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이슬비가 이세하와 함께 행사장을 가는 이야기 2
에토포시드 2018-01-09 6
행사 당일, 이세하와의 약속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한 이슬비는 인도를 메운 인파에 경악했다. 사람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강남 사태가 벌어진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만한 민간인이 한 곳에 모인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상정 외의 상황이었다. 그녀가 행렬을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에도 그녀의 뒤에서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고, 조끼를 입은 진행요원들이 여기저기에서 줄을 정리하느라 부산을 떨어댔다. 이세하의 모습을 찾아 주변을 여기저기 둘러보던 이슬비는 줄을 서있거나 줄의 끝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위상능력자임을 드러내는 분홍빛 머리와 푸른 눈은 어딜 가도 주목의 대상인 것이다. 신강고등학교에 등교한 첫 날 아침, 담임선생님을 따라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벌어진 소동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는 그녀였다. 이런저런 추억에 잠겨있던 이슬비의 어께를 누군가가 툭툭 건드렸다.
“누구신지?”
뒤를 돌아본 이슬비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이세하를 발견했다. 그녀가 아는 이세하는 머리에 무언가를 걸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었던 터라 이슬비는 그를 알아보는데 시간을 꽤 잡아먹어야만 했다. 이슬비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을 확인한 이세하는 그녀의 손을 대뜸 붙잡고는 그녀를 인적 드문 곳으로 잡아끌었다.
“잠깐, 이세하! 뭐하는 거야!”
“너야말로 뭘 한가롭게 그러고 있는 거야?”
“내가 뭘 잘못한거야?”
이슬비는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한 것인가 싶어 자신이 바라보던 인파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행사장에 오려면 무언가 특별한 장식과 같은 것을 챙겨서 와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 속의 사람들에게 그러한 기색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이 모자부터 써. 이것도. 이런 데서 머리를 다 드러내고 다니면 어떡해?”
이세하가 사이드백에서 모자와 선글라스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네었다. 이슬비는 의아해졌다.
“왜? 위상 능력자가 이런데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한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너는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TV도 안 보냐?”
“TV가 왜?”
이슬비는 최근 일주일간의 뉴스를 곰곰이 떠올려보았지만, 위상 능력자가 어떤 사건을 일으켰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아니, 이런 건 인터넷에서 더 많이 퍼졌으려나? 우리 팀은 대체로 그렇고, 특히 너랑 서유리말야. 지금 완전 유명 인사거든?”
이슬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이 뭘 했다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단 말인가? 그녀의 표정을 본 이세하는 설명을 이어갔다.
“저번에 한기남 아저씨한테 작전 중에 회수한 인형들 대량 납품한 거, 기억 안 나? 그 인형들 전부 어디 갔을 것 같아? 다 사람들이 사 갔다고. 재고가 없어서 난리라더라.”
“...그 많은 게 정말 다 팔렸어?”
자신들의 인형이 제법 인기 있다는 한기남의 이야기는 이슬비도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도 잠시간의 붐이라 생각했다. 한 달이 넘게 지나 파괴된 구획의 복구도 제법 진척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하니 이슬비는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야 클로저 옷만 벗으면 일반인하고 구별이 안 되고 서유리는 지나가는 사람 눈 색을 일일이 확인하는 사람이 잘 없으니까 그나마 낫지만, 넌 그러잖아도 그 머리색 때문에 구별이 쉽단 말이야. 아까도 딱 보니 벌써 너 알아본 사람이 있더구만. 그대로 5분만 있었으면, 너, 아마 사람들 틈에 꽉 붙들려서 사인만 하다가 집에 갔을 거다.”
이슬비는 그냥 입을 닫기로 했다. 아무래도 세상은 그녀가 상상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했다. 군말없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이세하와 마찬가지로 모자를 푹 눌러쓴 이슬비는 손가방에서 예매권을 꺼내 한 장을 이세하에게 건넸다. 이슬비의 손가방을 본 이세하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과장된 몸짓으로 이마를 짚었다.
“너, 가방 좀 큰 거 없었냐?”
“왜?”
“그 합동진지 뭔지 사면 어디에다 넣을 셈인데?”
이슬비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이세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을 본 이세하의 머리가 정말로 아파오기 시작했다. 제이라면 여기서 능글맞게 농담을 하나쯤 던지면서 이슬비를 놀리며 간단히 설명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세하는 그런 재주를 따라 할 수 없었다. 결국, 스트레스는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거기서 종이가방 줄 거 아니야?”
“안 줘. 여기가 무슨 서점인 줄 알아? 자기 가방에 다 넣어가야 한다고.”
“뭐? 그럼 어떡해?”
이슬비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이세하를 바라보았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하고 이세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작전 중에는 그렇게 빠릿빠릿하건만, 이런 데에서 왜 나사가 빠져있는 것인지. 이세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슬비에게 자신의 사이드백을 건네었다.
“가방 빌려줄 테니까, 월요일 날 줘.”
이세하를 평소와 다른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던 이슬비는 이세하의 가방을 받아들어 어깨에 매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이세하는 꾸역꾸역 행사장 안으로 밀고 들어가고 있을 인원들을 생각하며 약간의 다급함을 느꼈다. 어서 볼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게임을 하고 싶었던 이세하는 그 장소로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이슬비의 손을 잡고 그녀를 잡아끌었다.
“자, 자. 내가 경험자니까 내 말 들어. 얼른 안 가면 굉장한 꼴을 볼 테니 빨리 해치우고 돌아가야 한다니까.”
“아, 알았어.”
묘하게 조용해진 이슬비를 이끌고 행사장 입구로 향하며, 이세하는 도대체 집에는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속으로 한탄을 늘어놓았다.
*
행사장 안은 이세하의 예상대로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어떻게든 입구 근처에서 벗어나 안쪽으로 들어가야만 그나마 상황이 나아진다는 것을 이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이세하는 인파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이슬비를 억지로 끌고 행사장 안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입구 반대편의 벽 쪽에 자리를 잡은 이세하는 이슬비에게 예의 합동지를 판매하는 부스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몰라.”
“뭐?”
이세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혹여나 운 좋게 근처에 부스가 있지 않을까 하고 주변을 대충 둘러보았지만 신통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약이 오른 이세하는 이슬비를 닦달했다.
“야, 이슬비. 트위터에서 부스 소식 들었다면서? 왜 위치를 모르는 거야?”
“어쩌다 누가 지나가는 말투로 써놓은 걸 본 거란 말야. 와서 찾아보면 될 거라 생각했지, 이렇게나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어.”
선글라스 너머로 그의 시선을 피하면서 중얼거리는 이슬비를 보며 이세하는 짜증이 치밀었다. 그 복잡한 작전 세부사항도 작전마다 달달 외우듯이 하고 다니는 그녀가 오늘따라 왜 이리 답답하게 구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놀리려고 일부러 오늘의 일을 꾸민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지경이었으니 오죽할까. 행사장까지 들어왔으니 이제는 알아서 찾으라고 그녀를 내버려두고 돌아가고픈 욕망이 물밀듯 몰려왔건만, 분노한 어머니를 마주할 생각을 하면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세하는 이슬비가 보라는 듯 크게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발품 팔아야겠다. 들어오면서 사람 봤지? 너, 정말 사람에 떠내려갈 수도 있으니까 한눈팔지 말고 잘 따라와.”
“...알았어.”
이세하는 다시 이슬비의 손을 끌고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목줄이라도 가져오는 편이 낫지 않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이세하의 머릿속을 잠시 스쳐갔다.
이세하는 평소 자신의 그다지 크지 않은 키에 유감이 없었다. 좀 더 활동적인 타입이라면 키가 크다는 것이 큰 이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가시간에 집에 틀어박혀 게임을 하는 편을 선호하는 이세하는 평소에 키 문제 때문에 아쉬울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에게 있어서 큰 키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재앙의 씨앗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싫어했던 이세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자신의 체형에 내심 감사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자신이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행사장에 오는 사람 중에는 덩치 깨나 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인파의 중간 중간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어느 부스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제법 힘든 일이었다. 그의 뒤를 따라오는 이슬비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더욱 나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중학생으로 착각할만한 그녀의 체구로는 인파에 떠밀리지 않고 용케 그를 따라오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인파 속에서 악전고투를 벌이던 이세하의 팔을 누군가가 잡아끌었다.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하여 끌려가면서도 자신을 붙잡은 손의 주인을 찾던 이세하는 부스 안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낯익은 선글라스를 발견한 것이지만.
“아이쿠, 이게 누구야. 이세하 요원님 아니십니까?”
“한기남 아저씨?”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재해복구본부에서 특유의 웃음소리를 울리며 넉살 좋게 장사를 하던 그 얼굴을 어찌 잊겠는가. 어쩌다 보니 한기남을 따라 부스 뒤편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 이세하는 이슬비가 자신을 잘 따라왔단 것을 확인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꽤나 크게 벌이시는데요?”
어찌 된 일인지 한기남은 여러 자리를 빌려 판을 크게 벌여놓고 있었다. 물건을 파느라 정신없는 그의 직원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본 이세하는 그들이 판매하고 있는 물건을 보고 어이가 없어졌다.
“...지금 팔고 계신 물건, 설마 우리 팀원들이랑 관련된 거예요?”
“이야, 얼마나 잘 팔리는지 아시면 놀라실 겁니다. 특히 서유리 요원 관련 상품이 아주 굉장하죠. 위험하게 차원종 잔해나 만지는 것보다 훨씬 돈이 되던데요?”
“이런 장사가 그렇게 돈이 된다고요?”
이세하 역시도 인터넷에서 과거 모 동인 서클이 책을 팔아 차를 샀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사람이 그런 사업을 시작하고, 거기에 그 소재가 자신들이라는 사실은 그에게서 현실 감각을 뺏어가기에 충분했다.
“아아, 여기는 그냥 홍보를 겸해서 벌이는 겁니다. 메인은 역시 인터넷이죠. 요원님들께 납품받은 인형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이런 거라던가...”
할 말이 없어진 이세하는 건성으로 그의 말을 받아넘기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한기남의 말대로 물건이 많이 팔리기는 하는 것인지, 행사장이 개방된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원래는 상품이 담겨있었을 빈 상자가 쌓여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세하가 한기남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할 일이 없었는지 이슬비는 매대 뒤편에서 진열된 물건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정식 요원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데포르메 되어 그려진 카드 홀더를 집어 들고 빤히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이세하는 피식 웃었다. 설마 우리 학교에도 저런 걸 갖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최근 점심시간에 한석봉과 게임을 하는 그를 향하는 시선이 부쩍 늘어난 것을 떠올린 그는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 혹시 셜록 홈즈 합동지 파는 부스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저기 우리 리더가 셜록 홈즈 광이거든요.”
이세하의 말을 들은 한기남의 눈빛이 한순간 반짝였다. 이세하는 여기서 또 다른 상품이 탄생하는 것인가, 이세하는 속으로 취미 생활이 만 천하에 공개될 이슬비에게 사과했다. 아주 잠깐이지만.
“아하, 그러시군요. 그 부스는 아마..., 저기 반대편 G 열에 있을 겁니다. 몇 번 부스였더라...?”
“아, 그건 가서 찾아보면 되겠죠. 고맙습니다. 근데 이거, 뭐 제제당하거나 그러는 거 아니에요? 학생에다가 현직 유니온 요원들인데 이런 식으로 관련 상품을 막 팔아도 되나?”
이세하의 질문을 들은 한기남이 껄껄 웃고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하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건 저희 쪽에서 다 ‘원만히’ 해결했으니 걱정 마시길. 그럼 수고하십쇼!”
이세하는 한기남의 인사를 뒤로하고 부스를 나서며 이슬비를 불렀다. 그의 호출에 부스에서 나온 이슬비는 묘하게 뚱한 얼굴이었다. 그 표정에 의아해하면서도 별말을 하지 않은 채, 이세하는 그녀를 데리고 한기남이 알려준 G열로 향했다.
*
부스의 위치를 알고 나니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기남의 부스에서 나온 뒤 잠시 보였던 뚱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로 어렵사리 구입한 합동지를 신줏단지라도 되는 마냥 가방에 조심조심 집어넣는 이슬비를 보며, 이세하는 집에 가서 게임을 할 생각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슬비는 그를 집에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듯 했다.
“코스프레를 보고싶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슬비의 모습에 이세하는 속이 답답해졌다. 부스에서 합동지를 사면서 지인이 셜록 홈즈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이슬비가 부스 옆에서 잡담을 나누던 시간이 어쩐지 길더라니만. 하릴없이 핸드폰 게임을 만지작거리는 대신 그녀를 억지로 끌고 나오는 것이 이세하에게 있어서는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야, 그런 건 나중에 인터넷에 잔뜩 올라온다니까? 뭣 하러 귀찮게 굳이 가서 그런 걸 구경해?”
이세하는 코스프레에 그다지 좋은 감정이 없었다. 화면 속의 캐릭터는 화면 속에 있는 상태가 최상이며 그 외의 것은 군더더기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인 마르시아의 코스프레 사진을 발견한 뒤로 며칠간 후폭풍에 시달린 뒤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슬비는 그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니야. 지금 이 합동지를 가져가면 소품을 빌려서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했단 말이야. 우리나라에서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아.”
이세하는 기가 막혔다. 내가 약속한 것은 책의 구매까지였다, 이것은 계약 위반이다, 빨리 집에 가서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등등. 이세하는 귀가를 앞당기기 위해 두뇌를 총동원하여 이유를 짜내며 이슬비에게 항변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핑곗거리가 떨어진 이세하는 이판사판으로 나가기로 했다.
“아, 몰라! 코스프레 구경은 혼자 하면 되잖아! 난 집에 간다!”
“이세하.”
이세하를 곤란으로 밀어넣을 때의 목소리였다. 이슬비가 저런 식으로 자신을 부른 뒤에는 십중팔구 실력 행사가 뒤따른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있는 그는 황급히 핸드폰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손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이세하의 예상과 달리, 이슬비는 염동력을 행사하는 대신 자신이 매고 있는 이세하의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아까 빌려준 가방, 네 물건이 들어있더라?”
이세하는 자신의 멍청함을 저주했다. 가방 안에는 그가 평소에 사용하는 휴대용 게임 콘솔과 최근 플레이하던 타이틀이 들어있었다. 빠르게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가고 싶어 가방을 대충 건넨 것이 그의 패착이었다.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돌려주겠다는 이슬비의 약속에 이세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터덜터덜 이슬비의 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