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바운서드 2017-12-29 0
추위
아름다웠다. 추위가 아름다웠고, 천천히도 내리는 가루 같은 눈발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더란다. 그것은 일시적인 감정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너무나도 사랑했음에 분명했다. 외톨이였던 나를 포근하게도 감싸 주었던 작디 작은 하이얀 추위. 나는 오로지 사랑했다. 퍼져나가는 냉기에 내 몸을 사뿐히 내렸을 때, 세상은 나에게 쏟듯이 축복을 부어 주었다. 그 사랑 때문에 나는 살아갈 수 있었다.
아무리 옷깃을 올려도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파고들어오는 냉기는 멈추지 않고, 그저 내 몸을 탐닉했다. 뼛속까지 울리는 사랑. 까마득한 추위를 막아 보려 해도, 이미 내 곁엔 아무도 없었기에, 나는 무엇으로도 나에게 내리는 이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이빨이 뒤틀리고, 맞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손은 떨렸다. 아니, 몸이 떨렸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까. 하지만 살결에 사무치는 추위보다. 그리움이더욱 심각해져만 갔다.
그리웠다. 차갑기만 한 내 몸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 그가 그리워 참을 수 없었다. 벌써 3년이나 지난 일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길다란 추위에 얼어버린 뇌가 뿜어내는 최후의 발악일까.
아니, 그건 아닐 거야. 그냥, 내가 잊지 못하는 거야. 너를.
" ...오...왜....거기..서...있어....안..앉.....아..... "
마음대로 나오지 않는 말을 더듬어 말했다. 내 앞에 서 있는 그에게 하는 말이었다. 작디 작은 오두막 속 나와 그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는 시선으로 나를 더듬고, 나 또한 시선으로 그를 더듬었다. 둘의 시선이 일치하는 곳은 두 눈동자. 눈동자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부둥켜안을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도 힘겨웠다. 그의 눈은 슬펐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듯 촉촉히 젖은 눈망울을 바라보기가 너무나도 힘들었기에.
넌 춥지 않아?
슬비야.
난 지금 너무 추운걸.
안 돼, 안 돼...
모두가 슬퍼했어. 너 죽었을 때.
제발...안 돼..
왜 그랬어.
내가 곁에 있어.
왜 죽어야만 했니.
정말 미안해.
네가 죽은 이 계절은,
내가 옆에 있어 줄게.
매번, 꼭 나를 찾아오는 것만 같아.
끝이 올 거야. 이 계절의 끝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내 상반신은 무너졌다. 눈물로 앞이 흐려 보이지 않았다. 벌어져 닫히지 않는 입술은, 불규칙적으로 뿌옇기만 한 입김을 뿜고 있었다. 고여 있는 눈물이 쓰러진 나를 향해 흘러내렸다. 근데, 네가 왜 울고 있어. 왜 네가. 내 앞에 누워, 내 손을 잡아, 눈물 흘리는 것인지.
이 계절은 꼭 나를 찾아와
이제야 나는 너를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살을 도려낼 듯 추운 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뜬 곳은 오두막이었다. 장작이 타고 있어 따뜻했지만, 그대와 있던 오두막보다 싸늘한 오두막의 모습이 흩어져갔다. 흩어진 시야는 아무것도 ** 못했다. 오로지 청각으로만 입수되는 현실의 정보들을 그저 흘려넘기고, 하얗게 흩어진 시야를 가다듬었다. 힘없이 넘긴 고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옆 탁자 위에 놓인 은색 반지. 은색 반지에 새겨진 영어 문구는 그 시야 속에서도, 어째선지 뚜렷이 내 눈에 들어왔다.
You was the best thing that ever happened to me
너는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어
문구가 생각에 이르자 나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 마치 먼지와 재가 된 듯한 내 몸을 더듬어 보고. 나는 그 작은 반지를 매만졌다. 이젠 유언이 되어버린 작은 반지의 문구, 무채색의 세상에서 오직 빛나는 하나의 사랑. 옛날 내가 사랑했던 추위를 싫어한 나의 유일한 사랑. 그 사랑에 나는 울었다. 이 세상에서 네가 없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옛 사랑은 매일같이 나를 찾아오지만 지금의 사랑은 떠나갔다. 죽고 싶어서,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아 그저 울었다. 너를 보려고, 그저 다시 한 번 눈에 담으려 멈추려 했는데, 어째서 너는 계속 가라 하는지.
" ..사랑해...사랑해...사랑해... "
이제 더 이상은 보이지 않는 그리운 그대를 찾아 우는 작은 아이. 그 아이는 울었다.
듣지 못할 고백을 옛날의 후회와 함께 내뱉으며, 절망하며 울었다.
네가 끝날 거라고 말해줬던 까마득한 이 계절은,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밖은 오늘도 추웠다. 그저 장작 타는 소리만이 오두막 안을 희게 채웠다.
- The End
오랜만에 올려보는 소설이네요
세하는 죽었습니다. 3년 전에.
슬비는 세하를 그리워한 나머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타국의 설산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치려 합니다.
하지만 죽지 못하고, 어떻게 해도 세하를 만날 수 없다고 절망한 슬비는 울 수밖에 없습니다.
저 감정을 제대로 표현했어야 했는데, 귀찮아서(...) 그만......
절 아시는 분은 없겠지만, 아직 클저를 놓지는 않았기에, 다시금 소설을 쓸 수 있었습니다.
재밌게 봐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이만 글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글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