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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cStricker 2018-01-03 2
세계에, 거대한 변혁이 일어났었다.
배신자, 데이비드 리. 그가 일으킨 거대한 돌풍은 전 세계를 덮쳤고, 그대로 전 세계가 그의 손에 넘어갈뻔 했었다.
지고의 원반을 지배함으로써 그 자신이 절대자로 군림하겠다는 위험한 사상과 함께, 세계가 그의 색으로 물들뻔 했었다.
그리고, 그를 막아낸 10인의 영웅들.
솔직히 그들이 부러웠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어야만 했었거늘. 어째서 나는 저들보다 강하지 못한것일까.
불과 몇달전만 하더라도, 그들은 견습생, 견습요원밖에 안되었을텐데. 어째서 나는 저들보다 재능이 넘치지 못한것일까.
최후방 에서도 가장 최후방이라고 생각되는, 그저 유니온 한국 지부의 건물에서 경비를 서는것밖에 할수없는 나의 처지에
언제나 한숨만이 나올 뿐이었다.
"…."
언제나와 같은 현실에 점점 지쳐간다.
언제쯤이면 나는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수 있는것일까.
반역자 데이비드 리를 무찌른 10인의 영웅들.
내가 그들을 찍어 누른채로 그 위에서 선배 행세를 하며 이것저것을 가르쳐주는 상상을 얼마나 많이 했었던가.
자신보다 어린 그들의 행적에, 나는 얼마나 부러워 했었던가.
한참을 생각했었다. 그들을 뛰어넘기 위해서 나는 무슨짓을 해야하는가.
이 나의 이야기는 언제쯤이면 시작되는것일까.
이 이야기는, 아직 시작조차도 하지 못했었던 나의 이야기이다.
- - - - - -
따르릉-!
경쾌하게 내 귀에 울려퍼지는 맑디 맑은 자명종 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하아."
여느때와 다름없이 즐거운 꿈을 꾸었다.
내가 A급 요원이 되어 약속된 지위와 함께 신서울의 영웅이 되는것을.
하지만 난 알고있다. 나는 겁쟁이고, 재능도 없고, 약해빠진 애송이인걸.
한참을 불평해봤자 소용없는걸 알고있잖아? 어째서 너는 그렇게 무기력한거야?
끊임없이 나 자신이 나에게 물어온다.
그리고, 나 자신은 그 물음에 계속해서 대답한다.
"어차피, 나조차도 그 답을 모르는걸."
오늘은, 꽤나 우울한 하루가 될것만 같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근무지에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채로 불을 붙인다.
화륵.
라이터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꽃.
이런 불꽃은, '그' 에게는 너무나도 미약한 불꽃이겠지….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강하게 뺨을 친다.
짜악-!
경쾌한 소리가 건물 내에 울려퍼진다.
주변에는 무슨 소리인지 힐끔 힐끔 쳐다보고 지나가지만, 딱히 상관은 없다.
어차피 저런 시선 한두번 받는것도 아니고…. 익숙하다.
"이런생각 하면 안되지. 좋은생각. 좋은생각."
자신이 결코 좋은사람이 아님은 알고있다.
언제나 질투하고, 멸시하는 그런 다수의 입장일뿐. 언제나 돋보이는 소수의 입장에 서있는것이 아니니까.
언제고 선망하는 그 영웅들의 감정을 나는 언제까지고 이해할수 없겠지.
자기 자신은, 그저 그런. 평범한 인간인것이다.
언제까지고, 그러면 되는것이다.
…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요즈음 시간 감각이 조금씩 둔해지는걸까, 정신을 차려보니 몇 시간이고 훌쩍 지나가버린 때가 많아졌다.
뭐, 요즘 피곤하기도 했으니까. 잠깐 근무지에서 졸아버린것도 이해한다.
그런데 어째서, 몸을 움직일수가 없는거지?
"하하…, 도데체 뭐야. 너무 오래 서있어서 다리에 쥐라도 난건가…."
그런데, 쥐라도 났다기엔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
아니,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라기 보다는…. 지금, 내 하반신이 존재하고 있는걸까?
투욱-.
"뭐야…, 이거."
잘 움직이지 않는 한 손으로 내 뺨을 만져보았다.
아니, 만져보았어야만 했다고 하는게 맞는걸까.
나의 오른손은 이미 사라져 있었으니까.
"…뭐야."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런일이 생겨난거지? 라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내 오른손은 어째서 사라져 있는거지? 내 하반신은? 하반신엔 왜 감각이 없는거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던 찰나에, 오른손이 없다는것을 인식하자, 극심한 고통이 내 온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끄, 끄아아아아아악!!"
모든것이 텅텅 비어버린채로 유혈만이 난무해 있는 건물 내부에서, 커다란 나의 비명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아아, 그냥 이대로 모든것이 끝나버렸으면.
점점, 의식이 멀어져만 간다.
…
또 얼마나 지난걸까.
이 표현만 도데체 몇번째인지 모르겠다.
나는 살아는 있는걸까. 어쩌면 벌써 저승에 와있는걸지도.
"지부장님, 깨어났습니다."
"음, 수고했네…. 이봐, 슬슬 정신이 좀 드는가?"
어째서인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에 겨우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깨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걸세. 한번 팔을 움직여 보겠나?"
까딱.
오른팔 하나 들 힘조차 없어 겨우 손가락을 움직이는것이 전부다.
…손가락?
어째서 손가락이 있는것일까.
도데체 무슨 연유로 사라졌던 손가락이 붙어있는것이지?
영문을 알수없는 일들 투성이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나의 하반신과 오른손이 사라져있었고.
정신을 잃고 깨어났더니 나의 오른손이 다시 생겨있었다.
"아마 꽤나 혼란스러울게야. 충격이 꽤나 컸으니. 그때 당시의 일은 기억하나?"
아까부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에, 고개를 젓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음, 아마 충격으로 인한 부분적인 기억 상실인가…. 좋아. 이제 질문을 다시하지."
손에 들린 파일에 무엇인가를 적어내던 중년의 남성은, 꽤나 얼굴을 험상궂게 바꾸더니 나에게 물어왔다.
"자네, 도데체 어떻게 살아있는거지?"
무엇을 말하는것일까. 어째서 겨우 살아난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있냐고 묻고있는것이지?
"그때, 우리는 소식을 접하고 5시간만에 겨우 그 건물에 도착했어. 그 말도안되는 출혈량…. 자넨 죽었어야 정상이야."
도데체 무슨소릴…. 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질문을 바꿔 다시 한번만 묻지. 자네, 차원종인가? 아니면 인간인가?"
무슨말을 하는건지 도무지 이해를 할수가 없다.
무엇을 나에게 묻고있는거지? 어째서 저런말을 하고있는거지?
그에게 장난어린 투가 묻어나온다고 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진심으로, 진지하게 물어온것이다.
조금씩 떨리는 입으로, 겨우 입을 열어 대답했다.
"…질문, …의, …의도를, …알수가, 없, …습니다."
"…그러겠지. 죽다살아난 사람에게 내가 무엇을…. 별거 아닌거이니 신경쓰지 말게나."
순간, 얼핏보인 그의 눈에는 안도감이 서려있었다.
…. 차원종으로 착각을 받은건가.
그런 참상에서 오랜시간동안 살아남았으니 차원종이 사람의 형태를 한채로 연기를 하는것인가 라는 의구심도 들만하다.
그런곳에서 살아남기란, 정말로 극히 희박한 확률이었으니까.
10인의 영웅중 한명인 레비아나, 차원종의 참모장이라는 애쉬와 더스트.
인간형 차원종인 그들이라는 선례도 있으니, 더욱이 그런 의구심이 들었던것이겠지.
"읏차. 난 이만 가보도록 하겠네. 사라졌던 손과 하반신은 기계로 대체할수밖에 없었지만…, 꽤나 쓸만할게야."
중년의 남성은 그 말을 남긴채로 방에서 나갔다.
"…지부장이라 했었나, 그 사람."
나같은 일개 말단을 위하여 이런곳까지 찾아오다니.
지부장이란 직책도 꽤나 한가한 자리인건가.
아니, 그럴리가 없겠지. 그저 불안감 하나때문에 나에게로 찾아온건가.
…이렇게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플 뿐인가.
지금은 그저, 그저 회복에만 집중하도록 하자.
"언젠가는."
언젠가는, 내가 높은 자리에 설수있겠지.
나의 이야기는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테니까.
…아무도 모를 이야기는, 그 참상에서 부터 시작되었을것이다.
사라졌던 그 참상에서의 기억이, 그날 내가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이 그렇게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줄은, 그땐 아무도 몰랐다.
그 참상에서 살아남은 나는 물론이고, 나를 구한 지부장도, 그 누구도.
후에 일어난 그 일들이 일어날줄은…, 아무도 몰랐을것이다.
이것은, 내가 클로저들의 '낙오자' 로써 써내려가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후에,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클로자들의 '낙오자' 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가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그 참상에서 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