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의 생애시작 Ep-5 ㅅㅇ시작 (1부 완결)
Sehaia 2017-12-28 3
“꼴이 말이 아니네.”
“시끄러워.”
“나도 처음 그 로봇들 상대할 땐 거의 저 모양이었던가? 지금도 별반 차이 없지만, 피차 용케 살아있네. 야, 귀 막지 마.”
그게 싫으면 말을 말던가.
귀를 틀어막으려고 들어 올린 팔을 보게 될 때마다 혐오스러웠다. 팔 뿐만이 아니었다. 몸 안의 온갖 실핏줄들이 죄다 터져 몸 위에 핏줄들이 그대로 시퍼렇게 드러났다. 붓기가 빠지지 않는 부분도 군데군데 있어, 이대로 비누처럼 녹아내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평소보다 오히려 낫는 속도가 빠른 것이 더 괴로웠다. 로봇을 상대할 땐 몸 안에서 핏줄들이 터져나갔고, 이 감방으로 돌아오면 알아서 몸이 낫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나름 건강했다고 자부하는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처음 로봇을 상대한지 벌써 이주일이 넘었다. 한 번 로봇을 쓰러뜨리고 나면 몸을 더 이상 쓰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기 때문에, 그 다음 하루는 휴식을 위한 유예로 주어졌다.
어제는 하루 쉬었으니까, 오늘 13번이라는 소리가 감방을 쩌렁쩌렁 울려도 별 감흥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로봇이 나오는 곳으로 불려가겠지 싶었다.
그러나 도착한 곳은 지난번에 신성우가 다른 소년과 싸웠던 곳이었다. 주변은 투명한 무언가로 둘러싸여있고, 무기는 요즈음에 써온 길이가 어중간한 굽은 칼(백중현은 쿠크리라고 불렀다)과 사각 진 방패만이 주어졌다.
무기는 상관없다. 어차피 기계를 상대할 때 이젠 이것들 외엔 사용하지 않는다. 방패도 필요할 때만 들고 나중에 마무리를 지을 땐 던져두는 편이다.
그러나 나를 이 장소로 불러냈다는 건.
“이봐, 예비 위상능력자라고 하는 게 이 애송이를 말하는 거였나? 이딴 걸 상대하고 주는 게 그런 거금이라니, 당신들도 정말 수지 안 맞는 장사를 하는군 그래.”
“그런 건 네 알 바가 아냐. 여기서 있었던 일을 발설하면, 알고 있겠지?”
“아무렴, 이 장사 어디 한두 번 하는 줄 아나?”
저 사람을 죽이라는 의미인걸까.
익숙한 고철덩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타난 건 키가 내 3배는 되어 보이는, 철퇴를 든 남자였다. 녹색 얼룩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옷 선으로 드러나는 몸은 강하게 단련을 했거나 갑옷을 입었거나, 어느 쪽이던 흠집하나 날 것 같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라는 거예요?”
“죽든지, 죽이든지 맘대로 해. 최소한 저 사람은 널 죽일 생각으로 왔다.”
냉랭하게 서로 죽이라는 선고를 받고 멍해있던 것도 잠시, 내 손에는 어느새 쿠크리가 들려있었다. 다른 곳과는 다른 곳에서 명령을 받는 것 같은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섬칫했다. 기계를 못 쓰게 만들었던 적은 있다. 남들의 죽음을 나 몰라라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직접 누군가를 죽였던 적은 없었다. 그건 일종의 보루였다. 그런데도 바로 저 사람을 아무 생각 없이 죽이려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이런 건, 틀림없이 잘못됐다.
그런 나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남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사람을 죽여본 적도 없는 놈이잖아.”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잠깐 철퇴를 빙빙 휘두르다가,
“움직임도 별 거 없고. 생 초짜일세.”
내 다리를 향해 주저 없이 내리쳤다.
괴물이었다. 몸에서 위상력이 흘러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것이 나를 더 전율케 했다. 단순히 사람의 힘만으로 이 바닥을 깨부술 정도의 무게를 가진 철퇴를 자유롭게 다룬다. 철퇴는 이미 자유롭다는 수준을 넘어 살아있는 뱀처럼 목표를 찾아가는 걸로 밖에 안 보였다.
그 움직임은 너무나도 변칙적인 채찍과도 같았다.
이 사람을 이길 방법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피하려고 내밀었던 방패에 묵직하게 충격이 전해졌다. 튕겨나가려고 하는 방패를 붙드는 사이에, 문득 알아챘다. 방패는 위로 날아갔고, 그걸 향해 팔을 뻗은 내 가슴께는 텅 비어있었다.
그가 손잡이를 당긴 쪽으로 철퇴는 움직임을 급격하게 바꾸며 나를 향해 날아왔다.
“아아악!”
으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가슴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게 느껴졌다. 공중에서 흩날리는 불그스름한 게 내 피라는 걸 알아차리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내 몸의 일부가 날아갔다는 걸 속삭였다.
가슴에 손을 가져가보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건 내 피였다. 움직일 힘이 다 빠져 누워버린 날 향해 그 남자는 다가왔다.
내 목을 붙잡은 건 그의 마지막 남은 배려였으리라. 아프지 않게, 한 순간에 저승으로 보내주겠다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표명이었다.
“원망 마라, 꼬마야.”
약간의 죄책감은 남아 있었는지, 그는 내 목을 바로 비틀어버리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의 죄를 고해하듯, 내 목을 서서히 조르면서 읊조렸다.
“나도 자식이 있단 말이지. 집사람은 죽었어. 이제 남은 건 나밖에 없고. 그러니, 그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돈이 필요해. 그걸 위해서라면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평정을 유지하며 한숨을 쉬는 그의 모습은 이 모든 것이 일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목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에서, 원래였다면 느끼지 못했을, 위상력을 가져서 예민해진 지금이야말로 느낄 수 있는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이 사람이 나를 죽이는 것을 아주 조금, 망설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화가 치민다. 어째서인지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순 없었다. 기껏해야 몇 살 먹지도 않은 어린애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추스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만큼 내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말하기 힘들었다.
굳이 억지로 풀어보자면,
이 사람의 집안사정 같은 거엔 별로 관심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 사람이 이미 멋대로 얘길 했으니까, 나도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멋대로 얘기를 조금 하기로 했다.
아주 조금, 마음에도 없는 말을 심장을 쥐어짜서 뱉어보기로 했다.
“당신이 아버지라면, 이딴 곳에 있지 마.”
“앙?”
“언제 차원종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데, 돈 벌겠다면서 그 애를 내팽개치지 말라고!”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꺼내면서 떠오른 광경은 불타던 도시였다.
엄마를 살려보겠다면서 거리를 배회하다 무너지는 건물에 깔렸던 아이가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자신을 혼자 두지 말라며 불길 속에서 혼자 울고 있던 아이가 눈에 밟혔다.
걔들은 모두 도움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모든 걸 묵살했다. 그러니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없다면, 그 아이는 도대체 어디에 있으라는 거야!”
눈물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울 자격도, 울 이유도 무엇 하나 나에게는 없었다. 어쩌면 내 목을 죄는 이 손들을 떼어낼 자격조차도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난 죽을 생각도 없었고, 말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곧 죽을 녀석이 말은 잘 한다. 아프지 않게 끝내줄 때에 얌전히 있어.”
“아니, 난 살 거야. 죽지 않을 거야. 당신의 품속에 있는 내 목숨을 이 칼로 도려내서라도 가져갈 거야. 하지만 당신을 죽이진 않겠어.”
그의 눈이 한 순간 커졌다가 작아졌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더 이상 흥미는 없다는 걸 표현하며 점점 강하게 목을 짓누르는 손을 뿌리쳐야 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라면, 굳이 어떻게 쓰더라도 상관없다.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 좀 더 망가뜨려도 괜찮다.
난, 살 것이다.
마음속 다짐에 반응하듯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몸 전체의 피가 이대로는 안 된다며 더욱 더 크게 가속했다.
몸에서 올라왔다고 생각한 열기가 희미한 푸른빛으로 바뀌어 흩날렸다. 더 이상 갈비뼈에서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푸른빛은 내 목에 모여 보라색 불길로 그 형태를 바꾸어 타올랐다.
내 목을 스스로 죄기를 청하듯, 불길은 나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나를 태우고 싶어 안달이 난 듯 타오르던 이 불꽃은 내 목을 조르던 손을 거부하고, 오직 나에게 엉겨있었다.
자신의 손을 갉아먹는 불꽃을 본 그는 손을 놓더니 탁탁 하고 손에서 불꽃을 털어냈다.
“위상력인가. 이제부터가 힘들겠어.”
낮게 중얼거린 철퇴를 내려놓고 그는 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근접해서 들어갈 걸 예상한 것 같았다. 언제든 쳐들어가면 바로 찔러버리겠다는 건가.
정말 같잖았다. 나는 살기 위해, 저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서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는 듯 비장하게 치뜬 그의 눈이 거슬렸다.
그래봤자, 단순하게 힘이 셀뿐이면서, 사람을 좀 더 상대해 본 것뿐이면서, 그거 가지고 으스대는 게 심히 거슬렸다.
뒤로 뛰어 약간 거리를 벌렸다. 놓쳐 버린 방패를 집어 들어 돌진하는 척을 했다. 그러자 바로 나이프를 휘두를 준비를 하는 그를 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나이프를 빼든 그의 오른팔에 들고 있던 방패를 던졌다. 나이프를 들고 있다면 저 방패를 막기 위해선 어느 쪽이든 팔로 쳐낼 수밖에 없었다. 별 뾰족한 수가 없었는지 그는 왼손으로 나이프를 바꿔 쥐더니, 오른팔로 방패의 손잡이를 잡아챘다.
놀라운 기술이라고 할까, 일부러 잡기 힘들도록 회전을 줬는데도 맨손으로 방패 한가운데에 있는 손잡이를 잡아채다니, 저건 이미 괴물이다. 위상력이 있는 나보다 없는 저 사람이 몇 배는 강할 것이다.
그래서 방패를 던진 거다.
그는 방패를 잡은 후 이상한 점을 눈치 챘다.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는 나를 찾아 헤맸다. 위상력으로 숨었다고 생각한 그는 허공을 향해 나이프를 휘둘렀다.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판단이었다.
처음에 방패를 던진 직후, 위상력을 이용해서 한순간 모습을 감춘 건 맞았다. 사실, 그 한순간밖에 모습을 숨길 수 없다. 내가 가진 힘의 한계는 그 정도다.
그렇다면, 놈을 현혹하기 위해 모습을 숨기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방패와 함께 놈에게 접근하면 된다.
몸을 숨겼다면 당연히 배후를 노리는 것이 정석. 그렇다면 역으로, 방패를 붙들고 바로 다른 쪽을 쳐다보는 사이에 상대방에게 접근한다면, 알아차리는 것이 쉽지가 않아진다.
그렇게 빈틈투성이인 상대의 오른팔을 베어내는 건, 눈을 뜨고 손뼉을 치는 것만큼이나 쉬웠다.
그가 나와 눈이 맞았을 때에는, 그의 오른팔이 이미 공중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오른팔이 독립하는 걸 본 그는 별 신음소리도 없이 주저앉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나와는 참 대조적이다, 라는 별 의미 없는 감상이 남았다.
이런 상대를 남겨둬 봐야,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하다. 위상력을 쓰지 않고 싸울 의지도 없었을 때라곤 해도 날 죽이려 했던 남자다.
어서 죽여 버리자.
.
.
아니야.
미 친 건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내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죽음이 넘쳐나는 도시에서도 절대 남을 죽이지는 않았다. 죽음을 방조한 적은 있지만 절대로 내 손으로 죽이지는 않았다.
만일 내가 직접 이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버릴 것만 같았다.
나를 집어삼키려고 하던 충동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그 너머로 손을 뻗는 것을 거부했다.
“나는, 살인자가, 아니야!”
그런 내 의지를 단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죽여, 애송이.”
그 남자는 끊어 불살랐다.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오른팔을 지혈하려는 기색도 없이, 그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히려 피가 나오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그 아이는 유니온이 돌봐주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널 죽이지도 못하고 살아서 돌아가면 난 내 자식에게 짐밖에 안 돼.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오른팔은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외팔이로 사는 게 어떤 건지는 몰라도, 살아가기 쉽지 않을 거라는 건 당연했다. 더욱이 몸으로 먹고 사는 용병으로서의 수명은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죽이기 싫었다.
“지금 날 죽이는 게 좋을 거다. 그러지 않는다면 난 조금이라도 회복되자마자 바로 네 놈의 목을 날려버리겠어.”
“싫다고 말했잖아! 이봐! 다들 뭐하는 거야! 이 사람, 피를 너무 흘렸어! 어서 도와줘! 이 사람은 자식이 있어! 살리라고!”
아무리 외쳐도 듣지 않을 거란 건 마음속에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 고생을 해서 죽지 않게 한 게 헛수고였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 연구원들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건만.
“뭐, 이 시설을 아는 사람이 줄어드는 건 좋은 일이지.”
분명, 이 사람을 구해줄 사람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또한 그를 누구보다도 구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귓가에서 바람소리가 들렸다.
방심했다. 용병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곤 추호도 생각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죽어가는 중이었다. 그런 사람이 묵직한 철퇴를 휘두른다는 건 말도 안 됐다. 필시 그는 엄청난 격통을 참아가며 억지로 철퇴를 휘두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무리하게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후, 그럼 죽어.”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뭐가 있었을까.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철퇴를 본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옆에 놓아둔 쿠크리를 들어,
그의 가슴을 찔렀다.
오늘 처음 보는 그의 미소가 상처 속에서 피어났다.
“그래......머리보다는......쿨럭, 몸이, 똑똑하군......”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며, 용병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의 손에는 철퇴의 손잡이는 들려있지 않았다. 내 머리를 향했다고 생각한 철퇴는 나를 비켜서 저 멀리 날아갔다. 내 몸에는 티끌만한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이 사람은 그 때, 나를 죽일 생각은 하나도 없었던 거였다.
아연해서 다리가 풀린 나를 향해 용병이 물었다.
“너......이름이, 뭐냐?”
“그런 거 이젠......중요하지 않아.”
“......흐, 흐후후하.”
뭐가 우스운 건지 갑자기 용병은 웃기 시작했다. 조금씩 목소리가 사그라지고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안심된다는 듯 씨익 웃은 그의 얼굴 위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감겨 가는 그의 눈동자 속에 비치는 소년은 분명 나였을 텐데, 그 소년은 한없이 낯설어 보였다. 난 그가 자신의 자식을 보는 게 아닐까 싶었다.
“네 손에 처음 죽는 게......나라서 다행이었다......잘 들어. 살인을......망설이지 마. 지금 네 손을......기억해라. 그러면 살아......수 있......거......”
용병의 말에 흠칫 놀라 두 손을 바라봤다. 이미 피에 흥건하게 젖은 손은 쪼글쪼글하게 불어있었다.
가볍게 박혀 들어가는 칼의 감각이 손에 남아있었다. 기계를 상대할 때와는 달리 물을 베는 것 같이 부드러웠다. 딱딱한 저항감 하나 없이 매끄럽게 베고 들어가는 감촉을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띠고 있는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더 이상 움직이지도 않았다. 약물 때문에 잘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심장의 고동이 멈춰가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초점이 맺히지 않은 눈동자는 더 이상 나를 ** 않고 텅 빈 허공을 응시했다.
사람의 몸은 이렇게나 약하다.
이 칼과 힘은 사람의 목숨을 이렇게나 쉽게 끝낼 수 있다.
난 사람을 죽였다.
“우, 우웨에에에에엑”
감방에 돌아와선 헛구역질을 계속 했다. 피의 비린내, 가슴의 통증, 그의 텅 빈 눈동자를 비롯해 그의 죽음을 알려주는 그 어떤 증거도 날 내버려두지 않았다.
몇 번을 씻어내려고 해도 피의 잔상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아 비비고 있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고, 그럴수록 세계는 더욱 붉은 빛으로 변해갔다.
내 주변의 모든 세상이 피에 젖어있었다.
“그 상태 보니, 오늘은 상대가 인간이었냐.”
날 비웃지도, 질타하지도 않는, 매일 듣는 목소리가 비좁아터진 감방을 가득 채웠다.
“여기서 제대로 살아가기 시작한 걸 축하해. 뭐, 넌 그걸 살인으로 시작할 줄은 몰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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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나타의 생애시작 마지막 에피소드, ‘ㅅㅇ시작’이었습니다. ㅅㅇ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다들 눈치 채셨을 거라 생각해요.
나타가 처음부터 전투를 즐기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 게 이 에피소드를 짠 계기였습니다. 게임에서 묘사되기론 시술 과정에 온갖 정신병들도 따라오는데, 그 중에 전투를 즐기는 것도 있었을 거란 생각도 했구요. 그러다보니 그럼 당연히 살인에 대한 죄의식은 필수적으로 묘사되야 했는데, 그걸 길게 묘사하기엔 지금의 제게 허용된 시간이 너무 적더군요. 이제 ㅈㅅ 준비를 해야 하는지라......하아아.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가능한 한 나타의 첫 살인에 대한 고뇌, 그 와중에 약물과 거듭된 전투로 인해 호전적으로 변해가는 ‘나타’화 되는 과정을 나름 액기스만 적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묘사가 좀 모자라는 건 이해해 주시길.
그럼에도 재미있게 즐겨주셨으면(?) 좋겠네요. 가능하다면, '나타의 생애집착'에서 뵙겠습니다.
Ep-4 전투훈련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2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