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주황 장미(HAPPY)

루이벨라 2018-02-19 7

※ 주황 장미 = 수줍음, 첫사랑의 고백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난 운이 좋았다. 아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에게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이 언뜻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세 번 이상이라면...이미 확정되고도 남았다.

 좋아한다는 감정을 자각하자마자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따지면 그 아이는 참 대단한 연기자였다. 그 아이가 나한테 하는 사소한 행동들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 아이는 참 태연했다. 나 혼자만 괜히 기분이 붕~ 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그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참 즐거웠다. 작은 일에도 괜히 웃음이 나와서 그 아이가 날 보고 ‘넌 참 잘 웃는 거 같아.’ 라고 말을 할 정도였다. 입꼬리가 올라가있다? 이런 말도 자주 들었다.

 같이 있었던 시간은 무척이나 짧았다. 우리는 소꿉친구도 아니었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얼굴을 알게 된 그런 사이라서...함께 지낸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 아이는 어느 날 폭탄선언을 하였다.

 -나 뉴욕 가게 되었어.
 -뉴욕?!

 저녁놀이 한창 불타오를 때였다. 그 때문인지 그 아이의 옆얼굴이 빨개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진 않았겠지...그 아이의 목소리에는 떨림 따위 하나도 없었다.

 -웬 뉴욕?
 -가서 커리어를 쌓으라나...?

 상당히 애매한 답변. 언제 돌아오냐는 질문에도 글쎄, 라는 말 뿐이다. 잡을까, 말까? 이런 이지선다가 내 그 당시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는 건 안 비밀이다. 그 아이가 잘 되기 바란다면 뉴욕에 가는 지금 이 순간을 응원해주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건 솔직한 내 마음, 욕심이었다. 그렇지만 난 전자를 택했다. 잘 다녀오라고 어깨를 가볍게 쳐주었다. 눈물이 날 거 같아서 바로 뛰어갔다.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아이는 얼마 후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했다.

 결국 나는 그 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그리고 나는 지금 뉴욕에 와 있다...!

 왜? 라고 말하면 도대체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찌 보면 정말 치밀한 이유이면서도 너무 즉흥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 아이가 보고 싶었다. 그냥 그 뿐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뉴욕에 왔다.

 운이 좋게도 뉴욕에 오자마자 그 아이를 바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뉴욕에 있다는 사실에 그 아이는 많이 당황스러워하는 거 같았다. 갑자기 연락도 없이, 라며 운을 떼는 그 아이에게 나는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와는 정반대로 당당하게 말했다.

 “세하가 보고 싶어서 왔어!”
 “...엥?”

 당황하는 세하의 모습을 보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그러고 보니 좀 키가...컸나? 예전엔 나하고 그래도 눈높이가 비슷했는데 이젠 나보다 훌쩍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덥다, 라면서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세하는 날 같이 일하고 있는 뉴욕 소속 동료들이 ** 못하는 곳으로 날 데리고 갔다. 뉴욕이라고 하면 현대적인 건물만 있어서 삭막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작은 꽃밭이 있었다. 예전에 뉴욕에 오기는 했지만 그때는 거의 다 파괴된 모습만 보았기에 이렇게 생기가 넘치는 뉴욕에 오는 건 처음이었다.

 “그 말...다시 해줄래?”
 “응?”
 “나, 나 보고 싶어서...왔다며...”

 그랬다. 전화 통화는 자주 못했지만 그래도 연락은 계속 주고받았다. 연락이 아예 안 닿은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갑작스런 뉴욕 행을 결정한 이유는 단지 보고 싶어서였다.

 세하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응, 맞아.”
 “넌 항상 그러더라. 왠지 모를 추진력을 가진 건...”
 “그런가?”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긴 했다. 세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뉴욕에 오긴 했으니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보고 싶은 거라던가.”
 “없어.”
 “진짜 나 보고 싶어서 온 거구나...”
 “응, 그 뿐이야.”

 이런 말 해도 되겠지? 나와 세하의 관계는 스스럼없었다. 하지만 이상한 선을 지키고는 있었다. 그 선을 왜 지키는지는 나도 세하도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여하튼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만의 규칙을 지키고 있었다. 어떨 때는 내가 너무 조심스러웠다. 어쩔 때는 세하가 예민하게 굴었다. 어쩌면 그 선, 벽이...

 “...”
 “...”

 아마 우리는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 같았다. 아마 우리 둘 다 얼굴이 서로 빨개져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꽃밭은 주황색 장미로 가득 차 있었다. 향기가 너무 좋았다. 낭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세하와 나밖에 없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밝히기에는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세, 세하야...! 가, 갑자기 이런 말 하는 건 그런데...!!”
 “응...?”
 “그러니까 나 아마도 널 예전부터...!”

 같은 마음일 거야. 주문을 외운다. 세하도 같은 마음일 거야.

 고백은 그동안 품고 지냈던 고민의 시간에 비해 짧게 끝났다. 그에 대한 답도 그리 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귀까지 새빨개진 세하를 보고서 난 확신할 수 있었다.

 아, 뉴욕에 오길 잘 한 거 같다...





[작가의 말]

저번에 세유로 썼을 때 동시에 해피와 새드 엔딩을 같이 냈었는데 해피가 좀 늦었네요.
2024-10-24 23:18:4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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