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사계절
루이벨라 2018-01-05 10
※ 클로저스 사계절 합작 공개되었길래 올려봅니다.
[봄] 이슬비 & 티나
"어느덧 날이 따뜻해졌네요."
"그렇군. 이제 어느 정도 바깥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좋아지겠군."
"티나 씨는 가끔 보면 엄청난 워커홀릭 같아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이슬비."
신서울의 어느 봄날, 바깥에는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창밖에서만 바라보는 걸로 만족하며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저마다 벚꽃놀이라며 떠나 한가한 동아리실에는 둘뿐이었다. 그동안 자리를 많이 비웠기 때문인지 서류의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이슬비가 빠른 속도로 서류를 처리하는 걸 보던 티나는 문득 창밖으로 시선을 꽂은 채 물어보았다.
"이슬비, 너는 벚꽃놀이를 하러 가지 않을건가?"
"벚꽃은 여기에도 있는데 뭐하러 사람 복잡하게..."
"낭만이 없는건가?"
"...벚꽃놀이가 저한테는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에요."
좋은 기억이 아니라는 건 새빨간 거짓말. 오히려 좋은 기억이었다. 부모님과 마지막으로 같이 보낸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날의 벚꽃놀이는 너무도 즐거웠다. 그리고 며칠 후, 거짓말처럼 그 행복은 슬비 앞에서 순식간에,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 때를 추억하면 오히려 마음만 아파질 뿐이라 일부러 멀리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아마 봄을 즐긴다는 감정조차 어느 순간부터 무뎌져가지 않았나 싶다.
그 감정이 다시 피어난 건 불과 얼마전의 일. 유리에게서 벚꽃색 머리카락이 참 이쁘다는 말을 들은 후였다.
벚꽃...그렇다, 곧 봄이 온다. 봄이 오면 예전의 행복이 떠오른다. 그리고 현재의 내가 더...비참해진다.
일부러 슬비가 입을 다무는데 티나는 고집스러웠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잃어버리기라도 한건가?"
"뭐, 비슷한거라도 해두죠."
이제는 슬슬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냥 입을 꾹 다물고 서류 처리에 열중하는데 티나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슬비의 귀에 걸렸다.
"그러고 보니 교관도, 벚꽃놀이를 참 좋아했었다."
"..."
"하지만 교관은 벚꽃이 피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결국 교관의 소망 중 하나는 이루어지지 못한 셈이지."
티나가 교관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슬비도 안다. 그렇기에 티나뿐 아니라 슬비도 티나의 교관을 참 존경했다.
저절로 숙연해지는 이 분위기. 티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교관은 그 순간을 기대하며 참으로 행복했었다. 하지만 난 그 감정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꼭 알고 싶다. 이슬비, 벚꽃놀이는...정말 행복하고 즐거운건가?"
"..."
무슨 말을 해야할까. 사실은 즐거운거라고 솔직하게 대답을 해줘야할까? 너무 행복했던 그 순간을 떠오르면 지금의 자신이 무너져버릴거 같아서 일부러 상자로 꽁꽁 싸매고 마음 한구석에 묻어버렸는데...
어린 자신이 울고 있는 거 같은 게 슬비의 눈에는 보였다. 언제까지 저기에만 얽매여 있어야하나...
생각해보면 지금도 참 행복한 나날도 많은데, 왜 그건 무시하고 있는거였을까.
"...티나 씨."
"왜 그러지, 이슬비?"
"벚꽃놀이 자체는 그닥 즐거운 건 아니에요. 벚꽃놀이가 즐거운 건..."
쓰읍- 심호흡을 티나 몰래 한번 했다.
"그때 같이 있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행복한 추억을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군...그럼 난 아직 그 감정을 모르는 게 당연하군. 난 아직, 벚꽃놀이를 해본적이 없다."
"그럼 지금 늦긴 했지만 저희도 떠날까요?"
지금 신서울의 어딘가에서 벚꽃놀이를 하고 있는 검은양과 늑대개 팀원들은 자신들이 합류한다고 하면 반겨줄 것이다. 그걸 진작에 알고 있었으면서 왜 무시하고 있었던건지.
지금도 이렇게 행복한 일이 이렇게 많은데 말이다...!
따스한 바람이 벚꽃나무 가지를 스쳐지나갔다.
[여름] 이세하 & 서유리
이세하의 눈에서는 별처럼 반짝이는 눈물이 쏟아진다.
그 눈물을 처음 보았을 때, 유리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남이 우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참 이상한 취향이지 않나 싶었지만 세하는 정말 그 표현이 딱 어울렸다.
그날 세하는 울고 있었다. 별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거 같은 어느 한여름밤의 신서울에 흔하게 있는 언덕 위에서였다. 별을 관찰하고 있어서였을까? 그래서 그런 비유를 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하가 운 이유는 잘 모른다. 그냥 어쩌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세하가 울고 있었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양파 썰다가 눈이 매워서 등등의 변명을 하지 않고 유리가 자신이 우는 걸 지켜보는 걸 별말 하지 않았던 걸 보면 세하는 그 사실을 숨길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하도 유리가 그때의 일을 말하면 자신이 눈물을 흘렸다는 걸 바로 인정한다.
왜 울었던걸까? 유리가 아는 한, 세하는 참 강한 아이였다. 임시본부 사태에서 나약한 눈물 하나 보이지 않았던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세하는 특히 나잇대가 어린 걸 감안하면 참 대단한 일이었다.
-세하도 우는구나, 참 별일이네.
-...별일인지도?
-난 그래서 세하가 사람 아닌 줄 알았어.
울지 않아서? 아니, 그건 좀 자그만 이유다.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들자면 자신의 감정 표현에 대해서 상당히 인색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우는 것, 화내는 것 등은 부정적인 감정이기에 표현 자체를 거부하는 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세하는 그런것들을 포함해도 기쁨, 행복, 안도감 등도 표현에 참 인색했다. 덕분에 유리가 세하가 자그만 감정 표현이라도 하는 날이면 아주 신기해하며 몇날며칠을 놀렸다. 아, 혹시 자신이 그렇게 놀렸기 때문에 싫어하는 건가?
-난 인간이야. 뭐, 평범한 인간은 아니지만. 왜...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사람 우는 거 처음 봐?!
-아니, 그게...
뭐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세하는 참 조용히 울었다. 흐느끼는 소리도 없었다. 또르르- 눈물만 떨어질 뿐이었다. 별똥별 같이. 그 눈물에서 유리가 느꼈던 건 슬픔 하나뿐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는 타이밍도 좀 엇박자였다. 지금은, 힘든 시기도 아닌 편안하게 정식 휴가를 받은 시기였다. 모든 감정의 극대화는 결국 울음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이게 기뻐서 우는 감정은 아니었다. 슬퍼서 우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이건...
-...외로워?
-...응?
-세하 우는 거 보고 흘러내리는 별 같다고 생각했어. 예쁘기도 하는 한편...어딘가 쓸쓸해보였어.
사람들이 막 별자리식으로 억지로 이어지게 하고는 있지만 실상은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별들 주변에는 다른 별들은 없었다. 그래서 쓸쓸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세하에게도 그런 생각이 든 참이다.
-글쎄...그런걸까?
세하는 결국 그 날 자신이 운 이유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유리도 예의상 세하에게 물어** 않았다. 그 후로 세하가 우는 모습을 보진 못했다. 그런 경우는 있었다. 무언가 터지기 직전에, 유리를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우는 가끔 있었다.
만약 그때 세하가 다른 이들에게 기대지 않았으면, 유리는 또 세하가 우는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예쁘다고 생각되는 광경. 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광경. 솔직히 세하에게는...
-세하는 우는 것보단 웃는 모습이 더 잘 어울려~
-그건 서유리 너도 마찬가지거든...아, 이건 모든 사람들에게 포함되는 말 아닌가?
가끔 밤하늘을 보면 유리는 그때의 장면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다짐한다. 세하의 그런 얼굴 다시는 짓지 않게 해주겠다고.
[가을] 바이올렛 & 볼프강
"...어?"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볼프강은 참 난처했다.
오랜만에 받은 일일 휴가였지만 그래도 느긋하게 바람이나 쐬고자 해서 현재 머무르고 있는 신서울의 어느 경치 좋은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그리고 알맞은 곳에 벤치가 있어서 앉으려고 했지만 먼저 온 숙녀 한분이 계셨다. 마침 가을이라는 계절에 맞게 한손에는 책을, 다른 한손에는 차가 따라진 찻잔을 쥔 채로.
'공원까지 티타임을 즐기려고 나오는 사람이 있나...?'
볼프강은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모처럼 받은 휴가날까지 시시콜콜한 잡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때야 그나마 머리와 마음의 어지러운 것들을 비우고 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유니온의 일을 제정신을 차려가며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독서를 하는 여자의 옆벤치에 앉는데, 앉으면서 여자가 든 책의 제목이 확 눈에 띄였다.
'사랑과 차원종과 선거? 무슨 책 이름이...?'
처음 들어보기도 하고 게다가 특이한 제목 때문인지 계속 눈이 그쪽으로 가는 볼프강에게, 여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책을 좋아하시나요?"
"책?"
이과와 문과 중에서 굳이 고르자면 문과인 볼프강은 책을 좋아하진 않았다. 독서는 취미긴 했다. 그 빌어먹을 검은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가씨만큼 좋아하진 않는 거 같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죠. 한번 속는 셈치고 한번 읽어보는 건 어떠신지요?"
"...하?"
여자는 자신의 옆에 있던 수북히 쌓인 책(모두들 화려한 컬러표지의 책들이었다!) 중 하나를 꺼내 볼프강에게 건넸다. 여자가 지금 읽고 있는 책처럼 볼프강의 취향과는 거리가 영 먼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자세히 보았지만 여자, 아니 소녀는 참 소녀틱한 취향의 집합소였다. 이런 소녀가 읽는 책은...아마도 연애소설일게 분명했다. 그리고 볼프강은 연애소설은 별 취향은...아니었다.
"나, 나중에...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지?"
"...빌어먹을 직장 때문...으아아악! 이 남자는 또 뭐야!?"
"처음 뵙겠습니다. 하이드라고 합니다. 놀라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부, 분명 아직까지만 해도 소녀만 있었다! 근데 옆에 갑자기 나타난 집사복을 입은 이 정체불명의 남자는...!! 심지어 친근하게 말까지 걸고 있었다. 소녀는 하이드라는 남자가 익숙한 듯 하이드가 따라주는 차를 받아마시고 있었다. 지...집사인건가? 하긴, 부잣집 아가씨 냄새가 나긴 했는데 정말이었구나...소녀는 이번에는 볼프강에게 찻잔을 건넸다.
"그럼 책보다는 차를 마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한잔 드시겠어요?"
"...이왕이면 홍차보다는 커피로 부탁하지."
"하이드, 커피를 부탁해요."
"네, 아가씨."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부탁을 하는 거 보면 부잣집 아가씨가 맞았다. 심지어 저 하이드라는 남자는 소녀를 보고 '아가씨' 라고 했다. 이젠 확정이었다.
커피가 완성되는 동안, 소녀와 볼프강은 좀 더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대화 주제가 잘 맞았다. 결국 날이 저물때까지 수다를 떨어 헤어지려던 순간, 소녀가 먼저 볼프강에게 손을 건넸다.
"제 이름은 바이올렛이에요. 당신은요?"
"볼프강 슈나이더. 클로저지."
이것이 바이올렛과 볼프강의 우연찮은 첫 만남이었다.
[겨울] 이세하 & 서유리
겨울은 참 쓸쓸하다. 세하의 아주 개인적인 감상이다.
겨울은 봄, 여름, 가을에 비해 참 쓸쓸하고 황량한 계절이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회색빛으로 보이는 우울한 계절이다.
사람마다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세하 개인적인 감정으로는 겨울은 참 최악의 계절이었다. 날씨랑 사물에 비추어지는 빛깔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걸로 이런 떼를 쓰기에는 이미 나이를 많이 먹었다.
겨울에 유독 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아빠가 죽었을 때도, 엄마가 없는 빈집을 홀로 지켰던 나날들도, 항상 혼자 있었던 모든 나날들은 모두 추운 겨울이었다.
그래서 겨울은 자신과 영원히 친해질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은 친해질만한 계기는 생겼다.
얼마 전의 일이다. 유리와 만나 크리스마스 트리가 한껏 장식된 거리를 걷자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내리는 솜뭉치에 두 사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눈이다.
-돌아가는 길 춥겠네.
-이세하 씨는 어쩜 그렇게 낭만이 없으세요? 겨울이야! 눈이야! 즐겁지 않아?
-...
즐겁지...않다.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은 겨울에다가 음침한 비도 내렸다. 어쩌면 눈이 같이 섞인 진눈깨비였을지도 모른다.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잖아! 화이트 크리스마스야!
크리스마스 이브. 세하가 유리와 만난 이유가 그 날이었기 때문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낭만적인 어감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 뿐. 더 이상의 감정은 없었다.
-세하와 같이 눈 맞으면서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네~
-...좋아?
-응!
유리의 환한 미소. 세하는 유리의 이런 꾸밈없는 미소를 참 좋아했다. 그렇게 한참 눈을 맞고서 두 사람은 한적한 카페로 들어갔다.
밀크티를 마시며 유리가 말했다.
-가끔 보면 세하가 겨울 싫어하는 거 거의 병적으로 보여.
-...나한테는 정말 안 좋은 계절이었으니까.
나쁜 기억도 있었고, 칙칙한 회색빛이 공간 전체를 감싸는 것도 싫어했다. 이 말을 유리에게 불쑥 해버렸다. 세하의 말을 들은 유리는 세하가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으로 상처를 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단숨에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짐은 덜어주고 싶었는데...문득 눈이 쌓여가는 바깥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회색빛이라...그럼 세하는 나랑 같이 눈 오기만을 기다려야겠네~
-무슨 의미야?
-바깥에 봐봐. 지금도 네가 말한 회색빛으로 보여?
어느새 눈발이 쎄진 바깥은 세하가 말한 회색빛이 아니었다. 하얀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런 꾸밈 없는 색깔, 깨끗해서 빛처럼 쏟아지는 거 같은 세상이 세하의 눈에 펼쳐졌다.
아무 반응 없는 세하의 어깨를 살짝 치면서 유리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싫어할거 같아?
-...
-그리고 겨울마다 내가 세하의 옆에 있어줄게. 더는 외롭지 않게. 더 이상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게.
-...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저런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자기 마음은 자신도 잘 모르겠다. 다만 유리의 저 말이 참으로 따뜻했다. 같이 있어준다는 말,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게 해준다는 말.
세하는 유리가 참 고마웠다. 재차 확인했다.
-겨울마다?
-응. 아니면 1년 내내 같이 있어줄까?
-...
넌 어쩌면 그런 말을 꾸밈없이, 해주는 거니. 말도 행동도 참 그렇게 따뜻한거니. 나한테는 이 과분한 사람...
겨울을, 조금은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이 세하의 안에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