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of Striker-이세하 Ep-12 재해
Sehaia 2017-11-29 2
좋아, 건블레이드에 흐르는 위상력이 마치 팔에 직접 연결이라도 된 것 같이 자연스럽다. 이 정도면 준비는 다 됐다고 할 수 있겠지. 기운차게 한 번 해 보자.
그럼, 제 1발!
“성공. 다시.”
좋았어. 그럼 제 2발.
“성공. 다시.”
제, 3발.
“성공. 화력이 슬슬 떨어진다. 다시.”
제, 제, 4발..
“아슬아슬하게 성공. 다시.”
“더, 더는 무린데요.......”
“무슨 소리야, 5연타까지는 할 수 있어야 어떻게 원거리에서 효율적으로 견제를 해 볼 만한데, 제대로 된 화력은 2타까지밖에 안 나오잖아. 이걸 설마 실전에서 쓸 생각은 아니지?”
쓸 거라고 대들면 오늘 저녁 메뉴로 페이즈 나이프로 잘 썬 A급 스테이크(이세하)가 나올 것만 같아, 당장이라도 트위스트를 출 것 같은 혀를 이빨 끝으로 속박했다.
석고상과도 같이 차가운 얼굴을 직면하는 것을 포기한 나는 시선을 마주치기를 포기하고 땅을 바라보기로 했다. 이상하네. 분명 불꽃은 쏠 수 있게 됐는데, 어째서 나는 이렇게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가. 부조리하다. 말도 안 된다고.
“며칠 만에 여기까지 끌어올린 거라도 칭찬해주시면......”
“안 돼. 중요한 건 결과야. 노력은 결과를 얻기 위해 당연히 바쳐져야 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런 당연한 걸로 칭찬이라니, 가당치도 않잖아?”
말허리를 중간에 끊은 것으로도 모자라 탄환같이 논파해 주시다니, 이 정도면 가히 언어폭력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본다. 본인에게 의식이 없다는 게 더 악질적이야.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회로를 가진 인간에게는 아마 여태 이 정도로 하지 않은 내가 비정상으로 보이겠지.
건블레이드에서 불꽃을 일직선으로 쏘아낼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하라는 말을 들은 지 벌써 나흘 째. 어찌어찌 불꽃을 쏘아내는 것 자체는 성공적이었으나, 연속해서 쓸 수 없다는 것이 또다시 발목을 잡았다. 계속해서 일직선으로 쏘아내기에는 아직 위상력 컨트롤이 부족해서 2발 째 이후로 화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진다. 힘의 흐름이 순간적으로 불안정해서 빈틈이 생기는 건 덤.
그런 연유로 그걸 극복하기 위한 연습을 다시 하라는 설교를 들으며 계속해서 불꽃을 쏘는 걸 반복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 불꽃을 만들어내는 기계일 뿐이지. 사실 천직이 불꽃놀이 장수였다고 해도 이젠 믿을 것 같다.
이 이상 토를 달아봐야 다시 설교의 연옥에 빠지는 것이 두려워 위상력을 정련하기 시작하는 도중, 시계를 본 이슬비는 손뼉을 두 번 쳤다.
“좋아, 오늘은 이걸로 끝. 수고했어.”
어라?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직 2시간 정도 남은 거 아냐?”
“응? 뭐야, 또 공지 안 봤어? 내일은 신논현역에서 대기하라는 말이 있었잖아. 이상 차원압 편차율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일은 학교 가지 말고 대기하라고 했어. 지금 힘을 너무 빼 놓으면 내일 제대로 힘을 못 쓸 테니, 오늘은 여기까지.”
이젠 내 불성실함에 별 감흥도 안 드는지 기계적으로 답변이 날아왔다. 으음. 그런 말이 있었던가. 휴대폰에 오는 공지를 제대로 확인한 적이 최근.......없군. 미안해요, 유정 누나.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이슬비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보였다. 아무래도 날 먼저 보내고 남아서 좀 더 훈련을 할 생각인지, 가방을 싸려는 움직임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일찍 자. 내일은 아마 힘든 하루가 될 거야.”
“그런 것 치고는 넌 힘이 넘친다?”
힘든 전투를 예상하며 힘이 넘친다니 어느 행성의 전투 종족이세요. 언제 지구로 잠입해 들어온 거냐. 신원을 똑바로 해라.
반쯤 비꼬려 했던 내 말을 정면에서 받아치듯 이슬비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도 번뜩였다.
“당연히. 감히 사람들이 밀집된 이 강남을 골라서 쳐들어와? 호락호락하게 도망치게 하진 않을 거야.”
팔을 부르르 떨며 계속해서 벽에 날려댄 페이즈 나이프는 정확하게 한 점에 모였다. 비효율적이라며 7개 이상은 꺼내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 무색하게, 나이프는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우리가 막지 않으면 다시 불행해지는 사람이 나오게 되어있어.”
평소라면 역시 노력가는 대단하다며 감탄을 내뱉고, 역시 이렇게까지 하긴 싫다며 질려하던 나였겠지만, 그 말은, 녀석의 표정은 평소 은은히 띠고 있던 강인함과는 달리,
“그러니 전력이 될 사람을 함부로 소모하는 일은 있을 순 없단 말야.”
당장이라도 이성과 함께 무너질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여서,
“야, 이슬비.”
“왜?”
스스로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서 전에 가져간 게임기는 언제 돌려줄 거야?”
말을 돌리는 것 밖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빠악.
하하. 차라리 이게 낫지.
페이즈 나이프의 손잡이로 한 대 맞아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돌아온 집에선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완 달리 약간 우물쭈물 하시는 것이 아무래도 내일 있을 일을 아는 듯 했다. 항상 집에서 ‘그 여자는 누구야!’‘내 딸은 못 준다!’를 외치는 텔레비전조차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혼자서 계속 끙끙대기를 몇 분, 드디어 조금 마음이 정리가 되었는지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아들, 내일은 괜찮겠어?”
“엄마한테도 문자가 갔어요?”
“유소년 팀의 활동이라 그런지, 이따금 보고 문자가 한 두 건씩은 오더라.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오긴 했어. 그런데 오늘은 뭔가 불안 불안하네. 감이 안 좋아.”
“별 일 없겠죠, 뭐. 이 근처 차원압이 이상해지긴 했어도 B급 이상이 출몰한 적은 없잖아요.”
큰 걱정 없을 거라며 넉살 좋게 넘긴 내 말과 반비례해서 엄마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린 내 입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일상의 대부분을 차원전쟁으로 보내신 분이다. 수년간 이상차원을 당신의 피부로 느끼며 그 한복판에서 전투를 하셨다. 전신의 감각을 지니고 있는 무기보다도 날카롭게 갈고 전투의 냄새를 맡아오셨다. 그런 분이 이상을 느꼈다는 건 아마 이번 일이 조용하게 끝나지만은 아닐 것을 예고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한테 그런 말을 굳이 할 필요는 없어.
“엄마, 지금 여행은 못 간다고 그랬던가?”
“응? 어, 유니온에서 허락이 나오지 않으면 아무래도 힘들지?”
“그럼, 나중에 신작 세계여행 VR이라도 하나 보실래요? 내가 하나 살게요.”
어차피 게임을 사는 것 외엔 크게 쓸 일도 없는 월급이다. 이런 곳에 쓴다고 해서 나중에 곤란할 일 따위 없을 거다.
이렇게 말을 슬쩍 돌리는 것밖에 못하는 아들, 팀원이라서 미안. 진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어.
지금 눈앞에 있는 엄마와, 눈앞에 없는 분홍머리에게 가벼운 사과를 보낸다. 그도 그럴게,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저 내일 별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최소한, 엄마 앞에서는 당당하게 있자. 엄마가 더 이상 힘들지는 않도록.
내 말을 들은 엄마는 머리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씨익, 하고 평소와 같이 웃었다.
“흐, 집 안에만 있기도 답답하긴 하지. 그럼 어디 좀 비싼 걸로 골라볼까? 간만에 아들이 하나 선물해주겠다는데, 제대로 된 거 한 번 골라봐야겠는데?”
“그, 그렇다고 너무 비싼 걸 고르시면 제가.....”
“안 돼! 무르기 없기다, 아들? 한 번 한 말은 지켜야지? 좋아, 엄만 인터넷 쇼핑 좀 하러 간다.”
“에, 에에에?”
입으로 내 무덤을 파 버렸다! 이 멍청아! 폼 한 번 잡아보겠다고 무리를 너무 했잖아!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시, 신작 게임이 날아가게 생겼다고? 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취소를......
뭐,
거짓말이지만.
엄마가 웃었잖아? 그걸로 충분해. 아마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다 알고 계실 테지만, 넘어간 척 해 주셨으니, 한 번 끝까지 계속해볼까, 이 바보 같은 연극을.
그러니.
“내일은 무사히 돌아와야 해?”
“내일은 무사히 돌아올게요.”
이렇게 말이 겹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건데.......”
나름 폼 잡고 엄마하고 약속은 했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예상이 어긋나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 B급의 차원종이 출몰해서 퇴치하긴 했지만, 큰 상처 없이 끝이 났다. 트룹같이 둔하고 덩치 큰 차원종은 오히려 공격할 곳이 많기에 대처하기가 편하다.
“뭐야뭐야, 뭔 큰일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별 일 없잖아? 그냥 쉴 새 없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뿐이잖아!”
“그러게요, 누나. 딱히 이상하리만큼 큰일이 없네요.”
서유리와 미스틸테인이 느긋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것조차 당연하게 느껴진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편이라 긴장이 되레 풀린다. 이대로만 하면 큰 문제없이 오늘 하루를 끝낼 수 있겠는걸.
그러나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이슬비는 아무래도 답답한 모양이다.
“슬비야, 왜 그래? 별 일 없이 무사하게 끝나면 좋지 않아?”
“무언가 이상한 것 같지 않아? 차원종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나오잖아.”
그건 차원압에 이상이 있기 때문 아닌가. 무슨 당연한 말을 새삼스레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나오는 것 같긴 한데, 애초에 그렇지 않으면 뭐가 다른 거냐. 어제에 그렇게 설레발을 치던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아냐. 동생. 아직은 긴장을 유지해. 이런 잔챙이들만 나올 리가 없어. 지난 번 B급이 나왔을 때를 생각해 봐. 이렇게 계속해서 놈들이 나온다는 건, 어딘가 큰 위상 왜곡이 생겼다는 거라고.”
“그렇다곤 해도 아직까지 아무 일이 없었잖아......아아아? 뭐야, 저 왜곡은?”
호랑이도 부르면 나타난다고 했던가. 눈앞에서 차원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했던 왜곡은 조금씩 그 크기를 불려갔고, 우리도 그에 따라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 두 명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크기가 되었는데도 차원 왜곡은 부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차원 왜곡에서 거대한 푸른 앞발이 나온 그 때, 제이 아저씨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훈련 프로그램에서는 여태껏 본 적도 없고, 예상도 가지 않는 크기와 형태의 괴수였다. 만일 저게 단지 앞발일 뿐이라면, 그 본체는 얼마나 큰 것일지, 감조차도 잡히지 않았다.
“아냐, 그럴 리 없어. 저 놈이 여기 있을 리가 없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을 틈도 없었다. 제이 아저씨의 외침은 놈의 포효에 가려 들리지도 않았다.
이윽고 푸른 차원종의 전신이 차원문에서 빠져나왔고, 머리에 감겨있는 무언가 때문에 괴로운 듯 몸부림치며 발로 지면을 세게 강타했다. 중심조차도 잡기 힘들만큼 강대한 충격파에 가까스로 서 있는 동안, 오직 제이 아저씨만이 사태를 파악했다.
“리더. 지금부터는 내가 하는 말에 따라줘. 우리는 여기서 교전한다. 전투 지시는 너가 해. 하지만 내가 도망치라고 할 때는 날 제외하고 전부 여기서 도망쳐. 그리고 당장 유정 씨한테 연락해.”
“예? 그게 무슨......?”
“저건 A급 차원종, 타입 말렉이다. 걸어다니는 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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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능 끝난 고3이자, 논술 쓰는 고3 Closenea입니다. 논술 좀 쓰다가 오느라 복귀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거기다 간만에 다시 소설 쓰니 감각이 많이 떨어졌네요;; 나중에 한 번 마무리 하면서 퇴고를 한다면 개인적으론 묘사를 늘리고, 좀 손 좀 보고 싶은 곳이 꽤 있어요...쓰읍. 사고회로를 어서 이과에서 문과로 다시 돌려놔야 하는데.
그럼에도 재밌게 보셨다면 기쁘겠네요. 분량도 늘리고 필력도 잡고 곧 다시 오겠습니다.
Ep-11 위상 집속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4&n4articlesn=12459
Ep-13 탈력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2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