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3)

벨리에나 2018-01-07 2

 베를린지부 특별요원 관리구역.


 이곳이 개설된 것은 최근 일이다. 한국에서 벌어진 '반차원종화' 사건에서 구출된 흑지수가 이 관리구역에서 쓸쓸히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 지부에 있어서 뉴욕 지부를 짓누를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서지수의 클론으로 태어난 그녀의 존재는 뉴욕 지부의 큰 약점이었다. 독일 지부의 상층부는 흑지수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그녀가 당한 실험을 조사했고, 활동가능 여부를 따지기 위해 많은 훈련을 진행시켰다.


 "후, 이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흑지수는 독일 지부가 만들어준 특수 건블레이드를 이용해 기계 인형을 부수고 있었다. 목 아래의 전신을 감싸는 요원복에 검은색 외투를 걸친 상태에서도 그녀는 뛰어난 움직임을 보이며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녀의 움직임에는 과거에 활동하던 알파퀸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기계 인형을 맨손으로 박살낸 뒤 그녀는 어깨에 건블레이드를 걸쳤다.


 잠시 후, 훈련장 입구가 열리며 과학자가 아닌, 앨리스가 걸어왔다. 흑지수는 반가운 얼굴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앨리스! 왜 당신이 오는 거야?"

 

 앨리스는 흑지수에게 다가가기 전, 길을 막고 있던 박살난 기계 인형을 발로 밀어내었다. 그녀는 기계 인형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며 흑지수에게 다가갔다.


 "건강해보이셔서 다행입니다, 흑지수...... 임시요원님."

 "나야 늘 건강하지."


 흑지수는 건블레이드의 총구로 위층에 있던 유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들이 은근 잘해줘. 뉴욕에 있던 놈들과 달라."

 "다행입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흑지수는 건블레이드를 다시 어깨에 걸쳤다. 그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나 나가도 되는 거야? 저 사람들은 잘 대해줄 테니 한동안 여기 있으라고 하던데?"

 "얼마 전에 일어난 지진 사건, 그리고 며칠 동안 이곳이 시끄러웠던 일에 대해서 설명드릴 수 있고, 동시에 요원님에게도 들을 말이 있습니다. 요원님의 출입은 이미 허가 받았습니다."

 "오, 그럼 나야 고맙지. 어서 나가자고!"



 흑지수는 위층에 있던 과학자들에게 약간의 인사를 해준 뒤 앨리스를 따라 훈련장을 나섰다. 앨리스는 복도를 걸으면서 흑지수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앨리스는 설명 중 울프팩 팀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고, 과거의 클로저라는 말을 사용했다.


 앨리스의 말을 흥미롭게 듣던 흑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과거의 클로저라."

 "혹시 기억나는 분이 있나요?"

 "서지수의 기억이 필요한거야?"

 "지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뿐입니다, 요원님."

 

 흑지수는 고개를 들면서 생각해보았다.


 "글쎄. 한 사람 있긴 해. 하지만 내게 있는 서지수의 기억은 확실하지 않아. 특히 인물에 관한 건 꽤나 조작이 많아서 말이야. 너무 신뢰하진 말아줘."

 "괜찮습니다. 저희 쪽에도 약간의 정보가 있으니 조합해보면 확실한 정보가 나올 겁니다."


 흑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레전드. 너희가 가진 정보와 동일해?"

 "동일합니다."

 "좋아, 그럼 최초의 클로저 중 일원."

 "그건 처음 듣는군요."

 "유니온  1급 위험대상."

 "그것도 처음 듣습니다."

 "그럼...... ."


 흑지수가 말을 멈춘 이유는 그녀가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앨리스와 함께 걷던 복도의 건너편, 한 인물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감은 흑지수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앨리스는 망토를 온몸에 감싸고 걸어오는 맥스를 발견하고 흠칫거렸다. 혹시 맥스 요원이 흑지수를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한 앨리스의 믿음은 맥스의 무관심으로 철저하게 짓밟혔다. 맥스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다른 길로 빠져나갔다.


 맥스가 지나가자 흑지수는 발을 멈추며 뒤돌았다. 앨리스도 함께 발을 멈췄다.


 "저 사람, 뭔가 특이한데."

 "그렇게 느껴지나요?"

 "응. 저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위상력, 우리가 가진 위상력과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 같아."

 "질적인...... 면이요?"

 "표현이 약간 이상하긴 한데, 이게 맞는 것 같아.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잖아? 위에서 흐르는 물은 양이 적고, 흐르는 길이 좁아. 아래에 도착한 물은 넓게 퍼지고, 점점 많아지지. 우리 같은 위상력자는 아래에 존재하는 물. 그리고 저 사람은 위에 존재하는 물이야. 왜 그런거 있잖아. 산에서 흐르는 물은 맑고 상쾌한데, 산을 벗어난 물은 점점 탁해져."

 

 앨리스는 점점 퍼진다는 말에 루나의 말을 떠올렸다. 그의 몸에서 위상력을 뽑아 '무기'들에 주입한다. 맥스는 무엇보다 맑은 물. 그의 물을 마신다면...... .


 "흑지수 요원님."

 "응?"

 "어서 가시죠. 사냥터지기 팀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흑지수는 화색이 되었다.



 볼프강과 루나가 있던 병실에 도착한 흑지수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했다. 앨리스는 내심 흐뭇한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찢어진 커튼, 지저분한 맥스의 침대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앨리스는 어느 정도의 만남을 가진 세 사람 건너편에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돌아오는 길에 요원님을 만났습니다."

 

 볼프강은 루나를 슬쩍 보며 말했다.


 "그, 선배님의 기계의수 말인데. 이상한 장치가 있었나봐. 선배님이 깨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의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 루나를 습격했어. 루나가 힘으로 뜯어도, 엘리고스의 검도 모두 선배님의 기계의수를 깨지 못했어. 다행히 기계의수에서 위상력이 발사되기 전에 선배님이 깨어나시면서 상황이 정리됐어. 맨손으로 해결하시더군."

 "그렇군요. 그런데 왜 나가신 거죠?"

 "모르겠어. 아마도 팔이 부서져서 과학자들에게 가시는 게 아닐까? 말도 안 하고 나가시더군."

 

 루나는 무릎 위에 손을 올리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앨리스. 안나 기억하죠?"

 "네. 물론입니다."

 "안나도 맥스에게 힘을 받았나봐요. 심지어 대화까지 나눠봤다고 해요. 다시 만날 때는 이렇게 만나지 말자고...... ."

 "다시라면...... 맥스 요원님은 상황이 이렇게 될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상황이 맞아떨어지는게 이상하지 않아요?"


 흑지수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 저기 잠시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볼프강이 그녀의 말을 들었다.

 

 "좋아, 내게 말해보라고."

 "그 맥스라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긴 한 거야?"

 "며칠 동안 말이 없다가 오늘 처음으로 두 마디 하셨어. 내가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듣겠냐는 선배님의 의지가 문제야. 그분과의 대화가 불가능해."

 "신기한 사람이네."

 "이렇게 당신을 부른 이유도 그 선배님 때문이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기억 속에 선배에 관한 정보는 없을까?"

 

 흑지수는 볼프강의 말을 듣고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아까 앨리스와의 대화 중에 말한 정보가 그녀가 가진 모든 정보였다. 흑지수는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물어볼거면 진짜를 부르던가. 나 같은건...... .


 흑지수는 고개를 들며 입을 막았다.


 '너의 질문 같은 건 듣지 않겠다, 지수.'

 '선배!'

 '돌아가라.'

 '아, 안 돼! 선배! 선배! 이거 놔! 선배!'

 

 흑지수의 눈에 보인 '그'의 마지막 모습은, 앞으로 살아갈 그녀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볼프강은 물론이고 다른 두 사람도 흑지수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멍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걱정된 루나는 손수건을 꺼내 흑지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 어...... . 고마워, 루나."

 "무슨 일이에요?"

 

 흑지수는 루나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마저 닦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 선배, 그래. 나에게도 선배지. 선배는 진짜를 살리신 은인이야. 진짜 말고도...... 다른 팀원들까지."

 


 덜컹.


 흑지수의 말이 끝나자 병실의 문이 열렸다. 병실을 열고 들어온 것은 또 다른 은발의 머리카락을 가진 서지수와, 그리고 그녀의 아들 이세하였다.


 볼프강과 루나는 서지수를 보며 깜짝 놀랐다.


 "선배?"

 "서지수 님!"


 서지수는 두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하면서 동시에 흑지수를 발견했다. 서지수는 어설프게 웃으며 조심스럽게 아들 이세하를 바라보았다. 볼프강은 이세하를 처음보는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으, 응?"

 "저는 유니온을 가만히 둘 수 없을 것 같아요."





 '레전드' 클로저 맥스에 관한 정보 (2)

 



 맥스의 능력 그 첫 번째, '맥스의 영역'


 맥스는 알파퀸 서지수의 '불사 살해'를 뛰어넘는 전무후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인 맥스의 영역은 모든 위상력자의 강점이자 약점인 위상력에 관련된 능력이다.


 맥스의 영역 내에서 모든 위상력은 맥스의 의지로 유지된다. 즉, 위상력자가 이 영역에 들어올 경우 위상력 상실증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떠한 위상력을 가진 자라도 그의 영역을 무시할 수 없다. 원거리, 근거리와 관계 없이 그의 영역 내에 들어오는 모든 위상력은 맥스의 의지에 따른다.


 맥스는 이러한 능력 때문에 유니온에서 1급 위험대상으로 취급하더라도 정예요원을 보내 처리할 수 없었다. 어떤 클로저도 그를 상대할 수 없었다.

2024-10-24 23:18:1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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