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Remake) (1부 11화) - 데이트 (完)

버스비는1200원입니다 2017-12-2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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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아악!!"


계속해서 여러 번 울려퍼지는 짧은 외마디 비명들, 그 소리가 한 번씩 들릴 때마다 '철푸덕'하고 쓰러지는 소리들, 그 소리의 정체는 테러리스트들이 누군가에 당해 쓰러지면서 내는 소리였다. 테러리스트들은 하나같이 경악하면서 권총, 나이프 등등 무기를 사용하거나 혹은 맨주먹으로 덤벼들고 있었으나 단 한 명에 의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그 누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천용의 친구, 박창우였다.


'뭐야, 이 꼬맹이는! 우리가 이런 녀석한테!!'
"죽어ㄹ..."


퍼억-!!


"우억!"
'공격하기도 전에 어떻게...!'


테러리스트가 공격을 시작하기 직전에 박창우는 한 발 먼저 움직여서 그 테러리스트를 쓰러트렸다. 그 움직임은 흡사 이천용이 전에 싸웠던 데드리스단의 일원 미기네와 비슷해보였다. 하지만 원리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미기네는 극도로 예민한 자신의 감각을 통해 이천용의 근육의 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면서 상대보다 먼저 앞서 행동하였다면,


'이 파동... 윗층이랑 아랫층에서도 계속 몰려오는구마. 쪼매 귀찮아지겄네.'


자신의 몸을 통해서 외부에서 전해져오는 파동을 감지하는 것으로 상대방이 지금 걷고 있는지, 달려오고 있는지,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하려고 하는지, 방어를 하려고 하는지 예측하여 상대방보다 먼저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박창우가 가진 능력, '파동'을 다루는 능력이었다. 박창우는 이 능력으로 주변의 테러리스트들을 압도하고 있는 한편, 그러는 동안에도 테러리스트들의 동료들이 다른 층에서도 지금 있는 층의 소동을 알아차리고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뭐, 다른 시키들은 이리스 누님이 맡으러 갔응게 괘안켔지. 내는 지금 이 시키들한테만 신경을 쓰야겄다.'
"흠!"


"꾸악!"


박창우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막힘없이 테러리스들을 제압해갔다. 박창우가 싸우는 모습은 이천용처럼 정면에서 투박하게 싸우는 모습과는 다른, 물처럼 흐르듯 유연한 동작들로 상대방을 농락하며 확실하게 제압해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런 박창우의 모습은 인질이 되었던 사람들도 어느새 위기감조차 잊고 마치 액션 영화에 몰입이라도 한듯이 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켁!"


"후우, 어떻게 다 정리했네. 에고, 내가 원래 쌈에는 잘 안 나서는 성격인디... 머, 이런 상황에선 별 수 없겠제. 암튼... 마, 문디야. 괘안나?"


박창우는 자신이 싸우는 동안 두통 때문에 싸우지 못하여 잠깐 쉬고 있는 이천용에게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 사이 두통이 조금은 괜찮아졌던 모양인지 안색이 많이 좋아져있었다. 이천용은 피식거리며 박창우의 손을 잡고 정신을 잃은 이세희를 부축하면서 일어났다.


"그래, 조금은 괜찮아졌어. 그보다 네가 싸우는 모습, 오랜만에 보는걸. 네가 하도 싸움에는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이었으니."


"하하, 글게나 말이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이가."


"그런데 분명 이리스 선생님도 계셨던데, 선생님은?"


"저기 오시는구마."


박창우가 손가락으로 윗층과 이어지는 계단 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그곳을 보니 이리스가 어느새 윗층에 있던 나머지 테러리스트들을 제압한 것도 모자라서 전원 포박까지 한 상태로 질질 끌면서 내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리스 본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해맑은 얼굴이었지만, 이리스에게 포박되어 끌려오는 테러리스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맹수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공포에 잔뜩 질린 듯한 표정들이었다. 대체 이리스는 어떤 식으로 테러리스트들을 상대하였길래 전부 저런 표정인 것이었을까... 하며 이천용과 박창우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아아, 여긴 끝났네? 아 참, 그리고 아래층은 경찰들이 와서 전부 체포해서. 뭐... 일단 내가 전부 제압해두기는 했지만. 어쨌든 잘 끝나서 다행이다!"


"네, 그렇네요... 그러고보니 잠깐 잊었는데, 두 사람은 여기에는 무슨 일로? 마치 나랑 세희를 뒤따라 온 것처럼 불쑥 나오고는..."


"어? 아... 아아! 그거 말이구나! 그러니까... 그렇지! 사실 내가 옷을 좀 사러 왔거든! 그런데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내가 옷 입은 모습을 좀 평가해주면 어떻가 하는 생각에 창우를 잠깐 불렀던거야. 그러다가 마침 이렇게 휘말렸던거고. 그렇지, 창우야?"


"예? ... 아, 예예! 글치예! 고런 이유다."


"... 그래?"


두 사람의 반응을 보고 조금 미심쩍었던 이천용이었지만 역시나 큰 의심없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이천용의 신경은 다시 이세희에게로 쏠렸다. 테러리스트들에게 위협당할때 이세희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던 것, 그때처럼 또 다치면 어쩔거냐는 의미 모를 말, 난데없는 두통과 동시에 머릿속을 스쳐간 어릴 때의 자신이 보이는 기억,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천용은 또 다시 그 두통을 느꼈다. 그래도 아주 잠깐의 두통이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이번에도 똑같이 처음 보면서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억의 단편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주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 기억은 선명한 화면으로 이천용에게 보여졌다.


"... 은행...?"


그 기억 속에서 보인 것은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 은행이었다. 그래서 그닥 특별해보이는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 갑자기 은행은 왜 찾노?"


"아니, 그게..."
'왜 갑자기 이런 게 생각이 나는 거지?'


왜 자신이 그런 걸 떠올렸는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이리스가 이천용이 은행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왠지 모르게 심상찮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천용아, 방금 뭐라고?"


"네? 은행... 이라고 했는데요. 아, 그냥 헛나온 말이니까 신경쓰실 필요는..."


"천용아, 잠깐 얘기 좀 하자. 세희를 데리고 따라와. 창우는 천용이의 친구니까 듣고 싶으면 따라와도 돼."


"?"


네 명은 마트 밖으로 조용히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테이블에 앉았다. 이리스가 할 얘기라는 것이 무엇일까. 이천용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이리스의 표정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가벼운 얘기는 아닌 듯 하였다. 곧 이리스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말하면 좋을까... 천용아, 그때 체육관 안에서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그래? 그거 대단하구나. 5살 때부터 줄곧 좋아해왔다니.]



"네, 기억은 나는데. 그게 왜요?"


"반신반의하면서 일단 넘겨짚기는 했지만, 네 이마에 나있는 흉터와 아까전에 네가 중얼거린 '은행'이라는 말을 듣고 확신했어. 천용아, 너는 세희를 처음 만난 게 언제라고 했었지?"


"중학교 2학년이요."


"그래, 너는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아니야. 너는 그보다 훨씬 어릴적, 5살 때 이미 세희와 만났어."


"... 네?!"


이천용은 깜짝 놀랐다. 기억상으로는 자신이 이세희와 처음 만나게 된 때는 틀림없이 중학교 2학년 때다. 그런데 5살 때 이미 이세희와 만났다는 말에 이천용은 당황하면서 자신이 어릴 적의 기억들을 쥐어짜보았다. 그러나 생각나는 기억들 중에서도 이세희, 혹은 이세희와도 닮은 여자아이를 만난 기억은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자세하게 알려주세요!"


"그래, 그때의 일을 얘기해주면 너도 뭔가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어. 그럼... 이 일은 세희가 5살 때 있었던 일이었어. 그때 세희는 어머니와 함께 외출했다가 귀가하는 길에 잠깐 은행에 들렀던 때였지."


"!"
'은행...'
.
.
.
.

12년 전


5살의 어린 시절의 이세희는 부드럽고 상향한 자기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깜찍한 발걸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걷고 있었다. 외출 후 귀가하는 길, 이세희의 어머니는 이세희와 함께 은행으로 들어왔다. 은행에 들어오고 번호표에 따라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아 참! 분명히 이 근처에서 세일을...!"
'지금 가면 아슬아슬하겠지만, 세희를 데리고 가면 늦을텐데...'


"엄마?"


"... 세희야, 엄마가 잠깐 급한 볼일이 생각나서 말이야. 여기서 얌전히 기다릴 수 있겠니?"


"네에!"


"그래~ 우리 착한 딸, 금방 올테니까 기다리렴."
'혹시 모르니 세희의 주변에 염동력으로 결계를 펼쳐둬야겠어.'


그러한 이유로 이세희의 어머니는 잠깐 은행을 나가 자리를 비우게 되고, 이세희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표정으로 마냥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세희의 어머니가 은행에서 잠깐 나가고 3분 정도가 지났을 때, 사건이 발생하였다.


와장창-!


"움지이지 마, 전부 손 들어!"


가밪기 열 명 정도의 은행강도들이 은행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와 은행 직원들과 은행에 볼일이 있어 찾아온 다른 민간인들을 위협하며 그 자리를 장악해버린 것이었다. 곧 경찰들이 출동하여 은행을 빈틈없이 에워쌌지만, 강도들은 은행 안의 모든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농성하였다.


"우에에에엥!!!"


그러던 중에 그 안에서 울려퍼진 울음소리, 그건 어린 이세희가 무서움에 떨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어머니도 곁에 없는 상황, 잠깐이기는 해도 혼자가 된 어린아이가 그런 상황에 휘말려버렸으니 당연히 무서워서 울 법도 하였다. 어쨌든, 이세희가 우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렸던 모양인지 테러리스트들 중 한 명이 짜증이 난 표정으로 이세희에게 다가왔다.


"엄마아~! 으아아아앙!!"


"시끄러워, 이 꼬맹이! 빽빽거리지 마!"


불호령이나 다름없는 고함소리로 이세희를 다그쳤지만, 그럴수록 이세희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그 울음소리에 다른 테러리스트들도 똑같이 짜증이 난 모양인지,


"아아, 시끄러워! 야! 그 꼬맹이 당장 그걸로 조용하게 만들어!"


"뭐? 하지만 인질 아니야?"


"어차피 다른 인질들도 많은데, 꼬맹이 하나쯤 '없어도' 상관없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군."


총구를 이세희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어차피 이세희 말고도 인질들이 더 있으니 '죽여도' 상관이 없기에 그냥 죽여서 울음소리를 그치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단지 그것 뿐인 이유였다. 이세희는 그런 사실조차 알 도리가 없어 계속 울어대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 더럽게 시끄럽군. 뭐, 됐다. 잘 가라."


꾸우욱...


"...?!"


강도가 가진 총의 방아쇠가 절반 가까이 당겨졌을 때쯤, 무언가가 갑자기 강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때문에 총구의 궤도가 약간 어긋나서 총알이 빗나가고 덕분에 이세희는 상처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이런 썅... 뭐야?!"


방해를 받은 강도는 짧게 욕을 내뱉고는 자신에게 달려든 것이 무엇인지 보았다. 자신에게 달려든 것은 백발을 가진 어린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는 그저 무서워서 울고 있을 뿐인 이세희와는 다르게 용감하게 나서서 강도에게 덤벼들어 이세희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이었다. 그 아이의 등장과 함께 테러리스트들은 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가 덤벼들자 황당하기 그지 없다는 반응들이었고, 이세희는 그 아이를 보게 되자 어째선지 울음을 조금씩 그쳐가고 있었다.


"이 꼬맹이가...!"


"걱정 마, 내가 지켜줄께!"


"히끅... 흐윽... 저, 정말...?"


"응! 당연하고 말고!"


그 아이는 이세희를 안심시켜주려고 했던 것인지 이세희에게 그런 말을 해주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이세희는 울음을 완전히 뚝 그치고 조금씩 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지켜주기는 개뿔! 쥐방울 만한 게!"


강도는 이번엔 총구를 이천용을 향해 겨누려 하였다. 그걸 보고 이천용은 낯선 사람에게 달려드는 강아지처럼 강도에게 달려들어 총을 들고있는 강도의 팔 한쪽을 이빨로 물었다.


"끄악!"


"우으으!"


질긴 고기를 씹는 것처럼 그 아이는 있는 힘껏 계속해서 그 팔을 물었다. 강도는 팔을 세게 흔들어서 그 아이를 내동댕이 치려고 하였지만, 어찌나 세게 물고 있는지 좀처럼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아이가 자꾸만 자신의 팔을 문 채 버티자,


"까불지 마!!"


빠악-!!


허리춤에 매고 있던 곤봉을 빼들고는 그 아이의 머리를 세게 후려쳐버렸다.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곤봉에 머리를 맞은 아이는 이마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후우, 귀찮게 하고 있어."


"후으... 흐극..."


자신을 지켜준 아이가 그렇게 큰 상처를 입고 쓰러지게 되니, 울음을 그쳤던 이세희는 눈가에 눈물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곧 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아, 짜증나! 우선 너부터 조용히 만들어야겠군! 그 다음에는 내 팔을 문 이 건방진 꼬맹이다! 인질 두 명쯤이야 상관없지!"


"흐아아아앙!!!'


"잘 가라, 알람시계 같은 꼬맹아!"


타앙-!!!


총격소리가 울려퍼지고 강도가 든 총의 총구에서 이세희를 향해 총알이 발사되어 날아갔다. 총알은 이세희의 머리를 꿰뚫어버릴 기세로 흔들림없이 직진하며 곧 이세희의 머리에 도달하려 하였다.


팅-!!


"뭐야?!"


총알이 이세희의 안면에 닿으려는 순간, 총알은 강철의 벽에 튕겨나는 것처럼 무언가에 막혀 찌그러지면서 도로 튕겨져나왔다. 예상 못한 일에 총의 방아쇠를 당긴 강도나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강도들, 그리고 인질로 붙잡힌 다른 민간인들은 다들 똑같이 놀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무ㅅ..."


콰과광-!


그리고 총알이 무엇에 막혔는지도 정확하게 파악 할 새도 없이, 갑자기 은행의 지붕 전체가 공중 위로 떨어져나가며 그 공중에서 누군가가 이세희의 앞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세희야!"


"엄마아!"


내려온 것은 이세희의 어머니였다. 이세희의 어머니는 울고있는 이세희를 품속에 껴안고 안심시켜주는 말을 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와 기쁘고 안심이 되었는지 이세희는 눈물을 그치고 어머니의 품속에 꼭 껴안겼다.


'결계에 반응이 느껴져서 무슨 일인가 하고 와봤는데...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났을 줄이야.'


"뭐야, 네 년ㅇ..."


"조용히 해."


쿠우웅-!!!


강도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이세희의 어머니는 단지 눈대중 하나만으로 일반인들이 발휘하는 물건을 옮기거나 하는 수준의 염동력과는 비교조차 할 수도 없는 터무니없이 강력한 염동력으로 강도들이 서 있는 자리의 중력을 증가시켰다. 강도들은 그 중력에 버티지 못하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전부 다 땅바닥에 강제로 엎드려지게 되었다.


"끄아악...?!"
'여, 염동력...? 바보 같은! 일반인이 어떻게 이런 강력한 염동력을...!'


"... 세희야, 많이 무서웠지? 엄마가 미안해, 세희를 혼자 둬서... 앞으로는 세희를 혼자 두거나 하지 않을께."


"응...!"


이렇게 강도들은 이세희의 어머니에게 제압되고 곧이어 돌입한 경찰들에게 전원 체포되어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인질로 잡혀있던 은행 직원들과 민간인들은 무사히 해방되었으며 이세희의 어머니는 경찰에게 간단한 진술을 하고 난 뒤, 이세희를 데리고 은행을 나왔다. 은행을 나오는 길에 이세희와 이세희의 어머니는 은행 앞으로 온 구급차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아까 이세희를 감싸다가 크게 다친 남자아이가 머리에 붕대가 감긴 채 그 구급차에 실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저 아이는 분명 강도에게 머리를 다쳤다고 했었지... 내가 조금만 빨리 왔더라면... 그래도 경찰 분이 말한 대로라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들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야.'


'저 앤...'


"아이고...! 잠깐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


그때 그 남자아이의 옆에서 울고 있는 한 여성이 있었다. 보아하니 그 남자아이의 어머니인 듯 보였다. 이세희의 어머니와 똑같이 잠깐 은행에서 나온 사이에 아들인 그 남자아이가 변을 당하게 된 모양이다.


"정신 좀 차려보렴, '천용'아...!"


'천용... 저 애의 이름...'


"자, 어서 집으로 가자, 세희야."


"어? 아..."
.
.
.
.
.

이리스의 얘기가 끝나고 이천용은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없이 이리스를 바라보고만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믿기 힘들어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아이가 저였다구요?'


"맞아."


"하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아이였을 수도 있고..."


"아니, 틀림없어. 무엇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가 너한테 있잖아?"


이리스는 이천용의 머리와 이마를 한 번씩 가리켰다. 이리스의 말대로 그 남자아이가 이천용이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이천용의 머리, 그리고 이마에 있었다. 그 남자아이의 머리색은 분명히 백발이었고 이천용의 머리색도 그와 똑같은 백발인 것, 그 다음으로 이천용의 이마에 난 흉터, 그때 그 남자아이는 이세희를 감싸며 강도에게 덤벼들었다가 곤봉에 머리를, 그것도 이마를 맞고 큰 상처를 입었다. 즉, 이천용의 이마에 있는 흉터는 그때 생긴 상처 때문에 생긴 거라고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 아!"
'그러고보니 분명...'



[엄마, 내 이마에 이건 어쩌다가 생긴거야?]

[기억 안 나니?]

[응.]



이천용은 자신의 이마에 난 흉터가 어쩌다가 생긴 것인지 조금도 모르고 있었고,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조차 할 수 없었다. 모든 걸 정리하자면, 이천용은 이세희가 5살 때 자신을 지켜주다가 크게 다친 남자아이였고, 이천용이 그러한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은 머리에 큰 충격이 가해져 그 당시의 일들을 잊게 되어버리게 된 것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기억상실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천용은 그때의 일을 잊은 채 이미 한 번 만났음에도 자신에게 있어선 이세희를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난 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설마... 그런 거였다니..."


"처음 네 이마에 있는 흉터를 보고 그때의 일을 잊게 된 것이 아닌가 했었지만 역시나였구나... 참 안타까워."


"... 이리스 선생님, 세희는... 그때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요?"


"... 응,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대. 생각만 나면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어."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어릴 때라서 못 느꼈지만, 지금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거 있지? 쑥스럽지만... 난 그 아이를, 천용이라는 아이를...]


"'좋아한다'고."


"!"
'크윽...'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을 구해준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줄곧 마음 속에 간직해왔다는 말을 듣고, 이천용은 그런 이세희와는 다르게 이세희와 처음 만났던 그때의 일을 고의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완전히 잊어버렸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이세희의 마음을 배신하기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천용은 그런 생각에 피가 조금씩 나올 정도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네가 그때의 일을 조금씩 기억해낼 것 같은 반응을 보여서. 완전히 기억해내지 못해도 돼. 하지만, 세희가 그때부터 쭉 너를 잊지 않고 살아왔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줘."


"네..."


"... 그럼 우리는 먼저 가볼께. 세희랑 단 둘이서 남은 시간 잘 보내렴~ 가자, 창우야!"


"응? 아, 기다리소! 암튼 내는 먼저 가본대이. 세희한테는 나름대로 잘 말해보그라. 그럼..."


이리스와 박창우가 그 자리를 떠나고 이천용과 이세희는 또 다시 단 둘이 남게 되었다. 이세희는 여전히 정신을 잃었던 것이 어느새 잠이 들어 이천용의 어깨에 기댄 채 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이천용은 자신의 어깨에 기댄 채 자고 있는 이세희를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는 시간이 되었다.


"으... 으음..."


그때가 되서야 이세희는 천천히 눈을 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이세희는 자신이 이천용의 어깨에 기댄 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깜짝 놀라 빠르게 이천용의 어깨에서 떨어지고는 말을 더듬었다.


"처, 천용아...! 내, 내가 깜빡 잠이 들었나보네, 하하... 아, 참! 그 사람들은..."


이세희는 정신을 잃기 전에 이천용과 자신을 위협하던 테러리스트들이 떠오르고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러리스트들은 둘째치고 지금 있는 자리가 마트가 아니라 한 카페의 안인 것을 확인하고는 그 상황이 이미 종료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히 잘 끝났나보구나... 그건 그렇고 천용아... 내가 그때 한 말은 그러니까..."


"세희야, 잠깐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어?"


이천용은 이세희의 손을 붙잡고 이세희와 함께 카페에서 나와 어딘가로 향하였다. 이천용이 도착한 곳은 어느 한 은행이었다. 그 은행은 바로 그때의 두 사람이 있었던 은행이었다. 그 은행에 도착한 이천용이 잠깐동안 그 은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천용아? 여긴 왜 온거야? 은행에 무슨 볼일이라도..."


"세희야,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지?"


"어? 그야... 은행이잖아?"


"아니, 그런 뜻으로 물은 게 아니야."


"...!"


평범한 은행이라고 대답하였으나, 이천용이 원한 대답은 아니었다. 이에 이세희는 이천용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어리둥절하다가 퍼뜩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고 이세희는 적잖게 놀란 얼굴로 이천용을 바라보고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천용아... 혹시 기억하는거야?"


"아니, 하지만 이리스 선생님한테 들었어."


"그래? 그렇구나..."


"... 세희야."


"어? ... 꺅!?"


이천용은 갑자기 이세희를 양팔로 감싸고는 자신의 품에 꼭 껴안았다. 이세희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고 크게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처, 처, 천용아? 사람들도 지나가는데 이러면..."


"미안해..."


"어?"


"너랑 처음 만난 때를 기억하고 있지 못해서... 너는 그때부터 줄곧 잊지 않고 나를 기억해줬는데 말이야. 정말로 미안해..."


"왜 사과를 하는 거야... 그때 너는 나를 감싸다가 다쳤었잖아. 중학생 때 다시 만나고 너의 반응을 봤을 때 짐작하고 있었어. 그래도... 날 기억하고 있지 못해도 기뻤어. 그때 날 구해준 아이가 변하지 않고 여전히 좋은 아이라고... 그러니까 사과할 필요 없어. 오히려 내가 미안한걸. 그때 네가 나를 감싸주다가 다쳤으니..."


"... 세희야, 약속할게.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너를 잊지 않겠다고. 계속 옆에 있어주겠다고 말이야."


"천용아, 고마워... 정말로..."
'좋아해.'
.
.
.
.

"나 왔어."


"어서 와. 어두워졌을쯤에 돌아올 줄 알았는데, 조금 더 빨리 왔네."


"오셨어요? 아버지."


"그래, 이리스. 그런데 세희는? 어디 나갔니?"


"후훗... 듣고 놀라지 마세요?"


"?"


"세희는 지금 데.이.트.중이랍니다!"


"뭐...?!"
.
.
.
.
.

"이제 슬슬 돌아갈까, 세희야?"


"응,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됬네. 이제 곧 아빠도 돌아오시겠다."


"아빠?"


"어, 다른 별로 잠깐 출장을 나가셨다가 오늘 저녁에 돌아오신다고 하셨거든."


"헤에, 꽤나 바쁜 일을 하시는 분인 모양이네."


"많이 바쁘셔서 문제지만... 아무튼 천용아, 월요일 학교에서 보자!"


"그래."


이세희는 뒤돌아 가면서 이천용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천용도 똑같이 점점 멀어져가는 이세희에게 조심히 들어가라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이세희가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5m정도 멀어졌을 때, 갑자기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 ... 봐... -


"?"


- 이... 봐... -


"세희야?"


"어? 왜?"


이천용이 자신을 부르자 이세희는 걸어가다가도 다시 뒤돌아서 이천용을 보았다. 이천용은 주변을 한 번 빠르게 두리번거리다가 이세희에게 물었다.


"방금 뭐라고 말했어?"


"어? 난 아무런 말도 안 했는데?"


'뭐지...?'
"... 내가 잘못 들었나봐, 미안, 아무튼 조심히 들어가."


"응, 천용이도."


"......"
'분명히 누군가 나를 불렀던 것 같은데... 역시 기분탓인가?'
.
.
.
.
.

"아아... 이번에는 혹시나 했는데 결국 실패인가... 이번에도 내 '목소리'가 닿질 않았네. 하아... 언제쯤 되서야 내 목소리가 닿을까. '나'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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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이제 슬슬 초석을 다듬어볼까?




2024-10-24 23:18:0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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