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담당 클로저 - 첫 현장경험
제이세하랑 2018-01-13 0
전라북도 전주시 서신동의 한 거리. 본래 식당과 카페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해야하건만, 거리는 온통 특경대원들과 때 아닌 출동에 잠을 덜 깬 특경대원이 하품을 했다.
“야, 하지마라. 그러다가 갑자기 정말로 차원종이 튀어 나오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같이 출동을 나온 다른 특경대원이 말렸지만 하품을 한 특경대원은 태연자약했다.
“뭐 어때. 경보기가 울린 것도 아니고… 설마 이런 데에서 C급 차원종이라도 나오겠어?”
”그야 위상 억제기가 있으니 그렇긴 하지만..”
하다못해 스케빈저도 자주 출몰하지 않는, 위상적으로 안정된 지역. 명령을 받고 출동하긴 했으나, 정말로 차원종이 출현할거라고 믿는 특경대원은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서 빨리 일 끝내고 가서 자고싶단 생각만이 가득 차있었다.
우우우웅
심상치 않은 파동. 태반의 특경대원들은 그저 어디선가 공연이라도 해서 울려오는 소리라고 착각했지만, 나름 경험좀 있다 싶은 특경대원들은 얼굴을 굳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케빈져 따위가 나타날 때 나오는 파동이 아니었다.
무언가 더 큰게 온다.
“**, 일났다 이거. 스케빈져는 절대 아니야.”
얼굴에 흉터가 난 특경대원이 총을 들고 파동의 진원지를 겨눴다.
“네? 갑자기 무슨ㅡ”
하품을 하던 특경대원이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물었으나,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보다 더 강력해진 파동이 거리를 세차게 뒤흔들었다.
파바밧-픽
혼자 눈이 아프도록 빛나던 네온사인도 불똥을 튀기다 꺼진다. 게으름 부리던 다른 특경대원들도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모두 총기를 들고 긴장했다.
‘제발 내 예감이 틀렸기를…’
얼굴에 흉터가 난 특경대원이 머리가 식은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그의 예감이 맞다면, 이건…
파아아앗
위상변곡률이 급격하게 오르고, 결국 거리 한가운 데에 푸른빛의 위상력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위상력장은 결코 스케빈저 따위가 나오는 작은 크기가 아니었다.
하품을 하던 특경대원은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긴, 긴급투입 요청. 특경대만으로 이, 이 차원종은 처리할 수 없다. 클로저 파견 바란다. 반복한다. 클로저 파견 바란다.”
워어어어어!
어느새 거리를 휘감던 강렬한 위상력장이 사라지고, 흙먼지가 비산한 가운데 3m 가까이 되는 거대한 차원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 트룹이다!”
여기저기서 한탄과도 같은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 흉터가 난 특경대원은 이를 악물었다.
‘저건 C급 차원종…특경대원들만으로는 절대 처리할 수 없어.’
C급 차원종에게 재래식 무기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위상관통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결정으로 코팅해 조금이라도 타격을 더 입힐 수 있게 개량한 탄환도 얼마 없었다.
‘버틸 수 있을까?’
클로저가 올 때까지?
쿵. 쿵. 트룹의 육중한 발걸음이 지축을 흔드는 것만 같았다. 단지 걷는 것 뿐이었음에도 특경대원들은 그 난폭한 기세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긴장했다.
기껏해야 접해본 차원종이 스케빈져고 가장 위험했던게 스케빈져 주술사였으니 그들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스케빈져 주술사도 바로 옆에서 클로저가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사고 없이 넘어갔던 경험이 끝이었다.
“전원 사격!”
흉터가 난 특경대원이 고함을 질렀다. C급 이상의 차원종들에게 재래식 탄환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 허나 특경대는 차원종의 주의를 끌어 다른데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할 의무가 있었다.
타다다다다다다
아무리 군기가 풀리고 경험이 적다해도 특경대는 특경대. 트룹을 가만히 놔둬 주택가로 놓치는 참사를 일으킬 순 없었다.
“**! 좀 *** 이 괴물**들아!”
트룹은 수없이 퍼부어지는 총알세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튼튼하고 질긴 거죽은 피부를 강타하는 총탄을 이겨낼 정도로 강했다. 무언가를 찾기라도 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던 트룹은 이윽고 결심한듯 몸을 틀었다.
후우웅ㅡ
예리한 칼날이 달린 원반형의 무기가 허공을 갈랐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트룹답게 공격은 느리고, 단순했으나 그 힘만큼은 위력적이었다.
“피해라ㅡ!”
흉터가 난 특경대원이 비명을 질렀다. 어리숙한 특경대원들은 무기를 피할 생각도 못하고 총기를 겨눈채 멍청하게 서 있었다. 입대한지 얼마 안된 신참들이었다.
“괴물**들, 이거나 ***라!”
하품을 했던 특경대원이 허리춤의 수류탄을 꺼내 던졌다고, 부착형 수류탄은 그대로 트룹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그 장면을 똑똑히 본 특경대원이 손안의 버튼을 누르고,
쾅!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트룹의 몸이 휘청였다. 덕분에 칼날은 신참 특경대원들에게 닿지 못하고 그대로 땅에 쳐박혔다. 신참 특경대원들은 그제야 허둥지둥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잘했다, 최경훈!”
흉터가 난 특경대원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타격은 입힐 수 없지만 움직임은 어느정도 묶을 수 있어.
워어어어어ㅡ!
분노한 트룹의 울음소리가 특경대원들의 고막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귀에 가져다 대는 사람은 없었다.
총을 잡은 손이 떨릴지언전 그들의 총구는 트룹에게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쿵!
트룹은 기세좋게 땅을 내려치며 일어났다. 다시 한번 총알 세례가 트룹에게 퍼부어졌다. 얼굴에 흉터가 난 특경대원은 트룹의 눈으로 보이는 곳을 집중사격. 효과가 있었다. 그의 탄환에 맞을 때 마다 트룹은 움찔거리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옆에서 같이 사격하던 특경대원들도 모두 트룹의 머리로 사격부위를 바꿨다.
“제발 ***!!”
트룹은 그 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원반을 든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얼굴에 집중되는 사격을 막으려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쿵. 쿵. 발 구루는 소리가 나더니 트룹은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질주했다.
워어어어어ㅡ!
그 거대한 몸에서 나오는 속도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위협적이었다. 트룹의 발에 단단한 아**트 도로가 푹푹 패이며, 굉음이 거리를 울렸다. 트룹은 정확히 얼굴에 상처가 난 특경대원쪽으로 질주했다. 주위에 선 특경대원들의 얼굴에 공포가 서렸다. 이대로 부딪혀히면 온 몸이 산산조각나죽는다!
하지만 피할 재간이 없었다. 트룹은 너무 빨랐고, 총기를 든 특경대원들의 움직임은 굼떴다. 흉터가 난 특경대원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이대로, 죽는구나.’
몸에 힘이 빠졌다.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싶었는데. 클로저가 올 때 까지만이라도..
질주하는 트룹의 원반이 가로등 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고ㅡ
환한 광휘가 트룹의 등 뒤에서 터져나왔다.
“하압!”
쾅!
큰 기합소리와 뒤이어 굉음이 터져나왔다. 트룹은 그대로 고개를 쳐박고 미끄러지다가 몸을 널부러뜨렸다.
우워어어어어…
트룹의 몸이 여기저기 찢겨져 알 수 없는 보랏빛기체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트룹은 몸을 일으키려 애를 썼으나 한번 망가진 몸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다친 곳은 없으시구요?”
높은 여성의 목소리가 흉터가 난 특경대원의 귓가를 울렸다. 그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도 모르게 주저 앉아버린 것이었다. 몸을 일으킨 그의 눈에 한국인이라면 너무나도 익숙한 흑발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이질적인 붉은 눈이 들어왔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는 붉은 눈의 여성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대로 트룹이 달려들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닙니다. 클로저의 의무인걸요 뭘.”
여성은 시원하게 대답하고 왼쪽 팔로 그에게 인사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흑발이 흔들리는 그녀의 오른쪽 팔에는 여러 보조기구가 부착된 길고 가는 창이 들려있었다.
“끝났다…”
“으아…”
여기저기서 특경대원들이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려왔다. C급 차원종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도 죽지 않았다. 장비와 훈련 모두 부실한 상태에서 이뤄진 기적적인 결과였다.
저 붉은 눈의 클로저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왔다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결과였다. 과거 전주에 있기 전 다른 지역에서 클로저들의 늑장출현 때문에 겪어본 위기가 한두번이 아니었던 그로서는 고마움을 느꼈다.
“지원요청을 받고 용케도 빨리 오셨네요. 클로저의 육체능력이 강하다고는 들었지만.. 굉장합니다.”
그에게는 마치 몇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지만 실제 무전으로 파견요청이 이뤄진 후 클로저가 올 때 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붉은 눈의 클로저는 쑥쓰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칭찬은 감사합니다…만, 이제 보고도 할겸 다른 일이 있어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뒷처리를 부탁드려요.”
“아, 예. 살펴 가세요.”
그는 눈 앞의 클로저를 붙잡지 않았다. 비록 그가 클로저들에게 호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수도권도 아닌 이런 지방에서 클로저들이 얼마나 자잘한 일들을 많이 처리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붙잡아봤자 방해였다.
붉은 눈의 클로저는 몇번 발을 구르는가 싶더니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 그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마치 날 쌘 고라니와 같은 유연하고 능숙한 몸놀림이었다.
“그러고보니 저 클로저 이름이 뭐였지? 보고하려면 알아야 하는데.”
일 났네 이거. 살았다는 안도감에 보고서에 쓸 이름조차 물어** 못했어.
뭐, 대충 이름 안써도 그냥 클로저가 왔다고만 하면 되겠지.
“트룹은 어디 있습니까? 혹시 놓쳐버린 겁니까? ”
거친 숨소리를 헉헉 내뱉으며 짧은 금발머리를 한 남성이 아**트위로 뛰어 내렸다. 빨리 달려오느라 지치기라도 한건지 남성의 얼굴에는 진한 피로가 가득했다.
‘저건 그냥 조금 지친 얼굴이 아닌데.’
“클로저 김정우 입니다. 트룹은 어디있습니까?”
클로저 라는 말에 흉터가 난 특경대원은 정신을 차렸다. 이미 파견된 클로저가 왜 또 와?
“트룹이라면, 저기 있습니다만…”
그는 고개를 쳐박고 죽어있는 트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짧은 금발머리의 남성은 헉 숨을 삼켰다.
“C급 차원종을 처리하신 겁니까? 위상관통탄도 없을텐데 어땋게 하신거죠?”
그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눈 앞의 남성이 바로 그들이 지원요청 했던 클로저 였다. 남성이 입고 있는 옷 또한 전형적인 수습요원복이다.
방금 전의 붉은 눈의 여성은 검은색 바지에 가죽자켓을 걸치고 있었다. 절대로 현장에 파견될만한 클로저의 요원복이 안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인가?
그는 일단 모른척 하기로 했다. 설마 그 사람이 누구냐고 나한테 드잡이질을 하진 않겠지.
“…클로저가 이미 왔다 갔습니다. 이름은 못들었지만요.”
‘완산구 담당 클로저는 우리팀 하나 뿐인데?’
그의 팀 구성원들은 모두 한 방에 모여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거기다 새로운 클로저가 파견되었다면 남성이 모를리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지방의 한 구에 클로저가 더 파견 될 수가 없었다.
“뭐지…?”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탁
아무도 없이 어두컴컴한 골목에 한 여성이 발을 내딪었다. 으슥하고 여기저기 쓰레기가 널려있어 어른들의 눈을 피해 담배를 피는 *** 청소년들조차 들어오지 않을 만한 골목이었다. 붉은 눈의 여성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해치웠다!”
기쁜듯이 두손을 꽉 쥐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이 귀에까지 걸려 있었다.
“그것도 한방에! 어지간한 클로저가 아니면 트룹은 못해치운다고 들었는데!”
유현은 주체할 수 없어 건물 바로 위까지 몸을 방방 뛰었다. 세상에. 아무리 분노해서 한곳만 바라보는 멍청한 상태였다고 해도 한방에 끝내버리다니. 유현은 자기가 이뤄낸 성과가 믿겨지지 않았다.
가상현실 공간에서 수많은 차원종들과 싸우며 전투 경험을 쌓았다곤 하나, 그건 가상이었다. 현실이 아니었다. 현실의 사냥은 좀 더 스릴감 넘치고, 긴장되며, 차원종이 살아있는 생명체란걸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차원종 사냥 이거 진짜 아무것도 아니네! 겨우 이런걸 가지고 그 고리타분한 선생들은 절대 하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한거야?”
위상력 함부로 쓰지마라. 차원종 처리할 생각하지마라. 항상 몸을 조심해라. 힘 조절 잘해라. 자제해라. 차원종은 너희들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다. 스케빈져조차 낮잡아 보면 안된다.
유현의 머릿속에 선생들의 잔소리가 스쳐지나갔다.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겨우 이런거 가지고 그런 잔소리들이라니!”
선생들의 잔소리는 그저 위상력을 못쓰게하고, 아이들을 자기 통제 하에 두려는 겁주기에 불과했다. 고작 훈련생에 불과한 그녀의 결전기에 맞고 완전히 뻗어버린 트룹이 그를 증명했다.
“왜 이렇게 충분히 강한 우리를 실전에 기용 안하는거야? 아카데미도 제대로 안다녔던 녀석들은 서울에서 실컷 활개를 치고 있는데!”
검은양팀. 한명의 초등학생과 전직 클로저, 그리고 세명의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그들을 떠올리자 유현은 이를 갈았다. 검은양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을테니까. 유현이 싫은건 아이들을 붙잡아놓고 조금의 자유도 주지않고 통제하려고만 드는 고리타분한 아카데미였다.
유현은 두팔을 벌렸다.
“나한텐 이제 그것도 끝이지만!!”
그렇다. 유현은 이제 졸업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드디어 수습 클로저 신분으로 싸울 수 있게 된것이다. 서울의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몇년간 살던 그녀가 전주로 내려온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졸업할 때 수습 근무지로 전주를 선택한 이유는 별 거 없었다. 전주는 그녀의 고향이며, 또한 그녀의 부모님이과 친구들이 있으니까.
정식 근무는 다음 주 부터지만, 그녀는 진작에 내려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아카데미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 가족들과도 오랜만에 같이 있고 싶었다.
과자봉지를 까먹으며 동생과 잡담을 하고 막장 드라마를 가족과 다함께 보면서 웃는 시간. 유현에게는 그런게 필요했다.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만끽하고 있었다.
사실 방금 전 트룹을 처치한 것도 일부러 차원종 사냥에 찾아나서서 잡은건 아니었다. 어차피 수습요원으로 차원종 실컷 때려잡을텐데 미쳤다고 시키지도 않을 일을 하나?
그냥 집에 몇박스씩 쌓아놨던 과자가 드디어 다 떨어지는 바람에 근처 편의점으로 간식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멀리 보이는 거리 한쪽이 평소와는 다른 것 같아 호기심으로 다가가 차원종의 출현을 알게 된 것 뿐이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훈련생 때 쓰던 창을 꼬나들고 나왔다. 본래 아카데미 학생들은 졸업할 때 무기를 반납하고 나와야 하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한 유현은 그 보상으로 무기를 들고 나올 수 있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용도로 사용하려고 무기를 가져온건 아니었다. 그저 아카데미에 있을동안 오래 썼던 창이라 기념품 같이 쓰고 싶은 것 뿐이었다.
그게 이렇게 쓰일 줄이야.
유현은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서울과는 다른 낮은 건물들과 이리저리 복잡한 골목길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등이 깜박이고, 보통 때라면 있어야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저기다!’
유현의 눈에 트룹의 등이 들어왔다. 살아있는 차원종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건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오랜만이었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유현은 바로 현장에 내려앉기 앞서 주위 건물 옥상에 안착했다. 바로 들어가 저 트룹을 처치해도 될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경대가 트룹의 머리를 향해 열렬한 탄환 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트룹의 단단한 피부가 총알을 튕겨내는 걸 보고 단번에 총알에는 위상력이 실리지 않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위상력도 없는 총알이나 쏴대고 뭐하는 거야?’
그녀가 열악한 지방의 환경을 알리 없었다. 그러던 와중, 트룹이 머리를 가리던 팔을 내리고 그대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트룹이 질주하는 방향에는 특경대원이 있었다. 그들은 움직이지도 못했다.
“어, 저러면 안되는데!”
유현은 자기도 모르게 건물에서 뛰어 내렸다.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걸 지켜보고만 있긴 싫었다.
‘침착하게.’
유현은 트룹의 등을 향해 크게 도약했다. 등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대형 차원종을 노리기란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하압!”
유현은 가진 위상력을 한 지점에 이끌어 모아 창을 내찌르며 그 끝에서 폭발 시켰다.
콰직!
살벌한 소리를 내며 창이 트룹의 몸에 박히고, 환한 빛이 터져나와 유현을 가렸다.
트룹은 그대로 고꾸라져 바닥에 머리를 쳐박으며 미끄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