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위상력과 함께 49화
검은코트의사내 2017-11-07 0
리플렛 마을에서 만난 리온 블리츠 기사단장은 내가 그들을 도운 공로가 있기에 그들이 날 신뢰하는 거지 원래라면 신뢰하지 않는다. 그냥 어쩌다가 운 좋아서 그렇게 된 거 뿐이다. 가만있자...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해결할 수밖에 없는 걸까? 오리가 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누군가가 오리가 씨를 함정에 빠뜨렸다는 의미였다. 이미 그건 공작님에게 들었을 때부터 확신했다. 와인을 똑같이 마셨는데 국왕 빼고 다 멀쩡하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가씨는 절대 범인이 아니다.
"폐하. 저는 맹세코 독을 타지 않았습니다."
억울해하는 사람이 있다. 죄를 짓지 않았는데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서 감옥에 간 사례가 많다. 그러고보니 김기태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 사람은 마음에 안들긴 했지만 데이비드의 계획에 이용당한 피해자다. 데이비드 밑에서 일해오다가 위상력 상실증에 걸렸다고 했었다. 김기태는 그 이후로 명예와 A급 클로저라는 칭호를 박탈당한 데다가 체포까지 명령받게 되는 신세가 되는 사례가 있었다. 그가 했던 짓도 죄지만 클로저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했었다. 아마 데이비드의 큰 그림으로 희생당하는 자들이 더이상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모양이었지만 방식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데이비드의 꼬임에 넘어가서 강남에 재앙을 부르는 사태가 벌어지게 유도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부와 Union이 자신들이 했던 짓을 숨기기 위해 진실을 알아버린 늑대개 팀을 지명수배하고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의 기억을 소거했다고도 들었었다. 그 당시에 언론에도 늑대개팀이 범죄자라는 듯이 보도를 하고 그들은 한 순간에 범죄자로써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검은양 팀과의 합류이후로 연합해서 싸우다가 데이비드가 방송으로 진실을 발설해버리는 바람에 유니온 측에서도 수배령을 해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도 했었다.
늑대개 팀 다수가 억울한 피해자였다. 나타도, 레비아도, 하피씨도, 티나도, 바이올렛 아가씨도 마찬가지다. 목에 초커를 단 채로 생존에 걸린 일을 해야했었고, 그들의 상층부의 탄압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다. 나타가 아무리 내게 거친 독설을 내뱉어도 나는 다 참아낼 수 있었다. 그는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오는 시간이 단 하루라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나도 뭐, 어두운 삶을 살아왔지만 나타와 감히 비교할 수 있었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늑대개 팀의 심정을 떠올리니 오리가 씨의 현재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제가 범인을 찾아보겠습니다."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했다. 오리가 씨의 양쪽 귀가 바짝 서더니 나를 보았다.
"새야 공. 그게 정말인가?"
"네. 오리가 씨는 절대 범인이 아닙니다. 오리가 씨가 범인이라면 와인을 똑같이 마셨는데 왜 폐하만 쓰러지셨겠습니까? 그 말은 즉, 와인에 독이 들어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주장일 뿐입니다."
"그럼 어떻게 된 건가?"
"그걸 찾아야죠. 현장은 그대로 보존중인가요?"
"그래. 아무도 손대지 말라고 했었네."
레온 장군님이 답했다. 일단 현장 조사가 우선이겠지. 내가 했던 게임들 중에는 추리게임도 있었다. 이런 부분은 슬비가 더 잘할 거 같은데 지금은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없다. 게임에서의 경험으로 하면 되는거다. 현장을 보고 싶다고 하자 장군은 그건 안 된다고 말하자 좀 곤란한 표정을 지었는데 옆에서 근엄한 목소리가 들여왔다.
"허가한다. 이새야 공. 확실히 묻겠네만 범인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국왕이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우와, 이 위엄... 자신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거 같다. 으음, 솔직히 실제로 사건조사하는 건 처음인데 말이다. 일단 추리게임의 지식을 이용해서 한번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차하면... 말로 승부하면 되는 거니까 말이다.
추리를 하는 것도 좋지만 상대방의 행동을 보면서 헛점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바로... 심문이라는 거겠지. 나는 국어성적이 좋은 만큼 강자에게 말이라는 무기를 통해 기선제압을 많이 할 때가 있다. 그걸 이용하면 될 거 같았다. 나는 국왕 폐하를 보며 당당하게 답한다.
"물론입니다. 모험가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으음."
국왕 폐하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공주님이 있었다. 또 무슨 얘기하는 거지? 설마 나 같은 존재는 못 믿겠다거나 이런 말은 아니겠지? 으음, 하긴 쉽게 믿을 수 없으려나? 그렇다고 공주님이라는 왕족과 친밀도를 높이는 시간을 가질 때도 아닌 거 같은데 말이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형님. 새야 공이라면 반드시 할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알프레드와 공주의 말이 그렇다면 좋다. 짐이 허락하겠노라. 알프레드."
"네. 형님."
"나중에 그것을 주게."
"알겠습니다."
그거라니 대체 뭐지? 아무튼 내가 사건 조사를 맡게 된 거 같았고, 국왕폐하의 허락도 얻었으니 사건조사하는 데 방해는 거의 없겠지? 귀족들이 와서 시비를 좀 걸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일단 현장 조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현장으로 가보겠다고 말하자 국왕폐하가 나를 불러세우면서 말했다.
"기다리게. 이왕 범인을 찾아낼 거면 유미나 공주도 같이 동행해주었으면 하네. 아마 도움이 될 걸세."
"네? 사건 조사는 저 혼자서 할 계획이었습니다. 도움은 필요없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공주에게 직접 듣기로 하게나."
"하오나 폐하. 제가 아무리 폐하의 목숨을 구했다고 해서 공주님을 어디서 굴러먹은 사람 곁에 두려고 하시다뇨?"
"괜찮네. 유미나가 인정한 사람이니 문제는 없을 것이네."
뭐야 이 분위기는? 공작님도 왕비님도 장군님도 아무도 국왕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한다는 표정? 아니 지금 이 나라 왕궁사람들의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세상에 왕가의 공주를 모험가에게 순순히 동행시키게 만드는 사람이 어디있어? 아무리 이세계라지만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주님의 말을 순순히 듣는 폐하도 이상하고 말이다. 아니, 국정을 그런식으로 하니 모험가들의 지지만 받고 왕의 지지는 거의 못받는 게 당연하지. 나 원참. 아무리 그래도 이것만은 사양하고 싶었다. 내가 무슨 귀족도 아닌데 무슨 한 나라의 공주님을 어떻게 떠맡으라는 거야?
"저기 사건 조사는 저혼자해도..."
"짐의 명령일세. 잘 부탁하네."
아니 그렇게 미소를 지으면서 명령이라고 거칠게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유미나 공주님의 눈치를 본다. 분명히 나를 싫어할 텐데 말이다. 응? 웃고있어? 아, 나를 감시하기에 좋은 계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랬군. 이제야 알겠다. 이들은 나를 아직 완전히 못믿는 것이다. 그러니 유미나 공주를 내 감시역으로 보내는 거겠지. 가만 있자, 공주님을 감시역으로 보냈다는 것은 설마... 공주님이 그냥 연약한 공주는 아니라는 의미인데...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서 마나가 느껴지고 있었다. 역시나 그렇군. 여차하면 나를 제압하겠다는 식으로 딴생각을 절대 품지 말라는 국왕폐하의 뜻인 거 같았다. 혹시나 그녀에게 해를 가하려한다면 난 그녀의 마법에 맞고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난 위상력 능력자인데다가 마력 재능이 뛰어나서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새야씨."
방긋 웃으면서 말하는 공주님이 두 손으로 내 한손을 잡는다. 두 손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니지, 이건 분명히 속내가 있는 거야.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 뒤에 딴생각 품으면 바로 마법으로 날려버리겠으니 허튼 짓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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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현장을 본다. 현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고, 각 테이블에 음식들이 놓여져 있다. 지금은 썩어서 부패가 진행되고 있는지 썩은내가 좀 난다. 국왕폐하가 떨어뜨린 잔, 그것을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일단 장갑을 끼고 그것을 들어올린다. 벨파스트 왕국을 상징하는 방패그림이 국왕폐하가 쓰신 잔이라고 했다.
"이게 바로 폐하가 마신 와인일세."
레온 장군님이 건네주신 와인병을 들고 유심히 살펴본다. 딱봐도 고급와인이라는 게 티가 난다. 이 와인 안에는 독이 없다. 혹시나 모르니 한번 마셔보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역시, 와인에 독이 들어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렇다면...[서치 : 독]"
무속성 마법으로 독을 검색한다. 와인에 들었다면 서치마법이 와인병을 감지해야된다. 하지만 감지한 건 폐하가 마신 잔에서 나왔다.
"잔에 독이 있는 건가? [디텍티브 : 독]"
디텍티브 마법으로 독을 탐지한다. 서치 마법은 대상을 검색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까지 자세히 볼 수 있게 하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정밀하게 살펴보려면 디텍티브 마법이 필요했다. 이 마법으로 독이 유리잔 부분에 묻어있는 걸 보았다. 사람이 입을 대는 윗쪽의 장소를 위주로 감싸져 있었다. 그말은 즉, 독이 폐하의 잔에 발라져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군요. 어떻게 된 건지 알았습니다. 오리가 씨는 함정에 빠졌던 겁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주님. 오리가 씨는 독을 타지 않았어요. 독은 폐하의 유리잔에 묻어있었습니다."
"그럴수가!"
"장군님. 여기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 전부 알고 계십니까?"
"응. 전부 알고 있네."
"그 사람들은 전부 어디있나요?"
"아마 각자 저택에 돌아가 있을 걸세."
그랬단 말이지. 일단 그 사람들을 만나서 심문을 해봐야될 거 같았다. 용의자는 분명히 수인차별주의자들 위주다. 그건 그렇고, 공주님은 정말로 날 감시하러 온 거 같았다. 일단 그건지 아니면 다른목적인지 알아야될 거 같았다. 일단 용의자가 그들이라면 범인임을 입증하려면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장군님의 말씀에 따르면 국왕폐하의 잔은 오로지 폐하만이 드실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귀족들이 순순히 내 의도대로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연극을 통해 폐하의 잔을 마시게 유도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법이라는 핑계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될 거 같았다. 폐하도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건 아닐테니까 말이다.
"저, 공주님.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는데 공주님도 사건 해결하는 데 뛰어나신 겁니까?"
"아뇨. 저는 그런게 아니에요. 전 사실... 마안을 가지고 있어요. 그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궤뚫어보는 '간파의 마안'을 가지고 있거든요. 새야 씨는 같이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이 선인지 악인지 구별할 수 있어요."
뭐야, 그렇다면 심문하려는 대상의 마음을 궤뚫어봐서 범인을 찾아보려고 한단 거였어? 그건 아마 명분이고 실상은 날 감시하려는 거겠지. 그렇다고 그만두게 하면 오히려 의심받을 게 뻔하고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다녀야 될 거 같았다.
"아, 장군님. 이 와인에 대해서 조사하고 싶은데요. 벨파스트에서도 미스미드 왕국으로 간 대사님 계셨죠?"
"응. 그렇지."
"그 대사님이 혹시 이런 와인을 접해본 적이 있는지 여쭤봐주시겠습니까?"
"알겠다. 그렇게 하지."
폐하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나에게 명령질이냐?' 라고 말했을 것이다. 장군이 화를 냈을 때 나는 정말로 무서웠었다. 지금은 따라주니 고맙긴 하지만 가능하면 장군에게 시키지는 말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