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15)

벨리에나 2018-02-12 2

 사냥터지기 성 정원.

 유럽 부근의 차원종을 정리하고 돌아온 소마는 볼프강과 루나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활짝 웃었다. 방금 전까지 보이던 지친 기색이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소마는 루나를 안으면서 빙빙 돌면서 말했다.

 "루나야! 오늘따라 너무 보고 싶었어!"
 "자, 잠깐! 소, 소마! 어지러, 어지러워!"
 
 볼프강은 뒤쪽에 빠져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나를 내려놓은 소마는 볼프강이 미리 빠져있는 것을 보고 입을 쭉 내밀었다.

 "뭐예요, 쌤! 제자가 안아주겠다는데 도망쳐요?"
 "넌 안아주는 게 아니라 공격하는 거잖아. 루나 안은 걸로 넘겨. 고생했다, 소마."

 볼프강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소마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칭찬과 미소. 소마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 소마는 기분이 좋은지 표정이 풀렸다. 그리고 소마를 기다리던 사람은 한 명, 아니 한 마리 더 있었다.

 "돌아왔군, 소마."

 소마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으며 자신의 발 아래에 다가온 빅터를 보았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소마는 발을 슬쩍 내밀면서 고개를 돌렸다.

 "뭐..... 다시 만날 때 핥게 해준다고 했지?"
 "후후, 혹시 모르니 허락을 구하지. 괜찮겠나?"
 "빨리 안하면 걷어찬다?"
 
 빅터는 기쁘다는 듯이 소마의 발등을 핥았다. 소마는 간지러운 걸 참느라 입술이 뭉개졌고, 마무리로 루나가 그녀의 허리를 찌르면서 웃음이 터졌다.

 "와하하하하하!"

 세 사람과 차원종 한 마리는 함께 정원을 걷고 있었다. 빅터는 볼프강과 루나의 근처에서 돌아다니다가 드물게 소마의 곁으로 가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소마는 움찔거리며 톤파를 꺼내들었다. 볼프강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소마. 물론 차원종을 경계하는 자세는 좋은데,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협력하는 존재에게까지 무기를 드러내야될까?"
 "이 발등, 아니 빅터가 괜찮은 녀석이라는 건 알죠. 그렇지만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요."
 "익숙해져야해. 그래야 나처럼 노련해지지. 차원종이라도 그들에겐 이성과 감정이 존재해. 우리와 같다고 하는게 아냐. 비슷한 거지."
 
 소마는 입을 쭉 내밀었다.

 "뿌, 노력해볼게요."

 소마의 목표는 루나로 변경되었다.

 "루나야, 이것 봐라?"

 소마가 꺼내든 것은 인형이었다. 그녀가 평소에 다루던 인형들이었는데,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너덜너덜한 모습이었다. 루나는 눈을 껌뻑거렸다.

 "또 그 진부한 얘기해주려고?"
 "더 재미있는 얘기가 있으면 그만둘게!"
 "재미있는 얘기라...... . 아, 맥스 아저씨 기억 나?"
 
 순간, 소마의 표정이 변화했다. 미소도, 무표정도 아닌, 바로 울상이었다. 소마가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차원종은 크게 당황했다. 소마는 루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아저씨 살아계셔? 지금 어디 계신데?"
 "지, 지금은 흑지수랑 함께 차원 균열을 닫고 계셔. 네가 바깥에 있는 동안 우리 사냥터지기 팀이 되셨거든. 할당량이 끝나면 돌아오실 거야."
 "아저씨...... ."

 볼프강은 소마가 맥스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넌 선배님에게 어떤 걸 받았지?"
 "어...... 피요."

 볼프강은 예상 밖의 대답에 당황했다.

 "어? 뭐?"
 "다른 아이들은 무기에 아저씨의 위상력을 주입 받았죠. 하지만 전 전능의 영약이라고 불리잖아요. 맥스 아저씨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에요. 과학자들이 말해주었는데, 제가 태어나는 건 매우 위험했나봐요. 에러가 발생해 온 몸의 혈액이 빠져나가면서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해요. 거기서 맥스 아저씨를 처음 봤어요."
 "단순한 혈액만 수혈하진 않았을 텐데?"
 "물론이죠. 위상력도 같이 집어넣으면서 제 몸을 빠져나오던 피가 다시 들어가고, 아저씨의 혈액이 섞이면서 미완성이던 영약이 완성되었죠."
 "...... 그렇구나."

 소마도 맥스에 관한 걸 물어보았다.

 "그런데 있죠, 쌤. 그럼 맥스 아저씨는 훈련생인 거예요?"
 "음? 그렇지. 아직 승급심사도 ** 않으셨으니."
 "와...... 대체 뭘 하셨길래 그렇게 강하실까요?"
 "아, 이것도 모르나 보구나. 맥스 선배님은 울프팩 팀 교관 출신이셔. 저번에 서지수 선배도 직접 오셨다니까? 그분의 아들도 거기서 만났지. 이세하라고 했던가?"
 "부럽다! 저도 만나고 싶었는데......!"

 그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놓았다. 옛 베를린 과학 시설이 무너진 것부터 시작해 서지수의 방문, 더스트의 침입, 차원 균열의 발생 등등. 그리고 가장 최근에 발생한 일까지.

 "...... 그 꼬맹이가 여기 왔다고요?"
 
 소마의 표정은 굳었다. 

 "그래. 더스트에게 쫓겨나서 도와달라고 하더구나. 그레모리는 지금 슈타인 국장님과 함께 있다."
 "그 꼬맹이는 분명 장난치는 거예요."
 "울면서 부탁하던데. 돌아갈 힘도 없더라고."

 소마는 루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 루나, 진짜야?"
 "응. 나도 너처럼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얘기만 하니까.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현실적이야."
 "하긴......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는 건데요?"
 "실험실에 돌려보내주는 것, 먼저 우리에게 더스트에 관한 정보를 모두 제공."
 "뭐라고 말했어요?"
 "더스트가 노리는 건 지고의 원반. 아자젤의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 다만 현재 지고의 원반을 찾을 수 있는 건 원반이 선택한 첫 번째 인물 뿐이니 그 인물을 보호하라는 것. 그게 맥스 선배님이라고 하는구나."

 소마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녀에게 있어서 이 상황은 너무나 이상했다.

 "그런데요, 더스트는 아자젤을 상대하기 바쁘다면서요? 그러면서 맥스 아저씨를 노린다? 무모하다못해 이상한 거 같은데요? 분명 뭔가 있어요. 그레모리, 더스트 둘 다."
 "그래, 이미 더스트는 맥스 선배님에게 쫓겨난 적이 있어. 맥스 선배님을 데려갈 정도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일 거야. 그럼에도 경계를 풀어선 안 돼. 더스트는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적 중에 최강이야."
 "알겠어요, 쌤."
 
 그날 저녁.

 소마와 루나는 같은 방에서 누워있기도 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도 했다. 소마는 오랫동안 바깥에 있었기에 피곤한 나머지 금방 잠들 것 같았다. 루나는 소마를 위해 방 안의 불을 꺼주려고 했는데, 소마가 말을 걸어왔다.

 "루나야."
 "응? 왜 그래?"
 "너 혹시 맥스 아저씨의 몸을 본 적 있어?"
 "맨몸?"
 "응. 등이라던지, 배라던지."
 "아니. 항상 망토로 감싸고 있고, 그게 아니면 다른 옷으로 온 몸을 가리고 계시잖아."
 
 누워있던 소마는 상체를 일으키면서 무릎을 가슴으로 끌어당겼다.

 "맥스 아저씨는 몸이 항상 상처투성이야. 예전에 다쳤던 상처가 다 흉터로, 그리고 나를 구해주시면서 흉터가 모두 터져 항상 피가 멈추지 않으셔. 내가 치료하고 싶었지만...... 그 뒤로 만날 수 없었어."
 
 루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대답했다.

 "나도 아저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 말은 없으셔도...... 참 따뜻하신 것 같아."

 그녀들의 숙소 앞에 다가온 두 사람이 있었다. 볼프강과, 관리요원 김재리. 그들은 숙소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단순하게 둘러보기만 하려다가 고요한 복도였기에 집중하면 방 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볼프. 볼프도 맥스 씨를 뵙고 싶나요?"
 "글쎄. 허전하긴 해. 며칠 동안 곁에 있던 사람이 없어지니까 말이야."
 "걱정마세요. 건강하게 돌아오실 테니. 흑지수 씨도 함께잖아요?"
 "후, 돌아갈까?"

 어두운 복도를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여 걷던 두 사람.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서로의 귀에 너무나 크게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발소리에 집중하다보니 볼프강은 김재리의 말을 듣지 못했다.

 "볼프?"
 "응? 나 불렀어?"
 "네. 다섯 번이나 불렀는걸요."
 "아아, 미안해. 왜 불렀어?"
 
 김재리는 머뭇거렸다. 어려운 말인걸까. 볼프강은 기다려주기로 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두 종류의 차원 균열. 각각 아자젤과 더스트의 것이죠. 서로가 자멸할 수 있도록 클로저는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차원종을 처리하면서 민간인을 처리하는 건데, 상부는 이미 차원 균열을 닫으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그렇지. 하지만 그게 나을 수도 있어. 차원 균열에서 나온 차원종끼리 인간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저들의 목표는 아자젤, 더스트지만 주변의 인간도 건드릴 수 있어. 그게 왜?"
 "노려서 그런건지, 몰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상부에서 사냥터지기 팀에게만 새로운 명령을 내렸어요. 전시 상황이나 다름 없는 현 시간부로, 어느 클로저라도 두 차원종 중 어느 쪽을 돕는다면 그들을...... 처리하라고 말이에요."
 
 볼프강은 눈을 깜빡거렸다.

 "처리하라는 건...... 죽이라고?"
 "네...... ."
 "네 성격이라면 따지고 남았을 텐데, 내게 말하는 것을 보아 실패했나보네."
 "미안해요, 볼프. 이렇게밖에 하지 못해서...... ."
 "아냐. 내가 거부하면 돼. 걱정 마."
 "...... 더 있어요."
 "뭐?"
 "만약 볼프가 이 명령을 거부한다면...... 2분대 아이들에게 명령이 향하게 되요."
 "...... 아이들도 거부한다면?"
 "볼프, 미안해요."

 김재리는 볼프강에게 문서를 넘겼다.

 "아이들은 거부할 수 없어요."
 

 동굴의 길을 뚫던 제이는 커다란 진동소리가 안쪽이 아닌,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것을 깨달았다. 지원이라도 온 건가? 갑자기 차원종이 빠지기 시작한 것 같기도 하고...... . 지금이 나갈 기회야. 제이는 빠른 속도로 되돌아가며 서유리를 데려오려고 했다. 정신을 차린 서유리는 상체를 일으킨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안경을 벗고 있던 제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제, 제이 아저씨? 안경은 왜 벗고 있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서 탈출하자! 가면서 얘기해줄 테니!"

 제이는 등을 내밀었고, 서유리는 제이의 어깨를 잡으며 붕 떠올랐다. 서유리는 마치 짐처럼 보이도록 제이의 겉옷을 머리까지 덮었다. 동굴을 다시 빠져나가면서 제이는 다리로만 차원종을 상대했다. 팔로 사용하던 기술을 다리로도 응용하기도 하니 위력은 배가 되었으나, 그만큼 체력 소모가 심했다. 

 제이는 애써 웃으며 서유리에게 상황을 알려주었다.

 "이 소리 들리지? 바깥에 지원이 왔어."
 "어라, 애들이 온 걸까요?"
 "난 그렇다고 믿고 있어. 아니면 우린 위험해질 거야."

 멀리서 익숙한 발걸음이 들려왔다. 두두두두...... 대정화 작전에서나 보던 재앙의 스케빈저 검사 집단. 제이는 혀를 차면서 자세를 잡았다. 하필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이...... . 서유리도 한 손에 총을 들며 말했다.

 "꼭 같이 나가요, 아저씨."
 "최대한 노력해보도록 하지."
 
 쿠구구구...... .

 진동소리가 더욱 커졌다. 동굴 입구 근처. 제이나 서유리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스케빈저들의 발걸음 소리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동소리의 주인공은 두 사람을 구하려는 사람의 것이었고, 진동이 멈추자 붕괴 직전의 위상력이 폭발처럼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결전기: 임팩트

 바람이 태풍 마냥 불어오자 제이는 빠르게 옆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기술로 인해 차원종 뿐만 아니라 동굴 자체가 날아가면서 의미가 없어졌다. 제이는 서유리를 내리고, 감싸안으며 눈을 감았다.

 콰과과과과!

 정신을 차리기도 힘든 굉음. 수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으나 정작 흐른 시간은 2분. 날아간 동굴의 잔해마저 갈려나가며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눈을 뜬 제이는 등이 멀쩡한 것을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파란 위상력 막이 자신과 서유리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제이는 어이가 없는 듯 멍하니 있었고, 서유리는 제이의 품에서 벗어나며 일어섰다.

 "재이 아저씨! 애들이에요! 늑대개 팀도 있는데요?"

 부상 당한 이세하를 제외하고 이슬비와 미스틸, 늑대개 팀, 그리고 수많은 특경대. 무엇보다 눈에 띈 건 두 사람이었다. 서지수와 꼭 닮은 젊은 여성, 그리고 제이와 트레이너보다 커다란 체구를 기지고 있던 검은 망토의 사내. 그들에게서 가장 가까웠던 건 검은 망토의 사내였다. 제이는, 그 사람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사내. 제이는 멍하니 일어섰다. 

 마지막 전투 이후에 볼 수 없었던 존재, 그저 죽은 줄만 알았던 스승. 부르고 싶었어도 잊혀진 사내.

 "이젠 제이라고 불러주면 되나?"

 아무리 커져도 극복할 수 없는 높이 차이. 낮고 깊게 들려오는 목소리. 이런 조건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다.

 "교관님."

 제이가 교관이라 부를 수 있는 자.
 
2024-10-24 23:18:3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