.


 "전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우울하고, 침울하며, 슬퍼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잠시나마 행복할 수 있지. 나도, 너도 이미 경험자다. 전장에선 익숙해져야해.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어."

 "맞아. 죽을 만큼 괴로웠어. 아이들은 그런 고통을 겪질 않길 바라는데...... 네 말대로 이미 전장이나 다름 없게 됐어. 우리 모두 한 배를 탄 셈이 된 거야."

 "난 한 가지 걱정 되는 부분이 있다."

 "뭐지?"

 "전장에서 동료가 쓰러졌을 때, 저들은 그 동료를 감싸 안으며 멈출 것 같다."


 제이는 티나를 바라보았다. 무심한듯 차가운 표정의 로봇.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과거에 같은 전쟁에 참여한, 전우다. 제이는 보기 좋게 웃었다.


 "그럼 어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보호하면 될 거 아냐?"

 "...... 뭐?"

 "그 사람, 트레이너가 네 안의 그 소녀를 구할 때 말이야. 그 당시는 더욱 심각한 전장이었지. 그럼에도 그는 부상 당한 소녀를 데려왔어. 비록 그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지. 하지만 트레이너는 쓰러진 소녀를 감싸 안으며 멈췄어. 왜 그랬을 것 같아?"

 "궁금하군."

 "단순해. 뭔가 단순하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지만 너무 단순해. 그저 구하고 싶었던 거야. 내 옆에, 내 앞에, 내 뒤에 있는 사람을. 아마 맥스 교관님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우리 팀을 구하셨겠지."

 "맥스. 내 교관이 그 사람을 알고 있다. 대단히 강하고 훌륭한 클로저."


 갑자기 티나의 반응이 이상했다. 무언가를 떠올리듯 고개를 들어 눈을 뒤집은 것이다. 제이는 티나의 반응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티나?"
 "잠시 기다리도록. 내 기억이 반응한다."


 잠시 후, 티나는 허수공간으로 손을 집어 넣어 소형 냉장고를 꺼냈다. 그녀가 냉장고 문을 열자 차가운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냉장고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꺼낸 것은 사진첩이었다. 티나는 사진첩을 제이에게 넘겼다.


 "이게 뭐지?"

 "내가 악령으로 활동할 때 얻은 것이다. 어떤 클로저의 실험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한 사진첩으로 예상된다."

 

 제이는 사진첩의 표지를 넘겼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실험을 진행한 주요 연구자의 사진과 이름이었다. 대표로 가장 위에 있는 두 사람을 보았는데, 제이는 눈을 크게 떴다.


 "슈타인 국장님?"


 아직 젊은 시절의 슈타인의 사진과 그의 이름. 슈타인의 존재도 놀라웠지만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더 놀라웠다. 그 사람은 이름이 지워져있었지만 사진만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총장. 유니온 총장."


 제이는 티나를 보았고, 티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러시아 북서쪽 해변에 거대한 위상력 파장이 감지되어 울프팩 팀 고위 관리요원 슈타인을 호위 요원으로 임명한 뒤 출동.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숨은 쉬지 않지만 살아있던 클로저 맥스. 그의 상태는 첫 번째 사진으로 남긴다. 왼팔과 왼다리가 깨끗하게 절단된 상태. 옷으로 칭칭 감겨있는 것을 보아 정신을 잃기 전 보호한 것으로 추정.'


 '수술 도중 숨을 쉬기 시작. 맥박도 정상으로 돌아옴. 준비했던 것처럼 실험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슈타인의 반대로 잠시 보류. 설득에 성공하고 곧장 실험 진행. 예상했던 것처럼 그에겐 세 가지 위상력이 공존할 수 있다. 지고의 원반의 힘을 몸이 완벽하게 적응한 것으로 추정. 우리가 구할 수 없는 제3위상력을 제외하고 제1위상력과 제2위상력을 맥스의 몸에 주입, 혹은 추출. 추출은 무리 없이 이루어졌지만 주입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밝혀냄.

 맥스의 몸에 어느 위상력을 주입하더라도 역류하며 주위 공간으로 퍼뜨림─추가로 위상력이 아닌, 전기나 독 등 어떤 것을 주입해도 역류한다.'


 제이는 손을 떨기 시작했다. 총장이 진행한 실험은 보통 사람의 몸이었다면 처참히 찢겼겠지만 맥스였기에 실험 대부분이 실패하여 살아남은 것이다. 그는 차마 사진첩을 다 ** 못하고 티나에게 넘겼다. 제이는 손을 모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 트레이너도 이걸 알고 있어?"

 "보여줄 계획이다. 너와 동일한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잘 보관해둬. 가능하다면...... 이걸 활용해야할 날이 올 수도 있어."




 '사이코키네시스' 클로저 겸 독일 관리국 국장 슈타인에 관한 정보 (1)



 슈타인은 이름대로 독일 출신의 클로저로, 나이는 맥스보다 열 살이 어려 아직 쉰 중반이다. 본래 슈타인은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엘리트 과정을 밟으며 성장해 머리가 뛰어났으나, 1세대 클로저들처럼 원하지 않았지만 지고의 원반의 무분별한 선택에 의해 클로저가 되면서 괴물이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가족마저 그를 감싸지 못해 맥스가 돕기 전까지 그는 방황했다.


 슈타인의 능력은 사이코키네시스. 말 그대로 염력이다. 물체의 조작과 변형, 그 물체의 기억까지 읽어낸다. 슈타인의 뛰어난 두뇌와 겹쳐져 이 능력은 항상 최대로 발휘되었다. 유니온 내에서도 맥스 외엔 그의 정신력에 도달할 자가 없었다. 과거에는 사람의 기억은 읽을 수 없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사람의 기억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항상 두 번째라는 칭호, 맥스에게 가려진 그림자, 여러 가지 자신을 비하하는 좋지 않은 소리도 들었으나 슈타인은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자신을 구해준 건 맥스였고, 이렇게 이끌어준 것도 맥스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다.

2024-10-24 23:18:5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