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가 슬비와 유리에게 돌아갈뿐인 이야기
사일로시빈 2015-02-12 35
"표정이 너무 무섭네. 솔직히 말하면 가소롭지만. 널 만나려고 이렇게나 노력하는데 조금은 부드럽게 대해줘도 되지 않을까?"
"............"
더스트는 구름 위에 앉아있는 듯이 보였다. 흐릿한 안개가 퍼진 공간에서 그녀가 밟은 부분만이 얼어붙었다.
긴 머리카락은 누가 빗기지도 않았는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구부러져 발목을 감싼다.
도자기 인형처럼 생긴 얼굴이 마치 퍼즐처럼 움직인다.
"매일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꿈을 꾸는구나. 불쌍해라."
"툭 하면 누군가를 버리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세하. 가진 적이 없으니 버릴 수도 없어. 오히려 공정한 거래라고 봐야지. 인간하고 다를 것도 없잖아?"
어느샌가 손에 게임기가 들려있다. 게임기뿐만 아니라 소파와 TV까지, 눈을 깜빡인 순간 거실에 있다.
더스트는 바로 곁에 앉아있었는데, 어디서 찾아왔는지 딸기잼을 들고있다. 맨 손으로 그걸 떠서 입에 넣으며, 손끝을 할짝인다.
불길이 손끝을 휘감을 때마다 가느다란 타액이 비쳤다. 이쪽을 보고 살며시 미소지으며 말을 건넨다.
"뭐, 이런 점에 있어선 인간은 꽤 쓸모있는 존재야. 쓸모없는걸 만들어내니까."
"네가 그런걸 좋아할지는 몰랐는데."
"물론 죽이는걸 더 좋아해!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죽이진 않아. 너만해도 지금까지 살려뒀잖아?""
고요한 방 안에서 더스트가 리모컨을 들자, TV에선 정규방송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마치 기억을 핀셋으로 끄집어내 얇게 펴발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넌 지금까지 게임주인공이 어떻느니, 엄마가 어떻느니하며 애써 변명했지만 실은 그런건 아무 상관 없었어."
화면에 알파 퀸의 아들에 대해 기대감을 가지는 어른들이 보인다. 데이터를 분석하며 이내 실망한 얼굴을 내비친다.
"유니온에게 너는 장기말에 불과해. 서지수한테도 마찬가지야. 부모에게 자식이란 옷 갈아입히는 인형이거든."
"너한테는 인간이 말하는 가족이 없잖아."
"왜? 동생인 애쉬가 있잖아. 물론 인간이 너무 뻔한 것도 있지. 너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
다른 화면이 흐른다.
이쪽의 팔에 붕대를 감으며 잔소리하는 슬비가 보인다. 어깨동무를 하고는 놀러가자며 웃는 유리가 보인다.
이쪽을 걱정하던 표정의 세린 선배나, 고개를 필사적으로 돌리며 부끄러운 얼굴을 감추는 정미도 보인다.
유정 누나와, 제이 아저씨와, 테인이와, 은이 누나처럼 많은 얼굴들이 지나간다.
"난 남들이 너에게 기대를 품는걸 무서워해. 너 자신이 그 기대를 충족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게임에 열중하는 척하고, 관심없는척 일부러 거리를 두는거야. 넌 스스로를 믿지 못해. 네가 약하기 때문이야.
그런 약하고 볼품없는 너를 알고나서도 네 주변에 다른 인간들이 남아있진 않겠지."
TV가 모래처럼 무너진다. 더스트가 잡고있는 리모컨조차 어느새 흘러내려서는 흔적도 없이 바닥에 스며들었다.
"나는 인간들과 달라."
더스트가 몸을 밀착해온다. 흐드러진 설악초처럼 하얀 손끝이 겹쳐진다. 기이하게도 온기가 나지 않았다.
딸기향이 은은하게 숨결에 섞였다. 녀석의 눈은 소용돌이치듯 색채개 시시때때로 변했지만, 이따금씩 붉은색이 보였다.
"네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 난 지금까지 여러번 너에게 함께 하자고 권했어. 너는 매번 거절했지만말야.
이렇게 공들인 장난감은 너뿐이야. 알고있어? 난 너에게 기대하지 않아. 너에게 실망하지도 않지.
널 인간 이세하로 대해줄 수 있어."
".........난..."
"넌 미래의 널 봤을 거야. 그 고독한 공간에서 홀로 싸우면서말야. 어땠어? 속으로는 그런 미래를 원하지 않았어?"
큐브에서 본 자신을 떠올린다. 녀석은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있었다.
"난 너한테 미래를 줄 수 있어. 선택하느라 고민할 필요도 없지.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세하. 내 손을 잡아."
고개를 돌리자 녀석이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얼굴에는 주름자국 하나 생기지 않는다.
눈을 깜빡인 순간 더스트의 모습이 사라지고, 등 뒤에서 두 팔이 나타나 목을 끌어안았다.
가느다란 은발이 쏟아지며 귀와 볼을 간지럽혔다.
"아, 알겠어. 누굴 생각하는지 맞춰볼까? 이슬비랑 서유리지? 앞을 봐, 이세하."
앞을 바라보니 다시 TV가 나타나있다. 슬비의 모습을 보인다. 슬비는 무척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자그마한 뒷모습 바로 옆에 다른 실루엣이 서있다. 애쉬가 손을 뻗고있다.
슬비는 몇번 손을 뻗는 것을 주저하다가, 곧 그 손을 잡았다. 문이 열리고, 함께 문 너머로 사라진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
"어머,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니?"
"환상이잖아."
"내가 꿈을 통해 널 만날 수 있다면, 애쉬도 그럴 수 있어. 그렇지?"
"............"
"슬비한테 무슨 짓을 했어."
후후하고 더스트가 속삭인다.
"너처럼 단순한 권유를 했어. 이슬비도 우리 이름없는 군단의 일원이 된 거야. 너도 망설일 필요없어."
".........그 녀석이 차원종과 손을 잡을리 없잖아."
"물론 그렇지. 그래서 진실을 알려줬어."
"뭐?"
"걔가 우릴 미워하는건 부모를 죽였다고 생각해서지? 실은 거기 관여한게 유니온이었다고 알려준 거야."
"거짓말."
"밑져야 본전 아닐까? 이건 꿈이야 이세하. 꿈 속에서라도 자유롭고 싶잖아?"
"................"
"아니면 날 이용해도 좋아. 오히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캐낼 생각은 없니?"
"왜 그렇게 날 필요로 하는데?"
"그야, 널 좋아하니까 그런게 당연하잔아."
마른 기침이 터져나왔다. 더스트가 천진하게 고개를 기울인다.
"난 널 오랫동안 봐왔어. 그 수많은 벌레같은 인간들 중에서 너만 계속 눈에 밟히는 거야. 이게 너희가 말하는 사랑 아닐까?"
"......아, 아니.... 그건...이해가 잘..."
더스트의 손톱이 입술에 닿는다. 고개를 돌리자 코 앞에서 숨결이 느껴졌다.
"넌 가만히 있으면 돼."
".............난..."
입술이 금방이라도 겹쳐질 듯 하다. 눈을 잠시만 감고 있으면 끝나는 걸까? 하지만 도망친다고 뾰족한 수가 있나?
어차피 이 꿈은 더스트가 조종하고 있다. 저번처럼 세린 선배가 곁에 있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악몽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스트레스를 너무 과도하게 받은 탓이다.
그래. 평범하게 나쁜 꿈들 중 하나다. 잠시만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어느새 아침일 거다.
그렇게 서서히 눈을 감았다.
"...........?"
땅이 흔들린 기분이 들었다.
더스트가 서둘러 이쪽을 붙잡으려 했지만, 순간 소파가 갈라지며 거실이 떨어져나간다.
"뭐야! 왜 지금....?"
더스트가 입술을 깨무는 순간 방이 어느새 무너지고 다시 새하얀 공간이 펼쳐진다. 공간이 다시 어둠에 잠기며 가라앉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하면 되는 거였는데...."
더스트의 모습마저 녹아내린다. 물병에 기름 한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색들이 뒤섞였다.
"이걸로 끝이 아니야, 이세하."
마침내 모든 모습이 녹아없어지고 붉은색만이 마치 눈처럼 허공에 떠있다가 사라졌다.
"난 아직 널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배수구로 모든 물이 빨려나가듯이, 의식이 소용돌이치며 빠르게 돌아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눈이 떠졌다.
어느샌가 숨을 몰아쉬고 있다. 등이 좀 젖은 것처럼 느껴진다 싶었더니, 누군가 이쪽을 껴안았다.
푹신푹신한걸보니.....유리구나. 손이 굉장히 뜨겁게 느껴져서 고개를 올리니 슬비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얼른 슬비에게 묻는다.
".....애쉬....애쉬는?"
슬비가 깜짝 놀란다.
"그렇구나. 역시 너도 더스트를 봤구나."
"애쉬한테 가버리는줄 알았어."
슬비가 살짝 미소짓는다. 그 미소가 창문에 희석된 은은한 달빛 속에서도 선명하게 시야에 새겨졌다.
"리더가 팀원을 버릴리 없잖아."
유리가 울상을 짓고있다.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서 어떻게 되는줄 알았어...."
옆을 보니 이세하(샌드백)이 굴러다니고 있다. 아마 저걸로 이쪽을 계속 내려친 모양이다. 어쩐지 삭신이 아프더라니....
"슬비도 네가 깨웠구나. 고마워."
"좀 더 칭찬해 바보야."
유리가 머리를 비비기에 쓰다듬어준다. 머릿결이 손가락에 감겨서, 빗질을 하듯 느긋하게 쓸어내린다.
이 녀석이 없었으면 정말로 지금쯤 영영 못 깨어나거나, 차원종인 상태로 눈을 떴겠지.
"혼자였으면 큰일날 뻔했네."
중얼거리자 슬비가 말한다.
"혼자가 아니야. 우린 지금 셋이잖아."
"아니지, 다섯이지."
"........그래. 지구로 돌아온걸 환영해 이세하."
"넌 나보다 조금 일찍 돌아왔을 뿐이잖냐."
"......너라면 가지 않을거라 믿었어."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진다.
"왜?"
"지금은 너를 알고있으니까."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나를 아냐."
슬비는 잠시 숨을 가다듬는 것처럼 보였다.
방 안이 어두워서 얼굴색을 살필 수 없었지만,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넌 바보야."
"대뜸 돌직구냐."
"늘 사람을 무시하고, 말도 잘 안 듣고, 게임만 하고, 사람 마음도 모르는 둔탱이에다가, 강한척 허세만 부리는 멍청이야."
"윽......"
"그렇지만 매번 억지를 부리면서도 올바른 일을 하려하고, 남을 도우려하고, 어느새 옆에서 날 지탱해줘. 정말 바보같아."
"으음........"
"그렇지만, 그러니까, 그래서...... 난..."
녀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인다.
몸을 일으키고 슬비를 마주한다. 손을 뻗어 잡으니 열기가 느껴지는 얼굴이 반쯤 드러났다.
유리가 더 강하게 안겨오기에, 등을 받쳐 옆에 앉혔다. 유리가 품에서 중얼거린다.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젠 둘에게 대답을 해야할 것 같았다.
"너희 둘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어."
둘 다 대답이 없다. 설사 이로 인해 버림받을지라도,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했다.
나도 남자고, 둘은 이런 나를 좋아해줬으니까.
"나도 너희를 좋아해."
"............"
"............"
"너희 둘 다 좋아하니까, 누굴 고른다거나 할 수 없어. 그러니까, 미안. 때려도 좋아. 그....나도 이게 얼마나 이상한 소린지 알고 있으니까."
사실 이게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지 알고있다.
양다리를 걸치던 남자가 나는 너희 둘 다 사랑해! 넌 이래서 좋고 쟤는 저래서 좋으니까!하고 말하면 따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무척 우유부단하고, 한심하게, 대책없는 소리지만, 솔직하게 전했다.
둘은 이미 나에게 있어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니까.
맞을걸 각오하고 눈을 감았다. 실망이라느니, 쓰레기라느니 좋아하는게 아니었다느니 욕을 먹어도 참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유리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세하랑 슬비랑 둘다 좋아해."
".......엥?"
슬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네가 그런 한심한 남자인지 알고있었어."
"........아니, 지금은 화내는 타이밍이잖아. 아무리 들어도 이상하잖아, 이거 완전 바람둥이 대사잖아아...."
"우린 아직 애야, 이세하. 뭘 그렇게 고민해? 드라마랑 현실은 달라."
유리가 웃으면서 베개를 껴안는다.
"나중에 세하가 싫어지면, 그때 때릴게! 전력으로!"
"지금 미래에 날 죽인다고 선언한 거 같은데....?"
잠시 고민하다 말한다.
"내가 정미나 세린 선배도 좋아한다 그러면?"
"너한테 버스를 내려꽂을거야."
"가차없구만."
"무, 물론, 네가 세린 선배를 좋아해서 우리를 거절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난 널 믿고있으니까 전혀 요만큼도 걱정하지 않았어."
거짓말 너무 서툴러... 엄청 초조해했잖아. 온 몸으로 초조해했잖아 지금. 다리 그만 떨어도 되지않냐.
"너, 너무 착각하진 마 이세하. 너는 그... 공용곰돌이 같은거니까! 유리랑 내가 교대로 껴, 껴안고싶을 때마다 빌리는 그런거야."
"알겠으니까 진정해라. 공용 곰돌이라니 전혀 의미불명이라고."
유리가 또 헤실헤실 안겨온다.
"아- 세하도 날 좋아해서 다행이다."
"널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냐."
"음..... 그런데 사귀면 뭘 해야하는거지? 데이트는 늘 하고있는 기분인데."
슬비가 잔뜩 얼굴을 붉히며 잠옷 끝자락을 쥐었다폈다 꼼지락거리고 있다.
".......사, 사귀면 그야, 그, 사귈 때만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지않을까......그... 키, 키, 키스...라던가...."
유리도 그제야 얼굴을 붉히며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으에.... 어.... 너무 빠르지 않아? 역시 슬비 너 맨날 그런 생각만..."
"왜, 왜 그렇게 되는건데?! 드라마에선 늘 그러는걸!"
목소리가 높아졌다. 엄청 당황하고 있군.
"넌 맨날 나한테 안기고 비비면서 키스는 부끄럽고 그러냐."
"아, 아니...뭐...뭐..."
"완전 선머슴인줄 알았더니."
"뭐, 뭐?! 나 언제나 여성스럽잖아!"
"여성성을 공부할거라면 내가 읽는 잡지를 추천할께."
"슬비까지?!"
슬비가 꼼질꼼질 다가와선 또 소매를 꾹꾹 잡아당긴다.
"자, 이세하. 허락할께."
"뭐를."
".....내, 내입으로 말하게 할 생각이니? 계속 둔한척 하지마.... 바보...."
"아니...그.... 나도 부끄러움이란게..."
"내가 여자친구면 부끄럽다는 거야?!"
"진정해!"
유리가 손날로 사이를 가른다. 부웅, 하고 소리가 들린게 굉장히 위협적이었는데, 착각이겠지.
"잠깐. 둘이서만 그러는건 역시 치사해. 나, 나도 처음인데...."
정신이 혼미해진다.
슬비가 우물쭈물 말한다.
"그, 그치만... 내가 먼저 고백했으니까 첫키스는 내가 먼저 하는게 순서가 맞지 아닐까?"
"내가 먼저 좋아했으니까 그, 내가 먼저야."
"그 얘기는 아까도 방에서 했잖아! 솔직히 세하를 좋아한건 내가 먼저인데... 저번엔 날 응원한다고 해놓고..."
"그, 그때는 전혀 안 좋아한다며! 오히려 싫어한다고 그랬으니까...."
"그야 당연히 부끄러우니까 거짓말로..."
어쩐지 둘이 서로를 노려보며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을 주고받기에 열기가 격화되는 느낌이 든다.
슬비는 이쪽의 팔짱을 끼고 견제를 하고있고, 유리는 베개를 들이밀며 끼어들고있다.
조금 공기를 바꿔보고자 입을 연다.
"아니 너희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
둘이 고개를 번개같이 돌리며 쌀쌀맞게 말을 받았다.
"시끄러 이세하. 여자애한테 첫키스가 얼마나 중요한건지 모르니?"
"세하는 여자랑 키스할 수 있으면 누구라도 좋은가봐?"
"...........아뇨. 닥치고 있을게요."
울어도 되는걸까. 울어도 되는 타이밍인가? 어라? 잠깐, 사실은 나한테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 아냐?
혹시 첫키스가 실은 꿈에서 더스트가 한게 처음이라고 말하면 상황이 악화되겠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법이다.
"저번엔 내가 양보했으니까 이번엔 양보해줘도 괜찮잖아."
"오늘도 한번도 양보해주지 않았으면서."
"내가 양보하든 안 하든 하고싶은대로 했잖아?"
"......으읏..."
".... 으우..."
둘을 보고있자니 웃음만 나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두근두근하고 숨이 막혔지만, 둘 다 나와 다를바 없는 애들이란 걸 알고나자 안심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나 날 좋아해주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따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녀석들한테는, 조금만 더 욕심부리고, 용기를 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야, 이슬비."
"이세하, 시끄럽다고 했을....?!"
입술이 살짝 겹쳐지자마자 녀석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유리가 뭐라고 하기 전에 얼굴을 돌려 유리에게도 입을 맞춘다.
아주 살짝, 깃털이 닿는 무게만큼 도장을 찍었을 뿐이지만 온기는 충분할만큼 나눠받은 기분이 들었다.
부끄러워져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벽을 보고 누웠다.
"이제 니들도 자라. 내일 아침에 보자."
잠깐 정적이 흐르나 싶더니 둘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어미 배를 누르는 강아지마냥 이불 위를 꾹꾹 누르나싶더니 이내 어깨를 잡고 흔든다.
"기다려 이세하. 그건 무효야. 그렇게 제대로 하기가 싫었니?"
"세하야? 한번만 더 해줘."
"우리 내일 출근해**다고...."
"그럼 여기서 자면서 널 괴롭힐 거야."
"나도 세하랑 같이 잘래!"
이거 1인용 침대입니다만... 다소 넓어보이지만 그래도 1인용 침대라고. 셋이 눕기엔 비좁다!
"안 일어나면 슬비한테 뽀뽀할거야! 보란듯이 쪽쪽 해댈 거다?"
"유, 유리야. 그건 허락할 수 없어...."
결국 옆으로 누운 자세를 허락받지 못했다. 팔베개까지는 무리였지만 왼쪽에 슬비가, 오른쪽에 유리가 눕는다.
유리의 커다란 베개는 이미 바닥을 뒹굴고 있다. 어쩐지 미안해, 이세하(샌드백).
둘이 나란히 이쪽을 껴안고있자니 달콤한 체취가 올라와서, 정신이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 보자."
"잘 자."
"내 꿈 꿔!"
정말 이상하게도, 그 날부터 더 이상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다음 날 둘이 양쪽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때는 정말 죽을만큼 부끄러웠다.
하지만 둘이 정말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기에, 놓을 수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놓을 일이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서류철을 들고가던 유정 누나는 이 풍경을 목격하고 너무 기가 막혔는지 뒷목을 잡고 있었지만,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 먼저 와서 신문을 읽던 제이 아저씨는 오히려 히죽 웃으며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기 좋네."
"시끄럽네요."
"니들 오늘 신문 봤냐? 드라마나 영화만 ** 말고 뉴스도 좀 봐라."
"왜요?"
"우리나라도 일부다처제를 시행한다더라."
".............네?"
셋이 얼른 손을 뻗어 신문을 잡는다.
"차원종과의 전쟁으로 인해 특경대와 클로저등 많은 국제적 남성인구 감축으로 인한 출산가구감소로 인해..."
"심사과정을 거쳐 자격을 허가받은 이들에 한하여..."
"올해 상반기부터 시범적으로 정책을 시행한다...?"
신문을 곱게 접어 돌려드렸다.
너무 충격을 받은 탓에 평소보다 훨씬 공손해졌다.
"아저씨 오늘 만우절이에요?"
"만우절은 무슨. 요즘 한창 이것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법안이 통과된 모양이야. 또 여기저기서 시위가 일어나고 그러겠지 뭐."
"..........아직도 꿈인가?"
"왜? 오락가락하냐? 이 형이 개발한 특제 드링크를 마시면 정신이 좀 맑아질거야."
"아뇨, 쓴내를 보니 진짜네요. 그리고 유리야. 꿈인지 아닌지 확인할 때는 내가 아니라 네 볼을 꼬집는 거야."
슬비와 유리가 서로를 바라본다. 아니 그러고 나를 쳐다본다한들.... 아니 잠깐, 역시 우리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거였냐?
문이 또 갑자기 열린다. 저번처럼 이번에도 테인이인가 싶었는데, 느닷없이 세린 선배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 세하야. 저기말야.... 나 할 말이... 어라...? 왜들 그리 붙어있어?"
뒤이어 정미가 들어온다. 아니, 정미가 이 시간에 여기 왜?
슬비가 꼬집듯이 손을 움켜쥐며 불만스런 표정으로 옆을 흘긴다.
"이세하, 얘기 좀 해...... 유리야? 너 왜 그렇게... 너 설마?"
"에.... 정미정미 너...?"
화살이 내게로 돌아온다.
"이세하."
"세하야?"
"세하야!"
"이세하..?"
............여자 네 명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어서 제이 아저씨에게 눈으로 구조요청을 한다.
하지만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라고 어필하듯, 아저씨는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며 헛기침을 하고는 뒷문으로 나가버렸다.
......좋아, 어차피 기대도 안 했어.
도망치지 말자.
더 이상은 도망치지 말자.
피할 수 없는 이벤트라면 진지하게 마주 대해**다.
숨을 가다듬고 모두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렇게,
내가 사랑을 배울뿐인 시시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
두서없는 세하하렘물 10화, 완결입니다.
고백도 하고 하렘도 했는데 열린 엔딩인 해피엔딩입니다. 기묘한 절충안이군요!
이전 시리즈는
1. 세하슬비
2. 세하유리
3. 유리세하슬비(1)
4. 유리세하슬비(2)
5. 세하정미
6. 세하세린
7. 세하슬비(2)
8. 세하유리(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223
9. 유리세하슬비(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244
에서 봐주세요!
일부다처제는 굉장히 실용적인 목적으로의 인구정책에서 출발했고, 생각보다 행복한 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하랑 애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걸로...
그동안 이 잡스럽고 모자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생각없이 쓰다보니 막 오타도 있고 그래요...
이 게임 접기 전까진 종종 여러 소재로 글을 쓸 거 같네요. 제이유정이라던가....
본편에 넣으려다 말았던 세하유리라던가...
아무튼 다음에 다른 글로 만나요! 감사했습니다!