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이바노프의 시간: POWER
바스케즈 2017-12-21 5
본인의 관등성명은 이반 이바노프 중위.
소속은 베리타 여단의 소총 중대이고 직책은 중대장 겸 소대장 겸 분대장을 맡고있다.
직책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다 클로저라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잔혹한 학살극을 벌인 유니온 때문이다.
유니온은 우리의 적이다.
유니온은 차원 전쟁으로 인해서 무정부 상태가 되어버린 우리 조국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에 강제 합병하는 것을 승인했다.
강제적으로 원수같은 러시아와 우리 조국이 합쳐지는 과정은 워낙 은밀하게 진행되었던 지라, 우리는 한 순간에 공중에 떠버린 신세가 되버렸다.
졸지에 나라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우리는 강제적으로 이뤄진 합병을 주도한 러시아 정부와 유니온에 항거하기 위해 거리로 나와 '러시아 정부와 유니온은 국권을 반환하라.', '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이 붙은 깃발을 흔들며 시위를 벌였다.
처음에 시위할 때에는 굉장히 질서도 지키고, 평화롭게 진행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평화로운 거리 시위 현장에 군대를 투입하여 거리에 나와있는 무고한 시민들을 무참히 진압했다.
고층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하고, 모든 길목을 장갑차로 완전히 차단해버렸다.
우리 시위대는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어버렸다.
러시아 정부군 소유의 장갑차에 탑승하고 있던 기계화 보병들은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날렸다.
독한 최루 가스가 퍼져나오자 시위대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러시아 정부군은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헬멧, 방독면, 소형 방패, 몽둥이, 폭동 진압복을 입은 군인들을 풀어서 패닉에 빠진 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에서 몽둥이로 잔혹하게 탄압하는 군인들을 피해서 건물로 들어가려는 시민이 있으면 건물 꼭대기 마다 배치된 저격수가 위협 사격을 가해서 건물 진입을 봉쇄해버렸다.
결국 그 날 있었던 과잉 진압으로 인해서 시위대가 많은 피해를 입었다.
거리 시위에 참여했었던 본인의 아버지는 머리에 몽둥이를 맞고 그 후유증으로 인해서 숨을 거두셨다.
러시아 정부는 과잉 진압으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 사람의 유가족들이 이 일을 알리는 것이 두려워서 고등학교까지 무상으로 교육 지원해주고, 약간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아예 입을 막아버렸다.
그 더러운 러시아 정부 덕분에 본인과 아우는 고등학교 교육 과정까지 돈 한 푼 안 들이고 마칠 수 있었다.
고등학교 교육을 마치고나서 본인의 아우는 상업에 뛰어들고, 본인은 군인의 길을 걸었다.
본인이 군인의 길을 선택한 건.... 강한 군대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굳건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강한 군대가 필요하고, 강한 군대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장교가 필요하다.
그래서 본인은 서러운 마음을 감추고 적국 러시아의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손에 잡히는 건 모조리 배웠다.
그 더러운 놈들은 본인이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온갖 모욕은 다 줬었는데, 본인은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고 닥치는 대로 배우고, 또 배웠다.
그냥 아예 수업 한 번 안 빠지고, 쉬는 시간에 공부나 운동 말고는 흥미를 끊고 살았다.
아무리 슬라브족 생도들이 대놓고 나를 골탕먹이려고, 온갖 치사한 짓을 다해도 다 참았다.
본인은 결국, 그들을 제치고 당당히 수석으로 졸업했고, 육군 사관학교 교장으로부터 표창장과 메달을 수여받았다.
그렇게 서럽기도 했고, 외롭기도 했던 러시아 육군 사관학교 생활이 끝나고, 본인은 러시아 정부군의 소위로 임관했다.
더러운 원수 국가의 장교로 임관한 것에 대해서 느낀 감정은 쪽 팔린 감정 보다 승리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기뻐한 것도 잠시였다.
첫 부임지에서 본인은 육군 사관학교 수석 졸업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단 자리에 앉게 되었다.
저 더러운 놈들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나중에 우리 나라가 독립이 될 때 큰 보탬이 되는데.... 본인이 맡은 자리는 상황 장교의 자리....
그저 지휘통제실에 앉아서 상황을 보고받고, 전파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이런 단순하고, 별로 도움도 안되는 직책을 부여하다니....
정말 더럽고, 치사했다.
본인은 군 경력으로서 도움이 되는 소대장 자리로 바꿔달라고 계속 건의를 올렸다. 하지만 번번이 묵살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망해서 자기네 나라 밑에 들어온 하등한 우크라이나인 주제에 감히 자기네랑 동등해지려고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본인은 거기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마음만 같았으면 다 때려부수고 싶었는데 나한테 한가닥 희망을 걸고있는 어머니와 본인의 아우를 생각해서 참았다.
하지만 결국 분노가 폭발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평소 때와 다름없이 상황 장교 일을 보고 있다가 어머니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양해를 구해서 어머니가 계시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는 다른 환자에만 눈이 가있고, 그들의 무관심 속에 어머니의 병세는 더 위중해져갔다.
급히 수술실로 옮겨야 할 판인데 환자가 밀렸다는 핑계만 대면서 자꾸 어머니를 외면하려고 하는 의료진을 보자 본인은 제일 경력이 많아보이는 의사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대체 왜! 우리 어머니의 치료만 늦어지는 겁니까?!"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저열한 우크라이나 놈 주제에.... 어디다 손을 대! 저 냄새나는 우크라이나 여자는 그냥 죽는게 도와주는거야."
본인은 그 말에 참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없이 본인과 아우를 키워주신 은혜가 하늘과도 같은 어머니를 외면하고 자기네 동족 치료만 신경쓰는 의사들과 간호사들....
본인은 육군 사관학교 생도 시절부터 꾸준히 단련시켜왔던 주먹을 본인과 본인의 어머니를 모욕했던 의사의 얼굴 정중앙에 정확히 꽂아넣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게되자 본인은 군법 회의에 회부되었고, 결국 나는 불명예 전역을 하게 되었다.
정말 꼴이 우습게 되었다.
당당히 수석으로 적국 러시아의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해놓고, 대민 물의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번개같은 속도로 불명예전역이라니....
본인이 불명예 전역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병석에 누워계시던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되어 돌아가시게 되었다.
이제 남은 가족이라고는 본인의 아우 뿐이었다....
아우와 함께 이 모진 세상 풍파에 맞서야 한다니...
그런데 형이란 사람은 아무것도 도움이 되질 못한다.....
군사 특기를 잘 살릴 만한 곳이 어디 없나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어느 날 우연히 용병 업체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내용이 담긴 전단을 읽게 되었다.
본인은 그 길로 면접장으로 향했고, 나는 단번에 면접에 합격하여 그 용병 업체의 일원이 되었다.
그 용병 업체는 바로 하얀 악마 송은이가 일하던 곳이었다.
아프간의 하얀 악마라고 이름을 떨쳤던 송은이....
그녀는 전 세계를 단 한 자루의 소총으로 평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시무시한 사람이다.
그녀가 아프간 다에시들로부터 전설적인 총기 장인 목숨 하나 살려서 데려온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이다.
그녀가 향하는 곳에는 언제나 승리가 함께했다.
그녀는 피가 튀기는 전장에서 등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전우였다.
그리고....
동료의 생각이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털털하고 쿨한 친구였다.
언젠가 야간에 어느 타이가 지대에서 비트를 파고 의뢰인이 부탁한 암살 대상이 올 때까지 매복해있던 일이 있었는데 본인과 같은 비트에서 매복해있던 송은이가 나에게 물었다.
"이반, 너는 왜 이 일이 좋아?"
"이런 척박한 오지 환경에서 벌이는 전투는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주거든. 난 전투가 좋아. 전투는 날 강하게 만들어줘.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에서 내가 죽지않고, 더 강해져서 돌아오면 언젠가 더러운 러시아 놈들이 우리 땅에서 물러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내 하나 뿐인 조국 우크라이나를 되찾는데 큰 공을 세운 영웅이 되는거지."
"호오? 전투가 너를 강하게 만들고, 그 힘이 구국의 영웅으로 거듭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고라..... 그래서 만날 작전 때마다 돌격하자고 주장하는거야?"
"솔직히 이렇게 좁은 비트 안에서 매복해있는 것 보다 당당하게 나와서 싸우는게 더 좋아."
"흐흐흐흐흐, 역시..... 넌 바보야."
"뭐라고?! 보....본인은 바보가 아니다! 바보가 아니란 말이다. 절대.... 크흠흠...."
"에이~ 얼굴 빨개지는 거 봐라? 넌 정말 단순한 얘구나?! 무식하게 힘이 센 척 다하면서 순진하기는...."
"하얀 악마, 오늘 일은 절대 잊지 않을 거다. 두고봐라.... 난 기필코 내 조국 우크라이나를 되찾고, 영웅이 되겠어."
"너같은 바보라면 언젠가는 꼭 볼 수 있을거야. 독립."
러시아 육군 사관학교 생도 시절, 본인을 괴롭히던 슬라브족 생도들이 '바보'라고 할 때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이상하게 송은이가 말하면 왠지 모르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고맙다. 나중에 우리 나라 독립되면 꼭 한번 와라. 독립 기념으로 한 턱 낼테니까."
"그래. 그 때까지 죽지 말고. 바보."
송은이는 본인이 가진 조국 독립 쟁취 의지와 기백을 높이 칭찬했다.
아우를 제외하고 본인의 마음을 잘 이해해주는 건 송은이 밖에 없었다.
하지만 얼마 뒤에 송은이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들어와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Dasvidaniya, Moy drug.(잘 있어, 친구.)"
섭섭한 마음을 감추면서 본인도 작별 인사를 나눴다.
"Dasvidaniya, Moy drug.(잘 있어, 친구.)"
송은이와 작별하고나서 얼마 뒤, 러시아 정부로부터 제의가 들어왔다.
과격 무장 독립 투쟁 기구 베리타 여단을 섬멸하는데 협조하면 조국을 독립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본인과 동료들은 최대한 많은 동포들을 끌어 모아서 훈련시켰다, 그리고 결전의 날이 다가오자 러시아 정부군의 특수전 수송기를 타고 베리타 여단의 시베리아 비밀 기지로 은밀히 접근했다.
베리타 여단 주둔지와 가까워지자, 수송기 내부에 사이렌이 울리면서 램프-도어가 열리고, 본인과 동료들은 그대로 뛰어내려 낙하산을 펼쳤다.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는 폭격 유도였다.
베리타 여단의 시베리아 비밀 기지를 지키는 경비병들과 감시 카메라의 눈을 피해서 탄약고와 무기고와 보급 창고와 군수 공장에 폭격 싸인을 송출하는 초소형 수신기를 붙이고 은밀하고 신속하게 기지를 빠져나와 러시아 정부군 장교가 일러준 탈출 장비가 은닉된 지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함정이었다.
탈출 장비가 은닉된 지점으로 향했더니 그곳은 개활지였고, 곧 베리타 여단의 주력 부대가 우리를 포위해버렸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만했다.
같은 동포끼리 총격전을 벌인 것이다.
정말 처참했다.
정말 한심했다.
같은 동포끼리 총부리를 겨누다니....
총격전은 40분간 지속되었다.
그 사이, 러시아 정부군의 UAV가 고고도 상공에서 이 장면을 찍어갔고, 러시아 정부군 수뇌부는 곧바로 폭격을 감행했다.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베리타 여단에 가담했던 동포와 진압군에 가담했던 동포 양쪽 모두 큰 사상자를 내었다.
본인을 비롯한 몇 안되는 동포만이 그 지옥에서 살아남았다.
본인은 그 때 깨달았다.
독립은 공짜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독립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본인은 그대로 잔존 병력들을 이끌고 베리타 여단에 투항했다.
그리고 조국 독립 쟁취를 위한 처절한 사투를 이어나갔다.
마치 비밀 결사대처럼 조직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러시아 정부를 괴롭혔다.
그러자 러시아 정부는 유니온 모스크바 지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러시아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인 유니온은 클로저 요원들로 구성된 대테러 특수 임무대를 창설하고, 무자비한 살육을 벌였다.
우리는 많은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졌다.
본인은 하나 뿐인 아우의 집에 은거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대테러 특수 임무대가 아우의 집에 들이닥쳤고, 본인과 부하 몇 명을 지하실에 숨겨준 아우는 엽총으로 클로저 요원들에게 맞서다가 무참하게 살해되었다.
지하실 문 틈으로 내 아우가 무참하게 살해되는 것을 본 본인은 유니온에게 복수를 다짐하게 되었다.
한참 동안 불었던 피바람이 멎고, 본인은 수소문해서 살아남은 베리타 여단 동지들을 찾아다녔다.
살아남은 베리타 여단 동지들의 숫자는 나까지 포함하면 소대 규모밖에 남지 않게되었다.
이 숫자로 어떻게 조국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런 굴욕을 안겨다준 유니온을 철저히 원망했다.
본인을 비롯한 모든 동지들은 이 처참한 학살극으로 인해서 소중한 친구, 가족, 연인을 잃었다.
대장님은 책임을 느끼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자결했다.
죽기 전에 대장님은 우리의 위세가 대단했던 때에 우리가 유니온이 관리하는 위상 능력자 수용소에서 구출해온 이리나 페트로브나 님을 차기 대장으로 지명했었다. 그리고 대장의 의지를 이을 이리나 페트로브나 님을 끝까지 보좌하는게 내 임무가 되었다.
이리나 페트로브나 님과 우리는 침체기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새로운 은신처를 만들고, 유니온 내부에 숨어있는 우리 측 스파이로부터 유니온의 기술을 훔쳐내고, 돈 밖에 모르는 당시 벌처스 사장 홍시연으로부터 최고급 품질의 장비를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항쟁의 불을 지폈다.
최근 몇 년간 소식이 없어서 우리들이 모두 사망한 줄로만 알고 있다가, 살아서 다시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고 놀랄 유니온 지도부를 상상하니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우리는 기필코 쟁취할 것이다. 독립을.
그리고 우리는 기필코 볼 것이다.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그 날을.
누구도 항쟁의 불을 꺼뜨릴 수 없다.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