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모음집 part β

루이벨라 2017-11-20 9

※ 쓰고서 올리지 않은 세하유리 모음집






1. [세하유리] 비가 오는 날에는


※ 클로저스 전력 60분

※ 주제는 '비'

※ 현재 구상중인 세유 회지의 일부분을 각색했습니다.




 "...비 온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하지만 정말 밖에는 유리의 말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세하는 잠시 하던 게임을 멈추고 유리가 말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가 내린다. 통, 통, 통 물방울마다 가지고 있는 자신의 소리를 튀기면서 내린다.


 "소나기인가."

 "장마철이긴 했지만 계속 가물었으니 슬슬 올 때도 되었지."


 이번 여름은 무척이나 건조했다. 장마철이라고 뉴스에서 떠들어댄게 몇번째인지 모르지만 장마철치고 맑은 하늘을 본 기억이 더 많았다. 느지막한 오후에 내리는 비. 불을 안 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여름의 오후라고 햇빛이 조금은 내리쬐는 모양이다. 먹구름 사이로 간간히 빛이 보인다.


 적당히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유난히 밝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먹구름이 잔뜩 낀, 비가 오는 걸 내비추고 있는 커다란 거실 창문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세하 예전에 비 맞는거 좋아하지 않았나?"

 "으응...그랬지."

 "요새는 안 그러는데, 역시 그때 감기를 크게 걸려서인거야?"

 "흐음..."


 게임에 집중하는지 유리의 말을 듣는 척도 안한다. 뭐 이제는 상관 없는 옛날일이려나.


 **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세하와 유리가 <검은양> 이라는 팀으로 만나기 훨씬 이전의 일이기도 했다. 세하와 유리는 어렸을 때 스쳐지나가듯이 만난 일이 있었다. 세하 본인은 그 만남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지만 유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모든 사람이 가진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때에 만난 세하는 충격적이었다. 유리는 어렸을 때 비를 맞는 걸 싫어했다. 비가 오는 것도 싫어했다. 하지만 그때 만난 세하는 비를 맞는 것에 대해 거부감도 없었을 뿐더러, 그리고 비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온몸이 홀딱 젖어서, 몸은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이 상황을 거부하듯이 양뺨은 빨갛게 상기가 되어있는데도 세하는 계속 서 있었다.


 -얘.

 -...

 -얘!


 유리는, 그런 세하를 차마 지나칠 수 없었다. 몇번이나 부르고서야 세하는 유리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때의 색감은...잊혀지지 않는다. 칙칙한 여름날의 비를 배경 속에서도 빛을 바래지 않는 그 금색의 눈동자를...


 유리는 세하의 그 금안에 매료되었다.


 색이 바랜 빗속에서도 예쁜 색채를 유지하는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지만, 표정이나 뭐 그런 몇몇 부분에서는 음울하게 내리는 비보다도 더 우울해보였다. 그리고 그때의 착각이 아니었다면...


 -...너 말이야...

 -...?

 -울고 있는거야?


 세하는 울고 있었던 거 같았다. 무수한 빗물이 세하의 뺨을 타고 내려가 확실한 진위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유리는 그렇게 믿었다. 그 아이는 비 오는 날, 울고 있었다. 그 아이는 비 오는 날이 아니면 울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거 같았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을 기다리고, 그리고 그 빗속에서...


 울었던 것이다.


 그 후로 그 아이를 만나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검은양> 프로젝트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났을 때 유리는 그 아이의 이름이 '이세하' 라는 것과 세하의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 둘의 상관관계는 모르겠지만 그때쯤의 세하도 어린 시절만큼 자주 울적해지는 듯 했다. 우는 걸 본적이 없고, 비가 와도 그때처럼 빗속에서 멍하니 서 있지도 않았지만, 비가 오는 걸 바라보는 세하의 옆모습을 보면 세하가 남몰래 울고 있는 거 같았다.


 -비 맞는 거 좋아해?

 -응?


 그 질문을 했을 때 놀란 세하의 눈이 참 귀여웠다. 서클렌즈라도 꼈는지 그때 보았던 금안은 아니었지만 유리의 눈에는 세하의 그 금안이 커다래지는 게 오버랩되어보였다.


 -예~전에 만났을 때 좋아했던 거 같아서.

 -...우리 만난 적이 있었던가?

 -응. 그날도 이렇게 비가 많이 내렸어.


 세하는 그 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혹시 그때의 세하는 그렇게 타고 내리는 빗물처럼, 자신의 기억도 흘러보냈는지 모른다. 그러는 게 자신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을지도.


 지금은 이렇게 좀 철학적으로 말을 멋있게 늘어놓을 수 있었지만 8살 무렵의 유리와, 18살 무렵의 유리는 그렇게까지 세상을 오래 살진 않았다. 하지만 세하에게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비 오는 날에만 서글퍼지고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는 작은 희열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하가 유리의 눈에는 매우 위태위태하게 보였다.


 지금도 세하는 그때의 일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자신과 함께 지내기 시작한 이후로, 그런 빗속에서의 돌발상황이 눈에 띄게 준 것으로 보아 이제 세하는 그 시절에 했던 행동과 별로 상관없어진 거 같았다. 하지만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비가 온다는 유리의 말을 들을 때마다 눈빛에서 작은 희열이 스쳐지나간다. 유리와 단둘이 있을 때는 렌즈를 빼는 경우가 많아 어떨 때는 세하의 눈에 작은 스파크가 튀는 거 같았다.


 그런 세하가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를 맞은 적은 딱 한번 있었다. 뉴욕 사태였나. 그때 마무리가 되어갈 즈음에 비가 내렸다. 이상 기후인가 싶을정도로 비가 심하게 내렸다. 세하는 그 빗속에서 계속 서 있었다. 결국 그 탓에 몸에서 오는 피로와 겹쳐 심한 감기 몸살에 걸려 고생했지만 그때의 일로 세하가 비가 내리는 날 비를 맞이하는 걸 포기한 건 아니라고 본다. 어차피 그전부터 세하는 점점 비를 맞는 날을 줄여가고 있었다. 그때는...


 그때는 모두 다 한계였다. 아마 그떄가 유리가 본 세하가 가장 한계에 다다른 때가 아닌가 싶었다. 몸살을 한번 겪고 난 이후로 세하는 더 이상 비를 맞지 않았다. 벌써 몇 년 동안 소강 상태라는 뜻이었다.


 괜히 세하의 옆으로 가 어깨에 기대어본다.


 "비 오는 소리 참 좋다...통 통 통..."

 "응, 그러네...통 통 통..."

 "이젠 괜찮지? 안 울지?"

 "...내가 애인가."


 애였다. 어른스럽게 구는 세하도 비 오는 날만큼은 ** 보였다.


 "이제 숨어서 울지 않아도 돼. 왜 넌 울지 않으면 안되는건데? 세하도 나랑 같은 인간인걸."

 "..."

 "너무 자신을 갉아먹지 마."


 몸도 상하게 하지 말고. 유리의 부드러운 말에 세하는 고개를 위로 치켜올렸다. 눈물이 나나. 아니다, 안 난다. 하지만 눈시울이 뜨겁다. 그런 세하를 보며 유리가 작게 웃었다.


 "비 오는 날이, 세하에게 다른 의미로 즐거운 날이 되면 좋겠어."

 "...예를 들어?"

 "예를 들면...빗소리도 듣고 차분해지는 그런 날?"

 "...네가 옆에 계속 있어준다면 그렇게 될지도."


 응, 그럴거야. 옆에 계속 있어줄게. 손도 잡아줄게. 그러면 되지?


 통 통 통...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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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하유리] 비로소 알게 되었다


※ 짧음주의, 날림주의

※ 세하 독백체(유리 안 나옴)

※ 세하 정신이 약간 피폐함(...)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간이란 참 멍청한 생물이라서, 당해보고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어떠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었는지, 또...이제 내가 후회뿐인 삶을 살게 될거라는 것도 저절로 깨닫게 된다.


 나 같은 경우도 그랬다. 생각해보니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건 무언가를 버리는 것만큼 아주 쉬운 일이었다. 이 두가지 경우의 차이점은? 자의이냐, 타의이냐. 하는 행동은 비슷하고, 후자의 경우가 더 후회가 짙을 거 같은데 나의 경우는 전자였고, 그 전자의 상황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벽이 무너지는데 불과 2초. 그리고 인간은...위상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라고 해도 그 2초 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구출해내는 건 힘든 일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힘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무력했던 내 자신이 미웠다.


 장례식에는 갔던 거 같았다. 사실 그 부분은 필름이 뚝 끊긴 듯,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신 그 찰나의 2초가 무한 재생이 될 뿐이었다.


 다행일까, 최악일까.


 그래도 이건 기억이 난다. 마지막 날에 비가 내렸다. 비가 많이 내리는 계절이 아닌데도 비가 많이 내렸다. 먹구름이 엄청 짙었다. 그리고...난 그 빗속에서도 계속 서 있었던 거 같았다. 왜 서 있었더라? 아, 맞아...이제 가버리면 진짜 가버리는 거라 마지막 인사라도 하기 위해 네가 아니지만 너이기도 한 비석 앞에 서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있었다고는 하지만, 난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입을 떼는 순간, 넌 분명 원망 섞인 목소리를 내뱉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왜 날 구하지 못한 거야?


 장례식 마지막날, 그렇게 세찬 비를 맞았음에도 내 몸은 몸살 같은 거 하나도 걸리지 않았다. 이 질긴 생명력에 참으로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악몽을 꾼다. 그 때의 상황이 무한반복되는 꿈을. 그리고 그런 널 무기력하게 봐야하는 나와, 그런 나를 원망 섞인 눈으로 보며 저주를 내뱉는 너. 이 악몽에 대해 이슬비에게 털어놓았다. 이슬비는 날 거세게 흔들었다. 이슬비의 목소리는 잔뜩 떨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세하.

 -...?

 -그건 네 탓이 아니야. 그리고 너도 잘 알잖아. 유리가...그런 아이 아니라는 걸.

 -...


 안다. 알지만 일부러 말을 지어냈다. 그렇지 않으면 난 도대체 무얼 원망해야할까. 난 널 잃어버린 책임을, 구체적인 무언가의 탓을 해야했다. 그리고 남의 탓보다는 내 탓을 하는 편인 나는 결국 나를 옭아맸다.


 악몽의 내용이 저렇고 내가 막 기억을 왜곡해서 그렇지,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았다. 유리는 끝까지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어주었다. 내 탓이 아니라는 듯, 이건 어디까지나 우연한 사고라는 듯.


 비로소 알게 되었다. 넌 그렇게 상냥한 아이였던 걸, 그리고 난 그렇게 사랑하던 널 결국 잃어버렸다는 걸. 또, 이제 이런 행복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거라는 걸.


 네가...유리가 나한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그걸 깨닫자, 난 울었다. 장례식 때조차 울지 못한, 모든 응어리를 풀어내려는 듯이, 머리가 아프고 목이 쉬어버릴 때까지 울었다. 절규했다. 그리고 또 깨달았다. 난 아직 너와의 이별을 부정하고 있었다는 걸. 그만큼 너와의 이별은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너무 아팠다.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곧 괜찮아졌다. 만약 기억상실이라든지 그런 걸로 이 이별을 회피했다면 나중에 가서야 그런 내가 더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파하고, 널 잊지 않는 것이 내가 널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서유리..."


 아직 이별의 말을 꺼내기엔 내가 너무 어리고 여렸다. 난 아직 강하지 않구나...강했더라면 어땠을까. 덜 힘들어했을까? 아니, 지금의 상황도 괜찮았다.


 "...유리야..."


 이름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서글픈데...마음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는데...이런 내가 어떻게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겠니...


 널 잃고 나서 많은 걸 알았다. 모두를 구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있던 난 생각보다 약한 사람이었고, 그런 날 옆에서 강하게 만들어준 게 너였다는 사실. 그리고 이 아픔을 이겨내서는 안된다는 걸. 내가 붙잡고 가**다는 걸. 그래야, 내가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될테니까.


 안 그래, 유리야...?


 난 참 바보인가보다. 이리 많은 것들을, 왜 네가 옆에서 없어지고나서야 깨닫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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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하유리] Dear My...


※ W&Whale(더블유 앤 웨일)의 「Dear My Friend」 를 듣고 끄적ing(아래 영상 및 가사 참조)

※ 노래를 틀고 봐주세요

※ 사망소재 주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초여름 낮에 그늘에서 맞이하는 가벼운 바람은 참 상쾌했다. 그 후부터였다. 그 일이 생긴 후, 내가 맞는 산산한 바람은 네가 나한테 몰래 주는 메세지라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런걸까. 너와 같이 있을 때마다 축복해주듯 산들바람이 계속 불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이런 바람은 왠지 우리한테 무슨 이야기를 전해주려는 것 같지 않아?' 라는 너의 말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둘 다인게 아닐런지.


 초여름의 맑은 날씨는 내가 좋아하는 날씨 중 하나이다. 드높은 푸른 하늘 위에 한구석에는 언제나처럼 커다란 새하얀 구름이 걸어져있었다. 그런 구름은 왠지 모르지만 너무도 커서 누군가가 숨어 있어도 아무도 모를 정도였다.


 어렸을 때는 사람이 죽으면 하늘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 구름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며 아는 척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난 알고 있다. 하지만 너를 생각하다보면 난 자연스레 동화를 믿게 된다.


 너와 만난 건 빠르다면 빠른, 고등학교 때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위상능력자로 각성하고나서 새로운 프로젝트라는 팀에 합류할 때 같은 팀원인 너를 본 것. 우연히도 너와 나는 같은 고등학교, 같은 학년, 심지어 같은 반이었다. 같은 반이나 되는 반친구였으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아, 너는 그래도 날 들어보기는 했다고 했다.


 사실 사람의 '만남' 이라는 거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 모른다. 정말 그 사람과 처음 만난 것이 그 사람과의 첫만남인지, 아니면 그 사람이 특별하게 눈에 들었을 때에가 그 사람과의 첫만남인지...여기서 말하는 '특별하게 눈에 들었을 때' 라는 건 그 사람에게 호감 이상의 관심이 생겼을 때. 나 같은 경우는 강남 사태가 끝난 후, 국제공항에서의 테러 진압 임무였을 때였다. 우리는 힘들었고, 서로 기댈 곳이 필요했다. 계기는 사소했지만 그 영향은 엄청나서 난...그 아이를 결국 좋아하게 되었다.


 -이 정도 생겼으니 안 반할 수가 없지...!

 -우으으으읍...!!(너, 왜 갑자기 그래!)


 내가 그 아이한테 반한 건...그래, 이 잘생긴 얼굴 때문이다, 순전히! 라면서 괜히 얼굴을 꼬집어본 적도 있었다. 그게 사실이 아닌지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얼굴 덕도...뭐 조금은 있다. 하지만 그 덤덤한 얼굴 뒤로 숨어져있던 그 아이의 성실함에 더 반했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그 아이도 나한테 마음이 있었고, 좋아한다고 먼저 고백을 받았다. 그 때의 난...! 너무 부끄러워서 그 아이만 남겨두고 500m 힘껏 달리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그 아이가 날 붙잡는데 꽤나 고생했다는 후문이었다.


 그 날은 오늘과는 다르게 눈이 분위기를 한껏 만들어주던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다.


 고백을 받은 건 한겨울, 답을 한 것도 한겨울이었지만 추억을 많이 쌓았던 날은 주로 여름날이었다. 특히 이런 초여름날.


 우리는 즐거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모든 것이 즐거운, 한창 즐거운 나날이었다. 그 순간순간 하나가 너무 소중해서 사진으로 계속 남기었다. 네가 찍혀 있는 사진은 무수히 많았다. 내 방 벽 한쪽면을 다 채우고 있는 많은 양의 사진들...이제는 그 점이 좋았던건지, 나빴던건지 알 수가 없다.


 너를 기억하는 추억은 많다. 하지만 그 추억을 보면 볼수록 더 실감나지는 건 네가 이제는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참 웃는 게 서툴렀던 너는 사진 속에서도 항상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아파보이는, 시린 표정은 잘 지었는데 이상하게 행복해보이는 웃음은 아무 사진 속에 찍혀있지 않았다. 내가 주문을 해서 억지로 짓는 미소는 어딘가 어색했다.


 그 어색한 웃음도 이젠 기억 속에서밖에 볼 수 없다. 기억 속에 있는 너는 살아있는데, 기억 밖에 있는 너는...


 비보를 들은 건 너의 생일날이었다. 임무에 무사히 돌아오면 미역국이라도 끓여주겠다는 나의 말에 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이번에 투입되는 임무는 위험한 임무라, 미역국은 괜찮으니 그냥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해달라고. 기도하면서 기다려달라고. 그렇게 약속을 하는 너에게 나는 한가지 또 조건을 걸었다.


 -무사히 돌아올 것!

 -...응, 알았어.


 ...그 때의 너는 진심을 다해 웃어주었다. 그 순간, 그 찰나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결국 넌 돌아오지 않았지만 난 너와 한 약속을 계속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기도하고, 기다린다. 기도의 내용은 항상 바뀌지만 그 안에 막연하게 담겨져있는 마음은 널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결코 이뤄지진 않을 것이었다.


 한때는 네가 너무 미웠다. 그렇게 갑자기 가버리다니. 너무 무책임하다. 하지만...


 ...네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잘 알기에, 이런 무책임한 태도...너도 마음에 안 들어하리라는 걸 난 잘 안다.


 이런 갑작스런 상황에, 널 미워하기도 했고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처음부터 아무 일 없었던 것 마냥...너무도 괴로워서. 그렇게 가버린 널 그리워하는 게 너무도 괴로워서...


 근데 그거,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잖아...네가 싫어할 행동이잖아, 안 그래?


 괴로운 마음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난 참 매정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내가 이제는 없는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고, 약속을 지키며, 너와 같이 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해주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않을 거야. 애초에 잊어버릴 수가 없지...특히 너와의 첫만남과 마지막 순간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나를 향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너, 그제야 아는 척 하며 다시 제 할일(게임)에 집중하던 너. 그런 것보단 그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도나 해달라고 하던 너. 그렇게,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나를 안아주던 너의 온기...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마 내 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기억할 거 같아, 세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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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하유리] 물들다


※ 짧음주의




 어느 날, 물들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에 의해 자신이 혼자였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보이며, 그 사람에게 물들어간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런 일이 결국 저에게도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찾아왔습니다.


 계기는 언제나 참 사소합니다. 엄마의 강압으로 인해 억지로 시작한 어느 위상능력자 프로젝트, 그리고 그 팀에 속해있던 내 또래의 여자 아이를 만난 것...어찌 보면 크다고 볼 수 있는 계기겠네요.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저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아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결코 할 수 없는 말간 눈빛을 하고, 쾌활하게 주변을 빛나게 만드는 그 아이는...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거부감? 그런 건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질투가 가미된 부러움이 들었습니다. 난 평생 할 수 없는 평범한 삶이라는 것...그 아이는 겪어보고 자랐을테니까요. 참 세상 물정 모르네, 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나와 같은 프로젝트에 있다는 것은...그 아이도 결국 나와 같은 위상능력자였습니다. 아주 특수한 케이스로, 갑자기 위상력에 각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그 아이는 많은 것을 잃은 듯 보입니다. 본인은 별로 상관하지 않아하는거 같지만 가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 괴로움? 슬픔? 그런게 묻어나왔다는 건 사실입니다.


 괴로울텐데 그 아이는 참 잘 웃고 다닙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웃으면 힘이 난다, 라며 자신이 검도를 한창 할 때에도 힘들다고 생각할 때마다 웃었더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웃으면 길이 보일거라며...


 너무도 맑은 미소를 제 앞에서 어김없이 선보입니다.


 그 아이를 만나면서 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이의 그런 밝고, 맑은 부분이 물들어가는 것이겠죠. 많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내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웃는 나날들이 점차 많아졌습니다. 제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며, 그 아이는 또 같이 웃어줍니다.


 그렇게 웃을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그 아이는 알까요?


 흠뻑 묻어나와, 물들었을 때 그제야 내가...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작은 감정이라도, 깨닫고 나면, 알아차리고 나면 심히 신경쓰입니다. 무릎에 다친 상처보다 종이에 살짝 베인 손가락이 더 아픈 듯이요.


 사소하게 시작하지만, 그 아이는 언제나 나에게 커다란 파도처럼 덮쳐져 옵니다.


 그리고 가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나의 안 좋은 부분이 그 아이에게 물들어버릴까봐,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그 아이 본연 자체를 잃어버릴까...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런 것 따위 신경쓰지 않아합니다. 자신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줍니다. 자기가 나를 좋아하니까...그렇기에 내가 멀리 있으면 자신이 먼저 가까이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우리 둘은 서로에게 물들어버린걸까요? 이젠 서로에게 서로가 꼭 필요하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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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하유리] 꿈 속의 바다


※ 클로저스 전력 60분

※ 주제는 '바다'




부제 : 모래도, 시간도 움켜질 수 없었다




 꿈을 꾸었다. 어딘지는 불분명한 바닷가에 서 있는 꿈이었다. 꽤나 근사한 바닷가 백사장에 있는 꿈이었으면 참 낭만적이었을텐데 주위가 어두컴컴한 검은색의 바닷가였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모래사장의 모래만은 하얀색이었다.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바닷물이 내 발끝을 간질였다. 바람은 제법 거칠게 불어닥쳤다.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색 천 따위를 보니 꿈 속의 나는 하얀 여름용 원피스를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전부인, 어찌 보면 시시한 꿈이었다. 꿈 속의 나는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서 이 꿈이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땅히 재밌는 일도 나오지 않았고 날씨 또한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나마 재미지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모래사장 위에 앉아 파도 위에서 물장구를 치는 일 정도였다. 그것도 곧장 지겨워졌지만.


 바다...


 내가 이렇게 거칠고 사나운 바다를 본 적이 있었던가?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한 후부터 계속 날씨가 안 좋았지만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흡사 폭풍이라도 불어닥치기 직전의 바다였다. 비가 오기 직전의 눅눅한 바람이 내 머릿결을 간지럽혔다. 비가 올 게 분명하다. 정확히는 폭풍.


 앉아있는 모래 위는 부드러웠다. 곱게 채내서 걸러낸 밀가루 같았다. 한번 오른손에 움켜쥐었다. 나름 세게 움켜쥐었는데도 손을 들어보니 모래는 스르르 손 밑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이 모래 시계 같아서 몇번이고 다시 해보았다. 멍하니 해보는데 모래가 떨어지는 광경 뒤로 무언가가 보였다.


 -그만해, 벌써 몇번째야...

 -나 조금만 더 하면 깰 수 있을 거 같은데!


 어...환상인가? 잘못 본건가? 다시 한번 모래를 천천히 떨어뜨렸다.


 -음~ 맛있다!

 -왜 그렇게 단 걸 좋아해?!


 ...이번에는 다른 광경. 또 모래를 떨어트렸다.


 -얼마 만에 가는 학교지!

 -너 진짜 안 졸 자신 있어?

 -그러는 세하야말로 게임 안할 자신 있어?

 "..."


 이건...


 그후로 모래를 떨어뜨렸을 때마다 미묘한 광경은 계속 보였다. 일관성 없이, 그냥 무작위로 보여주는 기억의 일부분 같았다. 하지만 공통적인 걸 찾아보라면...


 -안녕, 나 서유리! 네가 그 유명한 이세하야?!

 -으악, 버튼 잘못 눌렀잖아!


 -자, 다음은 세하가 선창할 차례!

 -나 노래 부르는 거 싫은데...


 -오, 이 떡볶이 맛있다!

 -일부러 맵게 했는데 잘 먹네?


 세하와 함께했던 기억이다. 같이 웃었던 일, 같이 울었던 일, 서로에게 화났던 일 등등...모든 기억들이 다 있었다.


 이 꿈 속의 모래사장 전체가 내 기억이라는 걸까. 꿈 속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지?


 계속 무의시적으로 모래를 떨어뜨린 내 행동을 멈추게 해준 기억의 단편 부분은 이거였다.


 -...

 -...

 -...세하야.

 -...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장면. 유일하게 내가 세하의 이름을 속삭이며 불었다. 난 울거 같은 표정이다. 목소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울음에 잠겨 있다. 그에 반해 세하는 참 고요한 표정이다.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부르거나 내 말에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저 내 얼굴을 쓰다듬어줄 뿐.


 모래를 떨어뜨리는 거...그만두었다. 그 뒷장면을 볼까 행여 두려웠기 때문이다. 저 광경 뒤에 있던 일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안다.


 톡- 톡-


 폭풍이 올 거 같았더니 이제야 비가 내린다. 비가 참 미지근했다. 온수를 틀어놓은 거 같았다.


 마땅히 피할곳도 없어서 그대로 앉아있었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 앉은 채로 모래를 다시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까와 같이 재미 삼아 다시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래사장 위에 바로 모래를 움켜쥐고 있는데 내 손안에서 모래는 계속 빠져나갔다.


 움켜질 수가 없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세하 손을 움켜잡을 일도 없었다.


 그 마지막 장면 뒤로 펼쳐진 일...뻔하지 않은가. 나의 오열, 뒤늦게 나타난 동료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


 그 때의 세하는 참 싸늘했는데. 지금 내리는 비와는 다르게.


 ...왜 움켜질 수 없는걸까. 이 모래도, 이젠 떠나버린 사람의 손도.


 문득 고개를 올려다본 바다의 저편에서는 파도가 거세게 치고 있었다. 검은색의 파도다. 삼켜져버리면 다시는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해 보이는 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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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세하유리] 첫눈, 여우눈


※ 여우눈 : 햇빛이 나는 때에 잠깐 동안 내리다 마는 눈

※ 오늘 잠깐 온 첫눈을 기약하며 짧게 쓰는 글(171120 기준)




 "눈이다."

 "이게 눈이 올 날씨인가?"


 이번주 내로 눈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햇볕이 잔잔하게 내리쬐는데 눈이 온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맑은 햇살이 비추는 맑은 겨울 날씨였기 때문이다.


 올 겨울 들어서 둘이 같이 맞이하는 첫눈은 구경하는 사람을 깜짝 놀래키며 내려왔다. 그 가늘게 떨어지는 눈을 한동안 보자니 유리가 말을 걸었다.


 "신기하다...나 이런 눈 처음 봐."

 "나도."

 "이거 '여우눈' 이래."

 "여우눈? 네가 지은 말 아니야?"

 "아니다, 뭐! 세하는 내가 못 미더운거야?!"


 유리가 볼을 복어처럼 부풀렸다. 그 볼을 세하는 장난을 받아들이듯 살짝 꾹 눌렀다. 유리는 자신의 폰으로 자신이 검색한 포털 사이트를 세하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인터넷에 써져있어. 여우비가 햇빛이 날 때 잠깐 내리는 비라면, 여우눈은 그와 맞게 내리는 눈이라고!"

 "호오...그러네."

 "여우볕이라는 것도 있네. 이건 비나 눈이 올 때 잠깐 나왔다 사라지는 볕, 이라네."


 처음 알았다. 여우비는 많이 들었지만 여우눈이라는 표현은 많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여우 눈' 은 많이 들었지만 '여우눈' 은 많이 못 들어봤다라...신기했다.


 "그런 이야기도 있지 않나? 여우비는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나?"

 "그럼 여우눈은 여우가 장가가는 날인가?"

 "나야 모르지."


 푸흐흡...세하가 바람이 새어나가는 목소리를 냈다. 유리는 가끔 이렇게 엉뚱하고 깜찍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유리를 세하는 볼 때마다...


 큼큼, 앞에서 말한 '깜찍한' 이라는 수식어에 모든 느낌이 다 들어가있으리라고 생각하니 생략하기로 한다.


 "그런데 난 첫눈이라면 더 낭만적이게 떨어질 줄 알았는데."

 "무슨 의미야?"

 "화이트 크리스마스, 하면 자동적으로 생각나는 그런 눈발 말이야."

 "아아..."


 유리는 '첫눈' 이라면 그렇게 적당량으로 천천히 내리는 눈이었으면 하고 바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눈도 나쁘지 않았다. 세하는 '여우눈' 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 보았기에 조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첫눈치고 빨리 온거잖아."

 "그렇긴 하지만..."

 "난 지금 내리는 것도 꽤나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햇볕과 눈이라니...절대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조합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눈은 항상 먹구름이 끼고나서 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를 보면 녹는게 눈이었다. 그런 아이러니한 조합이 같이 있는 게 참 재밌지 않은가.


 "세하는 가끔 이상한 것에 낭만적이야."

 "옛날엔 안 그랬던 거 같은데...유리 너 만나고 변한건가?"

 "내, 내 탓이라는 거야?!"

 "아니, 네 탓이 아니라, 네 '덕' 이지."


 옛날엔 이런 현상을 창밖으로 보면 무심코 지나칠 게 뻔했다. 이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약간의 감상에 잡을 수 있는 것도 옆에 그걸 같이 공유해줄 누군가가 같이 있기 때문이라고 세하는 생각했다.


 "눈이라고 해도 가끔씩 해는 봐줘야 하지 않을까?"

 "흠...그렇겠구나..."

 "뭐, 햇볕을 계속 받아도 녹지 않는 눈이 있긴 하지만."

 "그런 눈도 있어?"


 있어, 잘 찾아봐. 세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세하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우눈이라더니 정말 눈은 그쳐가고 있었다. 짧지만, 강렬한 손님이 잠시 자신과 유리를 다녀간 듯 했다. 눈은 어느새 그치고 구름 사이로 초겨울의 쌀쌀한 햇볕이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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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3:17:4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