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새겨둘 거야, 그리고...

루이벨라 2017-12-17 7

※ 전편 『이제 새겨둘 차례야』 :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2678/

※ 몇몇 설정 날조주의

※ 지고의 날개 코스튬이 나와버렸어...!!

※ 다음화 엔딩











부제 : 변질은 찬찬히 다가와 마음을 어지럽혔다






 "미래에서 왔다면 넌 무슨 반응을 보일거야?"

 "뭐...?"

 "이 세상에는 모르는 채로 있는게 더 좋은 법이 있는 법이야."


 모르는 척, 뒤로 못 뺀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취한 방법은 협박이었다. 더스트가 말을 한 건 다 들었다면 그 부분도 들었다는 뜻이였다.


 "..."

 "다 들었다고 했지? 그럼 미래의 네가 어떻게 되는지도 들었다는 소리잖아."

 "...어."


 더스트는 말했다. 아주 재밌다는 듯이, 미래의 자신이 서유리를 죽였구나, 라고. 현재에서든 미래에서든 더스트는 그런 행동 등에서 재미를 찾고 있었다. 그건 계속 마음에 안 든다.


 목이 메어왔다.


 "그럼 내가 왜 미래에서 왔는지도 대충 짐작 가지 않아?"

 "..."

 "..."


 그 뒷말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아마 이 말을 하면 이때까지 쌓아온 신뢰의 벽이 무너져내릴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미 무너져내리고 있는지도...서유리가 저렇게 흔들리는 눈으로 날 보는 걸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갔다.


 눈앞도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울면 안 되는데.


 "...그렇구나. 더스트의 말대로 지금의 세하는 미래에서 온 거고, 미래의 나는...죽었나 보구나..."

 "안 화내?!"

 "내가 왜 화를 내야 해?"

 "네 미래를 그대로 지속시킨 나한테 화가 안 나!?"


 뜻밖의 체념한 서유리의 목소리를 듣자 오히려 내가 화를 냈다. 나라면...나였다면 미래의 내가 죽었다는 이 상황에서 화를 냈을 게 뻔했다. 그러자 서유리는 이상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내가 왜 세하한테 화를 내야 해? 날 죽인 건 더스트잖아...세하가 죽인 게 아니잖아?"

 "..."


 그렇다. 그 모든 일을 저지른 건 더스트였다. 내가 죄책감을 가질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이렇게 마음 구석에 계속 담아두면서, 후회를 하고,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질러 과거까지 온 건...왜 그랬을까.


 ...그러고 보니 내 원래의 목적은 뭐였지? 서유리를 다시 보는 것? 서유리를 구하는 것? 뭐였지? 기억이 안 난다...




 -네 원래의 목적이, 변질될 수도 있어.




 그제야 <지고의 원반> 이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소원을 이루기 전, 그리고 이룬 직후 나는 내 최초의 목적이 변질되지 않게끔 노력했다. 즉, 난 다시 맞이하는 이 시간을 있는 그대로 즐겼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던 내 안의 작은 욕심은 찬찬히 원래의 목적을 변질해갔다. 그렇게 쌓여가더니 이제는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목적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핀트 하나가 끊겨버렸다. 결국 내 입은 모든 걸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 온 건...그저 다시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야."

 "..."

 "모든 것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인, 그 폐허 직전에서 문득 생각했지.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모든 것에 소중함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갈텐데. 서유리가 곁에 없고나서야 그 옆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내가 서유리를 그리워할수록 서유리의 자국은 점점 옅어졌다. 난 왜 그 때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나.


 모래 한 움쿰을 움켜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떨어진 모래알을 다시 담으려고 해도, 처음으로 쥐었던 모래알을 모두 잡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기억은 흩어졌다.


 "그러던 중 이런 내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지. 그래서..."


 소원이라고 해도 되는걸까? 어찌 보면 순수한 목적보다는 내 개인의 욕망이었다. 이런 나의 침묵을 서유리는 다른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다. 벅차오르는 감정 때문에 말을 전혀 잇지 못하는 걸로 생각하는 듯 했다. 서유리는 그런 나에게, 운을 띄워주었다.


 "돌아온 거야?"

 "응."


 처음에는 믿겨지지 않았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세하는 다시 돌아온거야?"

 "...아니."


 유감스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더스트가 그랬지. 미래의 나는 몰라도 지금의 나는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그런데 슬프게도, 미래의 나도 지금의 더스트를 이길 수 없었다. 그 점이 참 분했다. 누가 또 미래에 있을 고통을 겪고 싶어할까. 이왕이면 구하고 싶었다. 그렇다. 처음 목적은 서유리를 기억에 더 남겨두고 추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을 추억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사람이 옆에서 같이 있는 게 더 좋았다. 원래의 내 목적은 서유리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난 왜 그런 말을 <지고의 원반> 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애초에 나도 거기에 속아넘어갔다. 내 마음이, 내 진심을 뒤덮고 속였다. 참 대단하다.


 "...난 미래를 바꿀 수 없어."

 "..."

 "그런데 난 왜..."


 왜 돌아온 걸까...?


 나약하다. 무기력하다. 그 사실을 인정했을 때 난 또 구렁텅이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미래의 나였어도 지금의 더스트를 이길 수 없었다. 결론은 난 왜 여기에 온 걸까? 진짜 <지고의 원반> 에게 말한대로 다시 한번 그 순간을 경험하고 싶어서? 아니, 그 길의 끝이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면 다시 추억해도 될 만하다. 하지만 끝이 좋지 않았으니 다시 한번, 돌아올 수 없는 소원을 빌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지금 내 행동에도 모순점이 있다. 애초에 그게 해피엔딩이었다면 내가 <지고의 원반> 을 장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쉽게 말하면...


 난 <지고의 원반> 을 속였다. 그리고 나 자신도 속였다. 난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뒤늦게서야 알아챘는데 <지고의 원반> 은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인정하기로 하자. 난 이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만끽하기 위해 돌아온 게 아니였다. 이 순간을 계속 이어지고 싶어서, 서유리를 구하기 위해 돌아온 거다.




 -이제야 비로소 좀 솔직해지는군.




 <지고의 원반> 이 그렇게 속삭이는 게 들리는 듯 했다. 이제서야 솔직해지면 뭐하냐. 이젠 시간이 정말 별로 없었다.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되었다.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굳어버린 나를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서유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저 음조, 미래에서도 듣고 싶었다. 난 서유리에게 했던 말을 다시 정정했다.


 "응 맞아. 난 널 구하고 싶어서 다시 돌아왔던거야."

 "세하야..."

 "...미래를 바꾸고 싶어서 겨우 돌아왔는데...미래를 바꿀 수 없다니...이게 무슨 모순이야...!"


 또, 반복이 될까. 서유리가 내 눈앞에서 죽는 것이? 그것도 아니면 또 절망한 내가 <지고의 원반> 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이? 그래서 또 이렇게 죽기 직전의 서유리에게 추궁당하는 것이?


 "...세하는 강한대."

 "그래봤자 약하다고."

 "아냐, 분명 강해."


 강하다...그러고 보니 서유리가 죽기 직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 오버랩이 되어진다.




 -세하는 강하니까, 울지 않을거지?




 그랬다. 서유리는 변함이 없었다. 지금이든, 그때이든. 날 믿어주었다. 그리고 바보 같이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했다. 그런 네가 너무 사랑스러운데, 그런 널 지키기에는 그때의 나는 약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좀 다를 수도 있었다. 이미 한번 겪어본 일이 반복된다는 법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는 서유리를 꼭 지키고 싶은 각오가 있었다.




 -마음의 힘이라는 거, 참 대단하단다?




 언젠가의 네가 했던 그 말, 한번 믿어볼도록 할까나.


 "강하다, 라..."

 "응. 세하는 강해."

 "그럼 열심히 노력해볼게."

 "무슨 노력...?"


 글쎄, 라며 서유리에게는 시치미를 뚝 떼었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방에 돌아와 거울을 다시 보니 아까와는 다른 내 얼굴이 보였다. 두 눈에 생기가 감도는 게 느껴졌다. 이제서야 '사람을 지키고 싶어하던 순수한 열망을 가졌던 이세하' 로 돌아온 거 같았다.


 미래를 바꿀 것이다. 장담은 못 되지만 적어도 노력은 해야지. 아니, 꼭 할 것이다. 나를 꾸밈없이 그대로 믿어주는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애초에 난 이걸 원하기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겉핥기만 하고 만족할 내가 아니었다. 난 한다면 꼭 해야하는 사람이었다.


 초침은 이 순간에도 지나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49346


다음화가 엔딩입니다.

2024-10-24 23:17:5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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