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는 위상력과 함께 48화

검은코트의사내 2017-11-07 0

우리는 마차를 타고 왕궁으로 도착했다. 공작님의 저택보다 더 웅장해보였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 대사를 위해 마련한 자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분위기가 안 좋은 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우리가 들어서자 나이가 중년정도 보이는 귀족 한명이 우리를 보며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나으리."

"라크레트 백작."

 

공작님이 그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 라크레트 백작이라면 성인업소에 자주 출입한다는 귀족이라고 알고 있다. 얼굴은 평범해보이지만 국왕이 독을 마셨다는데 태연하다는 게 왠지 이상했다. 혹시 이 자가 범인? 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직은 모른다. 공작님도 이 귀족은 별로 맘에 안 드는 모양이다.

 

"폐하가 그 지경이 되었는데 경은 태평하군."

"훗. 어쩌겠습니까? 이 모든 게 폐하께서 자초하신 겁니다. 저희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수인족들은 믿을 게 못된다고 말이죠. 수인족이 가져온 와인을 마시고 그렇게 되신 겁니다. 공작나으리. 이래서 수인족은 믿을 게 못된다는 겁니다. 즉각 처형해서 시신을 미스미드에 보내야합니다."

"아니. 모든 건 형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다. 지금 대사는 어디있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뭐, 그것만해도 수인족 따위에게는 최소한의 자비는 허락하신 거니까요."

 

수인족을 싫어하는 차별주의자를 처음으로 대면하니 뭐랄까... 짜증이 밀려오는 기분이다. 그러고보면 내가 살았던 세계에도 차원종 차별주의자가 있었지. 차원종따위는 믿을 수 없다면서 무조건 차원종을 적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늑대개 팀에 있는 레비아가 가장 많은 정신적인 피해를 당했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녀의 편이 되어주면서 지켜주었고, 레비아는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으음, 일단 대사를 만나보고 싶지만 왕궁에 들어온 이상 내 맘대로 행동할 수는 없겠지.

 

라크레트 백작 말고도 다른 귀족들도 용의자가 될 수 있었다. 애초에 대사가 가져온 와인으로 쓰러졌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걸 귀족들도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혹시 트릭을 찾아내지 못할거라고 확신하고 그런 짓을 벌였던 걸까? 확실히 여기 이세계는 중세판타지 배경이나 다름없으니 우리가 아는 현대과학수사법을 그들이 알 리가 없을 것이다. 귀족들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게 분명하다. 이건 옳지 않는 일이다. 억울한 피해자가 죽어가고 범인만 살아남는 세상, 그런 건 잘못된 거다. 일단 의심되는 건 라크레트 백작이지만 다른 귀족들도 한명씩 봐야될 거 같았다.

 

"가세. 지금 한시가 급하니까."

 

공작님이 나를 이끌었다. 백작은 나를 보면서 누구냐고 물었지만 공작은 무시하고 앞장섰고, 나는 말 없이 공작님 뒤를 따라간다. 수인차별주의자 귀족들이 용의자인 건 분명한데 그 많은 수 중에서 범인을 가려내기는 어려울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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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침실 앞에는 근위병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나를 보면서 창을 겨누자 공작이 제지하에 나는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흐미 무서워라. 국왕폐하 만나기가 참 무섭네. 하긴 당연하다. 왕의 신변이 위험하면 나라자체가 위험한 편이니까 말이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들어간다. 다름이 아닌 국왕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공작님은 자주다녀서인지 태연하게 들어갔지만 나는 천천히 한걸음씩 들어가면서 분위기를 보았다.

 

"형님!"

 

공작의 방문에 왕의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시선을 갔다. 복장만 보면 왕이 침대에서 땀을 흘린 채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고, 하얀 옷을 입은 의원이 진단하면서 고개를 젓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갑옷을 입은 수염난 남자, 아마도 저 사람이 경비대장이겠지. 그리고 드레스를 입은 두 분, 성인으로 보이는 분이 왕비고 어려보이는 분이 아마 공주님일 것이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공주로 태어나서 고생이 많을 거 같았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고, 그 중에 공주님이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눈동자가 좀 특이하다. 한쪽은 푸른색, 나머지는 연두색인 오드아이, 그리고 금발머리에 브로치, 엇? 나도 모르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귀여운 누군가가 떠올라서 그랬다고 할까? 이러다가 성희롱범으로 몰릴 거 같으니 다른사람을 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공작님도 임금님도 왕비님도 전부 금발머리시네. 금발머리 유전자가 이어져온 모양이다. 스우도 금발머리였지 참. 공주님은 스우랑은 틀리게 약간 어른스럽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 독에 대한 해독약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두었다간 오늘밤을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의원의 설명이었다. 치료제가 없단 말이지? 여기 이세계에도 모든 병을 고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치료제를 만드는 건 인간이었다. 마법이 없는 한 인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당연하다. 힐 마법으로는 상처치유는 가능하지만 병까지는 치료하지 못한다고 했다. 유일하게 치료가능한 마법이라면 [리커버리]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새야공. 부탁하네."

"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국왕폐하의 몸에 손을 댄다.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무엄하다고 소리쳤지만 공작이 제지한다. 어우 무서워라. 금방이라도 날 죽일 거 같아서 마음 놓고 마법을 못쓸 거 같았지만 진정하자는 듯이 심호흡을 한번 하고 주문을 외운다.

 

[리커버리]

 

내 손에서 발생하는 기운이 국왕폐하의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양 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군. 좀전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다니..."

 

국왕의 말에 의원이 그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맥을 짚어보자 의원도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완전히 다 나았다고 말하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다 환해지고 있었다.

 

"아바마마!!"

 

공주님이 국왕의 품에 안긴다. 조금 전까지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아났으니 다행이지. 눈물겨운 장면이다. [리커버리], 이 마법으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면 오래사는 건 가능한 일일까? 아니, 그건 사양하고 싶다. 의원들이 할일이 없어지면 나도 곤란하니 말이다. 알다시피 이건 무속성 마법이기 때문에 나 혼자 일일이 다 치료하는 건 육체적으로 버티지 못한다. 의원님들이 고칠 수 없을 때나 써야될 거 같았다.

 

"형님. 다행입니다."

"알프레드, 이자는 대체 누군가?"

"엘렌의 눈을 고쳐준 모험가인 이새야 공이라고 합니다. 그라면 형님 병을 고칠 수 있을 거 같아서 데려왔습니다."

"그렇군. 덕분에 살았네. 정말로 고맙네."

 

국왕 폐하가 머리 숙여서 인사하니 나도 모르게 차렷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오히려 황송할 정도다. 국왕폐하 앞에서 너무 긴장한 탓인가? 아니지, 내가 왜 긴장을 하는 거지? Union 총본부장에게도 당당했던 내가 여기 국왕에게는 긴장을 하다니... 으음, 아무래도 이세계에서 처음만나는 거니까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폐하를 구해줘서 고맙네. 나는 폐하를 호위하는 장군인 레온 블리츠라고 하네."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분이 내게 와서 말했다. 아까는 무례하다고 하더니 지금은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내가 만약 못 구했으면 지금같은 표정은 짓지 않았겠지. 일단 국왕폐하를 무사히 구해내는 데는 성공했다. 그런데 왕자님은 안계시나? 공주님도 계신다면 왕자님도 계실 줄 알았는데 말이다.


"형님. 미스미드 왕국 대사가 형님을 독살했다고 많은 귀족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보같은! 미스미드가 나를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겠나? 이제 막 동맹관계의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라 우호적인 상황인데 왜 나를 암살하려고 하겠는가?"

"폐하. 송구합니다만 파티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대사가 가져온 와인으로 마신 것을 목격했사옵니다."


레온 장군님의 말에 국왕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황상 미스미드 대사가 범인이라고 대다수가 보는 듯 했다. 대사가 가져온 와인에 독이 있었다면 왜 나머지 사람들은 멀쩡하겠는가?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나설 자리는 아직 아닌 거 같았다. 일단은 분위기가 무거운 거 같으니 조금 있다가 말하는 게 좋을 듯 했다.


"일단 대사를 불러주게. 짐이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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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병 두명이 대사를 데려온다. 국왕폐하는 옥좌에 앉아계셨고, 나와 공작, 그리고 왕비님과 공주님, 레온 장군님이 양 옆으로 섰다. 수인족이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틀림없는 사람인데 여우귀와 꼬리가 나있다. 이게 수인족이라는 건가? 그냥 여우털을 장식한 사람 같았는데 말이다.


"오리가 스트란드. 폐하를 뵙습니다."


예의는 지킬 줄 아는 여성이었다. 국왕폐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그대는 짐을 시해하러 왔는가?"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맹세코, 저는 절대로 페하를 시해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그대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네. 다만 정황상 대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네. 대사가 가져온 와인을 마시자마자 쓰러진 건 사실이니 말일세."

"그... 그건 그렇지만..."


곤란해하고 있었다. 으음, 뭔가 냄새가 나는 걸? 대사는 여우 귀를 살짝 내리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겠지. 범인으로 몰려서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국왕에 대한 암살은 반역죄이며 그게 다른 왕국 사신이라도 처형을 면할 수 없었다. 정말로 억울해하는 거 같은데 말이다.


"아바마마. 대사가 한짓은 절대 아니옵니다."


공주님이 국왕 옆에서 말했다. 국왕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뭐지? 아니, 대사가 범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근거도 안물어보고 그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대체 무슨 상황이야? 아무래도 국왕을 노리는 암살시도는 이걸로 끝나지 않을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왠지 모르게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데 뭐지?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공주님이 이쪽을 힐끔보고 있다. 아무래도 날 경계하는 모양이다. 당연하지. 모험가를 좋아하는 왕궁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왕국 기사단이 특히나 싫어하는 편이겠지. 왕국을 대표하는 기사단으로써 용병과 모험가들에게 밀리는 건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험가의 활약을 통해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많이 받으니 국왕이 민심을 잃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다. 모험가들은 어려운 몬스터 토벌해주는데 기사단은 뭐하냐는 식이었다. 그러니 왕궁사람들이 모험가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 공작님이 있으니 그래도 괜찮으려나 생각했지만 국왕폐하는 아직까지는 나에 대해서는 좋게 보고 있는 거 같았다. 다만 공주님이 문제지. 나를 계속 빤히 쳐다보니 말이다. 싫어하는 거 같으니 어쩔 수 없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17:4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