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종이 나타난 그날, 우리의 인생은 비참했다. 그리고 나는...
검은코트의사내 2017-12-29 0
클로저들에 비하면 나는 겁을 먹고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반인은 차원종을 상대로 싸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소총도 통하지 않는다. 항상 차원종 경보만 뜨면 대피소에서 몸을 숨기는 게 전부였다. 매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무서워하는 아이를 안고 있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만나는 것도 한 두번도 아니다. 이게 몇 번째 만남인 걸까?
대피소 안에서는 밖에서 차원종들과 싸우고 있는 클로저들의 모습을 중계하는 TV를 본다. 클로저들이 항상 이기기만을 바란다. 그래야 우리집도, 내 삶도 무사하니 말이다. 나는 부모와 떨어져서 서울에 혼자서 살고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생으로써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언제부터였을까? 차원종 경보가 울린 게 말이다. 차원종이 출현하는 지역을 떠나고 싶지만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고 특경대들이 막아섰다. 다른 지역에도 차원종이 출현한다고 했다. 여기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도 일어나고 있다니, 지금 세계는 누구나 알 듯이 우리같은 일반사람들은 겁을 먹으면서 대피소에 숨어있는 처지고, 능력을 가진 클로저들은 차원종들과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내 나이 스물 여덟, 대학교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중이었지만 차원종들 때문에 나는 마음놓고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그놈의 차원종은 왜 시도때도없이 계속 나타나는 걸까? 처음에는 클로저들이 차원종 무리를 물리쳐서 경보가 해제되었을 때 그걸로 끝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다음날, 또 차원종 경보가 울려서 대피소로 대피하고 다음에도 또 대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클로저들은 그 때마다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었기에 대피소에 온 사람들은 마치 당연하듯이 대피소에 아예 생활용품을 가지고 왔다.
"자, 얘들아. 저녁 먹어야지."
여기가 집인 줄 알고 행동하는 거 같았다. 아주머니와 남자아이 두명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혼자이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산 삼각김밥을 한 입에 문다. 차갑지만 그래도 한끼를 먹는데에는 충분했다. TV를 보면서 언제 경보가 해제되나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역시 평화가 제일 좋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전쟁을 벌여서 승전국과 패전국, 둘다 피해는 있었다. 양쪽 다 희생자가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어떤 사람은 아예 여기서 화장을 하거나 텐트를 쳐서 거기 안에서 아예 하룻밤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확실히 그럴 만도 하지. 그리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였다. 나와는 비슷한 나이의 사람인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매일 외로운 상태에서 보내려니 말동무가 되어줄만한 상대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실례합니다. 혹시 저녁은 드셨나요?"
"아니요. 유감스럽지만 아직 저녁은 먹지 못했습니다."
사내는 책을 읽다말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남은 삼각김밥 하나를 내밀자 그 남자는 감사히 먹겠다면서 삼각김밥을 받고 잠시 책을 덮었다. 철학을 읽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보는 내용인데 무엇을 읽고 있었던 걸까? 나는 조용히 책에 대해 질문한다.
"저기, 실례지만 무슨 책을 읽고 계셨는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별 거 아닙니다. 그저, 흥미가 있어서 읽는 거 뿐이죠. 그쪽은 취업준비생이신가요?"
"네? 그걸 어떻게 아셨죠?"
"간단한 겁니다. 옷차림이 초라하고 수염도 자란 게 보이죠. 무엇보다 외모 단정을 안하시는 거 보면 적어도 어디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요."
확실히 내 옷차림은 흔한 백수라고 생각될 정도의 옷차림이다. 어디 취업도 제대로 안하고 오로지 공부만 열중하고 있으니 외모단정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편이었다. 나중에 면접이나 시험당일일 때 그 때 외모를 단정히 하고 가는 편이니 말이다. 어디 회사에 취직한 사람이라면 절대 외모단정을 소홀히 할 리가 없겠지.
"저는 장정환이라고 합니다. 그쪽은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사람들은 저를 검은날개라고 부르죠. 세상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여행이라면 혹시 전 세계를 여행중이신가요?"
"네. 그러다가 차원종 때문에 이렇게 대피소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요."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신세라는 것이다. 차원종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세상을 여행했을 텐데 지금은 대피소에서 이렇게 갇혀있는 신세였으니 말이다. 차라리 내가 능력자가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하면 이런 곳에서 지낼 일은 없겠지.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검은날개라는 분은 내게 말을 걸었다.
"차라리 능력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을 하셨겠지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뇨. 간단한 일입니다. 실은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만약 제가 위상력 능력자였다면 이런 곳에 갇혀있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언론에서는 보도되지 않지만 저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차원종과 싸움에서 클로저들도 목숨을 잃기도 하더군요."
목숨을 잃는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클로저들도 수없는 상처를 입는 건 사실이다. 대부분 생중계된 방송은 최정예 클로저들이 차원종을 쓰러뜨리는 것만 보도되는 거 뿐이라고 그분이 말했다. 커다란 섬광이 스크린을 가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차원종들이 처참하게 쓰러지는 장면은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알 거 같았다. 예전에도 지금도 보도되는 생중계에서 드러나는 클로저들이 전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 언론은 다른 클로저의 활약을 보여주지 않고 최정예 클로저들이 활약하는 것만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대부분 클로저들이 차원종을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지요. 그러니 저렇게 대피소에서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겁니다."
"왜 그런 짓을..."
"만약 진실이 알려지게 되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두려움에 떨어서 지금처럼 생활하지 못하겠지요. 저들은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조치라고 변명하겠지만 사실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내 머리로는 이 사람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없을 거 같았다. TV에서는 최정예 클로저 팀이라고 알려진 '울프팩' 팀의 활약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채널을 돌리려고 해도 어느 채널마다 같은 내용의 보도다. 그래... 이건 틀림없이 시청률을 노리기 위한 방송사의 각자의 판단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깨달은 모양이군요. 네. 언론사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신 거죠?"
"직접 봤으니까요. 이 두 눈으로 말이죠. 죽어간 클로저들이 살려달라는 소리까지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아무 능력도 없이 겁쟁이처럼 돌아다녀야했던 자였으니까요."
그는 자신의 선글라스 두 눈알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죽어간 클로저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지하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러한 사람들을 숨겼는지 몰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칠 뻔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놀랄까봐 자제했다.
"대체 왜 그런 희생을 한 사람들을 숨긴 걸까요?"
"두려우니까요. 만약 클로저들이 죽어가고 패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과연 대피소에서 안심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러한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안해하면서 지금처럼 살지 않고 겁쟁이처럼 몸을 사리면서 기다리고 있겠지요."
사실 나도 클로저들이 이길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렇게 대피소에 있었다. 확실히 내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건 클로저들이 이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진다고 생각이 드니 갑자기 공포가 밀려오고 있었다. 대피소에서 갑자기 뭔가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벽이 두드려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자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차원종들이 여기 대피소로 온 걸까? 분명히 언론에서는 차원종을 물리치고 있다고 알려졌는데 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뻔하죠. 언론에서 알려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 지금 드러난 셈인 것이죠."
검은날개가 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벽을 부수고 모습을 드러낸 괴생명체가 보인다. 저들이 바로 언론에 보도된 차원종이라는 녀석들이다. 평온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던 사람들은 패닉상태에 빠졌고, 다른 곳으로 대피하려고 했지만 차원종들은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차원종에게 죽임을 당한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구하고 싶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군인들도 상대할 수 없는 상대를 내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달아나지 않을 건가요?"
검은날개의 물음에 나는 도망가야겠다고 말했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차원종에게서 느껴지는 울음소리에 저절로 몸이 굳어져버릴 정도였다. 도망가야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도망을... 가야 되는데... 제발 발이 움직여라.
"아아악!"
내 눈앞에서 사람이 죽으면서 뿌려진 새빨간 피가 내 몸에 적신다. 이렇게 나는 죽는 것일까? 차원종이 이번에는 나를 노리고 있다. 어떻게 해야되지? 이 차원종을 상대로 도망칠 자신은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싸우는 수밖에 없다. 맨주먹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주먹이 닿지도 전에 놈의 팔이 내 얼굴을 베었다. 나는 심각한 고통과 함께 이제 죽었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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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인가? 아니... 지옥일 확률이 높았다. 주변은 어두운 분위기로 되어있으니 말이다. 손발도 제대로 움직인다. 죽은 후의 사후의 세계는 이런 곳이구나하고 감상하고 있을 때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건 사람이 있었다.
"이제 깨어났나보군요. 정신이 드셨습니까?"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검은날개... 당신도 죽은 건가요?"
"설마요. 당신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여기는 제 연구실이거든요."
"연구실?"
자세히 살펴보니 수조들이 보였다. 차원종이 죽어있는 모습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차원종이 갇혀있는 수조가 여기에 있는 걸까? 여행가라고 말했던 남자의 연구실이 왜 이런데에 설마... 이 남자도 혹시 능력자였던 걸까?
"혹시 당신도... 사실 위상력 능력자인 겁니까?"
"아, 저는 위상력 능력자가 아니에요. 거짓말을 한 건 사과드리죠. 저는 오래 전부터 차원종을 연구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차원종들의 세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보고 있었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대체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지? 왜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거야? 대체 무슨 소리냐고? 구원이라니... 그들이라면 혹시 우리같은 민간인들인가? 그러고 보니 내 얼굴에 뭔가 덮어진 것이 보였다. 뭐지 이건?
"만지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으니까요. 제가 겨우 복원해서 조각을 모아서 붙였거든요. 무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대체 당신은 정체가 뭡니까?"
"글쎄요. 인간과 차원종,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라고 생각해주세요. 사람들이 많이 죽은 모습을 보니 어떤가요?"
"당연한 걸 묻습니까!? 당신이 능력자라면 왜 그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던 겁니까?"
"구한다? 확실히 그랬으면 좋았을 지도 모르죠. 다만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어디에도 안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저는 위상력 능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차원종을 상대로 쓰러뜨릴 힘은 가지고 있지 않는 셈이 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남자가 말하는 대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건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내게 말했다. 사람들을 구하고 싶냐고 말이다. 그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두고 죽었다고 생각해보아라. 어떤가? 비참하기 짝이 없다.
"힘을 원하십니까? 더 이상 겁쟁이 처럼 살지 않게 할 힘을 말이죠. 전 당신에게 힘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어떻고 자시고 망설일 것도 없다. 이대로가면 나는 개죽음 당할 지도 모른다. 그러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더 나았다. 나는 힘을 원한다. 누구에게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한 힘을 말이다. 사람들에게 거짓을 알린 언론사와 그렇게 지시한 정부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내 손으로 구원해주고 싶다.
"힘을 원합니다. 내 손으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을 말이죠."
"그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당신이라면 적합자에 가까우니까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이순간부터 당신은 위상력 능력자가 되는 겁니다."
검은날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비어있는 수조의 문이 열렸다. 그 안으로 들어가라는 걸까? 나는 망설임없이 그 안으로 들어간다. 취업준비생으로써의 인생은 이미 글러먹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데 취직하고 평범하게 살려는 내 꿈은 오래 전에 망가졌다. 나는 새롭게 태어난다. 능력자로써... 또는 이 세상을 구원할 자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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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18년 후, 다시 차원문이 열리면서 차원종들이 출현하여 클로저들이 출동한다. 그리고 강남에 출현한 차원종을 쓰러뜨리고 구로역에 온 클로저와 Union, 특경대의 모습을 나는 건물 옥상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혼잣말을 했다.
"가련하구나. 어린 양들이여. 지금 너희가 하는 일은 구원과는 정 반대의 일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오로지 불행한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몸만이 할 수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능력을 물려받았다. 나는 그들보다 강하다. 앞으로의 일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얻었다. 그리고, 예지력을 얻어 미래의 일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되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진실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이 아직도 정의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그들을 구원할 것이다. 바로... 나 칼바크 턱스의 힘만으로 말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