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of Striker-이세하 Ep-17 구로-도시 속 외딴 섬
Sehaia 2018-01-04 3
“어머, 얘들아. 어서 오렴.”
“네, 언니. 검은양 팀 이슬비, 서유리, 이세하, 지금 막 도착했습니다.”
“그래. 오면서 어땠니? 기차는 그다지 문제없었지?”
“네. 기차 내 차원압도 안정적이었고, 기차 자체에도 큰 문제는 없어보였습니다.”
“그래, 그럼 안심이구나. 요즘 이상한 일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유정 누나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흘깃 뒤돌아 본 기차가 새삼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우리들이 확인하고 왔지만, 전문가도 아닌데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다.
선우란 요원은 헥사부사를 개량받기 위해 잠시 업무를 비웠다. 그 덕분에 우리는 단 두 대뿐인 구로행 열차를 탔고, 겸사겸사 의뢰받은 기차 속 위상력 억제기도 점검했다.
이런 건 제대로 된 전문가가 제때제때 점검하는 게 제일인데, 구로로 가는 김에 우리가 점검까지 하라니. 아무리 매뉴얼을 받았다고는 해도 지나치게 안일하다.
그 생각을 한 건 이슬비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직도 찜찜한지 불안한 눈길을 계속해서 기차에 두고 있다. 저게 망가지면 어떤 참사가 일어날지 들은 것만으로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경탄을 보내고 싶었다.
저 기차는 구로역에 오는 유일한 통로다. 아니, 두 대가 있으니 유이하다고 해야겠다. 어차피 한 대든 두 대든, 적기는 매한가지다.
차원 전쟁 때 거대한 차원종이 나타난 이곳, 구로는 그것이 죽으면서 남긴 막대한 위상력의 여파로 수시로 차원압이 불안정해진다. 그걸 안정화하기 위해 구형 지하철에 위상력 억제기를 탑재해서 주기적으로 운행을 한다. 그리고 도시를 빙 둘러서 투명하고 거대한 방벽을 쳐 차원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억제를 해 놓았다.
방벽은 기차가 들어올 때 잠시 입구를 해제하고, 평소에는 그 구멍조차 틀어막는다. 혹시나 위상력이 새어나가지 않기 위함이란다.
얼핏 듣기에는 이 이상 안전할 수 없을 거 같지만, 직접 기차로 들어온 우리의 소감은 많이 달랐다.
생각보다 구멍투성이다. 아니, 구멍 정도가 아니다. 구멍은커녕 이 구로 자체를 폭발물이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다.
“유정 언니, 아무리 생각해도 출입 수단과 차원 억제 수단을 하나로 두는 건 너무 위험한 것 같습니다.
“휴, 너도 그렇게 느끼니?”
“네. 방벽을 둘러쌌다는 건 차원종의 출입과 출몰을 힘들게 했다는 얘기죠? 그렇지만 뒤집어 말하면, 저 열차 없이는 사람들도 출입할 방법이 아예 없다는 얘기도 됩니다.”
“그래. 거기다 기차가 운행을 정지한다면 다시 차원종이 출몰하게 될 거야. 굳이 그게 아니라도 만약 강남처럼 차원압에 이상이 없는데 차원종이 출몰한다면......”
흐리는 말 끝자락에 매달려서 가능성의 탈을 쓴 위험이 우리들의 등골을 쓱 훑고 지나갔다. 기차가 막힌다면 이곳에게는 외딴 섬이라는 칭호도 사치다. 차라리 연락 두절된 우주 정거장에 가깝다.
외딴 섬은 헤엄을 치거나 뗏목이라도 만들 수라도 있지, 이곳은 방벽에 있는 출입구를 막아버리면 완전하게 고립된다. 억지로 나가려고 하면 차원종조차도 뭉개버리는 차원압에 노출되어 곤죽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 사는 것 자체가 모험이다.
찜찜한 기분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든 누나는 잠시 편의점에서 마실 것이라도 사오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했다. 가보면 반가운 얼굴이 있을 거라면서.
내가 반가워할 사람이야 얼마나 있겠냐 싶어서 간 편의점에는 빗자루로 바닥을 쓸면서 틈틈이 게임을 하는 석봉이가 있었다. 그러다 사람이 나타나자 급히 주머니에 게임기를 숨기다, 우리라는 걸 알고 안심한 모양이었다.
만약 내가 점장이었으면 당장이라도 잘라버렸을 텐데. 이런 게임 중독자는 고용하면 일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그러니 어서 유니온이 날 해고해줬으면 좋겠다.
“어, 세하야. 여긴 어쩐 일이야? 유리도 있고. 아, 안녕, 슬비야?”
“여어, 가 아니라. 넌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응? 알바 중인데?”
그런 건 보면 안다. 무릎까지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편의점 앞치마만 봐도 충분하다. 묻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다.
“여긴 차원종이 종종 나타나는 위험한 곳이잖아? 굳이 이런 데까지 와서 알바를 해야 해?”
“응? 근데, 여기 알바비는 많이 줘. 구로 중심부는 이따금씩 차원종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 언저리는 그럴 위험도 없고. 중심부에서 나온 것들도 차원압 때문에 여기까진 오지도 못한데.”
별 이상할 것도 없다는 듯 눈을 끔뻑거린다. 이 녀석이 겁이 많은 건지, 겁을 상실한 건지 도저히 분간이 가질 않았다. 이런 곳에 계속 있다 보니 감각이 마비되기라도 한 건가? 평소에는 차원종의 사진만 보여줘도 얼굴을 찡그리던 애였는데, 당황스러웠다.
“너 차원종은 무섭다고 맨날 그랬잖아?”
“세하야, 슬비가 있는데 그런......아니, 아니야. 그게, 나도 처음에는 되게 무서웠는데, 두 달쯤 여기서 일하다보니 별로 무섭지도 않더라. 여기까지 오는 걸 본 적이 있어야지. 차원종의 ‘차’도 못 찾아보겠어.”
이 주변은 차원압도 확실히 안정되어있었다. 기차에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딱히 여기에 차원종이 출몰할 여지는 없다. 석봉이가 이렇게까지 태평한 별다른 파괴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중심부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다 보니 중심부의 차원종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릴지도 의문이다.
옆 나라 일본에서는 수시로 지진이 일어나서 어지간한 지진에는 놀라지 않는다는데, 그와 비슷한 상황인가보다. 흔히 말하는 안전 불감증이다.
옆에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서유리는 돈 때문에 위험한 곳에 왔다는 것에 큰 공감을 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돈 때문에 클로저를 하는 거였지.
“너도 돈이 많이 궁하구나. 내가 그 맘 알지. 좋았어! 빈곤한 널 위해서라도 이곳의 안전은 내가 지켜낸다!”
“네 상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유리야. 그렇게 추켜세워 줄 거 없어.”
“아냐. 나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쓸 돈을 직접 벌다니, 훌륭한 자립심이야.”
“아, 아니, 난 그저, 급히, 돈이 필요, 해서......”
대단하다는 듯이 두 눈을 빛내는 이슬비가 부담스러운 건지, 석봉이는 말을 더듬었다. 쟤는 이슬비한테 평소에도 관심이 있는 것 같던데, 진지하게 칭찬까지 받는다면 쑥스러울 만하다.
하지만 그 너머의 속내를 이슬비는 모른다. 굳이 이런 곳까지 와서 일할 정도로 돈이 궁한 이유를.
난 안다. 쟤의 게임 계정이 슬슬 계약기한이 다 되어간다는 걸. 플레이하는 게임이 한 두 개가 아닌데다가 곧 새로 나올 게임을 사려면 게임으로 버는 돈 가지고는 택도 없을 거다. 이걸 말할까, 말까.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아직 작전 수행까지는 여유가 있는 거 같아 요원복에서 게임기를 꺼냈다.
수습 요원이 되면서 팀원들에게 각각 요원복이 지급됐다. 검은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커먼 외투가 공통적으로 있고, 나머지는 개개인의 요망에 따라 다르게 파츠를 넣어줬다. 여담으로, 서유리는 사이즈가 유정 누나의 사이즈로 나와서 외투는 입을 수 없다. 어느 사이즈가 안 맞는지는 추측에 맡기겠다.
외투도 다 똑같지는 않고, 나와 이슬비는 옷깃에 털이 북슬북슬하게 달려있지만 아저씨와 미스틸의 외투는 트레이닝 복이라고 봐도 무방한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검은색 외에는 통일감은 별로 없다.
유니온에서 연구한 특수 섬유를 이용해서 제작한 옷이네 뭐네 해도 입어보면 별 느낌은 차이가 없다. 그래도 위상력에 반응해서 어느 정도의 충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이런 게 있었으면 말렉과 싸우기 전에 줄 것이지.
아직 이걸 입고 맞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호주머니가 딱 게임기 들어가기 좋다는 정도의 감흥밖에 없다. 그 외에는 옷깃에 장식으로 붙여놓은 털들이 방해된다.
“너, 여기까지 게임기 들고 온 거야?”
“뭐? 당연한 거 아냐? 한동안 여기서 지내**다며? 그럼 이건 필수품이지. 석봉아, 충전기는 나중에 좀 빌린다.”
“당연하긴 무슨. 제대로 작전을 수행할 생각이 있는 거 맞아?”
“아무렴, 제대로 안 하면 여기 갇혀 지내게 생겼으니 열심히 해야죠, 네네.”
실수는 하지 않는다. 나라고 해서 이런 데에 갇혀있고 싶은 건 추호도 아니다. 그렇다곤 해도, 석봉이가 이렇게 태평해질 정도니 별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게임도 조금은 해도 될 것 같다.
이슬비의 잔소리는 적당히 넘기고 게임기를 켰다. 문득 인벤토리를 확인해보니 전에 얻어뒀던 레어 아이템이 눈에 띄었다. 자랑하려고 고개를 들어 본 석봉이는 약간 아쉬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너희들은 사이가 좋네......”
“뭐?”
“아, 아무것도 아니야......그보다 너희 바쁘지 않아? 여기에 이렇게 있어도 돼?”
“기차 내 시카메라 영상이 확보되면 알아서 호출할 테니 문제없어. 그보다 여기 술은 안 파나? 캔맥주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무슨 여기 와서도 술 타령으.......깜짝이야! 아저씨 언제 왔어요?”
기척 없이 스슥 나타나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는 아저씨가 있었다. 미스틸을 목마 태우고 있으면서 남의 어깨에 팔을 올리다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당장 그 팔을 치우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참 전에 와서 미스틸 구경이나 시켜주고 있었지. 우린 이미 석봉이랑 인사는 다 끝냈는데, 네 친구였니?”
“아, 예. 같은 반인데요.”
“제이 아저씨, 역 내 구경은 잘 하셨어요? 세하하고 같은 팀이셨나 봐요.”
“그래. 세하한테서 팀에 멋있고 늠름한 형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 그게 바로......나다!”
“어, 아뇨. 폼만 잡고 완전 허당인 아저씨가 한 분 있다고 했는데요?”
야, 이 배신자야, 그걸 말하기냐. 이 눈치 없는 놈아, 지금 상황에서 그걸 말하면 내 입장이 도대체 어떻게 될지 생각을 하고 말하란 말이야.
은근 슬쩍 올려다 본 아저씨의 얼굴은 깔끔하게 웃은 채로 굳어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머리를 주먹으로 얻어맞는 건 두통이 생기니까 싫다.
“동생? 잠깐 나 좀 볼까?”
“어이쿠 잠시만요, 아무래도 호출이 온 것 같으니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상황을 직접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듯 때맞춰 울려준 호출 소리가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왔구나. 지금 송은이 경정님이 검은 붕대의 남자에게 붙인 발신기의 자취가 확인됐어.”
“발신기요? 그건 언제 붙이신 거예요?”
“흐아암, 너희가 말렉과 교전할 때 한 번 상대해봤어. 당연히 유효타는 거의 안 들어갔지만, 발신기는 붙이는 데 성공했다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품을 하며 범상치 않은 말을 하고 있다. 특경대는 분명 비위상 능력자로 구성된 조직이다. 송은이 경정도 당연히 위상력이고 뭐고 없는 일반인이다. 장비도 특별히 대단한 걸 쓰는 것도 아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특경대의 보급 장비다. 이거라면 기껏해야 D급 차원종이나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그럼 맨몸으로 위상 능력자를 상대했다는 말이 된다. 이건 게임으로 치면 에러야, 치트잖아. 당신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평소에는 하품이나 하고 딴 짓하기에 바쁜 사람이 올려온 전과를 믿기가 힘들었다. 아저씨도 그렇고, 이 경정도 그렇고, 적당 적당한 사람들이 이상하게 강한 건 기분 탓이길 바란다.
“산전수전을 겪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거란다, 아직 어린 동생이여.”
경악한 내 얼굴을 보고는 느끼는 게 있었나보다. 그렇게 선글라스를 쓱 밀어 올리면서 얘기해봤자 별로 폼도 안 나니, 제발 그만둬줬으면 좋겠다. 아저씨의 샛노란 선글라스에 햇빛이 비쳐서 괜히 눈만 부셨다.
“여기로 온 게 확실한 거겠죠, 송은이 경정님?”
“제가 붙인 발신기는 기차에서 수신이 끊겼어요. 언제 눈치 챈 건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기차에 탔던 적은 있다는 거예요. 아직 구로에 있을 거 같네요.”
검은 붕대를 감은 남자라. 그런 수상한 사람이 당당하게 기차를 탈 수 있을 정도라면 얼마나 보안이 약한 건지 알 만하다. 그보다 미리 수배령을 내리고 기차의 출입을 막는 게 정상이다. 일 안하냐, 유니온.
물론 걸어 다니는 폭탄 같은 인간을 함부로 수배령을 내렸다가는 무슨 일을 벌일지는 모른다. 그렇다곤 해도 너무나도 안일한 대처에 나올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기차를 운행하는 건 당장 그만뒀어야 했다. 안일한 대처가 불러올 참사에 대해서 생각하다 한 가지 느끼는 게 있었다.
이 구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설계를 한 건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곳은 혹시 출현할지도 모를 차원종을 가둬두기 위한 곳인지도 모르겠다.
설마 그러겠냐.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몇 명인데, 그럼 그 사람들은 죽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아닐 거라고 말하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미묘한 위화감을 아무리 해도 떨칠 수가 없었다.
“혹시 기차에 무슨 조치를 해놨다면 큰일이겠네요. 그럼 너희들은 기차를 다시 조사해 봐 주겠니? 여기 소형 카메라와 마이크가 있으니, 모두들 그걸 착용하고 기차를 확인하고 와 주렴. 난 여기서 모니터링 하고 있을게.”
“알겠어요, 언니. 그럼 제이 아저씨와 세하는 1호기를 탐색하고 와 주세요. 저와 유리, 미스틸은 2호기를 탐색하고 오겠습니다.”
“충서엉. 느긋하게들 돌고 와아.”
가만히 있는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얌전히 아저씨와 함께 1호기 기차를 향해 걸어갔다. 쉬지 않고 구로 전체를 빙글빙글 돌다보니, 차라리 이쪽에서 가는 편이 기다리는 것보다 빨랐다. 노선도를 보면서 가장 금방 올 법하다 싶은 장소를 찾아 대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기차에 아저씨와 난 함께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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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드디어 구로편 시작입니다.
작중 설정을 보면 구로도 정말 괴상한 동네던데요. 선우란 요원을 통해서는 출입이 되는데, 정작 출입은 단 두 대의 기차로만 가능하다고 하고. 그 부분은 기차가 다니는 출입구가 따로 있고, 그 부분은 기차가 다닐 때만 열린다고 어찌어찌 설정을 살짝 틀었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거기다 이 동네, 심지어는 멋대로 나가지도 못해요. 그러자 딱 그 영화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비티. 도시 안에 갇힌 상황이 우주 공간에 버려진 거하고 딱히 다를 게 없어보였어요.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
Ep-16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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