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13)
벨리에나 2018-02-04 0
강원도, 속초 해변.
강원도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던 이슬비 요원과 서유리 요원은 참혹한 현장을 볼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죽은 이들의 애도를 표했다. 서유리는 버틸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슬비를 붙잡았다. 이슬비 또한 기다렸다는 듯이 발을 멈췄다.
"슬비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거야......?"
"...... 나도 모르겠어. 이렇게, 이렇게까지 사람들을 주, 죽...... ."
이슬비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두려운 것이다. 지나쳤던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대피하지 못해 끔찍하게 사망해 있었다. 그녀들이 견디기에는 너무나 잔혹했다. 마침 주변을 정찰하던 중 두 사람을 발견한 선우란 요원은 재빠르게 다가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둘 다 뭐하고 있는 거야? 가만히 있으면 당한다고!"
"언니는...... 무섭지 않으세요?"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아요."
선우란은 분노한 모습이었지만 엔진을 끄면서 자신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선우란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 무섭지 않을리가 없어...... . 이건 어른들이 봐도...... 심각한 현장이니까...... . 그렇다고...... 너희가 주저 앉을 거야......? 우리가 아니면...... 누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
이슬비와 서유리는 선우란의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해주었다. 특유의 졸림을 유발하는 말투가 지금만큼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좋은 말투였다. 선우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근처 해변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선우란은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말했다.
"아직...... 우린 구할 수 있어...... ."
서유리는 재빠른 속도로 해변으로 나아갔다. 이슬비는 선우란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넨 다음 얼른 서유리를 따라 해변으로 갔다.
해변에서 비명을 지른 시민은 해변을 따라 도망치고 있었다. 그 뒤를 쫓던 스케빈저 검사는 발도를 준비하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타다다닥, 촤악!
앞으로 나아가던 서유리는 스케빈저 검사를 베어나가면서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이슬비는 뒤쪽에서 스케빈저 검사를 잡아올렸고, 서유리의 탄환이 스케빈저 검사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서유리는 땅에 착지하면서 이슬비에게 엄지를 세워주었고, 이슬비는 미소로 대답했다. 그녀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시민을 다독이며 대피 장소로 데려다주기 위해 발을 돌렸다.
치직, 파지직, 쩌적!
해변에서 차원 균열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육체적인 감각이 발달한 서유리는 본능적으로 시민과 이슬비를 감싸며 옆으로 쓰러졌다. 차원 균열이 열리자마자 튀어나온 거대한 검이 그들이 서있던 자리를 갈랐다. 검의 형태로 보아 골렘 학살자의 검. 하지만 그들이 눈을 돌려 차원 균열을 보자, 그것은 골렘으로 보이지 않았다. 기괴하게 기다란 오른팔로 검을 뻗고 있었고, 왼팔은 골렘의 등에 박혀 꺾여있었다. 없던 다리가 생겨나 두 발로 땅을 걷고 있었는데 그 다리마저 역관절 형태였다.
"저거, 원래 저랬나?"
"유리야. 역할을 분담해야해."
"내가 저놈을 상대할게."
"괜찮겠어?"
서유리는 가슴 윗부분을 툭 치며 말했다.
"검을 다루는 상대는 내가 잘 알거든."
이슬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민과 함께 뒤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서유리는 변형된 골렘 학살자를 노려보며 총과 카타나를 준비했다.
골렘 학살자의 등에 박혀있던 왼팔이 손가락을 펼치더니 서유리의 몸 주변에 둥글고 붉은 띠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유리는 빠른 속도로 기술을 사용하면서 띠에서 벗어난 뒤 골렘 학살자의 뒤편으로 넘어가 강력한 기술을 준비했다.
결전기: 유리 일섬
서유리의 카타나에 막대한 힘이 모이기 시작했고, 일순간에 골렘 학살자의 급소를 베었다. 하지만 서유리의 손에 느껴진 감각은 둔탁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뒤돌아 총을 겨눴지만 골렘 학살자의 거대한 오른손이 먼저였다.
퍽! 촥, 촤아아악!
몸을 비틀어 왼팔 어깨를 정통으로 맞은 서유리는 모래사장을 뒹굴다가 모래를 길게 끌면서 자세를 잡았다. 그녀는 욱신거리는 왼팔을 붙잡고 뼈가 나갔다는 걸 직감했다. 골렘 학살자는 등에 박혀있던 왼팔과 거대한 검을 내주면서 서유리의 결전기를 최소화시킨 것이다. 부러진 검을 내던지고, 대신 잘린 왼팔을 주워 원래 있어야할 자리에 붙였다. 왼팔 또한 오른팔처럼 기괴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이 있어야할 위치가 찢어지면서 하늘을 향해 외쳤다.
"캬아아아아악!"
서유리는, 카타나를 쥐고 있던 오른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태백산맥 근처에서 특경대와 함께 차원종의 진입을 막던 이세하와 미스틸은 태백산맥으로 올라가려는 제이와 김유정을 돕기 위해 길을 만들고 있었다. 이세하의 가열, 방출과 미스틸의 장판이 겹쳐지면서 더욱 커다란 폭발이 발생하였다. 두 사람이 만들어준 길을 달리던 제이는 옆에서 따라오는 김유정에게 말했다.
"유정 씨. 다시 한 번 말할게. 정말 괜찮겠어?"
"제이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자신 없으세요?"
제이는 피식 웃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내 곁에 꼭 붙어있으라고, 유정 씨!"
제이와 김유정이 안전하게 태백산맥에 진입한 것을 목격한 이세하와 미스틸은 방어선까지 복귀하기 전, 주변을 둘러보려고 했다. 생존자가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세하는 자신이 앞장 서서 차마 미스틸에게 보여줄 수 없는 현장은 빙 돌면서 미스틸을 배려했다. 하지만 이세하 자신 또한 이런 현장은 견딜 수 없었다.
"세하 형, 괜찮아요?"
"...... 이해가 가지 않아."
"형...... ."
이세하는 자신의 뺨을 치면서 고개를 휘저었다.
"돌아가자. 사람들을 구해야지."
"네, 형!"
빠른 속도로 방어선으로 복귀하던 그들은 어떤 존재 때문에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세하는 자신의 건블레이드를 움켜쥐며 어금니를 갈았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잔해에 다리를 꼬아 앉아있던 더스트는 기분 나쁜 웃음을 보이며 그들을 반겼다.
"어머, 이세하!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창 아냐?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우연이네?"
"조용히 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 네가 벌인 거 아냐?"
"음,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무슨 소리지?"
"내가 열어버린 차원 균열, 그리고 저쪽에서 연 차원 균열. 차원 균열의 종류는 두 가지야. 저쪽에선 날 죽이기 위해 차원 균열을 열고 있고, 난 이쪽에서 날 지키기 위해 차원 균열을 열고 있어."
"...... 이곳의 차원 균열은 누가 열고 있는 거지?"
더스트는 잔해에서 뛰어내린 뒤 이세하 앞에 섰다. 그녀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아니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했다면 어쩔 건데?"
쿠구구구......!
이세하의 몸 주변에서 뜨겁고 푸른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의 노란 눈동자가 황금처럼 빛나면서 분노하기 시작했다.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널 없애겠어."
더스트는 끌어오르는 이세하를 지켜보다가 뒤쪽에서 이세하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미스틸에게 말했다.
"이봐, 말리지 않을 거야?"
미스틸은 더스트의 눈치를 보다가 이세하를 말리기 시작했다.
"세하 형. 지, 진정해요!"
이세하의 분노는 식을 줄 몰랐다. 한참 동안 그 상황을 지켜보던 더스트는 한숨을 쉬며 두 손을 들었다.
"그만. 난 너랑 싸울 생각 없어. 이곳의 차원 균열은 저쪽에서 열고 있는 거야. 날 죽이려는 자의 차원 균열이란 소리지. 그런 내가 이곳에 왜 왔겠어? 날 죽이려는 군단이 득실거릴 텐데. 너희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야."
어이 없는 소리를 듣게 된 이세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방출하던 푸른 불꽃을 멈추게 되었다. 미스틸은 방심하는 이세하를 지키기 위해 그의 앞에 서서 창을 꺼내들었다. 그럼에도 더스트는 두 사람을 무시하고 그들의 주변을 돌아 걷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차원 균열을 열고 있는 존재는 아자젤. 이름 없는 군단의 총사령관이지. 들어봤겠지? 너희 세계의 최강의 전력이었던 울프팩 팀이 없애라는 명령을 받은. 너희도 알겠지만 그는 살아있어. 울프팩 팀이 없앤 건 그의 육체고, 아자젤의 근본인 정신이 저쪽으로 넘어가 자신을 배반한 나를 없애려고 세력을 불리고 있어. 지금 이 자리에서 날 없앤다면 너희 세계는 순식간에 멸망할 거야. 아자젤의 다음 목표는, 자신의 육체를 없앤 자들이 사는 세계의 멸망이거든."
더스트의 말은 설득에 가까웠다. 그녀의 말투에서 진심이란 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더스트를 믿을 수 없었다. 자신들을 이용하기 위한 거짓, 더스트라면 그러고도 남을 존재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난 너희와 손을 잡아서 아자젤을 쳐부술 계획이야. 이후의 세계 멸망을 막고, 적도 줄이고, 얼마나 현명한 선택이야? 물론, 너희는 날 믿지 못하겠지. 그래서 너희에게 한 가지 더 제안할 거야. 나에게 그것만 넘긴다면, 두 세계 간의 경계를 끊겠어."
"뭘 원하는 거지?"
이세하의 질문이 들려오자, 더스트는 발을 멈추고 고개만 돌렸다.
"너희가 원반이라 부르는 그것. 그것만 있다면 내가 아자젤을 쓰러뜨릴 방법이 생겨. 그리고 두 세계 간의 경계를 끊어버릴 수도 있지. 아, 혹시 세계의 경계를 끊을 수 있는 힘이라면 다시 연결할 수도 있을 것 같지? 안타깝게도 난 복구에 재능은 없어서 말이야. 끊으면, 거기서 끝이야."
더스트는 이세하에게 다가가면서 모습이 점점 흐릿해졌다. 그리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해방되고 싶지 않아?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만약 나와 거래를 하고 싶다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로 지도자를 데리고 와.'
더스트가 사라지고 나서 바람이 전해주듯 흘러가는 말이 있었다.
"악마는 무엇보다 계약을 중시해."
강남, 플레인게이트 입구.
늑대개 팀과 서지수는 강남에 있는 모든 사람을 구해낸 뒤 플레인게이트에 모였다. 그들은 이후의 진행을 위해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검은양 팀이 있는 강원도로 의견이 일치되고 있었다.
서지수가 말했다.
"난 이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저번엔 너희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잠시 나갈 수 있었지만 너희 모두가 이곳을 벗어난 이상 내가 이곳을 지켜야해. 아직 오염 정화 작전은 끝나지 않았으니까. 난 멀리서나마 너희를 지휘할 테니, 그렇게 알아둬."
나타는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꼰대는 어디 있는 거야? 이 상황에 혼자 어디 갈 사람이 아닌 건 내가 잘 아는데?"
"응. 혼자 어디 가진 않았어. 베로니카랑 같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차원 균열 중 가장 커다란 것을 처리하기 위해 출동한 상황이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면 너희에게도 연락을 줄 테니 걱정 말고 출동해."
나타는 입을 쭉 내밀며 뒤로 물러났다. 서지수가 마저 작전을 설명하려고 할 때, 플레인게이트 내부에 있던 오세린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오세린의 등장에 모두 그녀에게 집중했다.
"서, 서지수 요원님! 아, 늑대개 팀 여러분! 큰일이에요! 지금 오염구역이 범람하기 시작했어요!"
"그건...... 저번부터 일어나고 있던 거 아닌가?"
"그, 그렇긴 한데 이번은 규모가 더 커요! 수많은 틴달로스 무리와 오염된 강에 몸을 불린 하르파스, 그리고...... 수백 개의 눈을 가진 요드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어요!"
서지수는 코 밑을 검지로 쓸다가 박수를 한 번 치면서 빙긋 웃었다.
"자, 너희는 강원도로 출발해. 아마 저게 마지막 정화 작전 같으니까."
"괘, 괜찮으시겠어요? 말만 들어도 규모가 엄청...... ."
이세하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중 막대한 힘을 자랑하는 기술인 초신성. 늑대개 팀의 모든 인원은 그 기술을 알고 있다. 평범하게 웃고 있던 서지수의 뒤에서 파란별이 하나씩 생성되기 시작했다. 늘어날수록 배로 늘어나는 별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손에 작은 은하가 들려있었다. 별들의 폭발이라는 초신성. 그녀는 수많은 별로 이루어진 은하를 터뜨릴 수 있다. 늑대개 팀은 서지수가 구현한 기술의 위력을 상상할 수 없었다.
서지수는 작은 은하를 들고 있던 손으로 주먹을 뒤며 은하를 소멸시킨 뒤 굳은 표정을 지었다.
"가, 늑대개 팀. 너희 앞을 막는 모든 걸 찢어버려."
늑대개 팀은 자신들이 누구를 걱정했는지 인지하며 빠르게 플레인게이트를 빠져나갔다.
오세린과 함께 이너포탈로 다가가던 서지수는 잠시 고개를 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위험하겠는데. 서지수는 발을 멈춘 뒤 오세린에게 말했다.
"오세린 요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대피 장소로 도망쳐."
"그, 그렇게...... 위험한 가요?"
서지수가 고개를 돌렸다. 오세린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서지수의 눈동자를 발견했다.
"응. 내가 너희에게 위험해. 이너포탈 안으로 들어가도 폭발이 플게인게이트를 뒤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