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의 생애시작 Ep-3 실험체들

Sehaia 2017-12-12 6

연구원이 부른 소리를 듣고 따라 나갔다. 어차피 옆을 보니 지난번에 명치에 주먹을 박아 넣은 사람도 보였다. 굳이 헛짓거리하나 얌전히 따라나서거나 결과는 똑같다. 차라리 한 대라도 덜 맞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물론, 수술대를 눈앞에 두고 나니 차라리 얻어맞아서 정신을 잃는 것이 나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지만 말이다.

 

그렇게 겁먹을 거 없어. 그냥 심장에 뭐 하나 더 끼워 넣는 것뿐이라고? 지난번은 너가 이 수술을 버틸 정도가 되는지 검진하는 거였고, 이번은 조금 괴로운 정도? 그래도 별로 무서울 건 없어.”

 

웃으며 그 따위 얘기를 지껄이는데, 어떻게 겁을 먹지 말란 거냐.

진즉에 발버둥을 치는 것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저항하는 나를 수술대에 달린 수갑에 채우며 아저씨가 말했다.

 

애초부터가, 위상력이라는 힘은 선천적 위상능력자가 아니면 인공적으로 개화할 방법이 거의 없다니까. 만화같이 수련을 통해 개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면 몸에 부담은 좀 가도 억지로 각성시키는 방법 밖에 없지 않겠어? 물론, 몸에 부담은 좀 가지만.”

 

그걸 알면 나한테 그딴 걸 집어넣으려는 시도를 하지 말아야지.

이미 재갈이 물려져 닫을 수도 없는 입으로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물론 들리지도 않았을 터고, 들려도 들은 척도 안 했을 그 인간은 옆에 있던 수납장에서 허여멀건한 액체가 든 시험관 세 개를 꺼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이거지. 위상력을 분석해서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낸 각성, 도핑 약물을 몸 전체로 흐르게 하는 거야. 먼저 네 몸에 든 피를 좀 빼내고, 지금 네 심장에 끼워 넣을 장치로 혈액과 약물 순환을 더 빠르게 하면 예비 위상능력자 완성! 어때, 참 쉽지?”

 

그런 걸 나에게 설명해서 도대체 무얼 어쩌겠다는 건가. 어지간히도 할 짓이 없는 건가?

어떻게든 수갑을 풀려고 발버둥치는 날 무표정한 얼굴로 본 그 할 일 없는 인간은 꼭꼭 숨겨온 비밀을 밝히듯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 목소리에서 감정을 일말의 감정을 찾을 수 있었더라면, 내가 조금은 덜 발버둥 쳤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이걸 내가 말해주는 이유는 말이야, 이게 수술 후엔 좀 아픈가 보더라고. 인공적으로 고혈압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그런가? 피를 좀 뺐는데도 혈압이 꽤 크게 상승하니까. 수갑을 풀어버리더니 뒷목을 잡으려다 그대로 픽 죽어버리기도 하던데. 마음의 준비라는 거지, 아무렴.”

 

넌 화내지 말고 혈압 조절 잘 해야 된다?

 

말을 마친 그는 내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처음에는 조금 따끔한 느낌이 들었으나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잠을 잘 팔자만은 타고났나보다. 그런 멍청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 드는 걸로 봐선, 나도 아직 호된 경험은 못했던 것이다.

 

 

깨어났을 때는 별 감각이 없었다. 사실 수술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럴 정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휠체어에 앉혀져 이송당한 내가 있던 방에서 죽 한 그릇을 넘겨받고 정신을 멍하게 놓고 있었다.

 

그런 시간도 잠시였다.

 

처음엔 수술 자국이 타오르는 것같이 뜨거웠다. 메스로 째 놓았던 희미한 선은 어느새 그 자체로 가슴을 두 조각으로 갈라놓는 것만 같았다. 그 부분을 따라서 그대로 절취선을 뜯듯 가슴을 쪼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통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가슴 깊은 곳이 죄여왔다. 평소에 묵묵히 일하는 심장을 노예로 부려먹기 시작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신의 피가 급속하게 전신을 돌고 돌면서 전신이 쓰리게 만들었다. 그건 가슴을 쥐어뜯는 것 같이 어떻게 해 볼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전신에서 혈관을 하나하나 전부 뽑아버리고 싶었다. 전선이 다 뽑힌 로봇같이 되고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앞방에 있는 놈은 천연덕스럽고 얄미울 정도로 침착했다.

 

이야, 신고식 한 번 거하게 치르네. 나 때는 겨우겨우 죽은 삼킬 정도였는데, 얜 아예 다 죽어가잖아? 13번은 역시 숫자가 글러먹었다고. 이번 신입도 곧 골로 가겠는걸.”

 

남이사 죽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라는 듯이, 녀석은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보듯이 여유롭게 날 관찰했다. 놈이 퍼먹고 있던 밥그릇을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다 놈은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는 듯이 검지손가락을 치켜들더니,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이보쇼! 저번에 내가 헛짓거리 할 땐 잘만 묶어두더니, 얜 안 묶어? 이거 사람 차별 아냐! 실험체면 실험체답게 대우해!”

 

별 짜증도 없이 항의하는 놈의 목소리는 나와 놈 사이에 있는 복도에서 메아리쳤다. 그래봤자 시끄럽기만 하고 들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어보였다. 물론 나 또한 이런 놈에게 신경을 써 주기에는 기침과 함께 입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액체가 너무 익숙했다.

 

, 그거 피냐? , 진짜야? , 가공 처리 받고서 뇌출혈 일으킨 놈은 봤어도 피를 토하는 놈은 처음 봤네. 이거 걸작인데! 어떤 기분이야? 딱 보니까 장기 한두 군데 맛이 갔겠는걸?”

 

............다물어......”

 

뭐어라아고오?”

 

제발, , 망할, , 다물라고!”

 

남은 아파 죽겠는데 입을 놀리면서 낄낄거리다니, 가능만 하다면 이 쇠창살을 떼어내 버리고 놈의 목을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이 쇠창살이 떨어져 나갈리는 없다. 더불어, 지금의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녀석은 오른쪽 입꼬리를 추켜올리며 더더욱 비웃기 시작했다.

 

그래, 약효가 듣기 시작한 건가? 아니야, 이 정도론 아직 근본 성격은 멀쩡한 편이지. 그래봤자 한두 번 싸워보면 바뀌겠지만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너 전투 예정은 언제냐?”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놈에게 대답해 줄 말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것도 있다. 전투 예정이라니,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를. 뜨겁게 달아오른 내 몸과의 전투라면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그런 걸 묻는 건 아닐 테고. 거기다 성격이 멀쩡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이 동공이 확대되어 있는 녀석에겐 미안하지도 않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굳이 대답할 짬도 없었을 것이다. 놈이 한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는 와중, 연구원이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전에 본 그 백중현이라는 사람이었다.

 

틀림없이 시끄럽게 한 것에 대해 뭐라 하려고 온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란 건 금방 알 수 있었다. 내 방 건너편에서 기쁨을 이기지 못한 괴성이 들렸다. 굳이 뭐라 하려고 온 사람을 반길 이유는 없었을 테고, 실제로 그런 이유도 아니었다.

 

“14, 이번엔 네 차례야. 준비해. 네 검은 여기 있어.”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놈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래, 그래, 좋았어! 어래? 이봐, 주사는 어디 있어?”

 

까먹을 거 같니. 주사는 여기 있어. 이번엔 괜히 헛짓거리 못하게 1개만 준비했으니, 적당히 상황 봐 가면서 써.”

 

, 변함없이 쓸데없는 거나 신경 쓰는 꼰대로군. 그 나이에 벌써 그렇게 삭아버리다니, 어떤 의미에선 존경한다고?”

 

자기 목숨과 관련된 걸 쓸데없다고 하지 마!”

 

삭아버렸다는 건 부정 안 하네? , 상관없지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놈은 검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물건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 검, 아니 칼은 조금 이상했다. 단도라고 하기엔 너무 길었고, 일반적인 검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았다. 기껏해야 녀석의 손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나 되었을까. 거기에 양쪽에 날이 서 있어서 자칫 실수했다가는 자신이 베여버릴 만한 것이었다. 거기에 손잡이에 구멍이 있었다. 녀석은 손가락을 그 구멍에 넣고선 그 칼을 돌리고 있었다. 칼이 반 바퀴를 돌 때마다 놈은 칼을 정수, 역수로 계속해서 바꿔 쥐었다.

 

, 난 됐으니까 저 녀석 좀 봐줘봐. 아직 약이 혈류를 따라 도는 거에 적응이 안 된 모양인데, 조금 순환 속도 좀 늦춰줘. 그리고 나 싸우는 거나 보게 해.”

 

? 너 싸우는 거 보게 해서 뭐하게?”

 

보면 알게 돼, 저 녀석이. 당신이 알 필요 없어. 어차피 여긴 보는 게 듣는 것보다 빠르고, 저 녀석도 보면 아는 타입이야.”

 

그 말은, 너랑 닮았다는?”

 

, 얼추? 아 몰라, 됐어. 빨리 보내 줘.”

 

저 사람 앞에서도 제멋대로인건 여전하다. 그러나 약간 미묘하게, 태도가 부드럽다. 그 사실에 난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저 백중현이라는 사람도 저 녀석을 상대하는 동안에는 전에 봤을 때보다 좀 안정된 것 같이 보인다.

신성우의 말을 듣고 날 좀 뜯어보던 백중현은 품속에서 리모컨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가슴 속에서 삑 소리가 나더니 몸이 천천히, 아주 조금씩 덜 쓰라리기 시작했다.

 

맙소사, 도대체 누가 혈류의 속도를 이 정도로 조정해 놓은 거야? 애가 다 죽어가잖아!”

 

그러곤 주사를 한 방 놓아주었다. 이곳에 오기 전만큼은 아니어도, 조금은 몸이 가벼워진 것이 느껴졌다. 손끝까지 경련이 일어나는 상태에서 손가락은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된 정도일 뿐이긴 했지만.

내 상태가 좀 나아진 걸 확인한 백중현은 날 들쳐 업고는 휠체어 위에 앉혔다.

 

널 풀어줄 순 없지만, 저 애의 부탁이니까. 얌전히 있어줘. 너한테 굳이 마취 주사를 놓고 싶진 않아.”

 

기우였다. 어차피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휠체어에 맡긴 채 끌려간 곳은 둥근 원형 투기장이었다. 투기장은 상당히 넓었다. 주변 한 바퀴를 다 돌려면 족히 10분은 뛰어야할 것 같았다. 그 주변은 유리같이 투명한 무언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유리로 보이지는 않았다. 유리라고 하기엔 만져봤을 때의 감촉이 너무 뻑뻑했다. 하지만 투명하기는 유리보다도 더 투명했다.

 

그 너머로 신성우와 사람 한 명이 더 보였다. 그들이 뚜벅거리며 걸어가는 소리조차도 주변의 스피커를 통해 다 들려왔다.

상대방은 신성우와는 달리 제대로 된 검을 든, 약간 키가 큰 소년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아직 앳된 티가 나는 걸로 보아, 내 나이 또래인 건 맞는 것 같았다.

 

키히히힛. 덤벼, 덤비라고, 삼류! 발악하기도 전에 다진 고깃덩이로 만들어주지!”

 

호전적으로 말하는 신성우와는 대조적으로 상대방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침착하게 빈틈을 노리는 매와 같이, 상대방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신성우는 그럴 정도로 침착한 성격은 못 되는 듯했다. 하긴, 수용실에서 보였던 행동은 침착과는 거리가 멀긴 했다. 그러나 저 정도로 저돌적으로 나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상대방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칼을 한끝차이로 피했다. 무기의 공격 범위 상으로 자신이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발끝을 세워 한 번 크게 빙글 돌더니 그 회전을 그대로 이용해서 신성우에게 검을 휘둘렀다. 칼로 막아내기는 했지만, 손이 저리는 건지 칫 하며 손을 흔들어 풀었다. 그 때부터 상대방은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위는 상대방에게 있었다. 어떻게 공격을 막아내면서 틈틈이 찌르거나 베려고 시도를 하긴 했지만, 죄다 상대방의 무기에 막혀 닿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밀고 들어오는 상대방에게 밀려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는 쪽은 신성우였다. 처음에 외쳤던 기백과 맞지 않는다.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먼저 쓰러지게 되는 건 신성우 쪽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왔다.

 

발을 잘못 디뎠다. 거기에 칼까지 상대방의 발 뒤편으로 떨어뜨렸다. 손에 든 건 없고 바로 눈앞에는 검을 내리칠 준비를 한 상대방.

 

그가 죽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그 당사자인 신성우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틀림없이 그의 가슴에는 검이 박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의 죽음을 그 도시에서 너무 많이 봐온 탓일까. 그가 죽을 것이라는 건 나에게 있어선 너무나도 명백해 보였다. 그러나 검이 그의 가슴으로 접근할수록 명백함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가 주사를 꺼내들고는, 자신의 뒷목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굳이 다시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 정도로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 그는 사냥감의 등 뒤로 이동해있었다. 사냥감의 발목은 이미 절단된 상태였고, 그의 칼은 상대방의 목에 닿아있었다.

 

수고했어. 잘 자라고.”

 

그게 오늘 내가 그의 입에서 들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말이었고,

 

아직도 내가 착해 보인다면, 이번에야말로 내가 직접 네 눈을 파 줄 수도 있는데?”

 

이게 오늘 내가 그의 입에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다시 웃기 시작했다.

 

잠들지 못할 정도로 시끄러운 밤이었다.

 

챙겼다고 생각한 잠잘 팔자도 어느 샌가 잃어버리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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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어떠셨는지요.

나타의 성격은 상당히 모순되어 있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얼핏보면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그 안에선 냉철한 면모도 보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경계하면서도 인게임에서는 누구보다도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하죠. 이 까다로운 성격은 어떻게 해야 나오는가......고민을 좀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결국은 사람이다, 라는 생각에 오리캐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나타의 조각에 끼치는 영향을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밌으셨으면 좋겠네요. 재미있으셨다면 댓글과 추천 부탁드릴게요.


Ep-2 정보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2809


Ep-4 전투훈련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2846

2024-10-24 23:17:5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